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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나의 민원인 - ‘외곽주의자’ 검사가 바라본 진실 너머의 풍경들
정명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7월
평점 :
'더 킹' 같은 영화 탓일까? 왠지 검사들을 비판적으로 보게 된다. 하지만 더 혐오감이 들 때는 - 물론, 저마다의 이유야 있겠지만 - 자칭 '생활형 검사'가 정치판을 기웃대고,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던 검사가 패거리를 만들어 사람들을 끌고 돌아다닐 때다. 이번에는 자칭 '외곽주의자 검사'다. 또 어쭙잖은 고생담이나 늘어놓으며 대중들의 '검혐(검찰에 대한 혐오)'을 누그러뜨리려 할 것이며, 이 책을 통해 얻은 인기로 한자리하려고 할 것이라는 냉소가 먼저 든다.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나 역시 사람을 직업으로 한 데 묶어 그 집단에 대한 이미지로 개개인을 평가하고 있었구나 싶다. 삼성인, LG인, 공무원인, 자영업인, 배달인이라는 직업별로 그 사람의 됨됨이를 평가할 수는 없는 일인데 말이다. 검사라는 직업을 밥벌이로 택했을 뿐, 직업인으로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이 있음을 미처 알지 못했다. 이 책은 티브이에 나올 일 없고, 사회적으로 주목받는 사건을 담당하지는 않지만, 묵묵히 자기 자리에서 성실히 일하고 있는 검사 1인의 에세이다.
<검사든 판사든 어떤 직업을 수행하고 있는 사람일 뿐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자주 잊는다. 직업을 나타내는 어떤 이름 안에 원래의 자아와 직업적 자아를 매치시키기 위해 부단히 흔들리고 있는 어떤 인간이 있다는 사실을 잘 보지 않는다. 원래부터 울보였던 자가 어떻게 울음을 삼키며 공판을 수행하는 법을 터득해가는지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 한 인간의 고군분투가 보이기도 하는데 말이다. _ 66쪽 >
직업인으로서의 나를 표현하는 명확한 표현을 찾지 못했는데, 이 책에서 찾았다. 사실 나 역시 '외곽주의자'였다. 일 잘한다고 평가받기 위해 핵심부서에서 일한다거나, 뭇사람들이 생각하는 직업적 성공에 대해 별 관심이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네가 능력이 없어서 그렇다'라거나 '마치 신 포도 우화와 같은 것 아니냐'고 한다면 그것 또한 부인할 생각은 없다. 다만, 남들과는 다른 성공기준을 찾고 싶다는 말도 거짓은 아니다. 머리를 기준으로는 발이 외곽이겠지만, 그렇다고 발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두 가지를 같은 의미로 받아들일 때가 많다. 일하는 부서가 개인의 능력을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는 건 난센스 중의 난센스다.
<인지부서를 지향하지 않는 검사에 대한 공식적인 자리가 검찰에는 없었다. 의욕이 없는 자, 검사 일에 대한 애착이 없는 자로 평가될 뿐, 그 자체로 다른 지향을 가진 검사로 평가되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어떤 검사는 실제로 자신이 인지부서에서 일하기를 원하는가와 별개로 의욕을 상실한 검사로 보이지 않기 위해 줄기차게 특수부 공안부 지망을 적어내기도 했다. 능력을 인정받지 못해서 인지부서에 뽑혀가지 못하는 상황도 갑갑하겠지만, 모든 이들이 한결같이 지향한다는 그 높은 곳에 가고 싶은 생각이 애초에 없는 사람도 그 나름대로 갑갑하다. 1차로가 비어 있는데 왜 갑갑하게 2차로만 달리고 있느냐고 끊임없이 채근하는 누군가를 조수석에 태우고 운전하는 기분이랄까. _ 270쪽 >
글 자체는 매우 정제되어 있고, 사용하는 단어 또한 검사의 단어다. 하지만 담고 있는 내용이 따뜻하고 재미있다. 빵 터지는 유머는 아니지만,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찾고자 하는 시선이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한다. 공공의 안전과 관련된 시국사건을 담당하는 '공안부'나 특별한 사건을 수사하는 '특수부'에 일하지 않아도, 시민 개개인의 안전을 위해 고민하고 자잘하고 반복되는 사건들을 허투루 넘기지 않는 일반의 검사들에 대해 연민과 감사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검찰이라는 조직에 대한 일말의 신뢰가 있다면 이런 '사(私)안부'나 '보통부' 검사들의 기여가 큼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낭만의 대하여'나 '그리고 금속 탐지기가 남았다' 등 행복한 웃음을 짓게 하는 글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 신간알림이 신청을 해 본다. 앞으로 어디서 어떤 일을 하실지 모르겠으나 앞으로 정명원 검사의 이름을 기억하게 될 것 같다. '외곽주의자'로서의 귀감을 보여주신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물론 다음 책도 더 없이 기다려짐은 물론이고.
기본적으로 단호함과 성실함을 탑재한 법조인들이 무언가에 대해 확고한 기준을 갖는다는 것이 어쩌면 우리도 모르는새 어떤 비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 그것은 무서운 일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어느새 말끔하게 정리된 잔디밭을 돌아보았던 생각이 난다. - P23
거짓을 말하면 처벌받겠다는 선서를 하고 증인석에 앉아 떨리는 목소리로 진실이라고 말하는 이들 앞에, 나의 가난한 경험과 빈약한 상상력은 종종 곱창과 삼겹살의 본질적 차이 같은 것을 알지 못하는 순수하고도 막막한 얼굴을 하고 앉아 있었을 것이다. 그 막막한 자들에 의해 진실의 실체가 가려지는 것이 법정이라니 이 답답한 노릇을 어찌한단 말인가. - P31
그로부터 한참 훗날 방구 씨에게 "그런데 도대체 왜 나간 것이냐"고 물으니 "더 머물 이유가 없어서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곳에서의 미래가 너무 그려져서요"라고도 덧붙였다. 더 머물러야 하는 이유를 찾지 않고 ‘왜 떠나는가‘만을 물었던 우문들이 일시에 머쓱하게 입을 다물 것 같은 대답이었다. - P41
‘통상 업무를 안정적으로 수행하나 플러스알파가 부족한‘ 형사부 검사 - P56
검사든 판사든 어떤 직업을 수행하고 있는 사람일 뿐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자주 잊는다. 직업을 나타내는 어떤 이름 안에 원래의 자아와 직업적 자아를 매치시키기 위해 부단히 흔들리고 있는 어떤 인간이 있다는 사실을 잘 보지 않는다. 원래부터 울보였던 자가 어떻게 울음을 삼키며 공판을 수행하는 법을 터득해가는지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 한 인간의 고군분투가 보이기도 하는데 말이다. - P66
법정에서 법복을 입고도 ‘새파랗게 젊은 년‘으로 불린 후배는 이제부터 자신을 ‘딥 블루 레이디‘로 불러달라고 말하며 유쾌하게 웃었다. 그런 말 따위에는 티끌만큼도 상처 입지 않는다는 듯이···. - P75
어쩌다 간혹 내가 미워서 꼬투리 잡는 부장도 있기는 했겠지만, 다 사건 잘 처리하자고 그런 것이라고 믿어버리면 마음이 편했다. 결재를 올리는 일이 내 일이듯, 오류를 찾아내고 반려하는 일이 부장의 일이라고 생각하면, 내가 만들어내고 그가 발견한 오류들이 그리 부끄럽거나 자괴감이 드는 일만은 아니었다. 서로 쿨한 밥벌이의 관계로 연결되어 있을 뿐임을 인정한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 대부분은 역시 검찰 밥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은 부장 쪽이 옳았다. - P77
그 부정량의 것을 낭만이라고 한다면, 그런 낭만이라도 있어야, 한 사람의 생에서 범죄만을 추출하여 계량하는 직업을 가진 자들도 좀 사람처럼 살 수 있지 않겠는가. 낭만이 밥 먹여 주지 않지만, 낭만이 숨은 쉬게 해주니까. - P202
세상이 검사에게 건네는 인사가 이런 식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때로 슬프다. 밥 먹었냐고 물었을 뿐인데 흠칫 물러서게 되는, 세상으로부터 늘 밥값은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이냐는 의혹을 받고 있는 자의 슬픔이다. 절망에 발을 담근 사람들의 요구에 우리는 대부분 흡족한 대답을 내어놓지 못하고, 그래서 무언가를 영원히 촉구당하는 자리에 서 있다. - P212
한 개인에게 어떤 무게를 책임지우는 방식으로 나아가는 사회는 건강할 수 없다. 그것은 효율적이거나 경제적인 업무 방식일 수 있겠지만, 홀로 무게를 떠안은 자가 생산해내는 노동은 올곧게 튼실할 수 없다. 무게를 견디느라 휘청거리는 개인은 결국 그가 생산하는 결과물을 휘청거리게 한다. 그 휘청거림에 대한 불안까지 개인이 감내해야 할 몫으로 돌리려는 사회라면, 더불어 희망을 논하기 어렵다. - P234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살 수는 없다. 상사에게도 후배에게도 민원인에게도 마찬가지다.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 앞까지 치밀어 오르더라도 꿀꺽 삼킬 줄 아는 것, 그것은 비단 검사뿐만 아니라 현대 직장인들의 필수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나면 우선 목구멍은 시원할지 모르나 뒤이어 몰려오는 일이 감당이 안 된다. 하고 싶은 말을 마음대로 하는 것은 주로 ‘하면 끝장나는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의 영역에 있다. 그것은 나 같은 풋내기가 취할 수 있는 자유의 영역이 아니다. - P252
4차선 고속도로에서는 2차로나 3차로를 탄다. 어쩌다 1차로를 탈 일이 있으면 잠깐만 타고 얼른 나온다. 2차로나 3차로 정도가 마음이 편하다. 그렇다고 아예 4차로는 아니다. 고속도로를 달릴 때만 그런 건 아니다. 어정쩡한 입지 선정은 인생 전반에 적용된다. 나는 언제나 2차로나 3차로 정도가 마음 편한 사람이다. - P267
인지부서를 지향하지 않는 검사에 대한 공식적인 자리가 검찰에는 없었다. 의욕이 없는 자, 검사 일에 대한 애착이 없는 자로 평가될 뿐, 그 자체로 다른 지향을 가진 검사로 평가되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어떤 검사는 실제로 자신이 인지부서에서 일하기를 원하는가와 별개로 의욕을 상실한 검사로 보이지 않기 위해 줄기차게 특수부 공안부 지망을 적어내기도 했다. 능력을 인정받지 못해서 인지부서에 뽑혀가지 못하는 상황도 갑갑하겠지만, 모든 이들이 한결같이 지향한다는 그 높은 곳에 가고 싶은 생각이 애초에 없는 사람도 그 나름대로 갑갑하다. 1차로가 비어 있는데 왜 갑갑하게 2차로만 달리고 있느냐고 끊임없이 채근하는 누군가를 조수석에 태우고 운전하는 기분이랄까. - P270
결국 세상이 설정한 표준 사이즈가 뭣이든 간에 사람들은 각자 자기만의 굽 높이 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굽 높이는 세심히 살피지 않고 남들 하는 대로 맞추다 보면 어느 순간 절뚝거리며 걷게 되는 것이다. 자기가 절뚝이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게 되는 것이다. 그곳이 중심이라는 일반론은 덮어두고, 그곳에 서 있는 구체적인 나를 그려보았다. 내가 무엇을 잘하고 못하는지, 무엇에 보람을 느끼거나 느끼지 않는지, 무엇이 나를 움직이게 하는지를 추상적으로 말고, 아주 구체적으로 하나씩 따져보았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마침내 나의 외곽은 스스로 형태를 갖추었다. 스스로 형태를 갖춘 외곽이 있는 한, 많은 사람들이 어디를 중심이라고 하든, 그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외곽주의자는 다만 원의 중심으로 들어가지 못한 주변인이 아니라, 스스로 찾은 외곽의 어느 지점에 머물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자다. - P271
중심을 향해 달려가기만도 바쁜데, 그 흐름에서 도태될까 불안하기만 한데, 그 와중에 딴청 부리는 자들이 있다고 해보자. 거길 왜 가는 거냐고 성가시게 묻는 자들의 존재는 중심으로 흐르는 도도한 물결의 한 귀퉁이를 불안하게 만든다. 그걸 일일이 대답해주면서는 저 높은 곳까지 갈 수가 없다. 뭘 자꾸 물어보고 다른 걸 꿈꾸면 안 되겠느냐고 하는 어중이떠중이들은 일단 성가신 존재들이므로 그냥 ‘루저‘라고 부르기로 한 것이다. 이해하기 어렵고 거슬리는 존재일수록 최대한 획일적이고 단순한 이름을 붙여 더 이상의 의미 부여를 제거하는 것, 이 또한 이 사회가 진격의 질서를 유지하는 하나의 방식이었던 것이다. - P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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