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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 여성 파일럿, 권기옥
임복남 지음, 민영숙 그림 / 작은씨앗 / 2007년 3월
평점 :
2005년 영화 <청연>이 개봉을 앞두고 '최초의 여류비행사, 박경원'이란 카피를 내걸면서 그녀의 친일논쟁과 더불어 '진정한' 최초의 여류비행사가 누구냐에 대한 논란이 붉어졌다. 그리고 그 논란을 통해 그동안 미처 몰랐었던 '진짜 최초'의 여성비행사 '권기옥' 여사를 알게됐다. 권기옥이 중국에서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비행사가 되었다면, 박경원은 일본의 항공학교를 졸업한 민간 비행사였다. 결국 영화제작사 측이 '최초의 '민간' 여류비행사'로 정정하면서 논란은 어느정도 일단락되었고, 조선의 '최초 여성 비행사' 권기옥 여사에 대해 좀 더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권기옥은 딸이라는 죄로 구박과 냉대를 받던 시절에 태어났다. 오죽하면 기다리던 아들이 아니라고 해서 딸의 아명(兒名)을 '갈례(어서 가라(죽으라))'라고 지었겠는가. 그런 시절을 겪으며 어린 권기옥은 왜 여자라는 이유로 차별 받는 현실을 분개했고, 또 그런 불평등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다른 여자들을 답답해 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결코 그렇게 살지 않으리라 다짐했고, 그녀의 당찬 결심은 그녀의 전생애에 걸쳐 지켜졌다.
놀음으로 전재산을 탕진한 아버지의 마음을 돌려놓고, 집안 살림을 위해 공장에 다니면서도 언니의 어깨너머 글을 배우고, 또 동생을 업고서라도 학교에 다니며 1등을 놓치지 않는 당찬 아이, 권기옥. 그녀는 숭의여학교 재학중 3ㆍ1 만세 운동에 연루되어 경찰에 끌려갔고, 독립자금 모금과 임시정부공채 판매의 덜미가 잡혀 일본경찰에게 혹독한 고문을 당하고 수감된다. 그러나 그녀의 애국정신은 더욱 강렬해져 출소 후에도 임시정부와 연계하여 독립운동에 힘을 쏟았고 결국 일본의 눈을 피해 중국으로 떠날 수 밖에 없었다.
중국의 임시정부에서 일을 돕던 권기옥은 비행사가 되어 조선총독부와 천황궁을 폭파시키겠다는 계획을 위해 구체적인 실행에 들어간다. 우선 비행사가 되기 위해선 말이 통해야 하기에 중국어와 영어를 공부하고 우여곡절 끝에 입학한 항공학교에서는 남자들에게 뒤지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고 노력했다. 드디어 첫 비행을 성공하던 날 그녀는 자신의 꿈에 한 발 더 다가섰다. 그러나 그런 눈물겨운 노력으로 비행사가 되었지만 여의치 않은 형편으로 계획을 미루던 중 일본이 패망했고 조선은 독립했다. 조국의 독립이야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만은 우리의 힘으로 당당하게 얻은 독립이 아니기에 권기옥은 조금 허망함을 느꼈다. (사실 그때문에 아픈 역사가 더욱 길어졌지 않은가.)
그러나 그녀는 다시 일어나 독립된 조국을 위해 발벗고 나섰다. 공군 창설을 위해 힘쓰며 '공군 아주머니'로 불렸고, 한중문화협회 부회장을 역임하며 한국과 중국의 문화적 교류에 힘썼다. 또한 올바른 역사를 기록하고자 재정난에 허덕이면서도 15년이란 세월을 들여 <한국연감>을 발행하며 최초의 여성 비행사이자 출판인이 되었다. 그걸로도 모자라 삶을 정리하면서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장학 사업에 기탁했다. 그리고 1988년 큰 별이 지고 말았다.
- 꿈을 가지라우! 꿈이 없으면 송장이나 다를 게 없디 않가서! 특히 젊은이들은 꿈이 있어야 돼! ..(중략)..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라우. 못 할 게 뭐가 있어. 저지르고 보는 기야. 댐벼 들고 보는 기야. 안된다, 못 한다, 기딴 생각은 짚어 치우라우. 아이 되면 별 수 없디 어카갔어. 길티만 말이디, 해보지도 않고 아이 된다고 생각하지 말라 이 말이야. 어느 나라든 젊은이들이 꿈이 ㅇㅆ고 패가가 있으면 그 나라는 희망이 있어. 다른 나라가 넘보디도 못 하고 말이디.
기카고, 녀성들이 앞장을 서야 돼. 남자가 하는 일 중에 여자라고 못할 일이 뭐가 있소. 있으면 말해 보기오. 제발 남자들 뒤꽁무니에 숨디 말라우. 이끌어야디. 앞장서서 이끌란 말이야. (209~211쪽)
딸은 그저 쓸모없이 밥이나 축내는 존재고, 여자는 그저 남자들 뒤치닥거리나 하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던 시절. '여자'를 향한 온갖 편견과 차별을 이겨내고 당당하게 비행사가 되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또 독립한 조국을 위해 일생을 바친 권기옥 여사. 자신이 원하는 것을 향해 치열하게 나아가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그녀의 삶은 책을 읽는 내내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은 최초의 여성 비행사이자 독립운동가로서의 권기옥 여사에 대해 씌여진 책이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책이라 글자도 큼직하고, 중간중간 삽화도 곁들여져 있다. 또한 쉽고 편안한 문체로 권기옥 여사에 대한 삶을 조곤조곤 들려준다. 어린이 책이지만 어른이 읽기에도 부족함이 없다. 그녀의 삶을 따라가면서 충분히 감동하고 존경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왕이면 아이들과 함께 읽기를 권한다. 권기옥 여사의 치열했던 일생을 통해 어린이들이 자신들만의 꿈을 키우고, 그것을위해 어떻게 노력해야 할 지를 깨달을 수 있으며, 더불어 어려움에 처한 조국을 위해 고군분투했던 독립운동가들를 통해 자신의 삶에서 좀 더 큰 뜻을 품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이다.
독립운동가로서, 비행사로서, 그리고 여성으로서 항상 최선의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던 권기옥 여사.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파일럿 권기옥>을 통해 그녀의 뜨거웠던 삶의 자취를 따라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