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나의 도시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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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오은수라는 인물이 내 주위 어딘가에 실재한다고 믿었다. 그녀에게 화가 났고, 그녀를 응원했고, 그녀에게 공감했다. 그녀는 조금도 특별하지 않았지만 참 특별한 사람이었다. 드라마 밖을 사는 우리들의 평범함과 깊이 닿아있으면서도 그녀가 세상과 마찰하며 내는 파열음들은 무척 특별하게 다가왔다.

 도시와 사회에서 살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그래야만 하는 것'에 접하게 되는가. 이미 제도화, 관념화된 것들을 무시하고 내멋대로 살아가는 것은 또 얼마나 많은 편견과 장애물을 만나게 되는지. 이 모든 고독을 이겨내고 살기에는 우리들은 너무 나약하고 외로운 존재다. 그렇다고 해서 순순히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기에는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는다.

 이 이야기는 삶의 중요한 선택들을 유예한채로 어정쩡하게 서른 남짓한 시간까지 와버린 주인공 은수의 이야기다. 사랑도, 직장도, 꿈도 손에 쥔 것은 없다. 다시 시작하긴 늦었다고 여기며 급하게 제도와 관습으로 스며들려고 하는 찰나, 다시 실패를 경험한다. 그 실패 후에 비로소 조급함이 사라지고, 아무것도 변한 것은 없지만 그녀는 담담해진다. 이젠 진정 어른이 된걸까? 환멸했던 도시의 씁쓸한 맛에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게 된것을 보면, 그녀의 시선이 비로소 내부로 향하게 된것이다. 자신과의 대면에서 그녀는, 다시 시작할 방법은 없지만 이 모든 것이 끝이 아니라 순간임을 깨닫는다.

 결국 그녀의 도시가 달콤해질 것인지 나는 장담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다시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너무 이르다는 누구의 생각이며 과연 검증된 것인가? 우리는 불안할 때 아무것이나 믿게 된다. 그것이 네비게이션이든 점괘든. 하지만 점괘는 밑천이 부박한 부질없는 것이고, 삶에 네비게이션 같은 것은 없다. 다만, 우리는 주변의 풍상을 담담히 받아들이며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죽음'이라는 목적지가 아니라 그 과정이니까.

 그녀의 이야기를 무방비 상태로 즐기다가 끝을 본 나는 얼떨떨하다. 솔직히, 내가 30대 초반을 살아가지 않기에 내 이야기 같지 않다. 떠오르는 생각들은 파편화되어 있고 느낌만이 짙게 남는다.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 또는 '그들'의 삶을 유쾌하게 하지만 웃기지 않게, 쓸쓸하게 하지만 촌스럽지 않게 잘 담아 낸 것 같다. <타인의 고독>을 재밌게 봤던 기억때문에 이 책을 낼름 집어들었던 나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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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영토 희망 스토리
김영한.지승룡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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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번도 가본 적은 없지만 민들레영토라는 카페에 대해서 종종 들어왔다. 카페면 카페지 도대체 무엇때문에 그렇게 유명한가 싶었는데 이 책을 읽고나니 그럴만 하다 싶다. 조그만 10평짜리 카페에서 지금의 민들레영토를 만든 지승룡씨에 대한 조명은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역시 성공과 실패를 판가름 짓는 것은 위기에 맞딱뜨렸을때 어떻게 대처하느냐이다. 위기를 자신의 인생선상의 '결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수동적이고 소극적으로 대응하다가 끝도 없이 굴러떨어질 것이다. 하지만 위기를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다르다. 창조적이고 침착하게 행동하다보면 결국에는 성공으로 다다를 확률이 더욱 높아진다. 말은 이렇게 쉽지만 예상치 못한 위기 상황에 닥치게 되면 막상 그렇게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지만 지승룡씨는 위기의 순간마다 발상의 전환을 거듭하며 침착하게 탈출구를 찾았다. 그리고 죽을 각오로 일했다. 한 때만이 아니라 평소에 착하고 성실하게 살다보니 필요한 순간에 저절로 도움이 됐다. 결국 성공에 다다랐다.

 리더에 대한 지승룡씨의 지론도 인상적이다. 군대와 같은 계급사회에서의 상하관계를 '팔로우쉽(follow-ship)'으로 치부하고 진정한 리더라면 '나를 따르라고 요구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 따르게 만드는 사람'이어야 하고, 리더는 '계급이나 직책이 높은 사람이 아니라 따르는 자가 결정하는 존재'라고 설파할 때, 군대에서 복무하고 있는 나는 귀가 쫑긋해졌다. 같이 일하고 모범을 보이는 자라야만 진정한 분대장이며 리더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귀찮다는 이유로, 시키고 명령하기만 했던 내 자신을 반성하게 했다.

 그 내용의 좋고 싫음을 떠나서 내가 보기에 이 책은 매우 부족한 책이다. 민들레영토의 희망스토리를 이야기해주고 싶었다면 좀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지승룡씨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야 했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수박겉핥기에 그치고 있다. 민들레영토의 감성마케팅·마더마케팅에 대한 설명은 중언부언하고 있고, 다른 부분도 깊이 없는 소개로 채워져있다. 이런 책은 '팸플릿'에 불과하지 않은가? 짧고 투박한 글을 행간을 넓히고 디자인에만 신경써서 비싸게 팔고, 또 팔려나가는 요즘의 출판 세태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여러모로 부족하고 부실한 책이었고 아쉬움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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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전영애.박광자 옮김 / 청미래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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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이 다가왔으나 그들은 주인이 되어 그 운명을 지배할 줄 몰랐다-무엇인가에 압도당해서 쓰러지는 데에는 언제나 그 나름의 의미가 있을 뿐만 아니라 죄과까지 있는 법이다.-116쪽

시대를 이해할 생각은 않고 오직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보낼 생각만 했다.-117쪽

이 엉터리 시대의 경박한 것은 군주나 제후, 추기경뿐이 아니었다. 사기꾼들 역시 그랬다.-220쪽

그날 밤 기요틴이 콩시에르즈리에서 카루젤 광장으로 옮겨졌다. 8월 13일부터는 루이 16세가 프랑스를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공포가 다스린다는 사실을 프랑스에 알리기 위해서였다.-427쪽

그러나 혁명은 계속 굴러가는 공과 같은 것이다. 공을 굴리는 사람이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쉬지 않고 공과 함께 달려야 하듯이 혁명을 이끌고, 혁명의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은 쉬지 않고 달려야 한다. 계속되는 전개 속에 정지란 있을 수 없다.-440쪽

공포가 프랑스 혁명을 원래의 목표보다 훨씬 더 멀리 몰고 갔으며 격류와도 같은 거센 힘을 휘두르게 했다. 혁명의 운명은 간신히 얻은 휴식을 다시 몰아냈고 목표에 도달하자마자 곧 그 목표를 더 높은 곳으로 올려놓았다.-4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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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의 심리학 -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6가지 불변의 법칙 설득의 심리학 시리즈
로버트 치알디니 지음, 이현우 옮김 / 21세기북스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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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심리학'이라는 제목이 붙은 책이 난무하고 있다. 혹시나해서 이런 책들을 살펴보면 역시나 한결같이 똑같다. 사람의 심리를 이용하여 누구를 속이고 이용하고 이기는 '공격적인 기술'에 대한 책들이기 때문이다. 과연 그런 기술들을 습득하는 것이 심리학인가 회의하고 그런 종류의 책들을 기피하곤 했다.

 하지만 이 책은 달랐다. 저자는 우리가 어떤 결정을 내릴 때 자동적으로 나오는 속성에 주목했다. 어떤 특정한 상황을 유발해주면 그 기제에 맞춰서 나오는 인간의 속성은 어떤 면에서 동물적이기도 하다. 칠면조가 '칩칩' 소리를 내는 물체는 무조건적으로 자기 새끼인 줄 알고 모성애를 보이는 것처럼 인간의 속성도 자연스럽고 반사적이다. 저자가 '의사결정의 지름길'이라고 명명한 이 속성은 복잡한 세상 속에서 편리하고 꼭 필요한 것이지만, 이를 이용하여 부당한 이득을 취하려는 장사꾼과 사기꾼들에게 악용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저자는 우리의 그런 속성들을 알려주고, 앞서 말한 이익집단에 대항할 수 있는 '방어전략'을 일깨워준다. 또한, 매 장마다 다양한 예화와 사례, 실험을 통해 설명하고 있어, 이해하기도 쉽고 재미도 있었다.

 저자의 말처럼 내 주위만해도 수많은 문서와 정보들로 넘친다. 당장 인터넷만 연결되면 더 엄청난 정보가 눈 앞에 펼쳐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모든 정보를 분석하고 상황마다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우리 안에 내재된 오감과 본능에 의거한 의사결정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하지만 이 방법에 지나치게 의존하여 무비판적으로 결정해서는 안된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칩칩'소리에 무조건적으로 반응하는 칠면조와 다를 바가 없다. 본능적인 의사결정 와중에도 이를 부당하게 이용하는 '꾼'들을 경계하며 나의 이익을 지키는 것. 저자가 말하는 것은 결국 그것이었다. 내 생각도 그렇다. 누구를 속이고 이용하는데 혈안이 된 사회에서 그것만이 나를 지키면서도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최선의 선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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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전영애.박광자 옮김 / 청미래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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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하는 독서도 있다. 나에게 이 경우가 그렇다. <광기와 우연의 역사>라는 책을 통해서 슈테판 츠바이크를 만났는데, 번역투라서 그런지 몰라도 문장이 약간 길면서도 행간에서 뿜어져나오는 힘과 깊이, 그리고 이야기를 극적으로 몰고 가는 능력에 정말이지 홀딱 반해버렸다. 그래서 이 작가에 대한 모든 책을 다 읽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고, 그의 작품 중 우리나라에서 번역된 것을 찾다가 이 책을 발견했다. 꽤 두꺼운 분량에도 불구하고 단숨에 읽어버릴 정도로 이 책은 기대했던 만큼 흥미롭고 유익했다.

 하지만 이 것은 내 개인적인 호감일뿐, 이 책의 진정한 미덕은 다른 데 있다. '역사'라는 이름으로 '악녀' 또는 '탕녀'로 도색되거나, '희생양'으로 오도된 마리 앙투아네트를 '인간화'한것이 그것이다. 승자의 명분을 위해 역사에서 패자는 더럽혀지고 도색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러한 작업은 역사에 대한 우리의 안목을 좁히고, 잘못 판단하게 한다. 인간화된 인물에서야 말로 일말의 진실과 진정한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저자의 이 작업은 참으로 의미 있는 것이다.

 혹자는 지은이가 노골적으로 마리 앙투아네트를 옹호하고 있다고 비난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인생의 극에서 극으로 내몰린 그녀의 운명에 대한 동정이자 인간으로서의 측은함이다. 그리고 그녀가 비로소 시대를 이해하게 된 후반생에 대한 격려와 철없었던 그녀의 전반생에 대한 비난과 회환 그것들이 모두 뒤섞인 인간에 대한 인간의 복잡한 감정인것이다. 어떤 면에서 보면, 츠바이크는 '부도덕하고 경박한 진보주의자보다 도덕적이고 성실한 보수주의자가 역사에 더 많이 기여한다'는 조지훈 시인의 말처럼, 경박하고 과격한 혁명의 광기보다는 좀 더 이성적인 결과를 희망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관통하는 츠바이크의 역사에 대한 관점은 역시나 '광기와 우연으로 가득한 역사'이다. 아주 작은 사건이나 소소한 선택이 역사적인 큰 흐름을 불러온다는 것이다. 그의 이런 지론 덕분에 그의 책들은 항상 극적이고 반전이 넘치며 흥미롭다. 한 사건을 불러 일으키는 것은 다양한 동기들이다. 그 동기 중에서 가장 영향력이 크다고 생각하는 것을 골라내는 것은 역사가의 역할이자 관점이다. '극히 작은 바퀴라도 정교하게 조합된 역사의 장치 속에서는 엄청난 힘을 낸다'는 지은이의 생각은 그런 점에서 흥미롭고 즐겁다.

 이렇듯 나는 이 책의 내용에 대해서는 만족했지만 이 책에 대해서는 만족하지 못했다. 우선 오타가 너무 많다. 처음에는 실수이겠거니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많아도 너무 많다. 뿐만아니라 책의 320쪽부터 336쪽까지는 어이없게도 289쪽부터 304쪽이 다시 인쇄되어있다. 책의 17쪽 정도의 분량이 사라진것이다. 도대체 교열과 편집과정이 있었는지 의문이다. 내가 구입한 책만 우연하게 잘못된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어이없는 실수에 매우 당황했고 화가 났다. 앞으로 쇄를 거듭하면서 이러한 부분이 수정되어서 또다른 피해자가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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