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나의 민원인 - ‘외곽주의자’ 검사가 바라본 진실 너머의 풍경들
정명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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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킹' 같은 영화 탓일까? 왠지 검사들을 비판적으로 보게 된다. 하지만 더 혐오감이 들 때는 - 물론, 저마다의 이유야 있겠지만 - 자칭 '생활형 검사'가 정치판을 기웃대고,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던 검사가 패거리를 만들어 사람들을 끌고 돌아다닐 때다. 이번에는 자칭 '외곽주의자 검사'다. 또 어쭙잖은 고생담이나 늘어놓으며 대중들의 '검혐(검찰에 대한 혐오)'을 누그러뜨리려 할 것이며, 이 책을 통해 얻은 인기로 한자리하려고 할 것이라는 냉소가 먼저 든다.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나 역시 사람을 직업으로 한 데 묶어 그 집단에 대한 이미지로 개개인을 평가하고 있었구나 싶다. 삼성인, LG인, 공무원인, 자영업인, 배달인이라는 직업별로 그 사람의 됨됨이를 평가할 수는 없는 일인데 말이다. 검사라는 직업을 밥벌이로 택했을 뿐, 직업인으로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이 있음을 미처 알지 못했다. 이 책은 티브이에 나올 일 없고, 사회적으로 주목받는 사건을 담당하지는 않지만, 묵묵히 자기 자리에서 성실히 일하고 있는 검사 1인의 에세이다.


<검사든 판사든 어떤 직업을 수행하고 있는 사람일 뿐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자주 잊는다. 직업을 나타내는 어떤 이름 안에 원래의 자아와 직업적 자아를 매치시키기 위해 부단히 흔들리고 있는 어떤 인간이 있다는 사실을 잘 보지 않는다. 원래부터 울보였던 자가 어떻게 울음을 삼키며 공판을 수행하는 법을 터득해가는지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 한 인간의 고군분투가 보이기도 하는데 말이다. _ 66쪽 >


  직업인으로서의 나를 표현하는 명확한 표현을 찾지 못했는데, 이 책에서 찾았다. 사실 나 역시 '외곽주의자'였다. 일 잘한다고 평가받기 위해 핵심부서에서 일한다거나, 뭇사람들이 생각하는 직업적 성공에 대해 별 관심이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네가 능력이 없어서 그렇다'라거나 '마치 신 포도 우화와 같은 것 아니냐'고 한다면 그것 또한 부인할 생각은 없다. 다만, 남들과는 다른 성공기준을 찾고 싶다는 말도 거짓은 아니다.  머리를 기준으로는 발이 외곽이겠지만, 그렇다고 발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두 가지를 같은 의미로 받아들일 때가 많다. 일하는 부서가 개인의 능력을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는 건 난센스 중의 난센스다.


<인지부서를 지향하지 않는 검사에 대한 공식적인 자리가 검찰에는 없었다. 의욕이 없는 자, 검사 일에 대한 애착이 없는 자로 평가될 뿐, 그 자체로 다른 지향을 가진 검사로 평가되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어떤 검사는 실제로 자신이 인지부서에서 일하기를 원하는가와 별개로 의욕을 상실한 검사로 보이지 않기 위해 줄기차게 특수부 공안부 지망을 적어내기도 했다. 능력을 인정받지 못해서 인지부서에 뽑혀가지 못하는 상황도 갑갑하겠지만, 모든 이들이 한결같이 지향한다는 그 높은 곳에 가고 싶은 생각이 애초에 없는 사람도 그 나름대로 갑갑하다. 1차로가 비어 있는데 왜 갑갑하게 2차로만 달리고 있느냐고 끊임없이 채근하는 누군가를 조수석에 태우고 운전하는 기분이랄까. _ 270쪽 >


  글 자체는 매우 정제되어 있고, 사용하는 단어 또한 검사의 단어다. 하지만 담고 있는 내용이 따뜻하고 재미있다. 빵 터지는 유머는 아니지만,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찾고자 하는 시선이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한다. 공공의 안전과 관련된 시국사건을 담당하는 '공안부'나 특별한 사건을 수사하는 '특수부'에 일하지 않아도, 시민 개개인의 안전을 위해 고민하고 자잘하고 반복되는 사건들을 허투루 넘기지 않는 일반의 검사들에 대해 연민과 감사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검찰이라는 조직에 대한 일말의 신뢰가 있다면 이런 '사(私)안부'나 '보통부' 검사들의 기여가 큼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낭만의 대하여'나 '그리고 금속 탐지기가 남았다' 등 행복한 웃음을 짓게 하는 글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 신간알림이 신청을 해 본다. 앞으로 어디서 어떤 일을 하실지 모르겠으나 앞으로 정명원 검사의 이름을 기억하게 될 것 같다. '외곽주의자'로서의 귀감을 보여주신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물론 다음 책도 더 없이 기다려짐은 물론이고.



기본적으로 단호함과 성실함을 탑재한 법조인들이 무언가에 대해 확고한 기준을 갖는다는 것이 어쩌면 우리도 모르는새 어떤 비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 그것은 무서운 일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어느새 말끔하게 정리된 잔디밭을 돌아보았던 생각이 난다. - P23

거짓을 말하면 처벌받겠다는 선서를 하고 증인석에 앉아 떨리는 목소리로 진실이라고 말하는 이들 앞에, 나의 가난한 경험과 빈약한 상상력은 종종 곱창과 삼겹살의 본질적 차이 같은 것을 알지 못하는 순수하고도 막막한 얼굴을 하고 앉아 있었을 것이다. 그 막막한 자들에 의해 진실의 실체가 가려지는 것이 법정이라니 이 답답한 노릇을 어찌한단 말인가. - P31

그로부터 한참 훗날 방구 씨에게 "그런데 도대체 왜 나간 것이냐"고 물으니 "더 머물 이유가 없어서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곳에서의 미래가 너무 그려져서요"라고도 덧붙였다. 더 머물러야 하는 이유를 찾지 않고 ‘왜 떠나는가‘만을 물었던 우문들이 일시에 머쓱하게 입을 다물 것 같은 대답이었다. - P41

‘통상 업무를 안정적으로 수행하나 플러스알파가 부족한‘ 형사부 검사 - P56

검사든 판사든 어떤 직업을 수행하고 있는 사람일 뿐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자주 잊는다. 직업을 나타내는 어떤 이름 안에 원래의 자아와 직업적 자아를 매치시키기 위해 부단히 흔들리고 있는 어떤 인간이 있다는 사실을 잘 보지 않는다. 원래부터 울보였던 자가 어떻게 울음을 삼키며 공판을 수행하는 법을 터득해가는지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 한 인간의 고군분투가 보이기도 하는데 말이다. - P66

법정에서 법복을 입고도 ‘새파랗게 젊은 년‘으로 불린 후배는 이제부터 자신을 ‘딥 블루 레이디‘로 불러달라고 말하며 유쾌하게 웃었다. 그런 말 따위에는 티끌만큼도 상처 입지 않는다는 듯이···. - P75

어쩌다 간혹 내가 미워서 꼬투리 잡는 부장도 있기는 했겠지만, 다 사건 잘 처리하자고 그런 것이라고 믿어버리면 마음이 편했다. 결재를 올리는 일이 내 일이듯, 오류를 찾아내고 반려하는 일이 부장의 일이라고 생각하면, 내가 만들어내고 그가 발견한 오류들이 그리 부끄럽거나 자괴감이 드는 일만은 아니었다. 서로 쿨한 밥벌이의 관계로 연결되어 있을 뿐임을 인정한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 대부분은 역시 검찰 밥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은 부장 쪽이 옳았다. - P77

그 부정량의 것을 낭만이라고 한다면, 그런 낭만이라도 있어야, 한 사람의 생에서 범죄만을 추출하여 계량하는 직업을 가진 자들도 좀 사람처럼 살 수 있지 않겠는가. 낭만이 밥 먹여 주지 않지만, 낭만이 숨은 쉬게 해주니까. - P202

세상이 검사에게 건네는 인사가 이런 식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때로 슬프다. 밥 먹었냐고 물었을 뿐인데 흠칫 물러서게 되는, 세상으로부터 늘 밥값은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이냐는 의혹을 받고 있는 자의 슬픔이다. 절망에 발을 담근 사람들의 요구에 우리는 대부분 흡족한 대답을 내어놓지 못하고, 그래서 무언가를 영원히 촉구당하는 자리에 서 있다. - P212

한 개인에게 어떤 무게를 책임지우는 방식으로 나아가는 사회는 건강할 수 없다. 그것은 효율적이거나 경제적인 업무 방식일 수 있겠지만, 홀로 무게를 떠안은 자가 생산해내는 노동은 올곧게 튼실할 수 없다. 무게를 견디느라 휘청거리는 개인은 결국 그가 생산하는 결과물을 휘청거리게 한다. 그 휘청거림에 대한 불안까지 개인이 감내해야 할 몫으로 돌리려는 사회라면, 더불어 희망을 논하기 어렵다. - P234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살 수는 없다. 상사에게도 후배에게도 민원인에게도 마찬가지다.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 앞까지 치밀어 오르더라도 꿀꺽 삼킬 줄 아는 것, 그것은 비단 검사뿐만 아니라 현대 직장인들의 필수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나면 우선 목구멍은 시원할지 모르나 뒤이어 몰려오는 일이 감당이 안 된다. 하고 싶은 말을 마음대로 하는 것은 주로 ‘하면 끝장나는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의 영역에 있다. 그것은 나 같은 풋내기가 취할 수 있는 자유의 영역이 아니다. - P252

4차선 고속도로에서는 2차로나 3차로를 탄다. 어쩌다 1차로를 탈 일이 있으면 잠깐만 타고 얼른 나온다. 2차로나 3차로 정도가 마음이 편하다. 그렇다고 아예 4차로는 아니다. 고속도로를 달릴 때만 그런 건 아니다. 어정쩡한 입지 선정은 인생 전반에 적용된다. 나는 언제나 2차로나 3차로 정도가 마음 편한 사람이다. - P267

인지부서를 지향하지 않는 검사에 대한 공식적인 자리가 검찰에는 없었다. 의욕이 없는 자, 검사 일에 대한 애착이 없는 자로 평가될 뿐, 그 자체로 다른 지향을 가진 검사로 평가되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어떤 검사는 실제로 자신이 인지부서에서 일하기를 원하는가와 별개로 의욕을 상실한 검사로 보이지 않기 위해 줄기차게 특수부 공안부 지망을 적어내기도 했다. 능력을 인정받지 못해서 인지부서에 뽑혀가지 못하는 상황도 갑갑하겠지만, 모든 이들이 한결같이 지향한다는 그 높은 곳에 가고 싶은 생각이 애초에 없는 사람도 그 나름대로 갑갑하다. 1차로가 비어 있는데 왜 갑갑하게 2차로만 달리고 있느냐고 끊임없이 채근하는 누군가를 조수석에 태우고 운전하는 기분이랄까. - P270

결국 세상이 설정한 표준 사이즈가 뭣이든 간에 사람들은 각자 자기만의 굽 높이 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굽 높이는 세심히 살피지 않고 남들 하는 대로 맞추다 보면 어느 순간 절뚝거리며 걷게 되는 것이다. 자기가 절뚝이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게 되는 것이다. 그곳이 중심이라는 일반론은 덮어두고, 그곳에 서 있는 구체적인 나를 그려보았다. 내가 무엇을 잘하고 못하는지, 무엇에 보람을 느끼거나 느끼지 않는지, 무엇이 나를 움직이게 하는지를 추상적으로 말고, 아주 구체적으로 하나씩 따져보았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마침내 나의 외곽은 스스로 형태를 갖추었다. 스스로 형태를 갖춘 외곽이 있는 한, 많은 사람들이 어디를 중심이라고 하든, 그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외곽주의자는 다만 원의 중심으로 들어가지 못한 주변인이 아니라, 스스로 찾은 외곽의 어느 지점에 머물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자다. - P271

중심을 향해 달려가기만도 바쁜데, 그 흐름에서 도태될까 불안하기만 한데, 그 와중에 딴청 부리는 자들이 있다고 해보자. 거길 왜 가는 거냐고 성가시게 묻는 자들의 존재는 중심으로 흐르는 도도한 물결의 한 귀퉁이를 불안하게 만든다. 그걸 일일이 대답해주면서는 저 높은 곳까지 갈 수가 없다. 뭘 자꾸 물어보고 다른 걸 꿈꾸면 안 되겠느냐고 하는 어중이떠중이들은 일단 성가신 존재들이므로 그냥 ‘루저‘라고 부르기로 한 것이다. 이해하기 어렵고 거슬리는 존재일수록 최대한 획일적이고 단순한 이름을 붙여 더 이상의 의미 부여를 제거하는 것, 이 또한 이 사회가 진격의 질서를 유지하는 하나의 방식이었던 것이다. - P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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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미래 - 코로나가 가속화시킨 공간 변화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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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현준은 '알쓸신잡 2'라는 프로그램에서 처음 알게 됐다. 까칠한 도시남의 분위기를 풍기면서도 위트 있고, 독특한 질문을 던지는 모습이 멋있었다. 뒤이어 읽게 된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와 '어디서 살 것인가'라는 책도 매력 있었다. '당신의 별자리는 무엇인가요'는 실망스러웠다. 감정과잉의 팬레터 같달까? 다소 거북스러워서 중간에 읽다가 포기했고, 후속작에 대한 기대도 전혀 없었다. 그러다가 이 책을 도서관에서 발견하고 읽게 되었는데, 이전의 장점을 다시 회복한 느낌이다.


  유현준이 쓴 책의 장점이라면 재미있고 관점이 독특할 뿐만 아니라 잘 읽힌다는 것이다. 잘 읽히는 이유는 - 내 생각이지만 -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과 같이 연상 구조로 문장을 착착 가져다 붙이는 전개를 하기 때문이다. 예측 가능하기도 하고 이해하기 쉬워 속도감을 높인다. 문장도 대체로 짧은 편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도면이나 사진을 붙여 설명하니 그 점도 플러스 요인이다.


  이번 책에서도 코로나19라는 예기치 못한 감염병으로 인해 우리 주변의 공간이 어떻게 바뀔지 '썰'을 푼다. 여전히 자신감과 독특한 아이디어가 많다. 우리에게 익숙한 집, 학교, 회사라는 공간의 미래를 상상해보는 일이 즐거웠다. 발코니가 있는 아파트, 기둥식 목구조 건물, 거점 오피스에 대한 상상이 인상적이다. 이외에도 자율주행로봇을 활용한 지하 물류 터널, DMZ 평화도시 같은 전작에서도 이야기했던 비전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는데 사실 당장 몇 년 내에 가시화될 것 같지 않은 일들이지만, 전문가들이나 정치인들이 충분히 논의해볼 만하지 않을까 싶다.


  다만, 건축·공간이라는 관점으로만 세상을 보다 보니, 다소 무리수라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 있다. 예컨대, 우리나라의 근대화가 늦은 이유가 온돌난방시스템 때문이라든지, 조선 영·정조대 르네상스가 가능했던 것은 청계천 준설작업 덕분이라는 설명이 그렇다. 또한, 청년에 대한 주거대책 부분도 상당히 논쟁적이다. 임대주택 공급 및 전세자금 대출 지원에 대해서 상당히 비판적일뿐더러 작금의 정치인들을 악당 아니면 위선자로 비판하고 있다. 민간이 다양하게 공급할 수 있도록 규제를 철폐해야 한다는 주장은 비판도 만만찮을 것이다. 인간의 이기적인 본능을 무시하지 말고 정책을 설계하자는 것인데, 원칙적으로는 공감이 가지만 구체적인 실현 방법에 대해서는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유현준은 매년 1권 이상의 책을 내고 있다. 그 주기가 너무 짧아서 어떤 생각들은 자기 복제되고 있다. 실현 불가능해 보이는 아이디어도 많다. 세상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푸념이야 누구나 한 마디씩 거드는 것이기는 하지만, 건축자문제도 등에 대한 비판은 지나치다 싶다. 그래도 장점은 여전히 재미있는 아이디어와 후진기어 없는 비판 그리고 대중성이다. 후속작에서는 더욱 다채로운 이야기를 기대해본다.


우리는 풍요로워졌지만, 동시에 공간과 물건을 키우고 늘리기 위해서 피곤하게 살아왔다. 물건을 더 소유할수록 집은 더 좁게 느껴졌는데, 그러다가 2020년 코로나는 우리의 집에 또 다른 변화를 가져왔다. - P27

52시간 근무, 4대 보험 등의 장치는 안정적인 직장을 만들고 그를 통해서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려는 시스템이다. 향후 재택근무는 공간이 만들었던 정직원 중심의 조직 구조를 해체할 것이고, 조직 구조의 해체는 노동자의 안전망 해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워에서 해방되고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지 않고 집이나 카페에서 편하게 일하는 것은 업무 공간을 개인화시킨다. 이러한 개인화된 공간 체계는 조직을 쪼개서 개인으로 파편화시킬 것이고, 이는 일자리의 프리랜서화를 가속시킬 것이다. - P130

인간은 천천히 걸을수록 좋고, 물류는 빠르게 이동할수록 좋다. 이 둘은 근본적으로 상충된다.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공간으로 보내는 것이 지상을 ‘인간을 위한 느린 공간‘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이다. - P190

지금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환경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먼 미래가 아닌 가까운 미래에 멸망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화성개발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동시에 드는 생각은 인간의 몸으로는 살 수 없는 조건인 우주를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으로 바꾸는 노력의 100분의 1만 하면 지금의 지구를 더 살기 좋은 곳으로 회복시킬 텐데 왜 고생을 사서 하나 싶기도 하다. 화성을 식민화시켜 봐야 거대한 실내 쇼핑몰 같은 데 들어가 사는 정도일 것이다. 그런 곳에서 인간이 과연 얼마나 오랫동안 살 수 있을까? 살고는 싶을까? 그것보다는 지구 온난화와 인구 문제를 해결해서 지구를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것이 백배는 쉬워 보인다. - P216

제대로 된 도시 발전을 위해서 필요하다면 용적률은 유지하더라도 건폐율은 완화하고 주차장법을 바꿔도 된다. 모든 법은 그 시대의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소프트웨어일 뿐이다. 소프트웨어는 업그레이드되어야 한다. 그린 뉴딜도, 더 나은 주택 공급을 만드는 일도 세금을 쏟아 부으면서 단발성으로 그치기보다는 민간 자본이 투자될 수 있는 소프트웨어로 행정과 법규를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정치 지도자 중 홍길동은 이미 많다. 이제는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세종대왕들이 필요하다. - P270

역사를 보면 농경 사회가 시작된 이후 어느 사회건 자본주의의 경제원리가 적용되지 않았던 시절은 없다. 때에 따라서 정치적인 사회주의는 있었지만 돈에 대해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기적인 인간에 의해서 같은 원리로 움직였다. 어느 사회에서건 부는 곧 권력이다. 어느 특정 집단에 부가 모인다면 결국은 권력이 한쪽으로 몰리고, 권력이 한쪽으로 몰리면 부패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과거에 많은 정치가가 재벌을 견제해야 한다고 역설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일부 정치가들은 부를 정부에 집중시켜서 본인들이 재벌이 되려고 하는 모습을 보인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서 얼굴만 달라질 뿐 인간의 욕심은 똑같다. 그 사이에서 국민은 정신을 차려야 한다. 특히 젊음 말고는 가진 것이 없는 청년 세대일수록 더 그렇다. - P277

우리는 악당을 잡으면 세상이 좋아진다고 믿지만 실제로 세상에는 악당과 그 악당을 손가락질하면서 그 상황을 통해서 자신의 권력과 이익을 챙기는 위선자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악당과 위선자 사이에서 국민은 정신을 차려야 한다. 이기적인 인간이 만드는 사회에서 권력은 쪼개서 나눠 가질수록 정의에 가까워진다. 돈은 권력이다. 따라서 부동산 자산은 권력이다. 부동산이 정부나 대자본가에 집중되기보다는 더 많은 사람이 나누어서 소유할 수 있는 사회가 더 정의로운 사회다. 내 아이를 위해서 거대 권력을 가진 정치가나 기업가가 착하기를 기대하기보다는 부동산 자산이 나누어진 사회를 만들어 물려주고 싶다. - P279

나는 그렇게 건축 설계 분야를 떠나는 제자나 동료들을 많이 보았다. 재능 기부를 하는 선배들은 시장을 교란하여 미래를 망치는 것이다. 이는 국가적으로 엄청난 손해다. 한국의  K-pop이 세계를 주름잡는 것은 롤모델이 될 만한 선배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모델은 다름 아닌 유명해지고 돈을 버는 모습이다. 그랬기에 지금도 땀 흘리고 연습실에서 시간을 보내는 후배들이 있는 거다. 우리 사회는 도덕성 경쟁을 그만두고 각 분야에서 실질적 경쟁을 만들어야 한다. 윤리 도덕만 강조하는 사회는 위선자들로 가득찬 사회를 만들 수 있다. - P310

건축은 디자인으로 쉽게 사회적 가치를 만들 수 있는 분야다. 이는 어느 누구의 희생이 필요한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상대방이 이익이 되면 내가 피해를 보는 제로섬 게임의 프레임은 정치가들이 세상을 보는 프레임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 지나치게 정치가들이 심은 제로섬 게임 시각으로 나누어져 있고 싸우고 있다. 문제가 생기면 누가 적인지부터 색출하려고 한다. 사람을 만나도 이 사람이 내 편인지 적인지 구분하려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적절한 갈등은 사회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지나치면 사회는 붕괴한다. 어느 한 편이 이긴다고 해서 사회가 더 나아지지도 않는다. 주인만 바뀔 뿐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대중은 그런 과정 중에 소비되고 이용되기 십상이다.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창조적인 해결책을 만드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이 사회는 윈윈할 수 있다. - P340

가장 사랑하는 것이 세상을 보는 기준이 된다. - P343

역사를 모르는 사람에게 미래는 없다. 하지만 역사만 이야기하는 사람에게도 미래는 없다. 미래는 미래에 대해서 구체적인 꿈을 꾸는 사람들이 만드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시선의 초점을 과거에서 방향을 돌려, 미래를 향하길 바란다. 코로나라는 위기는 그런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역사를 보면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시대가 있다. - P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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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이야기 1 - 춘추의 설계자 관중 춘추전국이야기 1
공원국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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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처럼 읽기 쉬운 열국지를 깊이 읽을 수 있게 도와주는 책이다. 1권은 ‘관중‘을 중심으로 춘추시대가 어떻게 정립되게 되었는지 살핀다. 지도와 사진, 다양한 문헌을 참고로 설득력있게 설명하는 좋은 책이다. 다만, 권말에 수록된 ‘답사기‘는 감상의 과잉으로 책의 전체적인 통일성을 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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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리커버)
심채경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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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이런 책이 참 좋다. 몇 번이고 되뇌고 싶은 아름다운 문장이나 유려한 비유는 없지만, 그 자신만이 할 수 있는 독특하고 특별한 이야기들을 진솔하고 꾸밈없이 담아내는 책. 이 책이 아니었다면 천문학자의 삶에 대해 관심도, 알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 글을 읽다 보니 그동안 천문학자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생각, 예컨대, 천문대에서 천체망원경만 들여다보는 말수 적은 괴짜라는 이미지는 고정관념에 불과했다. 천문학자 이전에 비정규직, 아이의 엄마, 야근할 수밖에 없는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모습에 깊이 공감했다. 글이 무척 솔직담백하고 순수하게 느껴져서, 읽는 동안 지은이를 좋아하게(!) 되었다. 더 나아가 할 수만 있다면 '우주의 이해'라는 과목도 수강하고 싶어졌다. 


  그러나 '네 벽면에 난 창문이 모두 남향인 집?'(181쪽) 이야기는 아직도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너무 별것 아닌 에피소드처럼 자연스럽게 이야기해서 이해한 것처럼 책장을 넘겼는데, 사실은 여전히 모르겠다. 아까 지은이의 강의를 수강하고 싶다고 했지만, 만약 수강하게 되더라도 별까지 거리 구하는 공식(39쪽)을 풀 자신도 없다. 아, 어쩔 수 없는 문과형 인간이여... 참 좋은 만남이었지만, 아무래도 더 친해지기는 힘들 것 같다... 


  지은이와의 다음 만남을 기약하면서, 한편으로는 나만이 이야기할 수 있는 '독특한' 그리고 '특별한' 이야기는 무엇일지 생각해보아야겠다.


그런 사람들이 좋았다. 남들이 보기엔 저게 대체 뭘까 싶은 것에 즐겁게 몰두하는 사람들.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정치적 싸움을 만들어내지도 않을, 대단한 명예나 부가 따라오는 것도 아니요, 텔레비전이나 휴대전화처럼 보편적인 삶의 방식을 바꿔놓을 영향력을 지닌 것도 아닌 그런 일에 열정을 바치는 사람들. 신호가 도달하는 데만 수백 년 걸릴 곳에 하염없이 전파를 흘려보내며 온 우주에 과연 ‘우리뿐인가‘를 깊이 생각하는 무해한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동경한다. 그리고 그들이 동경하는 하늘을, 자연을, 우주를 함께 동경한다. - P13

허상 말고는 별다른 목표가 없는 인간이었다. 그저 오늘 할 일 오늘 하면서 사는 타입이다. 그게 잘 안 될 때도 많지만, 그러려고 노력은 한다. 그러니 내가 ‘타이탄 전문가가 되고야 말겠어!하는 다짐 같은 걸 했을 리 없다. 어쩌다보니 ‘행성방‘이라 불리는 연구실에 들어갔고, 어쩌다보니 아무도 손댄 적 없는 타이탄 관측자료가 내 손에 쥐였을 뿐이다. 어쩌면 한 번도 선택된 적이 없었기에, 오히려 더 절대적인 연구 주제가 되었달까. - P24

괴로울 때는 ‘왜 그때 더 잘하지 못했을까‘ 하고 과거의 자신을 질책하게 되지만, 그땐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서 삶의 다른 면을 돌보고 있었잖아요. - P70

우린 항상 잘 모른다. 자연은 늘 예외를 품고 있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사실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 그것만이 언제나 어디서나 진실이다. - P95

어느 쪽이 더 의미가 깊고 가치가 높은 삶이냐 하면 그것도 쉽게 말하기 어렵다. 아이를 키우면서 얻는 행복이 천국 같다던데 하고 묻는 친구에게 나는 천상의 기쁨과 동시에 그만큼 깊은 지옥도 만나게 된다고 답해주었다. 결국은 다 상쇄되지 않을까. - P116

나를 더욱 곤란케 하는 것은, 내가 어떤 대단한 계기로 천문학을 선택한 것도, 어릴 때부터 오매불망 천문학자가 되기만을 그리다 마침내 꿈을 이룬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누구에게나 각자 인생의 흐름이 있는 것이고, 나는 삶을 따라 흘러 다니며 살다보니 지금 이러고 있다. - P145

하지만 언젠가 아이도 내 품을 떠날 것이다. "엄마가 뭘 알아?" 하고 큰소리치면서 제 방문을 쾅 닫아버리겠지. 독립한다고 손바닥만한 집을 얻어 나간 뒤 숙제는커녕 어떤 조언도 구하지 않는 날이 올 것이다. 더 큰 집을 마련하게 되면 내 집에 남아 있던 제 짐을 마지막 하나까지 가져다 자기 보금자리에 옮겨두고는, 나더러 끼니를 제대로 챙겨 먹으라는 둥 아프면 병원에 좀 가라는 둥 타박을 할 것이다. 그 애가 마지막으로 잠시 나를 돌아본 뒤 자신만의 우주를 향해 날아갈 때, 나는 그 뒷모습을 묵묵히 지켜보아주리라. - P155

뭐라도 되려면, 뭐라도 해야 한다고, 그리고 뭐라도 하면, 뭐라도 된다고, 삶은 내게 가르쳐주었다. 그래서 안갯속 미지의 목적지를 향해 글을 썼다. 그래서 ‘어떤‘ 책이 되긴 되었다. - P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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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행복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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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전한 몰입감과 속도감. 서늘하고 어스름한 현장 분위기까지 고스란히 전달된다. 역시, 정유정이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완전한 행복'이라는 제목으로 말하려고 했던 바가 신유나라는 인물을 통해 제대로 구현된 것인지는 의문이다. 이야기는 이야기대로, 타인의 행복에 대한 책임과 자기애라는 주제는 또 그것대로. 온전히 섞이지 않은 느낌이었다. 서로 겉돌다가 책장을 덮고 나면, 재빠르게 사라진다. 솔직히 말해, 기대에 못 미친다.


  만약 '고유정 사건'이 없었다면, 이 소설을 읽고 '작가의 상상력이 대단하구나, 무서운 일이다'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일이 이미 몇 년 전 현실로 일어나버렸다. 바로 이 점이 소설의 생동감을 떨어뜨린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우리는 이미 이 소설이 어떻게 흘러갈지 현실을 통해 얼추 알고 있으니까. 어쩌다 소설의 상상력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게 된 걸까. 갑자기 스산한 느낌이 든다. 



"행복한 순간을 하나씩 더해가면, 그 인생은 결국 행복한 거 아닌가."
"아니, 행복은 덧셈이 아니야."
그녀는 베란다 유리문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마치 먼 지평선을 넘어다보는 듯한 시선이었다. 실제로 보이는 건 유리문에 반사된 실내풍경뿐일 텐데.
"행복은 뺄셈이야. 완전해질 때까지,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가는 거."
동의할 수 없는 개념이었으나, 딱히 대꾸할 말이 없었다. - P112

인간은 자신의 믿음에 따른 우주를 가진다. 결함도 결핍도 없는 완전성이 아내의 우주였다. 행복은 가족의 무결로부터 출발한다고 믿고 있었다. 이 믿음은 신앙에 가까웠다. 타협이 있을 리 없었다. - P115

타인의 행동을 이해한다는 건 행동의 의미를 스스로 설명해내는 일이다. 아무리 애를 써도 그녀는 그 일을 할 수 없었다. 유나를 잘 안다고 자부해왔으나, 막상 까보니 착각이었다. 안다고 여겼던 건 유나가 아니었다. 유나를 향한 자신의 감정이었다. - P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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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07 01: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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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07 21: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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