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제13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임솔아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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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읽을 때마다 깨닫는다. 나는 내가 소설을 무척이나 좋아한다는 것을. 소설이 무슨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으며 돈도 안 된다고 폄하하는 시선을 오롯이 받아내면서도 꿋꿋이 좋아한다는 사실을. 올해 두 손 모아 꼭 쥐고 있던 소설을 반쯤 내려놓고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남은 한 손으로 절대 놓치지 않으리라, 나의 사랑을. 내 사랑의 목록에 김멜라와 김지연의 이름이 추가되었다. 새로운 소설을 만나 다시 한 번 더 사랑에 빠지는 경험은 특별하다.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이 매 해 백신처럼 주사를 놓는다. 면역력을 높이고 사랑을 강화시킨다, 소설이 소설에게.



문득 나는 내가 사는 걸 무척이나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건 처음에는 너무 뜬금없고 이상한 감정처럼 느껴졌는데 점점 선명해졌다. 뜻대로 된 적은 별로 없지만 나는 사는 게 좋았다. 내가 겪은 모든 모욕들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극복해내고 싶을 만큼 좋아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사는 건 좋다. 살아서 개 같은 것들을 쓰다듬는 것은 특히나 더 좋다. (김지연, 공원에서) -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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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대하여 은행나무 세계문학 에세 3
율리 체 지음, 권상희 옮김 / 은행나무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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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한 팬데믹이 2년을 넘긴 현재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되고 거리두기 및 통제 정책이 서서히 완화되는 시점. 현실이 한 발 두 발 뒤로 물러서기 시작할 때가 문학이 전진할 시기다. 한국 번역 출판 시점 기준으로 2021년 작 율리 체 [인간에 대하여]와 오르한 파묵 [페스트의 밤]이 올해 초 출간되었다. 그들의 선배격인 카뮈의 [페스트]의 계보를 이을 '전염병 소설'이다.

전염병을 소재로 한다면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집단적 죽음, 국가의 통제, 폐쇄된 도시,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이기심과 배려심 같은 단어들이 떠오른다. 자연 재해 앞에서 무력한 인간의 한계, 피할 수 없는 죽음 같은 주제를 자동적으로 말할 지 모른다. 그러니까 전염병은 인간에 대하여 이야기하기 좋은 소재다.

도라 주위에서 봄이 살아 움직이며 본연의 의무를 다하고 있다. 모든 생물 유기체가 성장하고 만발케 하고, 살아 있는 생명이 최대한의 생산력을 뽐내도록 몰아대고, 봄의 전령들이 재생산을 하도록 돕는다. 그 어떤 존재도 평가받지 않을뿐더라 모든 존재가 이용된다. 죽어가는 생명 또한 활용된다. 세상의 어떤 한 종이 사라지면 새로운 종이 그 틈을 메운다. 죽음과 탄생은 드라마가 아니라 생명 역학의 고리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인간의 흥분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인류가 파멸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진박새보다 더 무심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도라는 바이러스 균주를 제외하고 우리를 필요로 하는 생명체는 없다고 생각한다.

율리 체 [인간에 대하여], 93쪽

그렇다면 율리 체의 [인간에 대하여] 속 인간을 대표하는 주인공은 누구인가? 독일 베를린에서 지속 가능한 상품을 주제로 광고를 제작하는 에이전시의 카피라이터 도라. 브라켄이라는 독일 시골 마을에서 인종차별적 발언을 서슴지 않는 술주정뱅이 목수 고테. '데이팅 앱에서 알고리즘이 절대 연결하지 않을'이 둘의 만남을 주선한 존재가 코로나 바이러스다. 팬데믹으로 인해 동거 중이던 남자친구와 문제가 생긴 도라가 충동적으로 브라켄에 시골집을 사서 떠나오게 되면서 옆집 고테와 만나게 되었으니까.


성격도 성향도 모든 것이 정반대인 여자와 남자가 우연히 만났다, 사랑에 빠진다? 소설을 읽는 내내 그래서 둘이 언제 사귀나 궁금해져 읽는 속도를 높였다. 결말에서 나는 나의 편협한 시선이 부끄러워 도라와 고테에게 정중히 사과했다. 인간에겐 사랑만이 필요한 게 아니지요. 우정, 더 크게 말하면 인간적 연대, 인간과 인간을 연결하는 것, 우리가 자주 잊고 바이러스 앞에서 아예 잃어버린 것.

코로나 바이러스가 2년 간 부지런히 벗겨낸 인간의 민낯은 상상 이상이었다. 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하자 온 세계가 바이러스 근원지를 혐오했다. 전 세계로 퍼져나가자 감염자를 혐오했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자를 혐오하고, 거리두기를 지키지 않는 자를 혐오하고, 백신을 맞지 않는 자들을 혐오했다. 전염병 앞에서 인간은 혐오의 감정에 몰두했다. 소설 본문에도 직접적으로 언급되는 '조지 플로이드 살해 사건'은 혐오의 직접적 발현이었다. 인간이란 혐오의 동물인가?

도라와 고테가 보여주는 기묘한 연대는 인간에 대한 다른 가능성을 보여 준다. 정반대의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어도 서로에 대해 우월감을 드러내며 통제하는 대신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내가 너에게 줄 수 있는 것을 주는 것. 죽음 앞에서 외롭지 않도록 예의를 갖추는 것. 적당한 때를 기다리며 그저 존재하는 것. 서로의 존재에 경의와 예의를 표하는 것.


프란치가 옆 벤치에 앉아 양손으로 벤치 바닥을 쓰다듬는다. 도라는 아이의 옆모습을 바라본다. 삶은 분명 계속될 것이다. 지금도 어딘가에 프란치와 미래를 함께할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을 거다. 한 소년이 코로나 방역 완화를 반기며 베를린의 축구장에서 축구공을 갖고 놀고 있을 것이다. 미래의 어느 날 브라켄 출신의 엄청 긴 금발 머리 아가씨와 결혼하게 될 걸 꿈에도 모른 채, 또 어딘가에서 곧 프란치의 절친이 될 소녀가 색연필로 그림을 그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30년 후에 자동차 사고를 당해 양팔이 부러지게 될 청년이 마스크와 헤드폰을 쓰고 지하철에 앉아 있을지 모른다. 모든 것이 이미 존재하며 세상에 새겨져 있고 준비하면서 적당한 때를 기다리고 있다. 이 모든 건 저절로 이루어진다. 인간이 돌릴 바퀴도, 잡아당길 레버도 없다. 그저 가만히 있을 뿐이다. 이 같은 생각에 도라는 긴장이 살짝 풀리는 걸 느낀다.

율리 체, [인간에 대하여] 418쪽


자연 앞에서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고 함부로 통제할 수 없다. 우리는 이 사실을 자주 잊는다. 잊을 때마다 한 번씩 바이러스가 찾아온다. 바이러스는 인간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인간에 대하여 아주 잘 알고 있지, 우리야말로 인간을 가장 필요로 하거든. 그 앞에서 우리는 공포에 질리고 서로를 증오하기보다, 연대해야 한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존중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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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의 중력에 맞서 - 과학이 내게 알려준 삶의 가치에 대하여
정인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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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의 중력에 맞서>에서의 중력은 중의적 의미를 가집니다. 인생을 지배하는 운명의 힘을 뜻하기도 하고, 객관적 언어의 큰 목소리를 의미한다는 것을 나중에 알아차렸습니다. 그래서 내 생의 중력에 '맞서' 책을 읽기로 마음먹었어요. 과학은 소수의 백인 남성 과학자, 엘리트나 전문가가 독점하는 지배 또는 힘의 언어가 아니라 인간의 무지와 편견을 깨고 세상을 바꾸는 해방의 언어가 되어야 합니다.

정인경, 내 생의 중력에 맞서, 서문


읽으리라 생각해 본 적 없는 책과의 우연한 만남을 위해 내가 서평단 활동을 하는구나, 정인경의 [내 생의 중력에 맞서]를 읽으며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중력'이라는 단어에 지시적 의미 그대로 이끌려 선택한 이 책에 말 그대로 푹 빠져버렸다. 자기 자신을 지키는 일이란 무엇인가? 진정한 사랑이란 실존하는가? 행복으로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팬데믹과 기후 위기 속에서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추상적인 것 같다가도 삶에 필수적인 질문들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과학책 읽기다. 어렵고 딱딱하게 느껴지는 과학을 향한 부드러운 접근.


저자가 소개하는 과학책들을 정신없이 인터넷 서점 장바구니에 넣고 나니 50권도 넘는 새 책들이 긴 목록을 만들고 있었다. 가장 첫 번째 책은 안토니오 다마지오의 [스피노자의 뇌]가 차지했다. 자존, 사랑, 행복과 예술, 건강과 노화, 생명과 죽음이라는 책 속 다섯 주제 중 지금의 나를 강렬하게 사로잡은 '자존'이라는 키워드를 더 깊이 파고들고 싶었다.


우리는 힘들고 괴롭고 슬픈 감정의 상태를 견디다가 벗어나는 데 성공하면 기쁨의 감정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는 노력이 바로 우리 삶의 가치이자 목적이라고, <에티카>에서 말하고 있지요.

'덕의 일차적 기반은 자기 자신을 보존하고자 하는 노력이며, 행복은 자신의 존재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에 있다.'

우리는 스피노자를 감정의 철학자, 기쁨의 윤리학자로 부릅니다. 그건 기쁨이라는 감정을 올바른 가치, 도덕의 기준으로 제시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우리에게 자기 보전과 좋은 감정을 유지하라고 주문합니다. 감정은 자신의 삶을 이롭게 하거나 해롭게 하는 상황에 대처하게 만들잖아요. 나쁜 감정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삶이 자신을 위한 좋은 삶입니다.

정인경, 같은 책, 60쪽


[내 생의 중력에 맞서]를 읽으며 나의 감정은 부정에서 긍정으로 서서히 바뀌었다. 악화되어가는 세계 속 나를 짓누르던 무거움이 조금씩 가벼워지며 튀어올랐다. 어렵고 낯선 과학책을 읽으며 노력하는 삶 역시 나를 위한 좋은 삶이다. 이 책은 삶의 태도를 알려주는 책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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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의 순간들 제프 다이어 선집
제프 다이어 지음, 이정현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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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그동안이라는 것은 없다. 그때는 그 순간이 있었고 지금은 이 순간이 있을 뿐, 그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다. 사진은, 어떤 면에서, 연대순에 대한 부정이다. - [지속의 순간들] 제프 다이어, 199쪽

생각해 보니 그림의 역사, 예술의 역사는 익숙하지만 사진의 역사, 하면 어쩐지 어색하게 느껴진다. 사진이 등장한 이후 지금까지의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기도 하고 사진이 가진 '현재성'이 매체의 역사를 거부한다. 제프 다이어가 선택한 방법은 목록이다. 사진가들이 촬영하기로 선택한 피사체들의 목록. 맹인을 촬영한 폴 스트랜드의 1916년 사진으로 시작되는 이 책은 2001년 9.11 당시 현장에 있었던 남성의 사진으로 마무리된다. 맹인의 목에 'blind'라 적힌 팻말이 걸려 있는 것과 같이 테러의 한복판에 서 있는 남자는 'After Death What?'이라 적힌 글귀를 목에 걸고 있다. 죽음 뒤에는 무엇이?


사진 뒤에는 무엇이? 사진이 찍힌 뒤 사진 속 피사체들은 어떻게 될까? 알 수 없다. 작가가 집중하는 것은 사진 속의 그 순간들이다. 맹인, 손, 모자, 벤치, 계단, 폐허, 살아있는 몸, 죽음, 도시, 거리, 목록은 무한하고 사진가들은 자기 자신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피사체를 찾아 굶주린 짐승처럼 세계를 어슬렁거린다. 발톱 대신 카메라를 내민 채로. 때로 그들은 보이지 않는 것을 찍으려 시도하고, 가끔 이에 성공한다. 생각, 시간, 운명 같은 추상적인 것들. 제프 다이어의 섬세한 해석 속에서 사진들은 숨기고 있던 '순간'들을 내보인다. 순간은 쉼없이 흘러내리고 우리는 현재라는 시간을 가질 수 없지만 사진이라면 가능하다. 이 사진속의 유일한 순간과 저 사진 속의 또 다른 순간. 사진을 통해 순간은 영원이 된다.

백 년도 넘는 시간 전, 이 순간이 현재이던 때가 있었다! 망토를 두른 그 남자도 '현재'가 '과거'가 된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남자는 길을 건너와 카메라를 갖고 있는 사람을 지나치면서 분명히 어떤 사진이 찍혔는지 보려고 뒤를 돌아, 그 순간을 사진으로 만들어 준 바로 그것-그 남자 자신-이 더 이상 없음을 보았을 것이다. 아주 짧은 시간 안에 그는 왔다가 사라졌고, 그의 발자국만 남았다. 그에게 주어진 운명은-또는 사진이 그렇다고 주장하는 것은-뒤를 돌아보는 시점에 결코 도달하지 못하고, 여전히 거기 있는 대기 중인 말과 건물들만큼 끈기 있게, 일시적이면서도 영원해지는 것이다. - 제프 다이어, 같은 책, 247쪽

*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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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은 장미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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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쪽, 나는 왜 떠나온 것일까. 누군가를 더이상 미워하고 싶지 않을 때 혼자 무기력하게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규칙적이고 또 가시적으로 발전이 드러나는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한다는 생각. 대체 왜 그런 진지한 생각을 했을까. 그런 점 역시 내가 아는 범주 안에서 틀을 만들고 그 틀에 맞도록 의미를 재단하는 독선적인 진지함의 한 방식이 아니었을까. 나를 증오에 빠지고 용서를 외면하고 또 결별에 이르도록 만든 순정의 무거움, 그리고 서로 다름에서 생겨나는 일상의 수많은 상처와 좌절들, 낙관적이지 못한 복잡한 생각과 그것을 납득시키기 위한 기나긴 말다툼을 통과하고도 나는 여전히 그 틀 안에 갇혀 있는 게 아닐까. 내가 과연 떠나오기는 한 것일까.

은희경, 장미의 이름은 장미

은희경이고, 뉴욕을 배경으로 한 연작소설이고, 그래서 여행을 떠나는 마음으로 책을 펼쳤고, 쓰러졌다. 비행기로 14시간을 가야 하고 적금을 깨야 하는 멀고 비싼 그 도시에 그와 그녀들이 찾고자 했던 것들은 없다. 결국 주인공들이 도달하는 지점은 ‘나’뿐이다. 장미의 이름은 장미이듯 나는 아무리 멀리 떠나도 나일 뿐이다.

몇년 전 구글 세계지도를 켜서 떠나고 싶은 도시를 찍어가던 과거의 내가 도달한 지점도 같다. 자아를 찾아 내 일상의 틀을 깨고 말겠다는 선언 역시 또 하나의 고정된 틀이었을 뿐이다. 뉴욕에서 내 얼굴이 들어간 사진을 찍어 인스타에 올린다 해도, 내가 도달한 도시가 나를 증명하지 않는다. 내가 증명해야 할 것은 나 자신의 특별함이다. 장미의 이름은 장미, 은희경의 이름은 은희경, 나의 가장 오래된 덕질의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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