생도 퇴를레스의 혼란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로베르트 무질 지음, 김래현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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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던가, '신의 증명'과 관련된 내용의 글을 읽었는데 내용 중 '허수(虛數)'가 눈길을 끌었다. 보이지 않는 신을 믿는 건 수학 문제를 풀 때 '허수'를 등장시키는 것과 같다... 는, 대충 그런 내용인데 하필 직후에 집어든 소설에서 이 '허수'가 등장해서 재미있기도 하고 묘하기도 하고.

 

어린 퇴를레스('young Torless')에게 닥친 혼란의 기저는 결국 '본질'이라는 개념이다. 퇴를레스는 어느날 예고 없이 기성사회(부모, 사회, 교육...)로부터 물려받은 통념이 의심받고 나아가 붕괴될 위기에 직면한다. 계기는 동료 생도가 절도를 하다 들키면서 시작된다.

동료 생도들의 돈을 훔쳐오던 바시니가 퇴를레스 무리 중 한 명인 라이팅에게 발각되는데, 학교 당국에 사실을 알리고 바시니를 퇴학시켜야 한다는 퇴를레스와 달리 라이팅과 바이네베르크는 바시니의 절도를 공론화하는 대신 바시니에게 그들이 직접 좀 더 효과적인 하지만 개인적인 징벌을 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두 사람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으나 그렇다고 자신의 주장에 확신도 없는 퇴를레스가 태도를 결정 짓지 못하는 동안 나머지 두 사람은 각자 자신의 방식으로 바시니에게 징벌을 주는데 이를 목격한 퇴를레스는 '가해자를 가해하는' 그들의 방식에 거부감을 느끼고 이는 죄와 벌이라는 근원을 향한 환멸로 이어진다.

 

요는, 퇴를레스는 자신이 느끼는 환멸의 정체조차 확신할 수 없어 혼란이 더욱 가중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해결책으로 자연과학의 '허수', 철학자 칸트로 위안을 삼고자 하나 이는 일시적인 것일 뿐, 혼란은 오히려 미궁이다.

 

잠깐이나마 퇴를레스에게 혼란을 정리할 열쇠로 등장했던 칸트의 저서는 소설에서는 드러나지 않으나 앞뒤 맥락으로 보아 아마 <윤리학 정초>가 아닐까 짐작된다. 이 짐작이 맞다는 가정 하에, 칸트의 윤리학에서 특기할 것은 '덕(or 선)이란 정언적이어야 한다'는 덕의 조건인데, 정언(定言)적이라는 건 조건이나 예외를 허용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예로, 칸트에 의하면 하얀거짓말도 거짓말인 것. 과연 이런 엄격하고 청교도적인 정의가 퇴를레스의 혼란을 잠재울 수 있을까? 답은 '아니다'. 먼훗날 언젠가 퇴를레스의 뒤통수를 치며 깨달음을 줄 지언정 어쨌든 현재의 퇴를레스에겐 그조차도 또다른 혼란일 뿐이다.

 

'오성'(Understanding, 悟性, Verstand)은 소설 전반에 걸쳐 퇴를레스의 대사와 독백을 통해 빈번하게 등장하는 단어인데, 흄의 <오성에 관하여>를 빌려오면 결국 판단의 대상은 '도덕'이며, 판단의 주체를 경험으로 삼을 것인가, 본성으로 삼을 것인가의 문제로 귀착된다. 흄 식으로 말하면 logos인가, pathos인가- 쯤 되겠다.

 

퇴를레스는 지금은 알 수 없으니 '침묵하겠다'로 일단은 자신의 혼란에 종지부를 찍는(것으로 보인)다. 나는 그렇게 읽었으나 오독일 수도 있다. 책장에 원서가 있는데 올해 안으로 시간내서 다시 읽어봐야겠다 싶다.

 

퇴를레스는 뭔가를 말하려고 했고, 애써 진한 농담을 해보고 싶었다. 그는 이럴 때 아무 말이나 그냥 하기만 하면 모든 게 해결될 거라고 느꼈다. 하지만 그는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그는 굳어 있는 미소로 자기 위에 있는 거친 얼굴을, 그리고 뜻 모를 두 눈을 응시했다. 그때 바깥 세계는 작아지기 시작했고… 점점 더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한순간 돌멩이를 집어 들었던 그 농촌 총각의 모습이 떠올랐고, 그가 자기를 조롱하는 듯했다. 그러다가 그는 완전히 혼자였다.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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