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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 지음, 백시나 엮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잠풍 날씨가 너무나 좋은 탓이고
가난한 동무가 새 구두를 신고 지나간 탓이고 언제나 꼭 같은 넥타이를 매고 고은 사람을 사랑하는 탓이다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또 내 많지 못한 월급이 얼마나 고마운 탓이고
이렇게 젊은 나이로 코밑수염도 길러보는 탓이고 그리고 어느 가난한 집 부엌으로 달재 생선을 진장에 꼿꼿이 지진것은 맛도 있다는 말이 자꾸 들려오는 탓이다
-백석,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백석 시집에 실린 작가 이력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다. "1963년을 전후하여 협동농장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최근 사망년도가 1995년임이 밝혀졌다" 차라리 63년에, 아니, 그 이전에 죽는 편이 나았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하아- 식민지하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고 분단을 겪은 문인들이 지금까지 살아있다는 것은, 어쩐지 큰 고통이다. 광복 이전의 책을 읽고 나면 결국 벌어진 일들에 한숨짓지 않을 도리가 있겠는가. 63년에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사실은 95년까지 살아있었다니. 나이가 80이 넘도록, 그는 어떻게 살아갔을까. 공백으로 남아있는 그 30년 가까운 세월, 그는 알릴 수 없었던, 알려질 수 없었던 어떤 삶을 산 것일까. 아동문학을 써내려갔을까. 글을 쓰기는 했을까. 아이들 곁에 있을 수 있었을까. 많이 지쳐 있었을까. 죽고 싶었을까. 왜, 어떻게 그는 95년까지 살아남은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