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카레니나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0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연진희 옮김 / 민음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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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권에 비해 이야기 전개는 현저하게 느려졌다. 농업이나 종교 등에 대한 레빈의 성찰과 고민이 꽤 길게 그려져, 눈이 책장에 머물지 못하고 방황하기도 했다. 당시 지식인 계급에 대한 비판도 곳곳에 보인다. 비슷한 정파끼리도 서로를 헐뜯고, 선진 유럽의 문물과 제도를 단순히 교조적으로 수입하며, 민중을 이상화하거나 반대로 교화의 대상으로 파악하기도 한다. 레빈은 이러한 허위를 파헤치며 민중 안에서, 러시아의 현실 안에서, , ‘지금, 여기에서 해결책을 찾고자 노력한다. 사실 진보를 말하면서도, 서로를 비웃고, 외국의 듣도 보도 못한 이념과 제도를 이식하는 데만 열을 올리거나, 민중을 피상적으로 파악하여 온정적, 시혜적으로 접근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사이비(似而非). 사람들은 가짜에는 속지 않는다. 비슷한 것에 속는다. 그래서 비슷한 것이 더 나쁘다. 톨스토이가 서술한 것은 19세기 러시아의 지식인들이지만, 우리 시대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톨스토이는 인간 감정의 묘사와 생각의 해석에 탁월하다. 안나와 브론스키의 감정선에 대한 묘사나 레빈과 키티의 신혼생활에 관한 서술은 정말 2권의 백미다. 특히, 레빈이 키티에게 건네는 첫 글자 토크는 여느 종편 TV의 연애 프로그램보다 더 긴장되고 재미있다. 노작가가 어떻게 이런 알콩달콩, 콩당콩당한 연애 이야기를 썼을까. 정말 대단하다. 뿐만 아니라, 부부싸움 이후의 심리나 신혼생활에서 느끼는 사랑과 권태에 대한 묘사도 알차다. 신혼 초에 내가 느꼈던 원인 모를 감정들을 톨스토이를 통해 비로소 번역할 수 있었다.

 

  결말이야 귀동냥으로 익히 들어서 대충은 알고 있지만, 이제 애틋하기까지 한 이 인물들이 또 어떤 고민과 격정을 거치게 될지 기대와 걱정과 설렘과 두려움이 앞선다. 3권으로 나아간다.

 

콘스탄친 레빈이 시골을 좋아한 이유는 시골이 의심할 바 없이 유익한 노동의 무대이기 때문이었다. 한편 세르게이 이바노비치가 시골을 특별히 좋아한 이유는 이곳에서는 아무 일을 하지 않아도 되고 할 필요도 없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민중에 대한 세르게이 이바노비치의 태도도 콘스탄친의 눈에 약간 거슬렸다. 세르게이 이바노비치는 민중을 사랑하고 이해한다고 말하면서 농부들과 종종 이야기를 나누곤 했는데, 이럴 때 그는 위선을 떨거나 거드름을 피우는 일 없이 농부들과 나눈 모든 대화에서 민중에게 유익한 일반적인 자료와 자신이 민중을 잘 이해한다는 증거를 끌어냈다. - P12

누군가 콘스탄친 레빈에게 민중 일반을 사랑하느냐고 물었다면, 그는 뭐라고 대답할지 몰라 난감해했을 것이다. 인간 일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지만, 그는 민중을 사랑하기도 했고 사랑하지 않기도 했다. 물론 성품이 선한 그는 인간을 사랑하지 않을 때보다 사랑할 때가 더 많았고, 그것은 민중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민중을 어떤 특별한 존재로서 사랑하거나 사랑하지 않는 것은 그에게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 자신이 민중과 함께 살고 있고 그의 모든 이해관계가 민중과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그리고 스스로를 민중의 일부라고 생각하여 자신과 민중 안에서 어떤 특별한 성질이나 단점을 찾으려 하지 않았고 자신을 민중과 대립된 존재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중략) 그는 모든 종류의 인간을 끊임없이 관찰하며 그들을 이해하려 했다. - P12

"내 생각에는……." 콘스탄친은 말했다. "개인의 이해에 토대를 두지 않는 활동은 결코 오래갈 수 없어. 이것은 보편적인 진리이고 철학적인 진리야." - P30

"보세요. 문제는 바로 모든 진보가 권력에 의해서만 일어난다는 점입니다." 그는 자신도 교양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생각에 이렇게 말했다. "표트르 대제, 예카체리나 여제, 알렉산드르 2세의 개혁을 보십시오. 또 유럽의 개혁을 보십시오. 무엇보다 농업의 진보를 생각해보세요. 가령 감자만 하더라도 우리 나라에 강제로 도입되었잖습니까. 우리 시대만 해도 우리 지주들은 농노제 아래서 개량 농기구로 농사를 지었습니다. 건조기, 키, 거름 운반기 등 모든 농기구로 말입니다. 우리는 그 모든 것을 자신의 권력으로 도입했지요. 농부들은 처음에 저항을 하다가 나중에는 우리를 따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농노제가 폐지된 지금, 우리는 권력을 잃었고 최고의 수준으로 향상되었던 우리의 농업은 가장 야만스럽고 원시적인 상태로 추락하려 합니다. 난 그렇게 생각합니다." - P206

레빈은 지주와 계속 이야기를 나누며 모든 어려움이 발생하는 원인은 우리가 우리의 노동자들의 특성과 습성을 알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려 애썼다. 그러나 지주는 독자적으로 고독하게 사고하는 사람들이 다들 그러하듯 남의 생각을 이해하는 데는 둔하고 자신의 생각에만 유달리 집착했다. 그는 이런 주장을 고집스럽게 내세웠다. 러시아 농부는 돼지이고 불결한 생활을 좋아한다, 그들을 돼지 같은 생활에서 끌어내기 위해서는 권력이 필요하며 권력이 없을 때에는 몽둥이가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천 년이나 내려온 몽둥이를 갑자기 변호사 나부랭이나 투옥(投獄) 같은 것으로 뒤바꿀 만큼 열렬한 자유주의자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감옥에 들어온 쓸모도 없고 악취나 풍기는 농부들에게 좋은 수프를 먹이고 그들에게 너무나 많은 제곱피트의 공기를 산정해준다……. - P211

레빈은 벌컥 짜증을 내며 말했다. "내가 보기에 이런 치료법은 학교로 민중을 치유하겠다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습니다. 민중은 가난하고 무지하죠. 아낙이 우는 아이에게서 울음병을 본 것처럼, 우리도 그 사실을 분명히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째서 횃대의 암탉들이 아이의 울음병을 고치는 데 효력이 있다는 것인지 납득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째서 학교가 이런 불행, 즉 가난과 무지를 벗어나는 데 쓸모가 있다는 것인지 납득할 수 없습니다. 구제해야 할 대상은 바로 민중들을 가난하게 하는 원인입니다." - P219

도중에 만난 농부부터 시작하여 이날 받은 모든 인상은 레빈의 마음을 강하게 움직였다. 특히 농부에게서 받은 인상은 이날의 모든 인상과 사유의 근본적인 토대가 된 것 같았다. 공적인 사용을 위해서만 사상을 간직할 뿐 분명 레빈이 모르는 어떤 다른 삶의 원리를 가진 이 유쾌한 스비야슈스키, 그런데도 ‘다수’라는 이름의 군중과 더불어 자신과 무관한 사상으로 여론을 주도하는 스비야슈스키, 자신의 삶 속에서 고통스럽게 얻은 이론의 면에서는 전적으로 옳지만 러시아의 계급 전체와 최상 계급에 대한 적의의 면에서는 옳다고 할 수 없는 그 격분에 찬 지주, 자신의 활동에 대한 불만과 이것의 개선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막연한 희망, 이 모든 것이 내면의 불안과 해결책이 눈앞에 있다는 기대감으로 어우러졌다. - P220

‘그래, 난 그에게 이렇게 말해야 했어. 당신은 우리의 농업이 제대로 되지 않는 이유가 농부들이 개량을 증오하기 때문이라고 하며 권력으로 그들을 이끌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만일 농업이 이러한 개량 없이는 결코 제대로 될 수 없다고 한다면, 당신의 말은 옳을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도중에 만난 노인의 집처럼 노동자가 자기들 습관에 따라 행동하는 곳에서는 농사가 잘되고 있더란 말입니다. 농업에 대한 당신과 우리의 공통된 불만은 당신이나 우리, 혹은 노동자들에게 잘못이 있음을 증명합니다.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노동력의 특성에 대해서는 자문하지 않고 우리 자신의 방식으로, 즉 유럽식으로 밀어붙여 왔습니다. 노동력을 관념적인 노동력이 아닌 본능을 가진 러시아 농부로 받아들이고, 그에 따라 농업을 정비해 보십시오. - P221

그리고 난 그에게 이렇게 말해야만 했어. 당신이 그 노인처럼 농사를 짓는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리고 당신이 노동자 스스로 노동의 성공에 흥미를 느끼게 할 방법과 그들이 받아들일 만한 개량의 합의점을 찾아냈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럼 당신은 토지를 피폐하게 하는 일 없이 예전보다 두 배, 세 배의 수확을 올릴 겁니다. 그리고 그것을 반으로 나누어 반은 노동자들에게 주세요. 그럼 당신이 얻는 차액도 커지고, 노동자들도 더 많은 것을 얻을 겁니다. 이렇게 하려면, 농업의 수준을 낮추어 노동자들이 농업의 성공에 흥미를 갖게 만들어야 합니다. 어떻게 이것을 할 것인가, 이것은 세부적인 문제지만 이것이 가능하다는 점만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요.’ - P221

"아니, 내 계획과 코뮤니즘 사이에는 전혀 공통점이 없어. 그들은 소유와 자본과 상속의 정당성을 거부하지만, 난 그 중요한 스티물러스(레빈은 그런 단어를 쓰는 자신이 혐오스러웠지만, 저술에 몰두한 후부터는 자기도 모르게 러시아어가 아닌 단어를 사용하는 일이 잦아졌다.)를 부인하지 않아. 난 그저 노동을 조절하고 싶을 뿐이야." - P244

스트레모프는 몇몇 다른 위원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인 후, 별안간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의 편에 서서 카레닌이 제안한 정책의 실행을 열렬히 옹호했을 뿐 아니라 같은 취지에 입각하여 다른 극단적인 방침까지 제시했다.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의 근본적인 사상에서 벗어나 한층 강화된 이 방침은 결국 채택되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비로소 스트레모프의 술책에 드러났다. 극단으로 치달은 이 정책이 갑자기 너무나 어리석은 것으로 밝혀지는 바람에, 각료들, 여론, 총명한 부인들, 신문 등은 일제히 이 정책을 공격하며 정책 자체뿐 아니라 그 정책의 아버지로 공인된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에 대해 분노를 표출했다. 스트레모프는 자기는 다만 카레닌의 정책을 맹목적으로 따랐을 뿐이고 자신도 지금 그 결과에 깜짝 놀라 분노하고 있다는 태도를 보이며 발뺌을 했다. - P288

오블론스키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사람들은 모스크바의 인텔리겐치아를 대표하는 양대 산맥이었다. 두 사람은 성품으로 보나 지성으로 보나 존경할 만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서로를 존중했지만, 도저히 어쩔 수 없을 정도로 거의 모든 점에서 서로 의견이 달랐다. 그것은 두 사람이 서로 대립되는 유파에 속해 있어서가 아니라, 같은 진영에 속해 있으면서도(반대파들은 그들을 하나로 혼동하곤 했다.) 한 진영 안에서 저마다 나름의 미묘한 차이를 지녔기 때문이었다. 반(半) 추상적인 문제에 대한 의견의 차이처럼 일치시키기 힘든 것도 없는 만큼, 그들은 한 번도 의견의 일치를 보인 적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화내지 않고 그저 상대방의 바로잡을 수 없는 오해를 비웃어 주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 P308

"여기." 그는 이렇게 말하며 머리글자를 썼다. 당, 그, 없, 내, 대, 그, 영, 그, 거, 뜻, 아, 그, 그, 뜻. 이 글자들은 이런 뜻이었다. ‘당신이 그럴 수 없다고 내게 대답했을 때, 그것은 영원히 그럴 거라는 뜻이었습니까, 아니면 그때만 그렇다는 뜻이었습니까?’ - P342

그는 그 후로 그처럼 강렬하게 그것을 느낀 적은 없지만, 그 첫 번째 싸움에서 오랫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자신을 정당화하고 그녀에게 그녀의 잘못을 입증해 보이고 싶은 것이 그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죄를 입증하는 것은 그녀를 더욱 자극하고 고통의 원인인 불화를 더욱 심솨시키는 것을 뜻했다. 다만 습관적인 감정이 그로 하여금 잘못을 자신에게서 그녀에게로 떠넘기도록 충동질했다. 보다 강력한 또 다른 감정은 불화가 커지기 전에 빨리, 가능한 한 빨리 그것을 진정시키도록 그를 이끌었다. 그런 부당한 비난을 받고도 가만히 있는 것은 괴로운 일이었다. 그러나 자신을 정당화하느라 그녀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더욱더 못할 짓이었다. 반쯤 잠든 상태에서 통증으로 괴로워하는 사람처럼 그는 자신에게서 아픈 부분을 도려내 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냉정을 되찾은 그는 아픈 부분이 그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그저 상처가 아픔을 견디도록 애써 돕는 수밖에 없었다. - P517

그가 그녀에게 불만을 느낀 까닭은, 그녀가 필요한 경우에 스스로 그르 자유롭게 놓아주지 못한다는 점이었다.(얼마 전만 해도 그녀의 사랑을 받는 행복을 감히 믿지 못하던 그가 이제는 그녀가 자기를 지나치게 사랑한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느끼다니,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그리고 그 줏대 없는 자신도 불만스러웠다. - P530

그는 아홉 살의 어린아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영혼을 잘 알고 있었고, 그것은 그에게 귀중한 것이었다. 그는 눈꺼풀이 눈동자를 보호하듯 그것을 지켰다. 그리고 사랑의 열쇠가 없는 사람은 그 누구도 자신의 영혼 속에 들여놓지 않았다. 그의 교육자들은 그가 배우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불평했지만, 그의 영혼은 인식에 대한 열망으로 넘쳤다. 그래서 그는 교사가 아니라 카피토니치에게서, 보모에게서, 나젠카에게서, 바실리 루키치에게 배웠다. 아버지와 교사가 자신들의 물레방아 바퀴를 돌리기 위해 기대하던 물은 이미 오래전에 새어 나가 다른 곳에서 일하고 있었던 것이다. - P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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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산책 2020-01-14 09: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2권이 좋았어요. 1권은 매력없는 브론스키에 빠지는 안나를 납득하느라 방황했구요 ㅎ 주변 머리빠진 동기 선배가 많아 브론스키도 이런 사랑을 했다 힘내라 하며 독려했습니다.

송도둘리 2020-01-14 10:14   좋아요 0 | URL
탈모를 넘어서는 엄청난 매력이 있었던게 아닐까...저도 어렵게 공감했습니다. ㅎㅎ 1권은 속도감과 몰입감에 2권은 인물들의 심리묘사에 재밌게 읽었네요. 3권이 기다려져요..!

뒷북소녀 2020-01-14 11: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2권부터 정말 빠르게 읽었던 기억이 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