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와 한서 - 중국 정사正史의 라이벌
오키 야스시 지음, 김성배 옮김 / 천지인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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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업 과제로 보고서를 준비하면서, <사기>와 <한서>에 모두 등장하는 인물들을 비교해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했다. 사마천과 반고의 관점을 교차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한서>번역본이 없었다. <한서>의 열전만 몇 편 추려서 번역이 되어 있는데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했다. 약간 실망하면서 좀 더 검색을 해보니 <사기>와 <한서>를 비교해놓은 책이 이미 출간되어 있었다. 바로 이 책이었다. 반가웠다. 

  읽어보니 논문 2편을 합쳐 놓은 것 같은 책이다. 앞부분은 <사기>와 <한서>의 특징 비교와 시대별 평가 추이를 정리해놓았고, 뒷부분은 <사기>와 <한서> 중에서 한 편을 꼽아 비교, 설명해준다. 새로운 사실을 밝혀냈다기 보다는 일반학계의 기존 연구성과들을 잘 정리해놓은 것 같았다. 물론 <사기>와 <한서>에 관심이 많다면 그에 얽힌 이야기들과 상식들을 얻는 잔재미가 충분하다. 하지만 일반 독자의 관심을 당길 만한 포인트는 부족하다고 생각된다. 특히 2편에는 <사기>와 <한서>에서 직접 한 편을 뽑아 설명하고 있는데 이것은 중언부언과 같다. 왜냐하면 1편에서 이미 <사기>와 <한서>가 각각 가지고 있는 특징들을 설명한 바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비슷한 주제의 논문 2편을 읽는 느낌이라고 말했던 이유이다. 

   일본에서도 <사기>완역은 많지만 <한서>의 제대로 된 번역본은 없는 모양이다. 이것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인데 일본의 학풍에서 영향을 받은 것일까? 아니면 시대별로 <사기>나 <한서>에 대한 각각의 평가가 달라지듯이 현대는 <사기>의 시대인 것일까? 옮긴이의 말을 인용하자면, 중국문학 연구의 거장인 요시카와 고지로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중국의 고전산문을 연구하려면 <사기>와 <한서>, <후한서>, <삼국지> 즉, 전사사(前四史)는 읽어야 한다'고 말이다.  

  아마도 일제가 조선과 중국을 침략하기 위한 준비로 대대적인 투자와 지원을 했던 탓에 그렇겠지만, 중국사의 저명한 학자들 중에는 일본인들이 많다. 한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가 밟아온 자취를 들여다보는 것 이상의 방법이 없고, 한 나라를 알기 위해서 그 역사를 연구하는 것 이상의 방법은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문화의 각 영역에서 중국의 영향력은 과거나 지금이나 매우 크다. 그리고 앞으로도 점점 커질 것이다. 최근 외교부에서 '중국연구센터'를 발족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이런 시점에 <한서>를 비롯한 전사사의 번역이 이뤄진다면 어떨까? 그렇게 된다면 중국사에 대한 관심을 대중적으로 고취시킬 수 있고, 그 기반 위에서 우리나라에도 저명한 중국사 연구자가 많이 나오게 되지 않을까. <한서>의 제대로 된 완역본이 없는 상황에서 <사기>와 <한서>의 차이점을 살펴보자는 것은 사실 좀 뜬구름 잡는 것 같은 느낌이라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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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24시간 어떻게 살 것인가 범우문고 149
아널드 베넷 지음, 이은순 옮김 / 범우사 / 199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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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고판으로 읽기에 부담이 없는데다 제목마저 도발적이라 호기심에 읽게 되었다. 저자의 주장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일주일에 3일 이상 퇴근 후 저녁시간의 1시간 30분씩 취미 혹은 연구에 투자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더불어 통근 시간을 명상의 시간으로 삼아 집중력을 배양하라고 권한다. 여느 자기계발서와는 다르게 단순한 지침을 주고 있는 것이 미덕이다. 물론 뻔한 이야기라는 것이 단점이 될 수 있겠다. 하지만 자기계발서에 너무 큰 것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모두 알고 있지만 하지 못하는 것들을, 어쩌면 저자들도 못하는 것들을, 그럴싸하게 말하는 책들이 자기계발서 아닌가? 그런 관점에서 보면 복잡하고 기계적인 말의 성찬보다는 단순한 이런 조언들이 가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쉬운 점은 시대가 너무 흐른 탓인지 저자의 재치 있는 문장이 전혀 그 느낌을 그대로 전달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무척 쉽고 편하게 이야기하려고 하는데 현대의 독자인 나로서는 어색한 느낌만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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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의 역설 - 한자는 중국을 이렇게 지배했다
김근 지음 / 삼인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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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문화가 독특한 특성을 갖는 이유, 중국처럼 큰 땅덩어리가 한 국가로 유지되어 온 이유를 '한자'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라 놀랍고 신기하다. 흥미롭지만 이해하기 쉽지 않고 논리가 갑자기 뛰어 넘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강연 내용을 약간 수정 보완해서 출판한 책이라고 하는데, 조금더 부연설명을 하고 체계를 바로 잡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한자의 '역설'까지 설명하고 이해시키기에는 부족했다. 한자의 '힘'까지는 알 수 있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예화가 많고 독특한 접근이라 한 번 읽어볼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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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망 1 (반양장) 대망
야마오카 소하치 지음, 박재희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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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사람들이 밤을 새워 읽었다고들 한다. 재미있는 부분도 있지만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다. 문화 차이가 크다. 노골적인 영웅만들기, 단선적인 여성에 대한 묘사가 눈에 거슬린다. 하지만 가장 참혹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흥미를 자극하는 그 시대의 힘이 다음 권도 읽게 만드는 것 같다. 정치와 인생의 교과서로 읽는다는 말도 들었는데, 글쎄 내가 철부지라 그런걸까. 1권만 읽은 지금 생각으로는 좀 끔찍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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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5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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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의아했던 것은 개츠비의 파티에 모인 사람들의 태도였다. 그들 모두 개츠비의 호의덕분에 웃고, 마시고, 즐기면서도 호스트에 대한 험담을 멈추지 않았다. 살인을 했다는 둥 첩자라는 둥, 마치 ‘원조 부자’가 ‘짭퉁 부자’에게 텃새를 부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화려한 파티의 뒷모습을 이보다 분명하게 드러내는 소재가 있을까 싶다. 심하게 말하면 화려한 예복으로 단장한 이들 모두 순수성을 잃고 자기보존의 원초적 본능만 남은 껍데기들에 불과하다. 파티에서 건네는 웃음 뒤에 숨겨진 것은 허위와 의심, 그리고 질투이지 관계의 진지함이나 연대, 소통이 아니다. 이 소설은 물질적 화려함 뒤에 숨겨진 정신적 빈곤함을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슬프게도 이 책을 통해 들여다보는 1920년대 미국은 현대의 한국과 너무나 닮아 있다. 우리 사회는 경제적으로 눈부신 성장을 이루었지만 정신적으로는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과 만나지만 그들과 소통을 이루기는 더욱더 힘들어졌다. 누군가의 성취를 축하하기 보다는 - 나를 위해 마련된 자리가 또 하나 사라졌음을 분개하며 - 그 성취의 이면에 숨겨진 비밀을 밝혀내고자 의심하고 경계한다. 사회지도층은 도덕적으로, 정신적으로 타락했고, 시민은 성공의 마지막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 속에 살아가고 있다. 이것은 1920년대 미국 동부의 이야기인가, 2010년 대한민국 서울의 이야기인가.


  톰 뷰캐넌이나 조단 베이커, 마이어 울프심 같은 캐릭터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타락한 미국 부유층의 일면을 보여준다. 물론 개츠비도 완벽히 순수한 캐릭터는 아니다. 그는 울프심과 결탁하여 비합법적으로 부를 축적했다. 그럼에도 개츠비가 그 수많은 상류층 속에서도 독야청청하게 보이는 것은 그 순수함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지만 개츠비는 거짓말을 하면서도 눈치를 살피고 머뭇머뭇 대는, 아직 양심에 털이 나지 않은 ‘귀여움’을 보여준다. 또 하나 개츠비가 그들과 다른 것은 ‘꿈’을 위해 달려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데이지에 대한 연정에 그의 모든 재산과 영광을 바친다. 그리고 그녀를 위해서라면 그가 이뤄놓은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데도 주저하지 않는다.


  위대하다는 말은 함부로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말은 인간적 불완전함이 전혀 없는 공자나 예수, 부처와 같은 인물에게나 주어지는 찬사이다. 하지만 지은이가 불법으로 재산을 축적한 개츠비에게 ‘위대하다’고 한 이유는 무엇일까. 내 생각은 이렇다. 우리 같은 평범한 인간이 살아가면서 돈과 성공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살아가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물론 그런 사람도 있고, 그런 어려운 길을 택한 사람에게는 당연히 존경과 찬사를 바칠 일이다. 하지만 평범한 인간이 돈과 성공을 추구하면서도 인간적인 덕목을 잃지 않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이다. 항상 한 번이 쉽지 두, 세 번은 어렵지 않은 일 아닌가? 물질적인 것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휴지가 물에 닿는 것처럼 빠르게 나 자신을 잃어버릴 수 있다. 세속적인 것을 추구하면서도 내면의 열정과 순수를 잃지 않는 것 또한 쉽지 않은 일인 것이다. 이 모든 변호를 감안하더라도 개츠비에게 ‘위대하다’는 수식은 지나친 것일까?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코끝이 찡해지는 것을 느꼈다. 개츠비에 대한 연민 때문이다. 식상한 결론이지만 우리사회의 지도층들에게 개츠비를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또한 앞으로 지도층이 될지도 모르는 -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에서 지도층들이기도 하다 - 우리들도 꿈과 순수함을 잃지 않도록 노력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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