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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붕괴
제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강주헌 옮김 / 김영사 / 2005년 11월
평점 :
개인적으로 멸망한 고대 문명에 대해 관심이 많다. 초등학교 때 가장 열심히 읽은 책들은 <세계 7대 불가사의>와 같은 책들과 추리소설이었다. 리더스 다이제스트인가에서 나온, 하드커버에 엄청 두껍고 무거운 세계의 미스터리 관련 책(제목도 기억 안나고 -ㅅ-)은 이해를 잘 못해서 교과서처럼 끼고 살았더랬다(그런데도 제목이 기억 안난다). 어쨌건, 일이 비교적 적었던(그나마 한 일은 모두 밀려버렸다), 쓴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문명의 붕괴>는 내가 가장 관심을 가졌던 몇몇 고대문명이 어떻게 번성했고 어떻게 멸망했는지에 대한 한 해석을 보여준다. 급속한 인구 증가로 인한 환경 훼손, 기후 변화, 교역 사회의 불안과 같은 요소는 그가 제시하는 요인들. 지금까지 이스터 섬의 몰락과 핏케언 섬과 헨더슨 섬의 몰락 이야기를 읽었다. 이스터 섬에는 그래도 사람들이 남아 거주중이었다. 쓰러져 있던 거석상들은 원래 서 있던 것들이었다. 기타등등. 그런데 핏케언 섬과 핸더슨 섬은 완전한 무인도가 되어버렸다.
사실 다이아몬드의 설명 자체가 내게 대단한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의 설명만으로 문명의 붕괴를 납득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고도로 발전하지 않은 문화들이 외부 조건으로 전멸하는 건 그렇다 쳐도, 문명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은 사회를 누렸던 곳에서 붕괴해버리는 건 이해가 쉽지 않으니까. 그리고 다이아몬드는 확신을 하고 설명하는 게 아니라 여러 가능성 중 하나를 제시하는 것이니까.(철학을 비롯한 인문사회학 공부를 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뭘 믿고 뭘 아느냐에 따라 동일한 세계를 이해하고 분석하는 방식은 여러가지가 있다. 현재 세상사에 대해서도 그렇지만 천년도 넘은 일을, 문자기록도 없는 상황에서 퇴적층과 분뇨 분석으로만 결론지을 수 없다는 건 당연한 일이다, 다이아몬드의 말을 ?않는다는 뜻은 더더욱 아니지만) 가장 결정적인 것은, 이 책을 쓴 목적은 과거 문명 붕괴의 수수께끼를 푸는 것에 그치지 않고 현대 문명이 붕괴하지 않게 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를 분석하는 것이다.
다음 인용문은 이스터 섬에 대한 글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 붕괴한 문명, 아무도 남지 않은 사회-를 떠올릴 때 마다 떠올리는 광경과 연관된 이야기다.
"(이스터)섬 사람들이 자초한 환경 파괴를 부인하는 대안적 이론이나 반론은 크게 세 가지 방향에서 주어진다.
(중략)
세 번째 반론은 이스터 섬 사람들이 모든 나무를 베어버릴 만큼 어리석은 사람들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이론이다. 하기야 모든 나무가 사라지면 어떤 결과가 닥칠지 누구라도 예상 가능하지 않았을까? 이런 점에서 카트린 오를리아크는 "물질적이고 정신적인 생존을 위해서 필요한 숲을 왜 파괴했을까?"하고 반문한다. 실제로 이런 반문은 카트린 오를리아크 뿐만 아니라 나를 비롯해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내 제자들, 즉 인간으로 인한 환경 파괴론을 주장하는 모든 학자들을 괴롭히는 문제이기도 하다. 니는 '이스터 섬 사람들은 마지막 남은 한 그루의 나무를 베면서 뭐라고 말했을까?'라는 생각을 종종 해본다. 요즘의 벌목꾼들처럼, 그들도 "나무를 베는 게 아니야. 할 일을 하는 거라고!"라고 외쳤을까? 아니면 "테크놀로지가 우리 문제를 해결해줄 거야!"혹은 "이스터 섬 어딘가에 다른 야자나무가 없다는 증거가 없잖아. 섬을 샅샅히 뒤지면 틀림없이 찾아낼 수 있을거야. 성급하게 벌목을 금지시키거나 두려움을 퍼뜨리는 사람들의 말에 현혹되어서는 안돼!"라고 소리쳤을까?
-163 p
요즘 나를 매혹시키는 건, 홀로 남은 인간이 있는 풍경이다. the descent에서 본 것과 같은. 다이아몬드의 비유처럼, 우리는 고립된 섬에 사는 사람들과도 같다. 지구는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유일하게 우주에서 인간이 사는 땅이므로. 이 섬이 붕괴하면 인류가 붕괴하는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건 그렇고, 다시 하던 얘기로 돌아가면, 홀로 남은 인간이 있는 풍경. 핏케언 섬에서 마지막까지 생존했을 인간. (두명 남았다고 동반자살을 할 정도로 인간이란 종족이 나이브하다고는 믿지 않는 나.) 사회의 붕괴를 목도하고, 주변인들의 죽음을 목도하고, 울고, 그리고 살아남아 닥치는 대로 잡아먹으며 죽을 날을 기다리던 인간이 있는 풍경. 뵈클린의 <죽음의 섬>에 매혹되었던 것과 비슷한 이유인 듯 하지만. 혼자 있는 걸 좋아하지만 혼자 남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는 내게는 상당히 포악한 장면이다. 그런데도, 가끔, 그런 장면은 나를 홀린다.
참고, 핏케언 섬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바운티호의 반란>에 등장한다. 바운티호에 반란을 일으킨 주요 인물들이 핏케언 섬에 도착했을 때 그곳은 무인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