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5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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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의아했던 것은 개츠비의 파티에 모인 사람들의 태도였다. 그들 모두 개츠비의 호의덕분에 웃고, 마시고, 즐기면서도 호스트에 대한 험담을 멈추지 않았다. 살인을 했다는 둥 첩자라는 둥, 마치 ‘원조 부자’가 ‘짭퉁 부자’에게 텃새를 부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화려한 파티의 뒷모습을 이보다 분명하게 드러내는 소재가 있을까 싶다. 심하게 말하면 화려한 예복으로 단장한 이들 모두 순수성을 잃고 자기보존의 원초적 본능만 남은 껍데기들에 불과하다. 파티에서 건네는 웃음 뒤에 숨겨진 것은 허위와 의심, 그리고 질투이지 관계의 진지함이나 연대, 소통이 아니다. 이 소설은 물질적 화려함 뒤에 숨겨진 정신적 빈곤함을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슬프게도 이 책을 통해 들여다보는 1920년대 미국은 현대의 한국과 너무나 닮아 있다. 우리 사회는 경제적으로 눈부신 성장을 이루었지만 정신적으로는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과 만나지만 그들과 소통을 이루기는 더욱더 힘들어졌다. 누군가의 성취를 축하하기 보다는 - 나를 위해 마련된 자리가 또 하나 사라졌음을 분개하며 - 그 성취의 이면에 숨겨진 비밀을 밝혀내고자 의심하고 경계한다. 사회지도층은 도덕적으로, 정신적으로 타락했고, 시민은 성공의 마지막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 속에 살아가고 있다. 이것은 1920년대 미국 동부의 이야기인가, 2010년 대한민국 서울의 이야기인가.


  톰 뷰캐넌이나 조단 베이커, 마이어 울프심 같은 캐릭터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타락한 미국 부유층의 일면을 보여준다. 물론 개츠비도 완벽히 순수한 캐릭터는 아니다. 그는 울프심과 결탁하여 비합법적으로 부를 축적했다. 그럼에도 개츠비가 그 수많은 상류층 속에서도 독야청청하게 보이는 것은 그 순수함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지만 개츠비는 거짓말을 하면서도 눈치를 살피고 머뭇머뭇 대는, 아직 양심에 털이 나지 않은 ‘귀여움’을 보여준다. 또 하나 개츠비가 그들과 다른 것은 ‘꿈’을 위해 달려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데이지에 대한 연정에 그의 모든 재산과 영광을 바친다. 그리고 그녀를 위해서라면 그가 이뤄놓은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데도 주저하지 않는다.


  위대하다는 말은 함부로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말은 인간적 불완전함이 전혀 없는 공자나 예수, 부처와 같은 인물에게나 주어지는 찬사이다. 하지만 지은이가 불법으로 재산을 축적한 개츠비에게 ‘위대하다’고 한 이유는 무엇일까. 내 생각은 이렇다. 우리 같은 평범한 인간이 살아가면서 돈과 성공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살아가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물론 그런 사람도 있고, 그런 어려운 길을 택한 사람에게는 당연히 존경과 찬사를 바칠 일이다. 하지만 평범한 인간이 돈과 성공을 추구하면서도 인간적인 덕목을 잃지 않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이다. 항상 한 번이 쉽지 두, 세 번은 어렵지 않은 일 아닌가? 물질적인 것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휴지가 물에 닿는 것처럼 빠르게 나 자신을 잃어버릴 수 있다. 세속적인 것을 추구하면서도 내면의 열정과 순수를 잃지 않는 것 또한 쉽지 않은 일인 것이다. 이 모든 변호를 감안하더라도 개츠비에게 ‘위대하다’는 수식은 지나친 것일까?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코끝이 찡해지는 것을 느꼈다. 개츠비에 대한 연민 때문이다. 식상한 결론이지만 우리사회의 지도층들에게 개츠비를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또한 앞으로 지도층이 될지도 모르는 -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에서 지도층들이기도 하다 - 우리들도 꿈과 순수함을 잃지 않도록 노력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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