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선뎐
김점선 지음 / 시작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현장에서 청혼하고 그날 밤 가장 가까운 여인숙에서 같이 잤다. 그 후 20년 동안 함께 살았다. 그 청년의 성이 김가라는 것은 자고 나서 일주일쯤 후에 알았다. 나이가 나보다 세 살이 어리다는 사실도 그때서야 할았다. 그래도 그가 가난하고 집도 절도 없다는 것은 자기 직전에 알았다. 그 사실만으로도 그는 내가 찾던 나의 동반자인 것이다. 결혼하고 그림 그리면서 살았다. 당연히 굶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굶으면서도 그림을 그렸다. 캔버스 살 돈이 없어서 광목에다 연필로 그리고 한 가지 색을 엷게 칠하면서 그렸다. 어느 날 아무 말 없이 집 나와서 거리의 청년과 결혼했기 때문에 집에서도 나를 미친 사람으로 여겼다. 온 세상 사람들이 나를 미친 사람으로 여겼다. 아무도 동정하지 않았다. 못된 오만한 미친 인간으로 여겼다. 풀 뜯어 먹고 정부미 먹으면서, 그것도 띄엄띄엄 굶어가면서 먹고살았다. 그래도 그림은 그렸다.
-'내가 먼저 한 청혼'

김점선이 어떻게 생긴 사람인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이름만 알았다, 꽤 오랫동안. 마음산책에서 나온 그 책들은 어쩐지 너무 있어보여서 그 속이 궁금하지 않았다. 그런데, <점선뎐>의 표지로 나선 나이든 여자의 얼굴이 마음에 들어서 책을 보니, 생각보다 훨씬 이상한 사람이다. -_- 위에 인용한 글 같은 선생들과 어울려 살던 옛날 사람인데, 옛날 사람이나 할 수 있었을 치기로 똘똘 뭉친 인생을 참 잘도 살아냈다. 글이 꽤 거칠긴 한데, 그래서 이 사람이 더 궁금해지니까, 꽤 괜찮은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알았는데, 박완서 작가의 <친절한 복희씨> 표지가 김전선 그림이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한국 책 표지인데, 이 책에 실린 원본 그림을 보니 원본이 훨씬 좋다. 원본의 어두운 느낌 기이한 느낌을 싹 거두어내고 스타일만 남겼구나 싶어서 못내 아깝다. (박완서 선생과도 친분이 있다)
여자 꼰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웃음) 그래도 또한 참으로 멋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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