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된 이야기
소피 칼 지음, 심은진 옮김 / 마음산책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인생을 고백하거나 구연하는 기이한 방법:

이걸 아포리즘이라고 해야 하나. 소피 칼의 <진실된 이야기>는 약간 모호한 책이다. 내용도 그 생김새만큼이나 예쁜 책을 원하는 말랑한 감성의 소유자라면 이 책을 읽다가 혐오를 느끼거나, 최소한 불편해할지도 모른다. 어쩔 수 없이 과격한 이미지와 글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다가 별 수 없이 실망해버릴지도. 어떻게 생각해도 내게는 딱떨어지는 구석이 없는 책이지만,

커피잔

그의 지성이 나를 주눅 들게 하였다. 그는 내게 함께 점심을 들자고 했다. 그의 제안은 나를 기쁘게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나를 불편하게도 했다. 그와 대화를 나눌 지적 능력이 부족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다. 나는 미리 준비를 하기 위해, 우리가 무엇에 대해 말할 것인지 그에게 물어보았다. 별로 도움도 안되고, 또 쓸데없는 짓인지는 잘 알고 있었지만, 대화 연습은 나를 진정시켜주었다. 그런데 D는 뜬금없이 이런 주제를 정했다. "아침에 당신을 침대에서 일어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일주일 내내 생각했다. 그리고 여러 개의 대답을 모아놓았다. 약속한 날, 그는 내게 질문을 던졌고 나는 대답 대신 같은 질문을 그에게 되물었다. 그는 대답했다. "커피향." 우리는 대화의 주제를 바꾸었다. 식사가 끝난 후 커피가 나왔다. 그리고 나는 추억을 위해 그 커피잔을 훔쳤다.

-71쪽.

다 읽고 나니 프레베르를 몹시 읽고 싶어진다.

이미지에 얽힌 짧은 이야기들은 확실히 불협화음을 내는 것으로 그 존재를 증명한다. 여성스러운, 몸으로 쓰는 문장. 좋아하기엔 약간 낡았지만, 싫어하기엔 너무 잘 알고 있는.

이 책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남편에 관한 열개의 이야기. 열 개의 이야기 중 하나는 남편의 편지에 관한 것이다. 결혼식을 올린 지 두달 후, 나는 그의 타자기에서 종이 한 장이 삐져나온 것을 보았다. "첫눈에 반한다는 말을 믿느냐고 언젠가 당신은 내게 물었지. 내가 아무 대답도 안했던가?" 그러나 이 편지는 내게 보내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맨 뒤의 H라는 글씨에 줄을 긋고 내 이름의 이니셜인 S라고 쓴다.

아티스트로 산다는 건 참 좋은 일이구나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종종 있는데, 소피 칼의 경우도 마찬가지.사진작가, 설치미술가, 개념미술가인 그녀는 폴 오스터에게 허구의 인물을 하나 창조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면 자신이 그녀처럼 되어 1년동안 살겠다고. 그녀는 <거대한 괴물>에서 마리아가 된다. 다음에 읽을 소피 칼과 폴 오스터의 <뉴욕 이야기>는 그녀가 살았던 뉴욕에서의 1년에 관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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