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비록 - 역사를 경계하여 미래를 대비하라
류성룡 지음, 오세진 외 역해 / 홍익출판미디어그룹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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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징비록을 읽을 때는 항상 분한 마음이 든다. 특히, 지휘관들이 하나가 되어 적을 무찌를 생각은 하지 않고 쥐꼬리만 한 자기 권위를 세우고자 백성의 목숨을 함부로 대할 때 폭발한다. 적을 만나면 제일 먼저 도망가기 바쁘면서 왜 안에서만 기강을 잡는지... 전쟁 초반 기록의 대부분은 지휘관이 도망가거나, 죽거나, 군심을 어지럽혔다는 이유로 백성이나 부하를 참한다. 이런 이들을 시쳇말로 '방구석 여포'라고 한다. 당시 사람들에게는 무능한 관리들이 일본 군대보다 더 무서웠을 것이다.


  누군가를 지휘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항상 명심해야 한다. 자신들이 누리는 막대한 권한은 의무와 짝지어져 있다는 것을 말이다. 책임을 져야 할 순간에 그 소임을 다하지 못한다면 권리 또한 누릴 자격이 없다. 이 분노가 과연 500년 전의 사건에 국한된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그저 옛날이야기라면 좋겠지만, '방구석 여포'들은 여전히 곳곳에서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홍익출판사의 번역본이 질적인 완성에까지는 이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지만, 적어도 상당히 노력했다는 인상을 준다. 특히, 고전을 읽을 때는 항상 전후 맥락을 알 수 없어 수박 겉핥기 하는 느낌이 들기 마련인데, <징비록 깊이 읽기>라는 해설을 군데군데 삽입하여 이해를 돕고 있다. 예컨대, 징비록의 녹후잡기에 보면, 류성룡이 해주 지역에서 청어가 안 잡히게 된 것을 이변으로 해석하고 안타까워하는 부분이 있다. 만약 이 부분만 읽었다면, '임진왜란 전에 이상한 일들이 많았었구나!'하고 지나갈 수 있는데 <징비록 깊이 읽기>를 통해 이 사건과 공납의 폐해, 나아가 조정의 무능까지 연결하여 생각할 계기를 준다. 이런 점은 무척 신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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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는 와인이 필요하다 - 국가대표 소믈리에의 와인 이야기
정하봉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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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에 대해 반드시 알아야 할 정보를 담고 있다. 와인백과와는 달리 친근한 설명이 장점이다. 신의 물방울이나 난해한 외국 저자의 글과 달리 현실적인 설명과 표현으로 이해를 돕는다. 이 정도 알면 와인을 접하는 데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소믈리에라는 직업의 매력과 고민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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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리더십 이야기 - 행정가와 CEO를 위한 8가지 리더십의 원리 노무현 전집 2
노무현 지음 / 돌베개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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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에 대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각들을 그가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일하면서 겪었던 일화 중심으로 풀어놓아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그가 조직의 리더로 있으면 다소 ‘피곤‘하더라도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을 것 같다. 거의 20년의 시간이 지났는데도 낡게 느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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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 3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1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연진희 옮김 / 민음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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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안나 카레니나' 완독은 2020년 새해 목표였는데, 2021년 3월이 돼서야 끝났다. 굳이 변명하자면, 1권에서 폭주하던 전개가 2권에서 갑자기 느려지더니 3권에서는 급기야 정체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안나와 브론스키 사이의 갈등은 곪고 곪아 어떤 식으로든 파국을 기다리고 있었고, 각종 모임에서 전개되는 여러 논쟁들은 당시 러시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는 몰입하기 힘들었다. 레빈의 고민과 번민은 또 어떤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우리는 왜 사는지에 대한 그의 끝없는 고민에 한편으로는  공감하면서도 '그래서 결론이 뭔데?'라고 재촉하게 되는 답답함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결론적으로 이런저런 이유로 3권을 읽는데 1년이 넘는 시간이 걸린 셈이다.


  우리가 익히 아는 결말이 담긴 '7부'로 끝이 날 만도 한데, 톨스토이는 8부로 끝을 맺는다. 심지어 안나의 죽음에 대한 브론스키나 카레닌의 반응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안나의 죽음 뒤에도 그저 자연스럽고 마땅히 흘러가는 세상사와 레빈의 머릿속을(또!) 보여줄 뿐이다. 오히려 동생의 죽음에도 예의 천진난만함을 잃지 않은 스티바를 보며 - 가족의 죽음 뒤에도 삶은 계속되는 것이므로 이해가 되면서도 - '으휴 인간아….'라는 낮은 탄성을 뱉게 된다. 신에게도, 인간에게도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는 안나는 죽음을 선택하고, 그 죽음을 통해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뭔가를 느끼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톨스토이가 굳이 8부를 붙인 이유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사실 안나 자체가 권선징악의 기준으로 판단할 수 없는 복잡한 인물이긴 하지만, 브론스키나 카레닌 또한 마땅히 처벌받아야 하는 사람들은 아니다.  7부로 끝나는 것은 '불륜한 자, 벌 받을지어다' 러는 권선징악의 가르침이 될 뿐인데, 그렇게 결론 지을 만큼 삶은 단순하지 않다.


도대체 그녀에게 무슨 잘못이 있다는 걸까? 그녀는 살고 싶은 거야. 하느님이 우리의 영혼에 그것을 불어넣었잖아. 어쩌면 나도 그녀와 똑같이 행동했을지도 몰라. _ 126쪽(돌리의 생각)


  8부 전체를 거쳐 보여주는 레빈의 사색 속에 톨스토이가 이 소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들이 압축된 것 같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삶과 체험으로 얻은 것만이 자신뿐만 아니라 세상을 바꿀 수 있고, 우리가 필요한 것은 이미 가지고 태어났다는 발견' 말이다. 그 발견 또는 깨달음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긍정하고, 그 내면의 힘을 가지고 살아가라는 조언이다. 그렇게 결심하더라도 또 실수하고 번민하고 좌충우돌할 거라고 한 발 빼면서도, 그래도 그런 삶에 희망이 있다고 말한다.


이 새로운 감정은 나를 바꾸지도, 나를 행복하게 하지도 않아. 그리고 내가 상상하던 것처럼 갑자기 나를 계몽시키지도 않아. 아들에 대한 감정과 마찬가지지. 역시 뜻밖의 선물은 없었어. 믿음인지 아닌지, 난 이게 무엇인지 모르겠어. 하지만 이 감정 역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고통을 통해 들어와 내 영혼 속에 견고하게 뿌리를 내렸어. 난 여전히 마부 이반에게 화를 내겠지. 여전히 논쟁을 벌이고, 여전히 내 생각을 부적절하게 표현할 거야. 나의 지성소와 다른 사람들 사이에는, 심지어 아내와의 사이에도 여전히 벽이 존재할 거야. 난 여전히 나의 두려움 때문에 아내를 비난하고 그것을 후회하겠지. 나의 이성으로는 내가 왜 기도를 하는지 깨닫지 못할 테고, 그러면서도 난 여전히 기도를 할거야. 하지만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그 모든 일에 상관없이, 이제 나의 삶은, 나의 모든 삶은, 삶의 매 순간은 이전처럼 무의미하지 않을 뿐 아니라 선의 명백한 의미를 지니고 있어. 나에게는 그것을 삶의 매 순간 속에 불어넣을 힘이 있어!' _ 560쪽


  끝으로, 톨스토이의 인간에 대한 이해, 감정의 묘사는 정말 탁월한 것 같다. 출산 후 아내의 무사함을 확인하고 아이를 처음 안았을 때, 아빠의 감정에 대해 이토록 적확한 묘사가 있을까. 안나와 브론스키의 갈등, 숱하게 묘사되는 부부싸움에 대한 묘사도 압권이다. 사소한 일로 인해 불거지는 갈등, 화해에 대한 시도, 하지만 질 수 없다는 의지, 불가피한(!) 양보, 그리고 이어지는 왠지 진 것 같다는 억울함, 자연스럽게 싸늘해지는 태도, 다시 이어지는 갈등, 이 모든 감정이 순서 없이 얽히고설키는 그 지난한 과정을 어쩜 이렇게 잘 그려냈을까. 이 책이 당대에도 그렇지만 후대에도 높이 평가받는 데는 감정을 현실적으로 잘 그려냈다는 데 있는 것 같다. 만나면 반갑다고 뺨 때리고, 매회 고음 발성 없이는 전개되지 않는 어느 드라마와는 다르게 말이다.


하지만 현실의 세계로 돌아온 지금, 그는 그녀가 건강하게 살아 있고, 날카로운 목소리로 그토록 절망적으로 울어 대는 존재가 그의 아들이라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 많은 사고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키티는 살아 있고 고통은 끝났다. 그리고 그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행복했다. 그는 그것을 이해했고 그것으로 인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하지만 아이는? 어디에서 무엇 때문에 왔으며,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그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고 그런 생각에 익숙해질 수 없었다. 아기는 그에게 불필요한 무언가로, 지나친 과잉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그는 오랫동안 아기에게 익숙해질 수 없었다. _ 348쪽



도대체 그녀에게 무슨 잘못이 있다는 걸까? 그녀는 살고 싶은 거야. 하느님이 우리의 영혼에 그것을 불어넣었잖아. 어쩌면 나도 그녀와 똑같이 행동했을지도 몰라. - P126

"난 언제나 당신을 사랑했어요. 당신은 누군가를 사랑할 때, 당신이 그에게 바라는 모습이 아니라 그의 모습 그대로 그를 온전히 사랑하죠." - P139

하지만 현실의 세계로 돌아온 지금, 그는 그녀가 건강하게 살아 있고, 날카로운 목소리로 그토록 절망적으로 울어 대는 존재가 그의 아들이라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 많은 사고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키티는 살아 있고 고통은 끝났다. 그리고 그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행복했다. 그는 그것을 이해했고 그것으로 인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하지만 아이는? 어디에서 무엇 때문에 왔으며,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그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고 그런 생각에 익숙해질 수 없었다. 아기는 그에게 불필요한 무언가로, 지나친 과잉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그는 오랫동안 아기에게 익숙해질 수 없었다. - P348

가정생활에서 무언가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부부간의 완벽한 불화나 애정 어린 화합이 필요하다. 그러나 부부 관계가 불명확하거나 이것도 저것도 아닐 경우에는, 아무것도 실행할 수 없게 된다. 많은 가정이 단지 완전한 불화도 화합도 없다는 이유로 부부 모두에게 지긋지긋한 그 묵은 자리에 수년 동안 머무르곤 한다. - P396

‘우리도 그와 똑같은 짓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나 역시 이성으로 자연력의 중요성과 인생의 의미를 찾는답시고 똑같은 짓을 했던 건 아닐까?‘ 그는 계속 생각했다.
‘철학의 이론들은 인간에게 부자연스럽고 기이한 사유 방법을 통해 인간이 오래전부터 알고 있는 것, 그것 없이는 살아갈 수 없을 만큼 너무나 분명하게 알고 있는 것에 대한 깨달음으로 인간을 이끈다 하면서, 사실은 아이들과 똑같은 짓을 했던 게 아닐까? 각 철학자들의 이론 발전을 보면 그들이 농부 표도르만큼이나 분명히, 아니 표도르보다 더 분명할 것도 없이 이미 삶의 중요한 의미를 알고 있으면서, 그저 미심쩍은 사유방식을 거쳐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것으로 되돌아가려는 것이 분명하게 보이지 않느냐 말이야?‘ - P523

레빈은 마부의 참견에 화를 내며 말했다. 여느 때와 똑같이 그런 참견은 그의 화를 돋우었다. 그러나 곧 그는 현실과 접촉했을 때 정신 상태가 자신을 즉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얼마나 착각이었는지 깨닫고서 슬픔을 느꼈다. - P528

이 새로운 감정은 나를 바꾸지도, 나를 행복하게 하지도 않아. 그리고 내가 상상하던 것처럼 갑자기 나를 계몽시키지도 않아. 아들에 대한 감정과 마찬가지지. 역시 뜻밖의 선물은 없었어. 믿음인지 아닌지, 난 이게 무엇인지 모르겠어. 하지만 이 감정 역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고통을 통해 들어와 내 영혼 속에 견고하게 뿌리를 내렸어. 난 여전히 마부 이반에게 화를 내겠지. 여전히 논쟁을 벌이고, 여전히 내 생각을 부적절하게 표현할 거야. 나의 지성소와 다른 사람들 사이에는, 심지어 아내와의 사이에도 여전히 벽이 존재할 거야. 난 여전히 나의 두려움 때문에 아내를 비난하고 그것을 후회하겠지. 나의 이성으로는 내가 왜 기도를 하는지 깨닫지 못할 테고, 그러면서도 난 여전히 기도를 할거야. 하지만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그 모든 일에 상관없이, 이제 나의 삶은, 나의 모든 삶은, 삶의 매 순간은 이전처럼 무의미하지 않을 뿐 아니라 선의 명백한 의미를 지니고 있어. - P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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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1-03-18 18: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완독 축하드립니다!

송도둘리 2021-03-18 20:28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너무 오래 걸렸네요..^^;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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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달 전부터 육아휴직 중이다. 내 하루는 아이의 생체리듬에 맞추어 재편되었다. 아이가 잠이 들 때만 내 시간을 가질 수 있고, 아이를 혼자 두고 밖에 나갈 수도 없다 보니 신체활동이 확 줄어들었다. 하루에 만 보는 자연스럽게 채워졌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그 절반도 채우기가 어렵다. 아이가 잠든 틈을 타서 짬짬이 책을 보거나 넷플릭스를 보는 것으로 소일하다 보니 찌는 것은 살이요, 느는 것은 갑갑함이다. 물론, 아이가 웃는 것을 보면 모든 피로가 싹 날아가는 느낌이지만, 신체 활동이 줄어든 만큼 활력도 감퇴하는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내가 이 책을 읽기 시작한 이유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원래 달리기를 좋아하지도 않고, 조금만 뛰어도 숨을 헉헉대는 저질 체력이지만 요즘은 부쩍 '달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몸과 마음이란 긴밀히 연결되어 있어서, 적당한 신체활동은 마음도 건강하게 한다. 하루키가 달리기 시작한 이유도 그와 비슷하다. 본업인 소설을 잘 쓰기 위해서 시작한 것이, 처음의 목적을 뛰어넘어 삶을 더 풍요롭게 한 경우다.


내 경우, 이렇게 운동을 계속하고 있는 까닭은 '소설을 착실하게 쓰기 위해서 신체 능력을 가다듬어 향상시킨다' 라는 것이 첫 번째 목적이므로 레이스나 연습을 위해서 작품을 쓸 시간을 빼앗겨버리고 나면, 그것은 본말이 전도된 일이라고 할까, 약간 곤란한 일이 되고 만다. 그런 이유로 현재로서는 비교적 온건한 단계에 나 자신을 머물게 하고 있다. _ 264쪽


  달린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꾸준히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당장 오늘부터라도 매일 1~2시간의 여유를 확보했다고 하더라도, 이틀이 지나면 또다시 갖은 핑계를 대고 집 밖에 나가지 않을 수 있다. 이유야 충분하다. 중국발 미세먼지, 공원의 민폐견, 추레한 트레이닝복, 너무 맑은 날씨(덥다), 너무 흐린 날씨(우울하다) 등등. 시작이야 쉽지만 길을 들이는 것은 어렵다. 습관이 들 때까지 그저 계속하는 것, 하루키도 그 점을 강조하고 있다.


계속하는 것 - 리듬을 단절하지 않는 것. 장기적인 작업을 하는 데에는 그것이 중요하다. 일단 리듬이 설정되어지기만 하면, 그 뒤는 어떻게든 풀려 나간다. 그러나 탄력을 받은 바퀴가 일정한 속도로 확실하게 돌아가기 시작할 때까지는 계속 가속하는 힘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주의를 기울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_ 19쪽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책이다. 기껏해야 하루키의 달리기 습관을 볼 수 있을까 싶었는데, 달리기를 소재로 보여주는 하루키의 인생 철학이 정말 멋있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 고단하고 귀찮을 수 있는 일을 묵묵히 그리고 성실하게 반복하는 삶의 자세. 사실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잠시 사회와 한 발 떨어진 침묵의 시간 동안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고, 집에서라도 몸을 움직이는 시간을 만드는 것, 그리고 바깥으로 나갈 기회가 있으면 만 가지의 핑계를 뒤로하고 성실히 걷고 뛰는 것. 그리고 그것을 반복하는 습관.


매일 달린다는 것은 나에게 생명선과 같은 것으로, 바쁘다는 핑계로 인해 건너뛰거나 그만둘 수는 없다. 만약 바쁘다는 이유만으로 달리는 연습을 중지한다면 틀림없이 평생 동안 달릴 수 없게 되어버릴 것이다.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라면 대형 트럭 가득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그 '아주 적은 이유'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단련하는 일뿐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부지런히 빈틈없이 단련하는 것. _ 115쪽


  남은 휴직 기간을 그렇게 잘 쓰고 싶다. 이 시간은 아이가 나에게 준 선물 같은 시간이므로.



계속하는 것 - 리듬을 단절하지 않는 것. 장기적인 작업을 하는 데에는 그것이 중요하다. 일단 리듬이 설정되어지기만 하면, 그 뒤는 어떻게든 풀려 나간다. 그러나 탄력을 받은 바퀴가 일정한 속도로 확실하게 돌아가기 시작할 때까지는 계속 가속하는 힘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주의를 기울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 P19

달린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 유익한 운동인 동시에 유효한 메타포이기도 하다. 나는 매일매일 달리면서 또는 마라톤 경기를 거듭하면서 목표 달성의 기준치를 조금씩 높여가며 그것을 달성하는 데 따라 나 자신의 향상을 도모해 나갔다. 적어도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두고, 그 목표의 달성을 위해 매일매일 노력해왔다. 나는 물론 대단한 마라톤 주자는 아니다. 주자로서는 극히 평범한 - 오히려 그저 평범한 주자라고 할 만한 - 그런 수준이다. 그러나 그건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어제의 자신이 지닌 약점을 조금이라도 극복해가는 것, 그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장거리 달리기에 있어서 이겨내야 할 상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과거의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 P27

타인으로부터의 고립과 단절은 병에서 새어 나온 산(酸) 알지 못하는 사이에 사람의 마음을 갉아먹고 녹여버린다. 그것은 예리한 양날의 검과 같은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보호하는 동시에, 그 내벽을 끊임없이 자잘하게 상처 내기도 한다. 그와 같은 위험성을 나 나름대로 (아마도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말인데, 나는 신체를 끊임없이 물리적으로 움직여 나감으로써, 어떤 경우에는 극한으로까지 몰아감으로써, 내면에 안고 있는 고립과 단절의 느낌을 치유하고 객관화해 나가야 했던 것이다. 의도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직감적으로. - P41

내 생각에는, 정말로 젊은 시기를 별도로 치면, 인생에는 아무래도 우선순위라는 것이 필요하다. 시간과 에너지를 어떻게 배분해가야 할 것인가 하는 순번을 매기는 것이다. 어느 나이까지 그와 같은 시스템을 자기 안에 확실하게 확립해놓지 않으면, 인생은 초점을 잃고 뒤죽박죽이 되어버린다. - P65

몸이라는 것은 지극히 실무적인 시스템인 것이다. 시간을 들여 단속적·구체적으로 고통을 주면 몸은 비로소 그 메시지를 인식하고 이해한다. 그 결과 주어진 운동량을 자진해서(라고는 말할 수 없을지는 모르지만) 수용하게 된다. 그 뒤에 우리는 운동량의 상한선을 조금씩 높여간다. 조금씩 조금씩 몸에 이상이 생기지 않을 정도로. - P84

매일 달린다는 것은 나에게 생명선과 같은 것으로, 바쁘다는 핑계로 인해 건너뛰거나 그만둘 수는 없다. 만약 바쁘다는 이유만으로 달리는 연습을 중지한다면 틀림없이 평생 동안 달릴 수 없게 되어버릴 것이다.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라면 대형 트럭 가득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그 ‘아주 적은 이유‘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단련하는 일뿐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부지런히 빈틈없이 단련하는 것. - P115

아무리 달리는 스피드가 떨어졌다 해도 걸을 수는 없다. 그것이 규칙이다. 만약 자신이 정한 규칙을 한 번이라도 깨트린다면 앞으로도 다시 규칙을 깨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이 레이스를 완주하는 것은 아마도 어렵게 될 것이다. - P172

거기에 보이는 것은 언제나 같은 나의 성격일 뿐이다. 개인적이고, 완고하고, 협조성이 결여된, 때로 자기 멋대로인, 그래도 자신을 항상 의심하며, 고통스러운 일이 있어도 거기에 우스꽝스러운 - 또는 우스꽝스러움과 비슷한 - 것을 찾아내려고 하는 것은 나의 본성이다. 낡은 보스턴백처럼 그것을 둘러메고, 나는 긴 여정을 걸어온 것이다. 좋아서 짊어지고 온 것은 아니다. 내용에 비해 너무 무겁고, 겉모습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군데군데 터진 곳도 보인다. 하지만 그것 외에는 짊어지고 갈 것이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메고 온 것이다. 그러나 그만큼 애착도 간다. 물론. - P229

가령 그것이 실제로 바닥에 작은 구멍이 뚫린 낡은 냄비에 물을 붓는 것과 같은 허망한 일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도, 적어도 노력을 했다는 사실은 남는다. 효능이 있든 없든, 멋이 있든 없든, 결국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은 대부분의 경우, 눈에는 보이지 않는(그러나 마음으로는 느낄 수 있는) 어떤 것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진정으로 가치가 있는 것은 때때로 효율이 나쁜 행위를 통해서만이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비록 공허한 행위가 있었다고 해도, 그것은 결코 어리석은 행위는 아닐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실감으로써, 그리고 경험칙으로써. - P256

내가 울트라 마라톤 쪽으로 가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내 경우, 이렇게 운동을 계속하고 있는 까닭은 ‘소설을 착실하게 쓰기 위해서 신체 능력을 가다듬어 향상시킨다‘ 라는 것이 첫 번째 목적이므로 레이스나 연습을 위해서 작품을 쓸 시간을 빼앗겨버리고 나면, 그것은 본말이 전도된 일이라고 할까, 약간 곤란한 일이 되고 만다. 그런 이유로 현재로서는 비교적 온건한 단계에 나 자신을 머물게 하고 있다. -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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