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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지 ㅣ 황석영 중단편전집 1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0년 10월
평점 :
품절
객지. 삼포 가는 길. 몰개월의 새. 이들 황석영의 중단편소설집1,2,3을 몇날 밤을 들여 한꺼번에 읽어치운건 처음부터 의도해서 그런건 아니었다. 새로 나온 장편소설 <손님>을 읽고자 주문할 적에 '내친김에' 들인것이 계기였다. 숨 차게 세권을 내리 읽어내리고나니 이것들, 내 눈엔 중단편 모음이 아니라 세권짜리 장편소설로만 보인다.
작가의 데뷔작 '입석부근'. 이것이 정녕 황석영님의 작품인가 슬슬 의심하는 기분이 되어 책장을 넘긴다. 고등학생 시절의 작품이라 해도 내가 아는 작가의 문체와는 멀디 먼 현학적 관념적 구절구절들이 여간 거슬리는것이 아니다. 그러한 실망을 지긋이 누르고 속도를 높일 적에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하는 황석영만의 묵지근하지만 정서를 파고드는 문체가 반갑다. 그 때부터 책장이 파라라락 소리라도 낼듯 빠르게 넘어간다.
월남전 참전의 경험으로 만들어진 '탑','몰개월의 새'같은 작품들이 하아, 하는 짧은 탄식과 함께, 어린시절의 경험이 짙게 발라진 성장소설들이 입꼬리에 꿈틀거리는 웃음을 달아주고는 다음 작품으로, 또 다음 작품으로 밀어넣는다. '객지'에서는 뚜렷한 분노와 왠지모를 섬뜻함을, '삼포가는 길'에서는 뭉근한 해학과 뒷맛으로 남는 쓸쓸함이 어쩔 줄 모를 정도로 읽는 재미를 부추긴다.
그리고 엉뚱하게도 나는 세번째 권의 '심판의 집'에서 내용과는 상관없이 폭소를 터뜨리고 만다. 살벌한 제목과 스산스러운 연쇄살인사건을 다룬 추리형식의 소설이 도무지 황석영답지 않으면서 너무도 황석영스러운 재미를 듬뿍 담고 있다. 나는 일본에 살면서 널리고 널린 추리형식 서스펜스드라마를 아주 즐겨보는데, 여기서는 살림하는 아줌마들이 집안일 끝내놓고 한 숨 돌릴때 보라고 대낮에만 몇 편씩 방영된다. 그런 나에게 동료들은 대놓고 쯧쯧 혀를 차기 일쑤라 즉 내용이나 감동의 질에 상관없이 남에게 말못할 경박한(?) 취향으로 쉬쉬하고 있던 형편이다. 그런데 느닷없이 딱 그런 내용의 '심판의 집'이 너 이거 봐라는 듯이 거기 있었던 것이다. 요러한 개인적인 까닭도 한 몫 해 즐거움을 배가하면서 책읽기는 가속을 더한다.
이러니 중단편전집 세권이 한 통짜리 장편소설로 여겨지는 것도 무리는 아닐것이다. 그렇지만 개인적인 책읽기 습성이나 비밀스런 취향만으로 그만큼 확고한 인상을 갖게 되지는 않는 법이다. 이를테면, 이것이 아마 가장 중요한 요인이겠지만, 이 세권의 중단편소설들은 한 코에 꿰어진 곶감처럼 질서정연하고도 일목요연한 흐름과 주제를 견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작품 한 작품이 각각 뛰어난 작품성과 무게를 갖고 독자를 향해 주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작품들이 또한 한 목소리, 하나의 주장이다.
아마도 그것들의 한결같은 주장이란, 바로 황석영 작가 자신의 인생 그 자체일 것이다. 남과는 조금 다른 인생역정일 지언정 작가 또한 우리와 동시대에 몸을 얹은 한 사람의 인간이다. 그 인생과 정신세계가 참말로 맑고도 깊어서 심연까지 깨달을 길이 없다고 해도. 그리고 나는 이 세권의 중단편집이 하나의 장편소설로 여겨지고 또 작가 자신으로 여겨지는 혼동이 오는 현상이 작가의 장인정신 실린 노련한 노림수가 아니었을까 하는 해석도 해본다.
솔직히, 글 쓰는 일이 콩이네 팥이네에 머물기 일쑤고, 그래서 뭔데?라고 묻고싶어지는 결말 투성이인 최근의 한국소설들에 대한 무지막지한 실망의 반대급부도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명백히 인정할 것은 짚고 넘어가야겠다. 나도 그림이라는 매체로 자신을 드러내고 살아가는 입장이지만, 인간은 자기가 갖고 있는 깊이 만큼만 남에게 보여줄 수 있다고 확신한다.
어떤 현학적 태도도 재주의 능란함도 인간이 갖고 있는 본래의 깊이만큼은 조작하지 못한다. 하물며 인간의 머리속에 들어박힌 생각틀이야 오죽하겠나. 확석영의 소설들로 말하자면, 작가가 작품을 통해 시종일관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묵지근한 토로가 문제가 아니라 인간 황석영을 통째로 읽어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황석영 소설이 주는 뿌듯함이라고 어찌 단언하고 싶지 않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