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만이 아니라 민속학에 대한 흥미까지 유발시킨다

우부메의 여름 ㅣ 백귀야행(교고쿠도) 시리즈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 손안의책 / 2004년 3월

“마음과 뇌는 서로가 없으면 안 되는, 조직폭력배와 물장사 같은 거라네. 어느 한 쪽이 맛이 가 버리면 꽤 귀찮은 분쟁이 일어나지. 하지만 이건 각자가 만족하기만 하면 대개 수습이 돼. 뇌나 신경에는 물리적인 치료를 할 수 있고. 하지만 마음이 그런 기관들과 다르다는 증거로, 다른 기관들이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가도 분쟁이 수습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네. 그럴 때 종교가 유효하지. 종료란, 다시 말해서 뇌가 마음을 지배하기 위해 만들어낸 신역이라는 궤변이니까.”
<우부메의 여름>, 교고쿠 나츠히코

민속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교고쿠 나츠히코의 <우부메의 여름>을 놓쳐서는 안될 것 같다. 발간된 뒤 내내 그 존재를 무시하고 있다가(쓸데없는 괴담 종류는 싫어하는데 이 책은 딱 그런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심상찮은 서평들을 읽고 이번 여름휴가때 챙겨갔는데, 비행기 안에서 잠도 자지 않고 단숨에 끝까지 전력질주 해서 읽어버렸다.

한 여인이 20개월째 임신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풍문이 들린다. 소설가이지만 생계를 위해 괴담이니 하는 것을 삼류 잡지에 실어온 나는 음양사로도 활동을 한다는, 중고서적가게를 운영하는 친구를 찾아 그 이상한 임산부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친구는 그런 허무맹랑한 괴담에는 관심없다며, 역시 고등학교때부터 절친했던, 지금은 괴짜 탐정이 된 사람에게나 가서 상담을 하라고 전한다. 그리고 내가 그 괴짜 탐정을 찾아간 날, 공교롭게도 그 20개월째 임신을 하고 있다는 그녀의 언니가 탐정을 찾아온다. 사건 의뢰 내용은, 동생의 배가 부르기 시작한 시점에서 사라져 버린 동생의 남편의 생사를 알고 싶다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대강의 줄거리인데, 줄거리만 읽으면 정말 쓸데없는 괴담쪼가리같다. ㅠ ㅠ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만화 <민속탐정 야쿠모>는 그 특유의 성인만화 그림체 때문에 설화와 얽힌 살인 미스터리라는, 나름 짜임새 있는 이야기가 무시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 책의 경우는 너무 충격적인 상황 설정 때문에 정말 삼류 잡지에서나 나올법한 쇼킹 사건이야기같아 보인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의식과 무의식, 전설과 설화가 공동체에서 갖는 기능 등에 대한 통찰이 매우 뛰어나다. 사건 해결 대목에서는 “뭐지;;;”하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두꺼운 책인 주제에 쉬지 않고 책장을 넘기게 만드는 수많은 설화들 사이의 상관관계와 인간의 의식에 대한 여러 이야기는 지적 스릴러 못지 않은 흥미를 유발한다.

분명 단점도 열가지쯤 보이는데, 멋진 점이 백가지쯤 된다. 아마 올해 읽은 책 중 베스트 10을 꼽으라면 반드시 들어갈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