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모츠마 이야기 - 살인사건 편
타케모토 노바라 지음, 김소영 옮김 / 도서출판두드림 / 2005년 12월
평점 :
품절


간단하게 말하면 아주 애교스러운 추리소설. 로코코 풍의 소녀를 싫어하는 남자들로서는 초반을 넘기기가 단팥빵 100개를 먹기보다 힘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회사에서 읽으면서 너무 깔깔대고 웃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친 것이 미안할 따름이다. 애거서 크리스티에 바치는 오마주와도 같은 트릭을 사용해 살인을 저지르게 하다니, 이 작가는 참.

다음은 개인적으로 책을 읽으면서 정리한 두어가지 감상을 합한 것이다.

+ <흑사관 살인사건>에 대해

휴가 때 런던에 가면서 책을 몇 권 읽었는데(인천에서의 탑승대기시간과 싱가폴에서의 환승대기시간까지 24시간이 넘는 여정이었다), 그 중 한 권이 <흑사관 살인사건>이었다. 엄청나게 어려워서 한참을 끙끙대며 읽었더랬다. 현학적이고 잘난체하는, 너무 똑똑해서 기가 막힌 이야기다. 좀 심각할 정도로. 결론적으로 난 그 책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이유는, 딱히 이해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을 하게 만드는 책이 아니었다, 내게는.

<시모츠마 이야기: 살인사건 편>을 읽다가 <흑사관 살인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발견했다. 혼자 깔깔거리고 웃다가, 이 책을 읽을 사람이 많지 않을 것 같아서, 여기 해당 대목을 옮겨둔다. 참고로, 주인공인 모모코는 로리로리한 의상을 즐겨입는 영원한 로리타 룩의 맹신자. 그녀는 촌스러운 폭주족 출신("뇌수를 배추벌레에게 마구 잡아먹힌 듯한") 소녀 이치고와 절친하다기보다는 우연으로 묶여 가까이 지내는 친구사이다. (영화 <불량공주 모모코>의 원작인 <시모츠마 이야기>가 이 책의 전편이다) 모모코와 이치고는 우연히 살인사건에 휘말리는데, 공교롭게도 이치고가 살인용의자로 주목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모모코는, 이치고만큼 멍청한 경비원아저씨와 이치고의 누명을 풀기 위해 만나 대화를 나눈다. 다음이 그 대목이다.

"우리는 이치고를 용의자로 세움으로서, 승객 대부분을 범인으로 의심해 보는 것이 가능해졌다는 전제 하에 다시 검증을 시작해야 해요."
"점점 더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수학 수업 같다고. 아카가와 지로의 미스터리는 훨씬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데." (여기서 일단 한번 웃었다. 아카가와 지로의 미스터리같이 쉽다, 는 말은 숙어집에 넣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그리 무시타로의 탐정소설은 훨씬 어렵다구요."
"누구야, 그게?"
"<흑사관 살인사건>을 쓴 사람이에요."
"신인인가?"
"아뇨, 이미 오래전에 돌아가신 분이죠."
"아, 너 틀렸어. 그거 흑사감이 아니라 삼각산의 머시기잖아. 에도가와 란포."
(참고로 이 어이없는 대답을 옮기면서 오타는 전혀 없다는 것을 미리 밝힌다.)
"란포는 삼각산이 아니라 <삼각관의 공포>네요. 그리고 흑사감이 아니라 흑사관. 뭐, 무시타로의 경우는 미스터리라고 하기보다는 안티 미스터리 수업을 사용한 현학 소설이지만."
(이쯤 되면 로리로리한 소녀를 무시할 수는 없겠다. 로리타 문화의 대변자라는 책의 저자 타케모토 노바라는 물론이고.)
"안튐 미스터리?"
"추리소설로는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을 조건으로 해서 쓴 궁극의 추리소설이라구요. 정녕 모르신단 말씀?"
"바보 취급하지 마. 나도 미스터리라면 꽤 안다구. 그러고 보니 옛날에 그런 종류도 읽었던가. 맞다 맞다, 생각났다. 하지만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트릭이 복잡해서. 역시 미스터리의 진정한 묘미는 기발한 트릭이라고 생각해. 그렇게 전차 시간이 어찌저찌 되었다더라 하는 건 느슨해서 성에 안 찬다구."
분명 그건, 니시무라 쿄타로가 쓴 작품입니다. 오구리 무시타로와 니시무라 쿄타로. 타로밖에 안 맞잖아요! 게다가 니시무리 교타로는 전혀 안티 미스터리가 아니란 말이죠. 얘기하고 있는 상대의 일자무식에 질려 있자니(하지만 오구리 무시타로 같은 건 미스터리 광이라도 보통 잘 안 읽는 편이긴 하지) (이 대복에서 다시 한번 웃었음), '쯔치우라 모터스'라는 글자가 앞 호주머니 부분에 들어간 남색 정비공 작업복을 입은, 보기 드물게 풀 죽은 이치고가 머리가락을 잡아 헝클면서 가게로 들어왔습니다.
-168p.

참고. 위의 인용문을 봐서 알겠지만, 이 책은 일본어 한글 표기원칙을 준수하지 않는다.

+ 건프라에 대해

게다가 <시모츠마 이야기- 살인사건편>은 알고 보니 애거서 크리스티에 바치는 거대한 오마주였다(자세한 얘기는 책 후기에 다시 적겠다). 게다가, 여기 로리로리한 의상을 디자인하는 이소베 님(Baby, The Stars Shine Bright의 대표 겸 총 디자이너로 나오는)은 알고 보니 건담 마니아! <개구리 전사 케로로>를 떠올리며(그리고 로리로리와 비슷한 닉을 가진 모 님을 떠올리며^^) 이 인물을 읽으니 엄청 웃긴다. 특히 다음의 대목.
 
일단 다음의 대목은 이런 상황이다. 모모코가 밤을 새워 만든 견본 옷을 이소베 님은 밤을 새워 패턴을 만들고 또한 완성하려고 애쓴다. 모모코는 이소베 님이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자기가 디자인한 옷 때문인가보다 하고 죄책감을 느끼며 찾아가는데, 이소베 님 사모님께 듣고 보니...

"그래서 원인은요?"
"그게 류가사키 씨의 네글리제 패턴과 계속 씨름하면서 그 사이에 다른 일, 새로운 점포 건 회의 같은 것도 처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잠을 별로 못 잤어요. 오늘 오전에야 겨우 인정할 만한 패턴을 그려냈다고 생각하자 신바람이 나서 말이죠. 곧바로 집에 가서 잤어야 하는 건데 맥주를 마시며 한동한 뜸했던 아키하바라에 나갔거든요.
그랬는데 피규어 상점에서 말이에요. 하이퍼 하비(프라모델 전문지) 한정의, 현재로선 손에 넣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 엄청나게 진귀한 빨간색 모빌 수트 인 액션 샤아 아즈나블 전용 돔을 찾아내고 만 것입니다. 컬렉터가 눈물을 삼키며 내놓았겠지요. 그래서 비싸긴 했지만 구입했어요. 그리고 나서 흥분한 나머지 손에 넣은 보물을 끌어안고 아키하바라의 보도를 껑충껑충 뛰다가 발이 미끄러져서 뒤로 벌렁 넘어지는 바람에... 뇌진탕을 일으키고 구급차에 실려가는 신세가 되었어요."
(중략)
그랬습니다. 경애하는 이소베 님의 사적인 모습은 무슨 까닭에선지, 건담 매니아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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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wup 2006-01-03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뭘 좀 알아야 제대로 키득댈 것 같지만. 솔깃한 걸요. 로코코풍 소녀도 괜찮아서.^^

marina🦊 2006-01-03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회사에서 동료들과 "우울할 때 읽어봐"라며 돌려 읽었는데, 전권인 <시모츠마 이야기>도 사 봐야 하지 않을까 하고 있습니다. 으하하

marina🦊 2006-01-12 0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게 읽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정말 너무너무 즐겁게 읽었거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