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미래 - 코로나가 가속화시킨 공간 변화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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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현준은 '알쓸신잡 2'라는 프로그램에서 처음 알게 됐다. 까칠한 도시남의 분위기를 풍기면서도 위트 있고, 독특한 질문을 던지는 모습이 멋있었다. 뒤이어 읽게 된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와 '어디서 살 것인가'라는 책도 매력 있었다. '당신의 별자리는 무엇인가요'는 실망스러웠다. 감정과잉의 팬레터 같달까? 다소 거북스러워서 중간에 읽다가 포기했고, 후속작에 대한 기대도 전혀 없었다. 그러다가 이 책을 도서관에서 발견하고 읽게 되었는데, 이전의 장점을 다시 회복한 느낌이다.


  유현준이 쓴 책의 장점이라면 재미있고 관점이 독특할 뿐만 아니라 잘 읽힌다는 것이다. 잘 읽히는 이유는 - 내 생각이지만 -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과 같이 연상 구조로 문장을 착착 가져다 붙이는 전개를 하기 때문이다. 예측 가능하기도 하고 이해하기 쉬워 속도감을 높인다. 문장도 대체로 짧은 편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도면이나 사진을 붙여 설명하니 그 점도 플러스 요인이다.


  이번 책에서도 코로나19라는 예기치 못한 감염병으로 인해 우리 주변의 공간이 어떻게 바뀔지 '썰'을 푼다. 여전히 자신감과 독특한 아이디어가 많다. 우리에게 익숙한 집, 학교, 회사라는 공간의 미래를 상상해보는 일이 즐거웠다. 발코니가 있는 아파트, 기둥식 목구조 건물, 거점 오피스에 대한 상상이 인상적이다. 이외에도 자율주행로봇을 활용한 지하 물류 터널, DMZ 평화도시 같은 전작에서도 이야기했던 비전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는데 사실 당장 몇 년 내에 가시화될 것 같지 않은 일들이지만, 전문가들이나 정치인들이 충분히 논의해볼 만하지 않을까 싶다.


  다만, 건축·공간이라는 관점으로만 세상을 보다 보니, 다소 무리수라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 있다. 예컨대, 우리나라의 근대화가 늦은 이유가 온돌난방시스템 때문이라든지, 조선 영·정조대 르네상스가 가능했던 것은 청계천 준설작업 덕분이라는 설명이 그렇다. 또한, 청년에 대한 주거대책 부분도 상당히 논쟁적이다. 임대주택 공급 및 전세자금 대출 지원에 대해서 상당히 비판적일뿐더러 작금의 정치인들을 악당 아니면 위선자로 비판하고 있다. 민간이 다양하게 공급할 수 있도록 규제를 철폐해야 한다는 주장은 비판도 만만찮을 것이다. 인간의 이기적인 본능을 무시하지 말고 정책을 설계하자는 것인데, 원칙적으로는 공감이 가지만 구체적인 실현 방법에 대해서는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유현준은 매년 1권 이상의 책을 내고 있다. 그 주기가 너무 짧아서 어떤 생각들은 자기 복제되고 있다. 실현 불가능해 보이는 아이디어도 많다. 세상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푸념이야 누구나 한 마디씩 거드는 것이기는 하지만, 건축자문제도 등에 대한 비판은 지나치다 싶다. 그래도 장점은 여전히 재미있는 아이디어와 후진기어 없는 비판 그리고 대중성이다. 후속작에서는 더욱 다채로운 이야기를 기대해본다.


우리는 풍요로워졌지만, 동시에 공간과 물건을 키우고 늘리기 위해서 피곤하게 살아왔다. 물건을 더 소유할수록 집은 더 좁게 느껴졌는데, 그러다가 2020년 코로나는 우리의 집에 또 다른 변화를 가져왔다. - P27

52시간 근무, 4대 보험 등의 장치는 안정적인 직장을 만들고 그를 통해서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려는 시스템이다. 향후 재택근무는 공간이 만들었던 정직원 중심의 조직 구조를 해체할 것이고, 조직 구조의 해체는 노동자의 안전망 해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워에서 해방되고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지 않고 집이나 카페에서 편하게 일하는 것은 업무 공간을 개인화시킨다. 이러한 개인화된 공간 체계는 조직을 쪼개서 개인으로 파편화시킬 것이고, 이는 일자리의 프리랜서화를 가속시킬 것이다. - P130

인간은 천천히 걸을수록 좋고, 물류는 빠르게 이동할수록 좋다. 이 둘은 근본적으로 상충된다.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공간으로 보내는 것이 지상을 ‘인간을 위한 느린 공간‘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이다. - P190

지금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환경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먼 미래가 아닌 가까운 미래에 멸망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화성개발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동시에 드는 생각은 인간의 몸으로는 살 수 없는 조건인 우주를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으로 바꾸는 노력의 100분의 1만 하면 지금의 지구를 더 살기 좋은 곳으로 회복시킬 텐데 왜 고생을 사서 하나 싶기도 하다. 화성을 식민화시켜 봐야 거대한 실내 쇼핑몰 같은 데 들어가 사는 정도일 것이다. 그런 곳에서 인간이 과연 얼마나 오랫동안 살 수 있을까? 살고는 싶을까? 그것보다는 지구 온난화와 인구 문제를 해결해서 지구를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것이 백배는 쉬워 보인다. - P216

제대로 된 도시 발전을 위해서 필요하다면 용적률은 유지하더라도 건폐율은 완화하고 주차장법을 바꿔도 된다. 모든 법은 그 시대의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소프트웨어일 뿐이다. 소프트웨어는 업그레이드되어야 한다. 그린 뉴딜도, 더 나은 주택 공급을 만드는 일도 세금을 쏟아 부으면서 단발성으로 그치기보다는 민간 자본이 투자될 수 있는 소프트웨어로 행정과 법규를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정치 지도자 중 홍길동은 이미 많다. 이제는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세종대왕들이 필요하다. - P270

역사를 보면 농경 사회가 시작된 이후 어느 사회건 자본주의의 경제원리가 적용되지 않았던 시절은 없다. 때에 따라서 정치적인 사회주의는 있었지만 돈에 대해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기적인 인간에 의해서 같은 원리로 움직였다. 어느 사회에서건 부는 곧 권력이다. 어느 특정 집단에 부가 모인다면 결국은 권력이 한쪽으로 몰리고, 권력이 한쪽으로 몰리면 부패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과거에 많은 정치가가 재벌을 견제해야 한다고 역설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일부 정치가들은 부를 정부에 집중시켜서 본인들이 재벌이 되려고 하는 모습을 보인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서 얼굴만 달라질 뿐 인간의 욕심은 똑같다. 그 사이에서 국민은 정신을 차려야 한다. 특히 젊음 말고는 가진 것이 없는 청년 세대일수록 더 그렇다. - P277

우리는 악당을 잡으면 세상이 좋아진다고 믿지만 실제로 세상에는 악당과 그 악당을 손가락질하면서 그 상황을 통해서 자신의 권력과 이익을 챙기는 위선자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악당과 위선자 사이에서 국민은 정신을 차려야 한다. 이기적인 인간이 만드는 사회에서 권력은 쪼개서 나눠 가질수록 정의에 가까워진다. 돈은 권력이다. 따라서 부동산 자산은 권력이다. 부동산이 정부나 대자본가에 집중되기보다는 더 많은 사람이 나누어서 소유할 수 있는 사회가 더 정의로운 사회다. 내 아이를 위해서 거대 권력을 가진 정치가나 기업가가 착하기를 기대하기보다는 부동산 자산이 나누어진 사회를 만들어 물려주고 싶다. - P279

나는 그렇게 건축 설계 분야를 떠나는 제자나 동료들을 많이 보았다. 재능 기부를 하는 선배들은 시장을 교란하여 미래를 망치는 것이다. 이는 국가적으로 엄청난 손해다. 한국의  K-pop이 세계를 주름잡는 것은 롤모델이 될 만한 선배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모델은 다름 아닌 유명해지고 돈을 버는 모습이다. 그랬기에 지금도 땀 흘리고 연습실에서 시간을 보내는 후배들이 있는 거다. 우리 사회는 도덕성 경쟁을 그만두고 각 분야에서 실질적 경쟁을 만들어야 한다. 윤리 도덕만 강조하는 사회는 위선자들로 가득찬 사회를 만들 수 있다. - P310

건축은 디자인으로 쉽게 사회적 가치를 만들 수 있는 분야다. 이는 어느 누구의 희생이 필요한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상대방이 이익이 되면 내가 피해를 보는 제로섬 게임의 프레임은 정치가들이 세상을 보는 프레임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 지나치게 정치가들이 심은 제로섬 게임 시각으로 나누어져 있고 싸우고 있다. 문제가 생기면 누가 적인지부터 색출하려고 한다. 사람을 만나도 이 사람이 내 편인지 적인지 구분하려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적절한 갈등은 사회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지나치면 사회는 붕괴한다. 어느 한 편이 이긴다고 해서 사회가 더 나아지지도 않는다. 주인만 바뀔 뿐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대중은 그런 과정 중에 소비되고 이용되기 십상이다.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창조적인 해결책을 만드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이 사회는 윈윈할 수 있다. - P340

가장 사랑하는 것이 세상을 보는 기준이 된다. - P343

역사를 모르는 사람에게 미래는 없다. 하지만 역사만 이야기하는 사람에게도 미래는 없다. 미래는 미래에 대해서 구체적인 꿈을 꾸는 사람들이 만드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시선의 초점을 과거에서 방향을 돌려, 미래를 향하길 바란다. 코로나라는 위기는 그런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역사를 보면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시대가 있다. - P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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