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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온천
요시다 슈이치 지음, 민경욱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선입견을 갖고 급하게 책을 읽다 보면, 책을, 작가를 오해하는 일이 생긴다. 내가 그런 실수를 한 최근의 예는 요시다 슈이치였다. 예전에 그의 책을 몇 권 읽고 흘려넘겼었는데 최근 <악인>을 읽고 내가 정말 그의 책을 읽었다고 할 수 있을까 싶어졌다. 그래서 <첫사랑 온천>을 꺼내 읽었다. <파크라이프>는 다시 읽어야 할 듯. <퍼레이드>는 어디있지. 여기까지 생각하며 요시다 슈이치의 책 목록을 보다가 <7월24일 거리>가 그의 책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_- 이 사람 그렇게 말랑말랑한 글을 쓰는 게 아니었잖아. 난 바보인가. 씁.
<첫사랑 온천>은 다섯 온천을 찾은 다섯 사연을 담고 있다. 온천은 이래서 가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드는 여러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이형, 신혼여행은 어디로 가는 거야?) 가장 마음에 드는 이야기는 <흰 눈 온천>과 <순정 온천>. 말랑말랑한 이야기를 싫어하는 척 하지만 사실 말캉한 걸 좋아한다. 지친 일상에서 도망쳐 온천에 숨어봐야. 낙원은 고통을 가중시키기 마련이다.
<첫사랑 온천>에서. "행복한 순간만을 이어붙인다고 해서 행복한 건 아니야." 에 우울해하다가, <흰 눈 온천>에서는 <대성당>식의 뜨끈함에 마음을 담궜다. <망설임의 온천>은 온통 회의투성이어서 울적했고, <바람이 불어오는 온천>은 춥고 슬펐다. <순정 온천>은 내가 누려본 적 없는 청춘(20살이 되기 전이라는 뜻이다)의 낭만을 상상하게 만들었다.
이 책의 현실적인 이야기는 그렇게까지 공명이 강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순정 온천>이 마음에 드는 걸지도 모르겠다. 세상을 덜 살아서, 덜 경험해서 좋은 건 현재에 막무가내의 애정을 느낄 수 있다는 데 있다. 다른 사람과 나누어 가져야 할 과거도 없고, 앞으로 몇명이 될지도 모르는 사람들과의 미래를 앞서 근심할 필요도 없다. 그저 지금으로 좋을 수 있다. 난 왜 그렇게 못 살았을까. 고등학교 때도, 대학교 때도, 뭐- 초등학교 때라도. 겁이 너무 많아, 나는. 그냥 지금 좋다면, 그것으로 족한 것 아닌가. 왜 그렇게 행동할 줄 모르는 걸까.
이보다 더한 즐거움을 마키가 아닌 누군가와 느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아직 겨우 17년밖에 살지 않았지만 이 17년동안 가장 좋아한 여자였고, 앞으로 몇년을 더 산다 하더라도 이렇게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진 않을 것 같았다. -199
앞으로 마키가 아닌 여자와 온천에 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 이 여자와 계속 함께 있고 싶다. 가끔 응석을 부리는 것도, 때때로 토라지는 것도, 귀찮게 계속 되묻는 것도, 왼쪽 눈 밑에 있는 작은 점도, 본인은 싫어하는 덧니도 전부 다 좋았다. 이런 마음이 언젠가 사라질 거라는 사실 같은 건, 별이 반짝이는 산속 노천탕에서 아무리 생각해 봐도 도무지 상상할 수 없었다. -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