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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용도 아니 에르노 컬렉션
아니 에르노.마크 마리 지음 / 1984Books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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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순간이고 사진은 영원하다. 시간은 흐르고 사진은 그 시간을 잡아채려 한다. 완벽한 순간의 기록을 꿈꾸지만 우리는 실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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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처럼 문지 스펙트럼
다니엘 페낙 지음, 이정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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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페나크의 [소설처럼]은 소설이 아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이 책이 판타지 소설처럼 다가왔다.

문학 시간에, 책에 흥미라고는 1도 없는 아이들에게,

한 시간 내내 소설을 소리내어 읽어준 것만으로도,

소설을 스스로 찾아서 읽게 된다니? 이 꿈만 같은 이야기.

 

작년에 나는 독서 강사라는 이름으로 한 중학교에서 수업을 한 적이 있었다. 권장도서 목록의 책들을 학생들이 읽게 한 뒤 독후감 쓰기나 독서 퀴즈 등으로 평가하는 방식의 수업이었다. 물론, 아이들은 책을 읽지 않았다. 중학생 권장도서 중 하나인 생텍쥐베리의 [어린 왕자]를 앞에 두고 학생들은 "이걸 왜 읽어야 해요?" "중2병 같아요."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무엇인가가 잘못되었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라!"명령하는 데 익숙한 우리에게, 이 책은 첫문장부터 낯설다.

 

'읽다'라는 동사에는 명령형이 먹혀들지 않는다.

 

나는 책을 읽는다. 일주일에 평균 세 권, 많이 읽을 때는 하루에 한 권씩 읽는다. 어디를 가든 가방에 반드시 책 한 권을 챙긴다.

사람들은 내게 묻는다. 왜 그렇게 많은 책을 읽으시나요?

나는 대답한다.

재미있으니까요.

이 책이 말하는 핵심이 여기에 있다.

이야기는 재미있다. 동화는 환상적이다. 우리는 어렸을 때 부모님이 읽어 주던 동화책의 세계에 기꺼이 몸을 내던졌다. 글자를 깨우치고 스스로 읽게 되면서 부모님 몰래 밤을 새서 책을 읽기도 했다. 나는 [해리 포터]시리즈를 처음 읽었던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지금은 사라진 분당의 한 서점에서 책을 집어들고 그 자리에 서서 두 시간 넘게 해리 포터를 읽었다. 그때 시리즈 2편까지 나왔었고 나는 그날 밤을 샜다. 책을, 소설을 읽느라.

 

이를테면 소설이란 무엇보다 하나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소설은 '소설처럼'읽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말해 소설 읽기란 무엇보다 이야기를 원하는 우리의 갈구를 채우는 일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151쪽)

 

학교 현장의 독서 교육은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있다. 소설을 소설처럼 읽게 허락하지 않는다. 하나의 지식처럼 딱딱하게 굳혀 부스러진 조각들을 먹이며 빨리 소화시키라 명령한다. 그리고 한탄한다. 요즘 애들은 왜 책을 안 읽는지! 그런 뒤 책 대신 스마트폰을 꺼내든다. 

우리는 잊고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독자의 권리, 책을 읽지 않아도 되고 어떤 책을 읽어도 상관없고 골라 읽고 거꾸로 읽고 소리 내어 읽고 아무렇게나 해석할 수 있는 권리 열 가지를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잊었다. 

 

 

 

 

 

 

독서는 명령이 불가능하다. 우리는 스스로 읽는다.

독서는 수동태가 아니다. 우리는 능동적으로 읽는다.

학생들 앞에서 이 말을, 독서 수업 시간이 되면 저 독자의 권리를 칠판에 커다랗게 쓴 뒤 읽고 싶은 책을 실컷 읽는 그런 날이, 올까?

 

[소설처럼]을 읽으며 소설처럼 그 날을 상상한다.

 

#문지스펙트럼 #문지스펙트럼서포터즈 #소설처럼



출처: http://koalachocolate.tistory.com/176 [코알라초콜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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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사상들
윌 듀런트 지음, 김승욱 옮김 / 민음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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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사상들 #윌듀런트

 

-23, 생각이란 무엇인가? 생각을 쉽게 설명할 수 없는 것은, 생각을 정의하는 수단이 될 수 있는 모든 것이 생각 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생각은 우리가 가장 직접적으로 알고 있는 현상이며, 우리 존재의 마지막 수수께끼다. 다른 모든 것이 생각이라는 형태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인류가 이룬 모든 업적의 원천과 목표도 생각 속에 있다. 생각의 등장은 진화라는 드라마에서 위대한 전환점이었다

생각하는 건 쉽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생각 중이다. ‘이게 무슨 책이라고?’

생각을 잘 하는 것은 어렵다.

생각을 공부하고 탐구하여 깊은 사고로 나아가는 일은 정말 어렵다.

인간이 인간답기 위한 기초적인 도구로써의 생각, 이를 탐구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으로 저자는위대한 사상가10’ ‘위대한 시인10’ ‘인류 진보의 최고봉10’등의 목록을 만들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저자가 ‘20세기를 대표하는미국철학자라는 점이다. 위대한 사상가의 첫 번째로 공자를 꼽은 점에서~’할 수 있겠으나 읽다 보면 목록에 공감이 가질 않고 반박하고픈 마음이(세계 제일의 사상가에 이 사람은 어울리지 않아!) 무럭무럭 자라날 것이다. 일주일에 일곱 시간씩 4년 간 이 목록의 책을 모두 읽는다면 철학 박사 못지않은 학식을 갖출 수 있다며 호언장담하는교육을 위한 최고의 책100’에도

 21세기 한국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맞지 않는 책들이 눈에 띈다

 

이 책의 가치는 우리에게 생각의 지도를 제시한다는 점에 있다.

다만 그 지도가 1960년대에 업데이트가 멈춰 있어 새로이 생긴 길이나 지도가 표시되지 않고 지명도 고쳐야 한다. 그러나 그 틀은 바뀌지 않는다.

생각을 생각하는 어려운 일에 이 책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등불을 제공한다.

 

철학을 알고 싶은 자, 위대한 사상가들 목록과 유용한 책 목록을 참고하여

나만의 목록을 만들어라

인간의 위대한 생각 목록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윌 듀런트를 존경한다.

#민음북클럽 #민음사 #독서 #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첫번째독자 #booksta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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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 합격, 계급 - 장강명 르포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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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게 된 첫 번째 독자의 신상명세,

 

대학교 졸업반 때부터 사범대생으로서 자연스럽게 임용고시를 준비,

3년 만에 최종 3차 까지 갔다가 1.5점이 부족하여 낙방,

바로 다음 해 1차에서 광탈, 다시는 임용고시를 보지 않기로 결심,

 

한 뒤부터 한겨레문화센터와 문지문화원 등 각종 소설창작강의를 수강하며 습작 시작,

5년 동안 20편 가량의 단편을 습작하고 장편 초고 집필 중,

신춘문예와 문예지 공모전 최종에도 올라가 본 적 없음, 1차라도 통과한 건지 알 수 없음,

누구도 내게 말해주지 않으니까

 

내가 무엇 때문에 시험에서 떨어진 건지, 어디가 부족한 건지, 왜 입시에 성공하지 못하는지 아무도 내게 평가 기준 같은 것들을 알려주지 않으니까.

 

내 이십대를 지배한 임용고시와 신인문학상 공모전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키가 팔척 장신에 손이 여덟 개 달린 거대한 검은 그림자를 상상한다. 그 얼굴은 보이지 않고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손에 무엇을 쥐고 있는지 나는 결코 알 수 없다.

공립학교 교사와 등단 작가를 선발하는 그 손은 어떤 기준으로 사람을 뽑는지, 왜 저 사람은 합격하고 나는 떨어진 건지 평가기준을 명확히 알려주지 않는다. 임용고시는 모범답안을 공개하지 않고, 당선작의 기준은 소문만 무성하다.

 

임용고시에 합격한 정교사들과 등단한 작가들이 들어간 '높은 성'에 왜 나는 입장할 수 없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내 스스로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나를 구성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분해하여 분석하고 재조립한다. 공부가 부족했구나, 심사위원이 선호하는 문체와 거리가 멀구나, 올해 유행하는 개론서는 무엇이고 신춘문예용 글꼴과 자간은 어떤 것이지? 확신 없는 싸움 속에서 나는 서서히 닳아 갔다. 내 안에서 나를 조금씩 갉아 먹는 괴물, 패배감이라는 우울증이었다.

 

-17쪽, 이것은 어떤 시스템의 일부다. 입시가 있는 시스템. 세계는 둘로 나뉘어 있고,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들어가려면 시험을 쳐야 한다. 시험 한쪽은 지망생들의 세계, 다른 한쪽은 합격자의 세계인 것이다. 문학공모전이 바로 그 시험이다.

대학 입시와 기업의 공채 제도, 각종 고시나 전문직 자격증 시험도 모두 본질적으로 같다. 대단히 효율적이지만 동시에 매우 획일적이고, 지독히 한국적이다. 지원자는 모두 한 시험장에 들어가 동일한 문제로 시험을 친다. 소수의 합격자와 다수의 불합격자가 생긴다. 불합격자들이 좌절로 괴로워하는 동안 합격자들은 불합격자들과 멀어진다. 그들은 합격자들의 세계에서 새로운 규칙을 배운다. 패거리주의, 엘리트주의가 생기는 것도 자연스럽다.

 

괴물의 정체는 공채라는 시스템이다. 수능, 고시, 공채, 지극히 한국적인 시스템. 누구든 시험을 칠 수 있고, 아무나 합격하지 못한다. 수능이나 고시의 공정성은 누구나 인정하며 그것을 폐지하려는 기미만 보여도 큰 반발이 일어난다. 입시에 수많은 이들이 매달리며 자존감을 잃고 창의성을 갉아먹어도 '시험이 그나마 낫다'는 정서가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왜 이 시스템이 이렇게까지 커져버린 걸까?

 

작가는 입시가 힘을 얻는 가장 큰 근거로 '간판'을 꼽는다. 2000년 이후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장편소설공모전이라는 또 하나의 '입시'는 작가들에게 '등단'이라는 간판을 주고 출판사는 '소설상 수상작'이라는 간판을 얻게 했다. 인정받은 작가라는 안정감과 함께, 서점을 방문한 독자들이 책을 고르는 기준점으로 이 장편소설공모전이 힘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그 단체 구성원이 되는 입시에 통과한 적이 있다는 사실이 일종의 자격증처럼 작동한다.(289쪽)'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작가의 신분은 다른 직종에 비해 불확실한 부분이 있고, 이를 등단이라는 제도가 간판 역할을 해 왔다.

문제는 이 간판이 입시에 성공한 소수의 사람들을 성공 이후 발전하지 못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간판을 얻지 못한 다수의 사람들을 패배감과 좌절감에 빠지도록 한 악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이다. 자신의 전공 과목 최신 이론 공부를 소흘히 하는 정교사, 일년에 단 한 번 치뤄지는 임용고시에서 합격하지 못한 이들을 최소한으로 지원하는 제도 하나 없는 현실, 수많은 소설가 지망생들의 사라진 시간들, 간판 하나 얻기 위해 버려진 시간과 노력.

나 역시 그 간판을 얻기 위해 도서관에서 고시 공부를 했고, 작가라고 불리고 싶어 공모전용 틀에 맞춰 글을 썼다. 문학 자습서를 쪼개 외우고 신춘문예용 글꼴로 내 글을 편집했다.

 

그 속에 내가 되고 싶었던 국어교사는 없었다.

내가 쓰고 싶었던 글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작가는 소설 등단 제도와 취업 공채 제도를 번갈아가며 제시하고 분석한 뒤, 현 사회의 문제점을 짚는다-간판의 권위가 지나치게 높아졌다.

이에 대한 해결책을 하나 제안한다-그렇다면 간판 높이를 낮추자, 구체적으로

 

믿을 수 있는 정보, 충분한 보상, 실패했을 경우의 대비책.

 

특히 믿을 수 있는 정보를 제시하고 투명하게 공유할 것을 주장하는 부분이 흥미로웠다. '모험을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지도를 그려 제공하자는 게 나의 제안이다. 지금 한국의 독서 생태계나 노동시장은 너무 깜깜하다. '무슨 무슨 시험에 합격했다'는 간판들만 빛나는 어두운 거리 같다.(429쪽)' 등단이라는 간판을 필요 이상으로 크게 만들어 버린, 한국소설을 외면하는 독자를 위해 '독자들의 문예운동'을 전개해 보자는 시각에 동의한다. 영화에 비해 책, 소설은 비평의 절대적 개수가 적고, 등단 자격증을 딴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칭찬하기에만 바쁘다. 미등단 작가들도 활발히 활동하고 읽히는 환경, 베스트셀러나 몇몇 평론가의 의견보다 동네 책방 추천이나 작은 독서 모임에서 다양한 책이 공유되는 네트워크 구축, 등등.

 

서평을 지금보다도 더 부지런히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좋은 독자가 되어야, 언젠가 내 글을 읽어 줄 또 다른 좋은 독자가 등장할 테니까.

 

객관적인 1차 자료들과 각종 도표, 분석 자료로 가득한 르포 형식인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뜻밖에도 위로받는 기분이 들었다.

건조한 문체와 아직은 제안 단계인 해결 방안을 보며 내 자아는 괴물이 갉아먹어 너덜너덜해진 부분들을 조금씩 고치기 시작했다.

 

나의 실패는 온전히 내 탓만이 아니었다.

공정했다고 생각했던 제도의 경직화와 각종 부작용을 정확히 알게 되었다.

그 세계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나 자신만을 책망하는 것은 내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간판이 아닌 내 본래의 욕망을 생각했다.

선생님이라는 자격만을 받고 싶은지,

아이들에게 읽고 쓰는 즐거움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고 싶은지.

작가라는 이름 하나에 만족하는 사람이 되려 하는지,

매 순간 내가 쓸 수 있는 글을 최선을 다해 써서 한 편의 소설을 완성하고 싶은지.

 

나를 직시하고, 곧장 행동에 옮긴다.

 

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이 책은 분명하게 말해 주었다.

덕분에 나는 그림자에서 벗어나 한 발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이 책을 써 주신 작가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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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 광주 5월 민주항쟁의 기록, 전면개정판
황석영.이재의.전용호 기록, (사)광주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엮음 / 창비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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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역사를 배우는가.

7차 교육과정으로 '국사'와 '근현대사'를 수능 선택과목으로 골라 공부하며 조선시대 백성들의 수난이나 일제시대의 고통, 피와 어둠으로 얼룩진 현대사의 사건들과 마주할 때마다 생각했다. 특히 1980년 5월 광주의 이야기는 차라리 이 모든 게 픽션이기를 바랄 정도로 정면으로 대하기 고통스러웠다.

나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주인공이 위기에 처하면 거기서 빠져나올 때까지 빨리감기로 넘겨 버린다. 피할 수 없는 오해를 받거나 억울한 누명을 쓰고 결국 베드엔딩으로 끝나는 작품들은 끝까지 보지도 못한다. 고2 근현대사 수업 시간에 역사 선생님께서 흑백으로 된 광주의 영상과 사진을 보여주며 자세히 설명해 주신 광주는 그 자체로 참혹하고 비통한, 거대한 울음이었다. 

국민을 지켜야 할 군인들의 총구가 바로 국민을 향해 무차별 학살이 이뤄진 곳,

밤새 소식이 없는 남편을 찾아 새벽같이 집을 나선 임산부에게 총이 발사된 곳,

군사쿠데타를 거부하고 민주주의를 외치는 이들을 폭도와 빨갱이로 규정하고 각종 조작과 탄압으로 왜곡되던 곳,

그때 선생님은 우리에게 반드시 기억하고 되새겨야 할 역사가 있기에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고 말하셨다. 그때 광주에서 너희들 나이 또래로 시위에 참여하고 시신을 수습하고 총에 맞아 순국한 학생들이 있다고,

지금 우리는 그분들의 노력으로 만들어 진 세계에서 살고 있다고.

이 책을 읽다 보니 그때 내가 보았던 영상들이 힌츠페터라는 독일 기자가 촬영한 것들임을(350쪽) 알게 되었다. 당시 광주를 알리기 위해 노력했던 외신기자들의 자료와 군부독재 시절 광주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쓰여진 이 책 '넘어넘어'가 있어 우리는 기억해야 할 역사로서 광주를 배울 수 있었다. 5월의 광주 '민주화운동'은 상식이자 역사적 현실이었다. 민주주의라는 '헌정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정당한 행위'(489쪽, 1997년 대법원 판결)다.

그런데 2008년 이후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로 이어지는 보수정권 아래 '일베'등 극우 선동가 집단이 5월의 광주를 왜곡하고 폄훼하기 시작하면서 상식을 뒤흔들기 시작했다. 5.18은 북한군 특수부대가 광주로 내려와 선동한 폭동이라 주장하고, 시민군이 계엄군보다 먼저 발포했다는 등 왜곡되고 조작된 자료를 근거로 주장을 펼치며 항쟁기간 당시 사망한 광주 시민들의 사진에서 홍어 냄새가 난다는 발언으로 비인격적인 모독과 조롱을 서슴치 않았다. 지난 10년 간 우리의 상식과 진실은 무참하게 공격받고 모욕당했다. 극우 사이트에서 보고 들은 대로 아무 생각없이 광주는 폭동이라며 외치고 다니는 중학생들을 바라보며 나는 처음 광주와 마주했을 때의 고통을 떠올렸다. 2009년의 용산, 2014년의 세월호, 말도 안 되는 뉴스들을 보며 생각했다.

'저건 광주잖아. 그러니까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 한강, 소년이 온다, 207쪽

그래서 이 책은 두 번 씌어졌다.

1985년 초판, 왜곡된 광주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출간된 [넘어넘어]는 87년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되고 한국의 민주주의의 밑바탕이 되었다.

2017년 개정판, 지난 10년 간 광주를 모독하고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세력에 맞서 새롭게 [넘어넘어]가 고쳐 쓰여졌다. 이 책이 출간되면서 때맞춰(?) 전두환의 변명 같은 자서전이 출간되고, 촛불 혁명의 결과물로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했으며, 책을 받고 절반 정도 읽은 당일 5월 18일, 9년 만에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제창되었다.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1980년 5월 광주를 공부하며 문재인 대통령의 518 기념사에 귀를 기울였다.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오늘 5.18민주화운동 37주년을 맞아, 5.18묘역에 서니 감회가 매우 깊습니다.
37년 전 그날의 광주는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슬프고 아픈 장면이었습니다.
저는 먼저 80년 오월의 광주시민들을 떠올립니다. 
누군가의 가족이었고 이웃이었습니다. 평범한 시민이었고 학생이었습니다.
그들은 인권과 자유를 억압받지 않는, 평범한 일상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습니다.
저는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광주 영령들 앞에 깊이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오월 광주가 남긴 아픔과 상처를 간직한 채 오늘을 살고 계시는 유가족과 부상자 여러분께도 깊은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1980년 오월 광주는 지금도 살아있는 현실입니다.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역사입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이 비극의 역사를 딛고 섰습니다.
광주의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의 민주주의는 버티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저는 오월 광주의 정신으로 민주주의를 지켜주신 광주시민과 전남도민 여러분께 각별한 존경의 말씀을 드립니다.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5.18은 불의한 국가권력이 국민의 생명과 인권을 유린한 우리 현대사의 비극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에 맞선 시민들의 항쟁이 민주주의의 이정표를 세웠습니다.
진실은 오랜 시간 은폐되고, 왜곡되고, 탄압 받았습니다.
그러나 서슬퍼런 독재의 어둠 속에서도 국민들은 광주의 불빛을 따라 한걸음씩 나아갔습니다.
광주의 진실을 알리는 일이 민주화운동이 되었습니다. 
부산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던 저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저 자신도 5.18때 구속된 일이 있었지만 제가 겪은 고통은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광주의 진실은 저에게 외면할 수 없는 분노였고, 아픔을 함께 나누지 못했다는 크나큰 부채감이었습니다. 
그 부채감이 민주화운동에 나설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것이 저를 오늘 이 자리에 서기까지 성장시켜준 힘이 됐습니다.
마침내 오월 광주는 지난 겨울 전국을 밝힌 위대한 촛불혁명으로 부활했습니다.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분노와 정의가 그곳에 있었습니다.
나라의 주인은 국민임을 확인하는 함성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자는 치열한 열정과 하나 된 마음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감히 말씀드립니다. 
새롭게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연장선 위에 서있습니다.
1987년 6월항쟁과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의 맥을 잇고 있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다짐합니다. 
새 정부는 5.18민주화운동과 촛불혁명의 정신을 받들어 이 땅의 민주주의를 온전히 복원할 것입니다. 
광주 영령들이 마음 편히 쉬실 수 있도록 성숙한 민주주의 꽃을 피워낼 것입니다.
여전히 우리 사회의 일각에서는 오월 광주를 왜곡하고 폄훼하려는 시도가 있습니다.
용납될 수 없는 일입니다. 
역사를 왜곡하고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헌신으로 이룩된 이 땅의 민주주의의 역사에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새 정부는 5.18민주화운동의 진상을 규명하는 데 더욱 큰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헬기사격까지 포함하여 발포의 진상과 책임을 반드시 밝혀내겠습니다.
5.18 관련 자료의 폐기와 역사왜곡을 막겠습니다. 
전남도청 복원 문제는 광주시와 협의하고 협력하겠습니다.
완전한 진상규명은 결코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닙니다. 상식과 정의의 문제입니다.
우리 국민 모두가 함께 가꾸어야할 민주주의의 가치를 보존하는 일입니다.
5.18 정신을 헌법전문에 담겠다는 저의 공약도 지키겠습니다.
광주정신을 헌법으로 계승하는 진정한 민주공화국 시대를 열겠습니다.
5.18민주화운동은 비로소 온 국민이 기억하고 배우는 자랑스러운 역사로 자리매김 될 것입니다.
5.18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아 개헌을 완료할 수 있도록 이 자리를 빌어서 국회의 협력과 국민여러분의 동의를 정중히 요청 드립니다.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임을 위한 행진곡’은 단순한 노래가 아닙니다. 오월의 피와 혼이 응축된 상징입니다. 5.18민주화운동의 정신, 그 자체입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것은 희생자의 명예를 지키고 민주주의의 역사를 기억하겠다는 것입니다. 
오늘 ‘임을 위한 행진곡’의 제창은 그동안 상처받은 광주정신을 다시 살리는 일이 될 것입니다. 오늘의 제창으로 불필요한 논란이 끝나기를 희망합니다.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2년 전, 진도 팽목항에 5.18의 엄마가 4.16의 엄마에게 보낸 펼침막이 있었습니다.
“당신 원통함을 내가 아오. 힘내소. 쓰러지지 마시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국민의 생명을 짓밟은 국가와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한 국가를 통렬히 꾸짖는 외침이었습니다. 
다시는 그런 원통함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국민의 생명과 사람의 존엄함을 하늘처럼 존중하겠습니다. 저는 그것이 국가의 존재가치라고 믿습니다. 

저는 오늘, 오월의 죽음과 광주의 아픔을 자신의 것으로 삼으며 세상에 알리려 했던 많은 이들의 희생과 헌신도 함께 기리고 싶습니다. 
1982년 광주교도소에서 광주진상규명을 위해 40일 간의 단식으로 옥사한 스물아홉 살, 전남대생 박관현. 
1987년 ‘광주사태 책임자 처벌’을 외치며 분신 사망한 스물다섯 살, 노동자 표정두.
1988년 ‘광주학살 진상규명’을 외치며 명동성당 교육관 4층에서 투신 사망한 스물네 살, 서울대생 조성만. 
1988년 ‘광주는 살아있다’ 외치며 숭실대 학생회관 옥상에서 분신 사망한 스물다섯 살, 숭실대생 박래전. 
수많은 젊음들이 5월 영령의 넋을 위로하며 자신을 던졌습니다.
책임자 처벌과 진상규명을 촉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습니다.
국가가 책임을 방기하고 있을 때, 마땅히 밝히고 기억해야 할 것들을 위해 자신을 바쳤습니다.
진실을 밝히려던 많은 언론인과 지식인들도 강제해직되고 투옥 당했습니다.
저는 오월의 영령들과 함께 이들의 희생과 헌신을 헛되이 하지 않고 더 이상 서러운 죽음과 고난이 없는 대한민국으로 나아가겠습니다. 
참이 거짓을 이기는 대한민국으로 나아가겠습니다. 
광주시민들께도 부탁드립니다. 
광주정신으로 희생하며 평생을 살아온 전국의 5.18들을 함께 기억해주십시오.
이제 차별과 배제, 총칼의 상흔이 남긴 아픔을 딛고 광주가 먼저 정의로운 국민통합에 앞장서 주십시오. 
광주의 아픔이 아픔으로 머무르지 않고 국민 모두의 상처와 갈등을 품어 안을 때, 광주가 내민 손은 가장 질기고 강한 희망이 될 것입니다.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오월 광주의 시민들이 나눈 ‘주먹밥과 헌혈’이야말로 우리의 자존의 역사입니다. 민주주의의 참 모습입니다. 
목숨이 오가는 극한 상황에서도 절제력을 잃지 않고 민주주의를 지켜낸 광주정신은 그대로 촛불광장에서 부활했습니다. 
촛불은 5.18민주화운동의 정신 위에서 국민주권시대를 열었습니다.
국민이 대한민국의 주인임을 선언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국민의 뜻을 받드는 정부가 될 것임을 광주 영령들 앞에 천명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하고 서로의 아픔을 어루만져주는 대한민국이 새로운 대한민국입니다.
상식과 정의 앞에 손을 내미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숭고한 5.18정신은 현실 속에서 살아숨쉬는 가치로 완성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삼가 5.18영령들의 명복을 빕니다. 
감사합니다.

(밑줄은 인용자)

책과 함께 배달된 문 대통령의 기념사는 그 자체로 이 책의 요약본이다.

광주에서 목숨을 잃은 이들은 일상을 지켜내려 했던 평범한 사람들이었음을,

불법적으로 찬탈한 권력을 지키기 위해 죄 없는 시민들에게 가해진 무자비한 폭력임을,

폭동이기는 커녕 시민들 스스로 주먹밥을 나누고 부상당한 이들에게 피를 나눠준 봉기의 도시(350쪽)임을,

그때 광주에서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떻게 인권이 유린되었으며, 이를 왜곡하려는지, 우리는 5월 광주를 어떤 기억으로 되새겨야 하는지 이 책은 각종 자료들과 수많은 이들의 증언, 연구자료, 보도자료, 군 관련 자료들까지 총망라한 책이다. 객관적인 서술을 따라가다 이런 문장들이 나오면 멈춰서서 그때 광주에 있었던 분들을 생각했다.

-201쪽, 잠시 사격이 멈췄다. 그 순간을 틈타 몇명의 청년이 쏜살같이 도로에 뛰어나와 쓰러져 있는 시신과 꿈틀거리는 부상자들을 끄집어냈다. 그러자 더욱 놀라운 일이 이어졌다. 다른 청년들이 다시 태극기를 들고 금남로 한가운데로 뛰쳐나와 구호를 외쳤다. 또 총성이 울렸다. 그 청년들도 공중에 피를 뿌리며 금남로 한가운데서 맥없이 쓰러졌다. 또 사람들이 부상자와 시신을 들어냈다. 그러자 다시 몇몇이 태극기를 흔들며 금남로로 뛰어들었다. 총알은 여지없이 날아와 그들을 쓰러뜨렸다. 이렇게 하기를 대여섯번. 정말로 충격적인 광경이 반복되고 있었다.

- 209쪽, 조선대생 김종배(26세)는 21일 도청 앞 시위 대열에 섞여 있었다. 그는 여고생 한명이 위에는 교복을, 아래는 흰 체육복을 입고 지나가다 총탄을 맞고 쓰러지는 것을 목격하였다. 총성이 멈추고 한참 지난 뒤에야 쓰러진 여학생을 홍안과로 데려가 살펴보니 이미 숨진 후였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분노가 치솟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울음이 터져 나왔다. 천진한 소녀가 그의 눈앞에서 바람에 지는 꽃잎처럼 붉은 피로 물든 채 쓰러져갔다. 그는 그날 오후부터 두려움을 떨쳐내고 시위대에 적극 동참하였다.

그러니까 그건, 폭동이니 간첩이니 생각 없는 이들에게 아무렇게나 조롱당할 일이 아니다.

광주는 훼손되지 말아야 할 것을 지켜내려 했던 몸부림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책을 읽어야 한다.

다시, 우리는 왜 역사를 배우는가.

우리가 딛고 선 이 세계가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님을 기억하기 위해,

지금의 상식과 정의를 지키기 위해,

특정 이익을 취하고자 왜곡하고 악용하려는 뻔뻔한 자들을 꾸짖기 위해

우리는 역사를 배워야 한다.

이 책을 읽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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