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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도가 있었다 - 사라지고 살아남고 살아가는 생명 이야기 푸릇푸릇 지식 1
이자벨 핀 지음, 전진만 옮김 / 시금치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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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펀딩에 참여하여 책을 만났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오래도록 소장하고 싶은 책을 만나 반가웠습니다. 어른인 저도, 초등학생인 아이도 커다란 판형의 책 속으로 들어갈 것처럼 집중하며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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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 진검승부 - 조선왕조실록에 감춰진 500년의 진실
이한우 지음 / 해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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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 진검승부 -역사의 재해석에는 어떤 자세가 필요한가.

   요즘 들어 조선왕조의 역사를 되짚어 보는 작업이 역사학계 내외에서 활발하다. 학술적인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일반 교양 차원에서도 높은 관심과 조명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조선왕조의 장구한 역사를 기록해 낸 조선왕조 실록에 대한 다양한 접근과 재해석이 눈에 띈다. 과거의 한 시대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면 할수록 좋다. 해석을 통해서만이 과거에로의 여행이 가능한 후대의 사람들에게 보다 합리적이고 타당한 해석을 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접근이 이루어질 때 그 속에서 가장 타당한 해석을 만날 수 있고 경도된 역사 인식을 지양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이 책, '조선사 진검승부'는 의욕은 넘쳤으니 기대에 부응하지 못 한 한 권이 아니었나 싶다. 신문기자로서 조선왕조실록의 재해석이라는 광대한 작업에 착수한 저자는 실록을 다시 읽는 과정에서 '역사의 가르침'에 대해 겸허한 마음과, 평가하는 것이 아닌 공감하고 이해하는 자세를 배웠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역사를 접할 때에 무엇보다 갖춰야 할 자세일 것이다. 하지만 교양으로서 역사를 취할 때 우리에게는 한 가지 더 필요한 자세가 있지 않을까. 나는 그것이 통찰력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실록에 적혀져있는 사건들 중에서 일부를 저자가 발췌하여 그 사건의 배경과 사후 해석을 덧붙이면서 늘어놓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이런 방식에서 중요한 것은 사건과 사건들의 연결고리이고 전체적인 그림과 그로써 밝혀지는 조선왕조에 대한 새로운 역사 해석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나는 이 책에서 각 주제들을 관통하는 굵직한 역사적 통찰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매 주제마다 저자가 끝부분에 한 마디씩 던지며 현실정치와의 관련성을 시사하는 글귀가 있지만 통찰로 연결된다기 보다는 사소한 감상 수준에 그치고 있다. 저자는 실록의 역사관에 공감하고 그 시대를 살았던 정치인들과 삶을 공유했을지는 몰라도 실록이라는 방대한 역사 기록에 대한 재해석과 평가, 이를 통한 시대의 통찰에는 소홀한 것 같다.
 

   또 한가지, 이 책이 놓치고 있는 것은 조선시대라는 덩어리이다. 실록은 어디까지나 정치세계에 대한 기록에 불과하다. 또한 결코 있었던 그대로의 사실에 대한 기록도 아니며 (저자가 자주 밝히듯이) '승자의 기록'일 뿐이다. 실록에 대한 폄하가 아니라 기록의 한계를 분명히 하고 접근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전체적인 그림에 대한 통찰력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따라서 실록에 너무 근접한 시야에서 역사를 재해석 했을 때는 정작 조선시대를 살았던 일반 민중들에 대한 삶을 읽을 수 없게 된다. 기록을 재해석 한다고 했을 때에는 그 기록들 속에 감추어져 있는, 즉 기록되지 않은 역사에 대한 유추와 평가도 병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역사를 새로 읽는다는 것은 그만큼 고통스럽고 지난하고 힘든 일인 것이다.
 

   소소한 읽을거리, 재미거리를 원한다면 이 책으로 충분하다. 역사에 대한 상식도 많이 쌓을 수 있다. 사건들에 대해 지나치게 자세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넘어간다는다는 점도 이 책을 술술 읽히게 하는 요소이다. 하지만 연구자의 열정과 고뇌를 느낄 수 있고 '잘 된' 재해석을 접하고 싶다면, 같은 조선시대를 다룬 다른 역사서들을 권하고 싶다. 예를 들면 '반역, 패자의 슬픈 낙인'(배상열)이나 '우리가 정말 몰랐던 조선 이야기1,2'(김인호, 박훤)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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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독서 - 세상을 바꾼 위험하고 위대한 생각들
유시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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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요즘 꽤 몰입하여 읽은 책 중에서 인상 깊은 저자를 하나 꼽으라면 단연 유시민이다.
그의 책을 다 읽은건 아니지만, <청춘의 독서>는 <후불제 민주주의>에 이어서 최근에 나를 매료한 저작의 반열에 올릴 수 있다. 참 쉬운 문체이면서도 완벽하게 뜻을 전달하는 명료함과 명쾌한 주장, 인간적인 고뇌가 느껴지는 솔직담백한 글솜씨. 여기에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 주는 소소한 유우머까지.
나는 정치인으로서나 학자로서의 유시민에 대해서 아직은 명확한 이미지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 그가 사람을 잡아 끄는 데가 있는 '지식소매상'인 것 만은 분명한 듯 하다. 

이 책은 유시민씨가 갓 사회에 발을 디딘 딸에게 헌정하면서 동시에 그 나이 또래의 젊은 후배들에게 주는 따뜻한 지식의 선물상자이자, 동세대의 공감대에 다시 한 번 감흥의 선율을 선사하는 작은 오르골 박스와 같다. 나는 그의 딸 또래인 젊은이도 아니고 그와 동세대도 아니지만 슬그머니 그들 사이에 몸을 밀어 넣고 지식의 선물과 공감대에 울리는 즐거운 떨림을 맛보았다.

어떤 사람들은 그저 자기가 읽은 책 중에서 몇 권을 모아 그에 대한 썰을 푸는 식으로 한 권의 책을 내고 지명도를 얻는 것에 대해 좋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다. 마하자면 완벽한 오리지널이 아니라 일종의 재탕이기 때문이다. 나도 이런 생각에 어느 정도 공감하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서평을 모아 놓은 책이나, 유명한 사람들의 추천 도서들로 엮은 책들을 그다지 즐겨 보는 편이 아니다. 오히려 독서 목록에서 배제하는 편이고 나 스스로 독창적으로 독서편력을 만들어 가는 것이 훨씬 가치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내가 이 책을 집어들고 읽으면서 게다가 상당히 몰입하면서 독서를 즐길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저자만의 독특하고 매력적인 감성이 엮어낸 컬렉션과 그에 대한 솔직한 감상과 주장에서 잔잔힌 지적 희열을 느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일류대를 나오고 대한민국의 장관까지 지냈으며 지금도 늘 누군가를 가르치는 입장에 있는 사람이지만 결코 한 번도 위에 서서 아래로 가르치려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그가 읽은 책들이 좋은 책이니 우리가 꼭 읽어야 한다고 강요하지도 않고 자신의 느낌이 가장 보편타당한 것이라는 식의 은근한 권위를 내세우지도 않는다. 작가후기에 쓰여진 독자에 대한 당부는 이러한 저자의 입장을 잘 드러내고 있다. '이 야기는 단지 나의 느낌이고 생각일 뿐이니 당신들은 당신들의 느낌과 생각을 더 중요시 하기 바란다'라고, 저자는 실컷 300페이지에 달하는 책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고서 모든 것을 백지로 돌려 놓는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저자의 당부 말씀을 다는 다 들어드릴 수가 없을 것 같다. 저자가 제시한 독특한 컬렉션들과 거기에 덧붙여진 저자의 설명과 주장에 여하간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동양고전을 읽어보려고 한 번도 시도한 적도 없고 관심도 없었던 나에게 청춘의 독서 컬렉션 중의 '사기'와 '맹자'는 강렬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대상으로 다가왔다. 이 책이 아니었다면 아마 앞으로도 동양고전에 대해 관심을 가질 일이 거의 없었을 것이다.

또 한가지 이 책을 읽으면서 즐거웠던 것은 내가 읽었던 책들에 대한 저자의 감상과 이해를 참고하며 내가 그 책을 읽었을 때 가졌던 생각들을 회고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나름 유명한 <죄와 벌>, <대위의 딸>이나, 나 또한 대학 초년생 때 제법 가슴을 두근거리며 읽었던 <공산당 선언>이나, 저자와 똑같은 이유로 책의 '명성'때문에 읽게 되었던 <광장>같은 것들이 그렇다. 내가 그 책들을 읽으면서 느꼈던 감정과 사유들이 꾸역꾸역 되살아 나는 느낌은 무척이나 새롭고 당황스럽고 즐거운 일이었다. 독서가 책과의 대화라고 하지만 정말이지 나와 이 책의 저자와 예전에 읽었던 책들의 저자들이 다 함께 원탁에 둘러 앉아 한 판 시끌벅적하게 회식이라도 하는 기분이었다.

아무래도 이 책의 영향으로 앞으로 나의 독서 영역이 조금은 덜 편협해질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가령 저자의 러시아 문학에 대한 조예는 남달랐는데, 난 도스토 옙스키의 <죄와 벌>이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정도를 읽은게 대부분이다. 러시아제정과 볼셰비키 혁명과 같은 시대적 상황도 잘 몰랐을 때인 중고등 학생때 읽은 것들이니 더 말할 것도 없다. 어느 정도 식견이 생긴후에는 고전에는 그닥 관심을 갖지 않았고 읽었다고 말 할 수 있는 것은 막심 고리키의 <어머니>정도다. 이 책을 통해 나는 러시아의 고전(혹은 현대고전)에 다시 한 번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저자의 경험을 통해 그들의 문학이 한국의 근현대사 속에서 재해석 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흥미를 느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정점은 맨 마지막 컬렉션인 <역사란 무엇인가>라고 할 수있다. 저자는 감히 이 책이 자신의 인생을 바꾸었다고 말했다. 자신의 인생을 바꾸거나 적어도 어떤 방향으로 확실히 이끌어 준 책을 마음에 품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마음 든든한 일인가. 그래서 저자는 <역사란 무엇인가>를, 마음이 길을 잃고 방황할 때마다 여러번 읽었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몇 번이고 길을 제시해주고 어두운 곳을 밝혀주는 책이란 그 사람에게 얼마나 가치있는 것인가! 나는 지금도 그런 책을 찾고 있다. 내 인생에도 적잖은 영향을 준 책들이 여러권 있긴 하지만 아직까지는 내게 등대와 같은 역할을 해 주는 책은 이것이다, 라고 자랑(?)할 수 있는 건 없는 것 같다.  

독서를 즐기는 사람 누구나가 저마다 다른 취향과 인생의 맥락 속에서 책을 읽는 것이기에, 유시민씨와 같은 경험이 없다고 해서 특별히 좌절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 같은 경우에는 내 인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것이 책이 아니라 박재동씨의 '한겨레 그림판'이라는 일간신문의 한 코너였음을 생각하면 사람들은 다 저마다의 사연을 갖고 살아간다는 말이 새삼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책을 좋아하고 감히 독서를 취미라고 여기며 살아가는 입장에서, 앞으로 내게 어떤 책들이 어떤 의미를 던져주게 될 지 늘 설레이고 기대에 들뜰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 이 책을 통해 그러한 기대는 더욱 확연한 것이 되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책들과 만날 것이고, 꼭 좋은 책만을 읽게 되지는 않겠지만, 나도 유시민씨와 비슷한 나이가 되면, 그와 같은 멋진, 내 인생의 책 컬렉션이 만들어질 날이 오지 않을까 싶고 그렇게 기대해본다. 책과 저자들과 나와의 대화는 내 일생에 걸쳐서 계속될 것이고 그러한 한 인생은 결코 외롭지 않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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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역 패자의 슬픈 낙인 - 피로 쓴 조선사 500년의 재구성
배상열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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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는 언제나 이면이 존재한다.

역사는 진실 그 자체가 아니라 '누군가'의 주관이 개입된 사실에 대한 해석과 기록이기 때문이다. 어떤 위치에서 어떤 정치적 입장을 가진 사람이 어떠한 상황(혹은 압력) 속에서 사실을 기록했느냐에 따라 관점과 해석이 달라진다. 특히 정치적인 사건은 저자의 주장 처럼 권력투쟁의 승자의 시선에서 이루어지는 '승리'의 기록이다. 그 속에 '패자'에 대한 정당한 기록은 언제나 말소된다. 따라서 기록된 역사는 늘 불완전한 한 면의 동전이다. 역사에 '진짜'는 없으며 그것은 끊임없이 고증되고 재해석 되어야 하는 영원불멸의 개척지이다.

이 책의 저자 또한 이러한 자세로 조선시대의 반역의 역사를 다루었으리라.

사장된 역사, 동전의 이면은 역시나 놀라운 것이었다. 이 책이 말하는 조선의 역사는, 책 표제가 말하듯이 '피로 쓴 역사'였다. 반역으로 세워진 나라. 그리고 계속되는 권력 찬탈과 세력다툼을 위한 반역, 또 반역, 반역의 반역.. 또 그 반복. 책을 읽어 나갈 수록 진저리가 날 정도다. 그리고 그 속에서 무고하게 희생을 강요당한 무지랭이 민초들의 삶이 아프고 안타깝고 화가 나서 눈물이 난다. 

조선이라는 나라의 정통성이라는게 참 우습다는 생각이 든다. 당대의 권력을 쥐고 흔들던 세력들이 그들의 비위에 거슬리는 왕을 끌어 내리고 스스로가 왕이 되거나 입맛에 맞는 혈통을 찾아내어 왕좌에 앉히는 일을 반복했다. 그리고 한 번 권력에 앉으면 그걸 지키느라 또 무수한 피를 뿌렸다. 피를 나눈 형제도 죽이고 자식과 손자도 죽이고 부모까지 쳤다. 인륜을 최대의 덕목으로 여기는 유교를 숭상해 온 나라가 온통 안으로는 패륜이 들끓었던 셈이다. 신하들이나 민초들의 목숨은 가랑잎보다 더 가치없는 것이었다. 광주민중항쟁에서의 시민 학살과 같은 일이 무수하게 벌어졌다. 반역이 한 번 일어나면 백명에서 많게는 천 명 가량의 목숨들이 예사로 청소(?)되었으니, 정치가, 권력자가 그야말로 사람 잡는 괴물이 아니고 무엇이었으랴. 책을 읽어 내려가면서 놀라움과 함께 답답하고 한심한 마음에 자꾸만 미간이 좁아졌다.

이 책을 통해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조선시대의 역사를 재해석 하고 저자가 제시하는 근거들을 바탕으로 감춰진 진실이 무엇일지 나름대로 유추해 보는 즐거움도 쏠쏠하지만, 시대와 지역과 이념을 막론하고 인간이란 무엇인지 인간의 권력욕이란 대체 무엇인지 철학적인 질문에 까지 생각이 미친다. 정말 권력이란 더러운 것이구나. 한 인간의 그릇된 가치관과 권력욕이 다른 사람의 삶과 죽음에 미치는 영향이 이토록 강렬한 사회는 대체 어떤 사회인가.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든다. 

조선시대는 왕이 지배하는 전제군주제 사회고 지금은 민주주의 사회니까 상황이 다를지도 모르지만, 왠지 꼭 그런것 같지만은 않아 씁쓸함과 응어리가 남는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지만 여전히 대통령에게 강력한 권력을 주고, 단지 몇 퍼센트의 사회적 강자와 경제 엘리트 그룹이 사실상 사회의 의견을 지배하는 우리 사회가, 지난 날의  조선시대와 얼마나 다르다 할 수 있을런지. 아직도 누가 지도자가 되느냐에 따라 풍전등화마냥 이 사회의 운명이 갈지자를 그린다. 국민은 뽑기만 할 줄 알지 뽑아 놓은 다음엔 아무런 힘도 없이 조선시대의 백성들 처럼 자신들의 삶이 어떻게 전개될 지 북악산 밑자락만 쳐다보면서 전전긍긍 해야 한다.

적어도 국민을 '모실 줄' 알았던, 권력을 위해 권력을 휘두르려 하지 않았던 두 분의 전 대통령을 한꺼번에 잃은 지금. 안타까움과 불안감이 더욱 무겁게 어깨위로 얹히는 느낌인 건 그저 막연한 슬픔 때문만은 아니리라.

반역에 대해 말하는 것 조차 반역이 되는 수 많은 시절들이 있었다.

역사라는 것이 거짓과 위선과 과대포장과 은폐와 축소에 다름 아니고, 진실이란 건 어쩌면 행간에만 존재 해 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씩이나마 반대편의 진실이 탐구되고 눈에 보여지는 것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 까지를 더듬어 우리 역사를 입체적으로 보려 하는 시도가 가능한 시대이니 그나마 다행스럽다. 역사는 승자만의 기록이어서도 안 되고 불가침의 영역이어서도 안 되며 끊임없이 재해석 될 수 있는 자유 속에 있어야 한다.

이 책 또한 역사에 대한 또 하나의 해석에 불과하겠지만, 누군가가 진실이라 못박아 놓은 것에 대해 의구하고 회의하는 자세는 비판없는 수용보다 진실에 더 가까운 곳으로 우리의 지성을 인도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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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책의 말미에 저자가 '홍길동' '임꺽정' '장길산'의 진실을 언급해 놓은 부분도 흥미롭다. 그런데 '임꺽정'을 의적이라 할 수 없는 이유가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존재였기 때문'이라는 서술에는 썩 동의할 마음이 들지 않는다. 그건 자신들의 치부를 감추고 세력을 유지하기 위해 권력자들이 너무 편리하게 잘 쓰는 말이 아닌가! 처음부터 끝까지 책 속에서 그런 권력자들을 질타해 놓고선 마지막에 '임꺽정'을 의적 자리에서 끌어내기 위해 그런 논리를 쓰다니, 독자 입장에서는 맥이 빠진다. 차라리 여담을 안 붙이느니만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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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불제 민주주의 - 유시민의 헌법 에세이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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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디로, 요즘 지치는 일상 중에서 단 샘물과 같은 존재가 되어 준 책이다.
재미있고 유익하고 한 장 한 장 한 문장 한 문장에서 무릎을 치며 아! 맞아! 하고 추임새를 넣고 싶어지는 책.
무엇보다도 요즘 내가 느끼고 있는 한국사회에 대한 염증섞인 의문과 짜증에 통쾌한 답을 주는 책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애닯기도 하다.
이 책은 유시민씨가 노무현 전대통령이 돌아가시기 전에 썼다.
조금 더 일찍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아무도 예측 못했을 노무현 대통령의 자살에 대한 그 어떤 낌새도 눈치도, 역시 이 책의 어느곳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다.

내가 유시민씨의 논리에 대해 100% 공감한다고는 할 수 없다.
가령 사회자유주의라던가 하는 중도적인 정치이념도 나에게는 좀 더 검증해 볼 시간이 필요한 주장이다.
저자가 노 전 대통령을 모실 때, 국회의원을 하던 때, 공직에 있을 때의 알려지지 않은 뒷얘기들도 무척 흥미롭지만 이런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어가는 책의 후반부로 갈 수록 전반부의 헌법에 대한 생활철학적 접근이 좀 퇴색되어가는 느낌도 없지 않다.
뭐 어짜피 저자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고,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또 나름대로 궁금증도 해결되고 그랬구나~ 하고 공감도 하게 되니 나쁠 건 없다.
독자의 입장에서는 저자는 한 사람의 화자일 뿐이고 다양하게 드러나는 시각 중의 하나에 불과할 뿐이며, 다만 그것이 심정적으로 논리적으로 타 화자의 이야기보다 많이 공감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적어도 유시민씨의 글을 읽고,
내가 한국에 없었던 8년간, 특히 노무현 정권 때의 한국사회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2008년 초에 귀국한 후, 한국 사람들의 정치적 변화무쌍함과 거침없음과 또 한편으로는 (순전히 내가 보기에) 어리석은 정치적 판단과 그 행위가 솔직한 마음으로 적지 않이 놀랐던 참이다. 이명박정권 이후에 벌어지는 적나라한 '문명의 역행(위 책에서 인용)' 현장을 목도하면서 그 놀라움은 울화통으로, 분노로, 그리고 불가해함과 무기력함으로 연동되어 가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이미 그 전에 이명박이 선출된 최근의 대통령 선거를 인터넷 중계로 타국에서 지켜보면서부터, 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반감이 이명박의 대통령 선출로 이어지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마음이 마음 밑바닥에 응어리처럼 자리잡고 있던 차였다.

이 책은, 전부는 아니지만 많은 부분에서 나의 답답함에 대한 답을 주는 책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어쨌거나 최종적으로, 대안은 사람들이고, 우리 나라 사람들이고, 또 거기에는 나도 포함된다.
민주주의의 댓가를 후불해 나가는 과정에서, 지금의 이명박 파쇼 정권의 등장인 불가피했을지도 모른다고, 저자처럼 약간 너그러운 마음이 들기도 하고, 사람들이 그래, 한번의 잘못된 판단에 대한 댓가는 지불해야 하겠지만 또 같은 실수는 하지 않겠지, 라는 낙관적인 생각이 들기도 한다.

독자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서 이 책이 주는 느낌도 저마다 다르고 (그것은 반감 혹은 공감, 아니면 설득 혹은 반론의 형태로 나타나겠지만..) 평가도 그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나는 그토록 한국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변화(혹은 성장)한 시기에 한국에 없었던 한 사람으로서, 지금의 한국사회를 이해하고 나와 남의 삶에 대한 비전을 회복하기 위해 무척이나 도움이 되는 한 권이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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