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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하고 무서운 연애살인 사건 - 세자매 탐정단 ㅣ 세자매 탐정단 3
아카가와 지로 지음, 이선희 옮김 / 이레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당신은 고등학교 여학생이다.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출장 중이다. 그런데 당신이 사는 집에 불이 났다. 당신에게는 언니와 여동생이 있다. 다음 날 당신을 찾아온 경찰은 당신 아버지의 방에서 방화로 보이는 불이 시작되었으며, 그 방 옷장 안에 여자의 시체가 있었다고 말해준다. 게다가 아버지는 출장 중이 아니라, 회사에 휴가를 내고 지금은 행방이 묘연한 상태. 자, 이제 어떻게 하겠는가?
<세자매탐정단>의 세 자매는 아버지의 결백을 철썩같이 믿는다. 그리고 수사를 시작한다. 첫째와 셋째는 집 근처에 사는 셋째의 학교 선생님의 집에 얹혀 지내고, 둘째는 친구네 집에 신세를 지기로 한다. 여기서 밝혀두자면 첫째 이름은 아야코, 둘째 이름은 유리코, 셋째 이름은 다마미.
유리코는 세 자매 중 가장 영리하고 용감하다. 첫째 아야코는, 한마디로 첫째 딸들의 수치라고 할 수 있겠다(첫째딸로서 이런 여자 아이를 보니 마구 화가 난다). 소심하고 내성적이며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 못하고 엄한데서 삽질을 한다. 막내 다마미는 엄청난 구두쇠. 하루아침에 집도 돈도 없어졌지만, 다마미는 남에게 빌린 얼마 안되는 돈을 칼같이 관리할 뿐 아니라, 돈을 요구하는 불량학생들에게 두드려 맞으면서도 돈을 내놓지 않은 인물.
이 책은 시리즈물이고, 나머지 두권도 읽고 잘 생각인데, 일단 분량이 작고 책 판형도 작다. 행간도 엄청나게 넓다. 이야기는 간단하며 유머가 있으므로 쉽게 읽힌다. 추리로서의 매력은 상당히 떨어진다(범인이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 이 인간 수상하다, 고 생각했던 게 들어맞아버려서 대략 속상하다. 글을 쓰면서, 주인공이 될 사람, 주요 인물이 될 사람에게 신경을 쓰고 묘사하는 딱 그런 방식으로 범인의 첫 등장을 그려두었다). 사실 이 책의 매력은 추리의 치밀함에 있다기보다는 세 소녀들의 좌충우돌 탐정체험에 있는 것 같다. 아버지가 용의자라 해도 소녀들은 머리를 굴린다. 큰언니를 아버지가 다니던 회사에 잠입시키고, 죽은 여자의 집에 혼자 찾아가는 모험도 서슴치 않는다.
뭐 간략하게 말하자면 이 책은, 소녀들의 하드보일드 탐정담, 이다.
주인공 셋은 소녀들이라면 겪을 법한 일들을 좀 세게 겪는다. 마치 필립 말로가 탐정이라는 이유로 얻어맞는게 이상하지 않듯, 이 소녀들은 탐정 노릇을 한다는 이유로 강간의 위기에 처하거나, 죽음의 문턱에 다가가기도 한다. 나이 많은 남자들은 소녀들에게 수상쩍게 접근하고, 소녀들은 어른들의 진실을 너무 빨리 목격하게 된다.
85년에 씌여진 책이던데, 상당히 옛날을 배경으로 한 느낌이 들었다. 사실, 60년대쯤을 배경으로 TV시리즈를 만들어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테면, 가명으로 전화를 걸어 회사 아르바이트로 취직이 된다는 설정은 정말 지금 읽기엔 난감한 구석이 있다. 사람들의 면면도 순박한 데가 있다.
세 소녀의 성격이 칼같이 구분되는데, 그것도 재미있었다. 아무래도 둘째 유리코에게 감정 이입을 하게 되더라. 그렇다면 남자는 누구에게 감정 이입을 할 수 있을까? 바로 유리코를 돕는 형사 구니토모. 이 사람은 착하고 성실하며 소녀의 말도 열심히 들어주고 범인도 잡는 인물로, 잘 하면 유리코와 진지한 관계(라는게 뭔지는 모르겠지만)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인물이다. 유리코와 구니토모가 함께 나오는 장면이 되면 기분이 살짝 좋아졌다.
재미있는 점은 책 표지에 적힌 광고문구.
"공포, 스릴, 반전! 소년 탐정 김전일을 능가하는 일본 최고의 탐정소설 시리즈!"라고 적혀 있는데, 놀랍게도 김전일에 비교한 것은 거짓이 아니었다.
이 세 소녀 주변의 인물은 수시로 죽어나가기 때문이다!
이 세 자매가 신변을 의탁하거나 수사차 찾아오거든 절대 아는 척 하지 말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