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언 - 퇴계가 된 일진 羅以彦
이창훈 지음 / 나남출판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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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소설 제목과 더불어 부제는 이 소설에 대한 흥미와 기대를 한꺼번에 가져오기에 충분했다. 라이언(羅以彦). 아름다울 라, 써 이, 선비 언. 선비로서 쓰이기에 아름답다. 쉽게 말하면 아름다운 선비를 뜻한다. 영문, 한자, 한글 이름으로 사용하기에 손색이 없는 이 독특한 이름을 가진 고교생이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고1 때까진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던 수재에서 한순간 싸움 1등의 타이틀을 거머쥔 고3 수험생이 우연한 계기로 인해 458년 전 퇴계 선생의 가르침을 받게 되고 그로 인해 180도 달라진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는 이야기다.

퇴계 이황. 500년 넘게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우리는 그분을 매일 가장 가까운 데서 만난다. 바로 우리가 늘 사용하는 천 원짜리 지폐 속에서. 그러나 천 원짜리 지폐 속 모습과 실제 퇴계 이황의 모습이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지폐 속 모습은 퇴계 이황을 존경하던 한 일본인이 자신의 꿈속에 나온 모습을 그린 그림을 현초 이유태 화백이 옮겨 그린 것이다. 말하자면 조선시대 퇴계 이황의 모습보다는 일본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우리는 대부분 퇴계 이황의 모습을 떠올 때 그 초상화를 떠올린다.

조선 성리학의 기초를 세운 퇴계 이황. 그는 관직을 물러나기 전 노환으로 여러 차례 사직을 청원하면서 어린 왕인 선조를 위해 필생의 심혈을 기울여 한 권의 책을 집필한다. 이름 하여 <성학십도>라 불리는 그 책은 어린 선조가 장차 성군이 될 수 있도록 군왕으로서의 도에 관해 서술한 책이다. 이 <성학십도>는 소설 속에서 오늘날 10대들을 위한 청소년 교육서로서 <신 성학십도>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등장한다. 고교 일진 문제아에서 한순간 퇴계가 되어버린 주인공 라이언을 통해서다. 458년 전의 퇴계는 우리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려는 걸까.

성은 독고, 이름은 라이언. 아름다운 선비 같은 인물이 되라는 뜻을 갖고 있다. 요즘의 추세는 영문, 한자, 한글 이름으로 모두 사용할 수 있는 국제적인 이름으로 작명을 하는 게 유행이라나 뭐라나. 어쨌든 아빠 덕분에 한껏 멋들어진 이름을 갖게 된 고3 수험생 라이언. 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학교에서 전교 1등 자리를 한 번도 놓친 적 없는 모범생이었다. 그런 그가 우연히 부모님의 부부싸움에서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후 방황하게 되면서 공부 1등에서 싸움 1등이 되어버린다. 그렇게 학교 내 일진이 되어버린 어느 날 늘 해오던 데로 자신의 취미생활인 라이딩을 위해 양평에 가게 되고 영화 <시티 오브 엔젤>속 멕 라이언이 했던 두 손 놓고 자전거를 타던 모습을 따라 하다 그만 사고를 당하게 된다. 그 사고로 천생연분인 그녀를 만나게 된다. 그녀의 이름은 채민들래.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녀는 그가 다니던 학교의 영어 교생으로 오게 된다.

한편, 날이 갈수록 청소년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는 이때. 십 대와 기성세대 간의 전쟁에 불을 지피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부모로부터 갖은 학대를 받아오던 고등학생 무리가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혼이 난 후 술을 먹고 퇴근 중이던 인근의 초등학생 교사를 폭행해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이다. 그로 인해 사회는 점차 청소년순화특별법이라는 법안을 추진하게 되고 그로 인해 청소년들의 목소리는 점차 거세져만 간다. 서로 간의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번져만 간다.

학교의 말썽꾸러기 라이언은 자신 앞에 선생님으로 나타난 그녀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애쓰던 중 교내 행사에서 그만 실수를 하고 만다. 그로 인해 자숙의 시간을 갖게 되고 도서관 청소를 하며 매주 한 권의 책을 읽고 독후감상문을 써내야 한다. 그렇게 해서 펼치게 된 책은 안동에 위치한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의 이사장이 쓴 <퇴계처럼>이라는 책이었다. 퇴계 이황에 대한 사진과 글이 담겨 있는 그 책을 본 이후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자신도 모르게 어느 순간 소위 꼰대처럼 말을 하게 된 것이다. 자신에게 둘러싸인 비밀을 풀기 위해 찾은 안동의 무당집에서 자신에게 퇴계 이황의 영혼이 깃들어 있음을 알게 되고 급기야 무당에 몸에 빙의된 퇴계 이황과 만나게 된다. 과연 라이언에게 조선 시대 퇴계 이황의 영혼이 찾아온 이유는 멀까? 앞으로 그에게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는 걸까?

진짜 엄청난 소설을 만났다. 단순한 흥미로 시작했던 이 소설을 읽고 난 후 든 생각은 이 소설을 쓴 작가가 천재가 아닐까 하는 점이었다. 어떻게 이런 소재를 떠올릴 수 있었던 걸까. 500년 전의 조선 시대 퇴계 이황을 우리가 살고 있는 현 세계로 불러올 생각을 말이다. 더군다나 퇴계 이황의 사상을 통해 우리 사회가 지니고 있는 고질적인 사회 청소년 문제를 들여다보고 해결할 수 있는 복안으로 삼았다는 점은 실로 놀랍고 감탄을 금치 못할 정도다.

시공간을 넘나들며 펼쳐지는 현시대의 퇴계 이황을 통해서 그동안 우리가 잊고 있었던 하지만 만연해있던 문제들에 다시 한번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던 일들이 소설 속에서 고스란히 등장하기 때문일까. 소설을 읽는 내내 글자 하나하나가 눈에 박히듯 들어오는 착각을 불러일으켰을 정도다. 또한, 소설이 출간됨과 동시에 드라마화가 결정되었다고 하니 영상으로 재현될 소설 속 모습들이 사뭇 기대된다.

오늘날 사회적 문제를 퇴계 이황의 <성학십도>를 통해 들여다보고 해결하고자 했던 시도는 정말 참신했고 이루 말할 수 없는 묘안이 아닐까 싶다. 해를 거듭할수록 심각해지는 청소년을 둘러싼 문제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접근한 작가의 상상력에 찬사를 보낸다. 이 소설은 청소년 또는 기성세대만을 위한 소설이 아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모두를 위한 소설이다. 각자의 위치에서 지녀야 할 도와 선비정신을 새로이 일깨워 주기에 손색이 없다. 모든 이들이 반드시 읽어볼 것을 강력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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