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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는 독서 - 21세기 일본 베스트셀러의 6가지 유형을 분석하다!
사이토 미나코 지음, 김성민 옮김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취미는 독서>의 부제는 "21세기 일본 베스트셀러의 6가지 유형을 분석하다"이다. 저자가 1999년 7월부터 2002년 10월까지 3년여에 걸쳐 읽은 40여권의 베스트셀러에 관한 기록이다. 글을 쓰게 된 동기는, "주위에 이른바 베스트셀러라는 책을 읽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사실"때문이었다. 저자는 <월간백서>라는 책에 '백만인의 독서"라는 제목으로, 베스트셀러들을 읽고 분석한 글을 내 놓았고, 그 결과물이 이 책인데,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들간의 베스트셀러 경시 풍조에 대해 글을 쓰고는 실제로 책을 읽는 사람은 얼마나 드문가를 수치로 표현해놓은 부분은 약간 기가 질릴 정도다. 그 유명한 <세계가 100명의 마을이라면>식으로 말해, 일본이 100명이 사는 마을이라면 "40명은 전혀 책을 읽지 않고, 20명은 읽어도 한달에 1권 이하다. 더군다나 여기엔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는 사람도, 한 권의 책을 여럿이 돌려가며 읽는 사람도 표함된다." 그나마 지하철에서 독서하는 사람이 많아 보인다는 일본이 저 정도라니, 한국에서는 어떨지 생각도 하기 싫을 정도다.
일단 짚고 넘어갈 것은, 이 책은 정말로 정말로 재미있다. 베스트셀러들에 대해 이렇게 이죽대는 책일 줄이야. (물론, 추천한 사람 블로그에서 대략 이런 분위기라는 건 알고 있었다) 재미있는 점은, 이 책이 타깃으로 하고 있음이 분명한 사람들에 대해 이 책은, 서문에서 그다지 좋지 않게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나 역시 그 범주에 들어가는데,
"꼴불견은 자신의 병을 병인 줄 모르고 오히려 긍지로 여기는 무리이다. 특히 편집자, 작가, 평론가, 서평가, 신문사의 문화부 기자 등 책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서 쉽게 볼 수 있는 특성이다. (중략) 다시 말하지만 책이란 당신이 생각하는 만큼 메이저급 '여가활동'이 아니라 하지 않는가." (과식형 독자, 혹은 독서 의존증 환자에 대해)
뭐, 서문에서 말하는 대로라면, 이 책은 "재미있는 책, 감동적인 책을 읽고 싶다는 작은 소망을 가진" 착한 독자들이 사 보는 베스트셀러들에 관한 책이다. "자신의 의식을 뿌리채 뒤엎는 책은 읽고 싶지 않고, 오랫동안 은근히 여운이 남는 무거운 책도 읽고 싶지 않"은 사람들. 하지만 실제로 이 책에 실린 글들을 그 착한 독자들이 사 보는 책들의 공식을 찾아내고, 공식이 얼마나 빈약하며 보잘것없는지를 알려 준다. 그런 대목들이 매우 재미있다.
이를테면, 일본에서 밀리언셀러가 된 아사다 지로의 <철도원>얘기가 나온다. 그리고 이 책의 내용을 이렇게 나눈다. '사람들이 상상하는 <철도원>'과 '실제 <철도원>'. 공교롭게도 나 역시 한때는 전자였다가 후자를 알게 된 경우인데, 그 이유는 사이토 미나코가 지적하는 바와 같이 영화 포스터 때문이었다. 실제 <철도원>의 내용이 죽은 딸이 등장하는 괴담에 가깝다는 말을 한 필자는 이렇게 말한다.
"아빠한테는 즐거운 일이라곤 없었잖아. 나도 효도 한 번 제대로 못하고 죽었고. 그래서."
흑흑. 이런 말은 죽은 딸이 아니면 절대 할 수 없는 말이지. 살아있는 딸 녀석은 "이런 촌구석에 무슨 재미가 있어"라며 머리를 금발로 물들여 올 게 뻔하다.
누가 봐도 어처구니없는 <동물점> 책과 의사과학책인 <말을 듣지 않는 남자, 지도를 읽지 못하는 여자>가 같은 선상에서 논의된다는 점은, 의사과학책을 -ㅅ- 그냥 믿어버리는 과학 멍청이인 내게는 꽤 의미있는 대목들이었다. 특히 미스터리 책을 좋아하는 내게, 미스터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 필자가 씹어대는 <모방범>과 <영원의 아이>에 관한 이야기는 흥미롭기 그지없었다.
텐도 아라타의 <영원의 아이>는 모 선배에게서 몇년 전에 빌려 읽은 책으로, 무려 3권이나 되는, 말하자면 <모방범>과 같은 위압감을 주는 책이다. 이 책은 유아기에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이 결국 성인이 되어서 파탄적인 성격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내용을 다룬다. 나는 이 책을 무척 좋아했지만 읽고도 찝찝했던 부분이 있었는데, 그 불쾌함은 미드 <크리미널 마인드>를 보면서 되살아났다. 무슨 말이냐 하면, 아무리 추리가 좋고 스릴러가 좋아도, 어렸을 적 트라우마가 있다면 그 인간은 괴물-이라는 식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이다. 이혼한 집 애들이면 다 이성관계에 문제가 있나? 살인자 아이는 보통 사람보다 살의를 실행에 옮길 가능성이 높은가? <영원의 아이>나 <크리미널 마인드>는 그런 가치관의 주입이 너무나 강해서, 마치 완벽한 가정을 꾸릴 수 없다면 애초에 아이 따위는 낳지 마시오- 만일 낳은 뒤 문제가 생기걸랑 아이를 죽이는 편이 낫소- 하는 식이다. 이 책이 충격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자, 사이토 미나코는 몇가지 가설을 제기한다.
1) 서평 규정 범인설: 미스터리계에서는 서평이나 신간 소개에서도 결말은 물론 줄거리를 밝히는 것이 '얘기 구조를 밝힌다' 하여 꺼리는 경향이 있다. (중략) 내용 소개가 금기라는 이유로 추상적인 호평만 하는 건 아닌지. :말이 아주 안된다고는 할 수 없다. 줄거리를 조금만 더 얘기해도, 이른바 도입부에서 한줄만 더 써도 "님아, 스포일러셈"식의 글이 올라오는 걸 본 적이 있는데, 사실 결론까지 다 얘기하면 씹을 거리가 무궁무진해도, 초반만 언급할 수 있다면 서평을 쓰는 사람의 운신의 폭은 좁아지기 마련이다.
2) 독자의 무지 범인설: 미스터리계는 바야흐로 마니아의 세계다. 미스터리만 읽는 중독환자가 미스터리 시장을 지탱하고 있다. 바꿔말하면 그들은 미스터리 이외의 책은 읽지 않는 게 아닌가라는 의혹이 있다. 당연히 어덜트 칠드런 책도 읽지 않을 뿐더러 그 개념이나 공죄에 대해서도 모르는 게 아닌지. :이 역시 말이 안되는 건 아니다. 미스터리 독자들 중 각계의 전문가도 포함되어 있긴 하더라만(자기 분야 외의 책은 미스터리밖에 읽지 않는 변호사와 의사, 컴퓨터전문가는 본 기억이 있다.) 미스터리 마니아 중 전반적으로 책을 고르게 읽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미스터리만 읽을 때는 다른 책은 건드리지도 않는다. 책을 많이 읽어도, 누가 누구를 죽이고 범인을 찾는 이야기가 아니면 멍청하고 화제도 부족해진다. -ㅅ- 나와 비슷한 미스터리 마니아들을 목격한 경험으로도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다.(자기가 일하는 분야와 미스터리 책을 제외한 화제로 원만하게 대화할 줄 아는 미스터리 매니아는 드물다;;;)
여튼 이 저자는 미스터리 애독자들을 열통터지게 만들 말을 잔뜩 늘어놓고 나서 이런 농담을 던진다. "다만 아동 학대를 범죄의 동기에 이용하는 것은 탐탁치 않다. 또 하나 탐탁지 않은 건 상처 입은 마음이 숲 속에서 평온을 찾는다는 플롯. 순문학은 물론 몇 년 전부터 이런 유형이 넘쳐나고 있는데, 범인은 오에 겐자부로라고 해야 하나." (물론, 미스터리 팬의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영원의 아이> 팬으로서 변명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일단은 위의 지적에도 어느정도 동의하므로 여기서는 토를 달지 않겠다)
저자의 유머감각은 이어진다.
1. "아름다운 육체. 라파엘로의 나부 같은 수세기를 초월한 영겁의 미와 존엄성을 지니고 있었다" (<냉정과 열정사이-블루>)
라고 감탄하는데 피임은 했는지? 또 임신하면 어쩌려고. <냉정과 열정사이>가 아니라 <오한과 발열사이>로 제목을 바꾸면 어떨까.
2. <만족>도 사실 나이 든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책이다. 가슴 떨림도 긴장감, 모험감도 없다. 젊음이란 요소가 빠져있다. 저자가 40대 여성과 50대 남성 부부라서 당연하겠지만, 감퇴하는 체력과 성욕을 기교로 보강하려는 느낌이랄까. 때론 비애감마저 든다. 살아날 기미가 안 보이는 경기를 필사적으로 애무하고 있는 경제학자와 같다고 할지.
하루키의 <해변에 카프카>가 잘 팔린 이유에 대한 지적도 인상적이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