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의 왕국 - 상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장세연 옮김 / 손안의책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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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베이거스. <모래의 왕국>이라는 책 제목을 보고 가장 먼저 떠올린 건 다름 아닌 미국 네바다주 남동부에 위치한 사막 도시였다. 아이러니한 점은 라스베이거스라는 이름은 '초원'을 뜻하는 에스파냐어에서 유래된 것으로 라스베이거스 계곡을 처음 발견한 에스파냐인들이 지은 것이라고 한다. 사막 한가운데 세워진 도시의 이름치고는 너무나 자연에 어울리는 이름이다.


라스베이거스라는 도시와 더불어 떠오른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다. 숨 막히도록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고층 빌딩과 쉴 새 없이 오가는 바쁜 현대인의 모습을 쉬이 찾아볼 수 있는 바로 그곳. 현대인들에겐 마치 젖과 꿀이 흐르는 낙원처럼 여겨지는 이 도시가 뇌리를 스친 건 결코 우연은 아닌 듯하다. 지금의 우리들에게 삶의 터전인 도시가 없다면 과연 살아갈 수 있을까? 생존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도시가 한낱 신기루처럼 느껴지는 건 아마도 그것 자체가 지닌 위태로움은 아닐까 생각된다. 바닷물에 휩쓸려 무너져 내리는 모래로 쌓아올린 거대한 성처럼 말이다.


잘 나가는 대기업 증권맨에서 한순간 도시의 노숙자로 전락하고만 40대 중반의 야마자키. 평범, 아니 그 이상을 웃돌았던 그의 삶이 바닥까지 내려갈 줄은 그 자신조차 알지 못 했다. 사랑하는 아내마저 떠나버린 지금 그에게 남은 건 자신의 몸뚱어리와 주머니 속 100엔이 전부다. 삶의 의미도 모두 잃어버린 채 정처 없는 노숙생활을 전전하던 그에게 두 남자가 나타난다. 결코 노숙자의 외모라 할 수 없는 보기만 해도 마음이 동요되는 수려한 외모의 나카무라와 마치 신내림이라도 받은 듯 사람의 속 마음을 훤히 꿰뚫어 보는 수상한 점술가 류사이가 그들이다. 야마자키가 이들을 만난 건 어쩌면 운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인생역전을 위한, 자신을 버린 이 세상에 대한 역습을 위한 숙명처럼 말이다. 평소라면 절대 만날 일 없는 세 명의 남자가 거대한 이 세상을 향한 역습을 시작하려 한다. 밑바닥까지 내려가본 자만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했던가. 야마자키가 설계하고 나카무라와 류사이가 실행하는 그들만의 신흥종교 '대지의 모임'이 탄생한다. 과연 '대지의 모임'의 끝은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까.


사실 종교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은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다. 특히, 현란한 눈속임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꾀어 광신적인 집단으로 끌어들이는 '신흥종교'는 더더욱. 종교라는 말만 들어도 몸서리쳐지고 부정적인 시각이 드는 건 비단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을 읽는 내내 야마자키와 그가 만든 '대지의 모임'을 응원했다. 이 세상에서 부정당하고 소외당했던 그들이 세상으로부터 주목을 받게 되는 일련의 과정이 사실은 내가 소원하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일종의 대리만족을 느낀 게 아닌가 싶다. '대지의 모임'이라는 신흥종교 자체는 부정하고 싶지만 그들이 사람들에게 말하는 '진리'는 울림이 있었다. 만약 내가 소설 속에 등장했다면 '대지의 모임'에 맹목적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씁쓸한 생각도 든다. 자신이 갖고 있는 불행을 이야기하고 함께 고민해주는 그들에게 말이다.


소설을 다 읽고 난 지금 왜 이 책의 제목이 <모래의 왕국>인지 알게 된 듯하다. 아무리 단단하게 쌓아올린 성이라 할지라도 모래로 만든 성은 바닷물에 휩쓸려 무너져 버리고 만다. 아마도 주인공 야마자키가 꿈꾸었던 이상도 견고한 성이 아닌 모래의 성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자신을 버린 세상을 향한 역습이라 하지만 순수함이 결여된 그저 노숙자 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한 거짓으로 점철된 이상 세계를 만들었으니 말이다. 거짓은 또 다른 거짓을 나을 뿐이다. 아마도 야마자키가 '대지의 모임'에 속해 있으면서 두통과 불면증에 시달린 것은 그 때문이 아니었을까. 비록 다시 노숙생활을 하며 잠자리와 끼니를 걱정할지언정 건강했던 자신으로 되돌아온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에게 '대지의 모임'이란 일장춘몽에 지나지 않았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한 것은 아닌 듯하다. 바닥의 인생에선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을 거란 헛된 희망을 과감히 깨부순 것,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삶의 희망을 찾은 것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야마자키의 기구한 삶에 많이 공감하게 됐다. 남부럽지 않은 인생에서 추락하여 바닥의 인생을 살았지만 다시 재기하여 일어서고 다시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인생의 여정을 본 듯하다. 인생이란 게 그런 것 같다. 출렁임 없이 꼿꼿하게 나아가는 인생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때론 꼭짓점에 서기도 하고 때론 나락을 떨어지게 하는 것이 우리 인생이 아닐까. 우여곡절이 많은 인생살이에서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점을 새삼 배운 듯하다. 그 이름은 바로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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