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다, 개정판 현대 예술의 거장
피에르 아술린 지음, 정재곤 옮김 / 을유문화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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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다 
 by. 피에르 아술린 지음 | 정재곤 옮김
출판사 : 을유문화사 / 독서 매체 : 종이책 / 읽은 날 : 2022.09.27-09.29 / 별점 : ★★★★
*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이름이 잘 알려진 사람에 대해서 우리는 그를 잘 알고 있다고 종종 착각하곤 한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역시 그랬다.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그저 너무나도 유명한 사진 몇 점뿐이면서 나는 그를 잘 안다고 착각했다. 아주 대단한 착각이었다. 그의 어린 시절은 어땠는지, 사진을 처음 찍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는지, 어떤 현장에서 어떤 시각으로 사진을 찍었는지, 누구와 교류하였는지, 누구에게 영향을 받았는지. 어떻게 유명해졌는지, 그의 말년은 어땠는지. 단 하나도 아는 것이 없음에도 그저 잘 알려진 사진 몇 장으로 그를 다 안다고 착각했다는 사실이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참 말도 안 되는 것이었음을 깨닫는다.

이 전기를 쓴 작가는 현재 프랑스에서 현장 비평을 주도하는 인물 가운데 한 명인 피에르 아술린이다. 그는 이 책을 쓰기 위해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생전에 그의 집이나 혹은 자신의 집에서 5년간에 걸쳐 대화를 나누었고, 전화와 편지, 엽서, 팩스를 통해 수없이 주고받았다고 한다. 그렇게 켜켜이 쌓인 자료를 이용해 총 8개의 챕터로 브레송의 삶을 훑는다. 가끔은 너무 집요하게 훑어서, 내가 진절머리 내는 도무지 끊이지 않는 프랑스어 말소리가 뒤에 들려오는 것 같아서 부르르, 몸이 떨리기도 했다. (나는 혀가 입안에서 굴러가는 듯한 느낌의 언어의 소리를 너무나도 싫어한다. 프랑스어나, 스페인어 같은... 그래서 그 두 나라의 영화도 잘 보지 못한다.) 하지만 그렇게 진절머리 날 정도로 쏟아낸 문장들 덕분에 많은 것을 깨닫고, 느낄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사진이라는 장르의 예술에서 큰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최근 수원시립미술관에서 보았던 어윈 올라프의 사진전 덕분에 조금 진지하게 사진이라는 장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이 책은 '찍는다는 행위의 철학'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시작은 회화에서 시작되었고, 그리고 끝 역시 그림으로 마무리 지었다는 이 수미쌍괄 식인 삶의 궤적이 참 흥미롭다. 젊은 시절, 파리의 초현실주의자들과의 교류와 영화를 찍고 싶어 해 장 르누아르와 함께 작업을 했던 것이 그의 사진의 남다른 지점을 만들어내는데 큰 공헌을 헀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조지 6세의 대관식 날 주인공이 아닌 그 주인공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사진을 찍은 브레송을 두고 만약 그가 중세에 태어났다면 호화롭게 장정된 책의 가장자리 장식에 관심을 쏟았을 거라는 피에르 아술린의 글에 쿡쿡 웃음 지으며 나는 그동안 '유명한 사진작가, 그러나 관심 없는.' 상태였던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에게 단숨에 반하고 말았다. 브레송이 주인공이 아닌 대중을 향해 카메라를 들었던 것은 소외되고 버림받은 소시민에게 눈길을 줄 수 있는 태도를 가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것이 '지금 이 순간의 진실을 포착할 수 있는(p.265) 일'임을 잘 알았기 때문이을 것이다. 나는 이러한 그의 태도에 뒤늦게 반해버린 것이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을 표현하는 단어는 많겠지만 나는 이 책에서 '비순응주의자'라는 단어가 참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그가 자기 같은 비순응주의자를 위한 책이며, 사진에 관한 최고의 지침서라고 말한 오이겐 헤리겔의 책, <마음을 쏘다, 활>이라는 책이 너무나도 궁금해졌다. 어떤 내용이기에 '그간 찾아 헤매던 간단명료한 원칙들이 담겨 있었다(p.314)'고 했는지 말이다.


책은 차곡차곡 영웅의 서사시를 쌓아올린다. 그림에서 영화로의 이동과 3년간 독일군의 전쟁 포로로 지내며 어떠한 어려움을 겪었는지를, 그리고 그 체험이 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지나, 우리에게 잘 알려진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활약은 챕터 5의 후반부터 시작된다. 뉴욕에서의 활동, 매그넘 포토사의 시작, 매그넘의 멤버들과 함께한 가치들, 그리고 인도, 파키스탄, 버마(미얀마), 중국 등지에서 한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시대가 태어나는 격동의 현장 속에서 이제 우리에게 너무나도 유명해진 사진들을 건져올리는 순간들까지. 인도의 영화감독, 사티아지트 라이가 표현한 브레송이야말로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그가 찍은 사진이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를 우리에게 제대로 설명한다.


카르티에 브레송은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디테일을 
기념비적 순간으로 변모시킬 줄 아는 힘을 가진 예술가라고 생각한다.
아름다움을 창조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게 하는 부분들을 
걷어낼 수 있게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게 하는 부분들을 걷어내는' 사진. 나는 이것이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사진을 설명하기에 아주 좋은 문장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고, 그동안 왜 그렇게 감흥 없이 그의 사진을 보았을까 스스로에게 반문하게 되었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무엇을 걷어냈는지를 알아차리지 못한 둔함 때문이었으리라. 이 책 덕분에 좀 더 맑아진 눈으로 그의 사진을 들여다볼 수 있을 것 같다. 다행히 지난 6월부터 예술의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던 그의 사진전이 일주일 연장되었다고 한다. 이번 연휴에 들러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그의 사진을 오래 들여다보며, 이 책에 사진자료가 많지 않아서 아쉬웠던 마음을 달래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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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예술 윤혜정의 예술 3부작
윤혜정 지음 / 을유문화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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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예술>은 전작 <나의 사적인 예술가들>이 인터뷰집이었던 것과 달리 “감정, 관계, 일, 여성, 일상”이라는 다섯 가지 키워드에 대한 윤혜정 님의 내밀한 생각을 스물여덟 분의 아티스트의 작품과 작품 세계를 들여다보며 풀어내는 에세이집이었다.


마크 로스코의 삶과 작품을 통해 갖가지 딜레마 속에서도 답을 찾기 위해 평생 진력을 썼지만 결국 "세상에 완벽한 결정이란 없음을 인정하며 그에 합당한 책임을 감수하는(p.38)" 어떤 겸허한 태도에 대하여, 아니쉬 카푸어의 작품을 마주했던 경험을 통해 "충만함과 상실감, 신비로움과 두려움, 모든 것인 동시에 아무것도 아닌 느낌, 자신의 안에서 첨예하게 맞서는 두 감정 사이의 혼란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예술을 사랑하는 상태'에 대하여, 양혜규의 작품 <창고 피스, 2014>를 통해 결핍을 직시한다는 일에 대하여, 장 미셸 오토니엘의 작업을 통해 "예술을 통해 역사를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p.94)"에 대하여, 올라퍼 앨리아슨의 "세상을 구성하는 원자의 소리까지, 진동까지 들으려 애쓰는 예술가의 진심(p.112)"을 이야기하며 예술의 진짜 가치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또 안리 살라의 작업을 통해 동시대 예술을 통해 세상을 명료하게 들여다보는 일에 대하여, 문성식 작가의 작업을 대하는 태도를 통해 어떠한 일을 함에 있어 가장 순수한 욕망을 지켜낸다는 것에 대하여, 바이런 킴의 작품 활동을 통하여 "세상의 모든 것에 성실히 감응하는 것(p.199)이 곧 영감의 실체"라는 것에 대하여, 유영국 작가님의 삶을 통하여 "삶과 예술을 자기 의지대로 끌고 나가기 위해 고요히 노력한 사람만이 완성할 수 있는 세계(p.224)"에 대하여, 폴 매카시의 드로잉 작품을 통해 스스로 사유함으로써 존재할 수 있음에 대하여, 구본창의 작품을 통해 '고립의 정서'로부터 발견할 수 있는 세상에 대하여, 그리고 마지막으로 크리스티앙 볼탕스키를 통해 '죽음'에 대하여 깊게 사유하고, 그 생각의 실타래를 글로 풀어낸다.


지난 2년동안 미술관과 갤러리를 바지런히 찾아다녔던 발걸음 덕분에 윤혜정 디렉터님께서 끌러놓은 예술가들의 이름들이 낯설지가 않았고 덕분에 더욱 집중해서 한 장 한 장 읽을 수 있었다. 한 예술가의 삶에 대해 읽고 나면 바로 다음 예술가의 삶으로 넘어가기가 쉽지 않아 오래 공들여 읽었다. 섬세하고 진중하고 고요하게 세상을 들여다보고, 분해하고, 그것으로 또 다른 무언가를 조립해 내는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을 들여다보는 즐거움, 두려움, 황홀함을 만끽하는 책 읽기였다. 사실 예전엔 현대미술의 난해함에 진저리 치던 나였는데 윤혜정 디렉터님, 그리고 또 한분, 박보나 작가님의 책을 통해 한 발 한 발 현대미술과 가까워지고 있는 듯하다. 다시 책의 맨 앞, 프롤로그를 펼쳐본다.

"천문학이나 우주과학이 어려운 학문이라고 해서 별을 보거나 우주를 꿈꾸는 행위를 포기하진 않습니다. 별 보기를 두려워하지 않듯, 미술 작품과의 만남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현대미술의 현학성은 내용 자체가 아니라 이를 대하는 태도에서 먼저 기인한 것이기도 하니까요. 생각해 보면 우리는 전시장보다 오히려 삶의 한가운데서 더 자주 진공의 시공간을 대면합니다. 번번이 길을 잃기도 하지만 작은 길이라도 스스로 찾으려고 노력하지요. 세상의 모든 예술 역시 스스로 길과 답을 찾아 나선 어느 예술가의 부단한 분투의 결과물입니다. 아니 그전에 부조리한 세계와 소통 불가능한 관계,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을 통찰하고자 한 남다른 의지이자 시도이지요. 이들의 개념이 정답이건 아니건, 그래서 위안 받을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저는 이렇게 예술가들이 저마다의 생을 걸고 해 온 이야기들을 정말이지 제대로 잘 경험하고 싶습니다. 이 글이 작품 앞에서 밀려드는 막막함과 막연함을 자기만의 감성과 해석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돕는 정확한 지도로 쓰이길 바라며, 별자리를 짚어 주는 길잡이처럼 미술가에 대한 정보, 작품의 의미 등을 아는 힘껏 이 책에 담고자 한 이유입니다."

처음엔 쭈뼛대며 작품 앞에 섰다. 무엇에 중점을 두고 보아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그저 작품의 조형미에만 집중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젠 안다. 어떻게 읽어내도, 괜찮다는 것을. 작품을 마주한다는 것은 정답을 찾는 일이라기보다는 작품이 드러나게 만든 나의 내면을 마주하는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동안 아직 공부가 더 많이 필요한 애송이라 마음만 바빠 전시를 보러 가서도 한 작품 한 작품 공들여 들여다보지 못했다. 앞으로는 하나의 작품 앞에서 더 많은 고요한 시간을 보낼 수 있기를. 서두르지 않고 깊게 사유할 결심을 할 수 있기를 나 스스로에게 바라본다. 앞으로도 갈 길이 멀고 먼 나의 예술을 향한 미로 속에서 길잡이가 되어주실 윤혜정 디렉터님의 글과 기획하시는 전시들을 소중히 마주해야지. 단단하고 정직한 글들을 오래 곁에 두고 종종 펼쳐보아야지.

*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별숲밑줄 #2022별숲책일기 ​#도서협찬 #도서제공 #예술 #예술에세이 #에세이 #미술책 #미술책읽기 #예술책일기 #국제갤러리 #윤혜정작가님 #윤혜정디렉터 #윤혜정 #을유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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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음과 모음 2022.여름 - 53호
자음과모음 편집부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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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책을 읽고 쓴 서평입니다.*




자음과 모음 블로그에서 이번 2022여름호 <그림책>편의 서평단 소식을 듣고 후다닥 달려가 신청을 하였고 감사하게도 서평단에 선정될 수 있었다. 그렇게 받아본 책은, 크고 두꺼웠다. (...) 2022년 안데르센 상 심사위원이었던 어린이 책 기획자 이지원님 (그 밖에도 일러스트레이션 전시 큐레이터, 번역가, 교육자 등 그림책과 관련해 다방면으로 활동 중이시라고 한다.)을 게스트 에디터로 모신 이번 여름호에는 그림책 연구자 김혜진님, 2022년 안데르센 상 수상자이신 그림책 작가 이수지님, 그림책 편집자 엄혜숙님과 그림책 전문 독립서점 책방 지기 명유미님, 생태 그림책 작가 이우만님, 아동청소년문학 평론가 김지은님, 그림책 테라피스트 김보나님과 분당의 현대 어린이책 미술관 관장이신 노정민 님의 글을 만날 수 있었고, 외국의 그림책 작가 키티 크라우더,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샘 맥컬른, 그리고 일본의 치히로 미술관에서 일하고 있는 마츠카나 미치코님의 글까지 만나볼 수 있었다. 그림책을 쓰는 사람, 만드는 사람, 파는 사람, 읽는 사람. 그림책과 관련된 거의 모든 일에 대해, 현재의 그림책 '시장'의 상황에 대해 조금이나마 더 잘 알 수 있었다. 

특히 재미있었던 부분은 안데르센 상의 심사위원이었던 이지원님의 글을 통해 이 상의 수상자를 결정하기 위해 어떠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를 엿볼 수 있었던 점이었다. 달걀 책방을 운영하고 계신 명유미님의 글을 읽다가 시드니 스미스가 궁금해져 인터넷 검색을 했고, 그 덕분에 '그림책 박물관'이라는 사이트를 알게 된 것도 기쁜 일이었다. 그리고 사실 지난 5년 사이 '어른의 그림책 읽기'열풍이 거세지는 이유가 뭘까 궁금했었는데 그림책 테라피스트 김보나님의 글을 읽으며 그 이유를 조금 알게 되기도 했다. 사회생활을 하며 나를 잃어가던 어떤 어른들은 그림책이 던지는 질문에 자답하며 다시 나를 알아가는 과정을 경험하며 치유받고, 단단해지는 것 아닐까. 사실 이러한 과정은 다른 책을 읽어도 경험하려면 경험할 수 있는 일이겠지만, 글이 아닌 그림이라는 좀 더 '해석'이 필요한 질문지를 통해 더 오래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는 점이 그림책만의 매력인 듯하다. 

현재 시점에서 전 세계의 남녀노소가 관심을 기울이거나 기울여야만 하는 문제들을 건드리면서

(어린이의 삶과 전쟁과 생태와 공존 등)

한없이 개별적인 고독과 무아지경을 상상하게 하는 예술의 자유로움을 포착하고 있었다.

(...)

어린이의 자유는 자신을 밀고 나가는 힘으로,

오로지 그것 하나만으로 미지의 세계와 맞서보려는 용기와 다르지 않았다.

어떤 그림과 이야기는 강요하지 않고도 그것을 보고 듣는 자 스스로

새로운 그림과 이야기를 그리고 쓰게 한다.

그림책은 우리의 어린이가 가지고 있고,

나의 어린이가 가지고 있던 자유에의 갈망과 용기를 잃지 않도록 격려하고 응원해 준다.

머리글. <해방에 대하여> - 김나영

사실 나는 아직 그림책보다는 인문사회 서적이 나를 더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내가 그림책에 작게나마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오로지 나의 조카 서연이 때문이다. 내가 감수성이 평균치 이하인 사람으로 자라난 것은 책과 가깝지 않았던 어린 시절 때문이라고 생각해서일까. 조카만큼은 많은 책과 함께 자라나며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 되어주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 스스로 그림책의 가치를 제대로 느끼지 못하면서 조카에게 책을 추천해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니 앞으로 의식적으로라도 그림책을 직접 찾아 읽어보려고 해 보아야겠다.




이수지 작가님이 말씀하시는 "단순하고 명쾌하고 가닿을 수 없는 어떤 정수. 하나의 생명이 태어나고 살아가는 경이로운 세계, 그 생의 초반을 온몸으로 부딪쳐서 살아내는 어린이라는 존재에의 경의(p.64)"를 내 조카의 일상을 바라보며 나 역시 느낀다. 매일매일 예전에 찍어놓은 조카의 영상을 다시 보곤 하는데 이렇게 기어 다니던 아가가, 이렇게 옹알대던 아가가, 어느새 훌쩍 자라 눈부시게 웃으며 폴짝폴짝 뛰어다니게 되었다는 사실이 경이롭고 아름다워 매일이 감동이다. 그러한 나의 경이로움과 감동을 조카의 초등학교 입학 선물로 세상에서 단 한 권뿐인 그림책으로 만들어 주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는데.... 당장 내년 3월에 입학인데 할 수 있으려나 싶다. 어떻게 해서든 고모의 이 마음을 조카에게 전달하고 싶다. 너의 뒤에 아빠, 엄마뿐 아니라 이렇게 고모도 든든히 서 있다고. 그러니까 주저하지 말고 당차고 힘차게 앞으로 앞으로 신나게 나아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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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 - 26가지 키워드로 다시 읽는 김수영
고봉준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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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은 김수영 작가가 탄생한 지 100년이 되는 해였다. 한겨레에서는 '거대한 100년, 김수영'이라는 타이틀로 6개월간 김수영 작가의 작품에 관한 평론 26편을 연재하였고, 김수영 작가의 작품 <거대한 뿌리>의 한 구절, '이 무수한 반동이 좋다'를 타이틀로 한 이 책은 그 연재분을 모은 책이다. 시를 잘 읽지 않고, 5-60년대 문학에 대해 잘 모르는 나에게 김수영이라는 시인은 그저 교과서에서 만났던 시 '풀'의 작가, 참여 시인, 이란 막연한 이미지로만 알고 있던 분이다.

책은 키워드별로 주요 시대를 파악하여 시간 순서대로 편집되어 있다. 탄생과 일제 강점기, 한국 전쟁기, 구수동 거주 시기, 4.19혁명 이후와 같이 말이다. 26개의 키워드 중 <기계>와 <자유>, 그리고 <죽음>편을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 (아니, 실은 제일 마지막의 '대담'이 가장 좋았을지도...) 가장 뜨악했던 부분은 노혜경 시인이 쓴 <여혐>편이었다. 김수영 작가에 대해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바로 이 '여혐'문제라고 한다. 확실히 <죄와 벌>같은 시는 용납하기 어려운 내용을 담은 시였다. 김수영의 이러한 면을 노혜경 시인은 '60년대를 짊어지고 그가 감당해야 할 숙명'이라고 말한다. 또 뒤편의 대담에서 이경수 교수님께서는 "김수영 시의 여성 혐오 문제는 피하거나 그 자체에만 천착할 것이 아니라, 김수영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 어떤 것인지를 돌아보고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 여성을 대상화하는 김수영의 시들이 문제적인 이유는 그것이 지나간 과거, 그 시절엔 그랬지라고 웃어넘길 수도 있는 과거가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환기되는 혈실이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김수영의 어떤 유산을 어떻게 계승할 것인지 치열하게 논의해야 한다"라고도 말한다. 이제껏 김수영은 '너무 우상화'되며 자유롭게 읽히기를 금지당해왔지만 이제는 독자들이나 연구자들이 좀 더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새로운 독자들에 의해 새로운 김수영이 발견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이 책을 통해, 잘 알지 못했던 김수영 작가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고,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제, 새로운 김수영 작품의 독자가 되어 새로운 김수영을 발견하는데 함께 해야겠다.

박인환 작가와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챕터 마지막에 "야아 수영아, 훌륭한 시 많이 써서 부지런히 성공해라!"라고 외친 박인환 작가의 말을 읽으며, 문득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의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좋은 소설을 쓰시오."라고 말해주던 구보의 벗의 말과 박인환 작가의 말이 겹쳐진다. 박태원이 살았던 일제 강점기, 그리고 김수영, 박인환 작가가 살았던 한국전쟁 이후의 시대. 모두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벅찼을 그 공포의 시기에 '좋은 소설, 훌륭한 시'를 쓰기 위해 쓰자며 응원을 나누던 벗과 함께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던 문인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간 나의 한국 문학의 관심사는 3-40년대 경성의 문인들, 그리고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2000년대 이후 작가분들에 국한되어 있었다. (훌쩍 뛰어넘어버린 시간 속의 윤오영 수필가님, 황순원 작가님, 그리고 박경리 박완서 작가님 정도는 관심을 가지고 작품을 찾아 읽기는 했다.) 한국전쟁에서부터 민주화운동까지, 그 지난한 한국 현대사를 외면하고 싶었던 마음이 그 시대의 작품과 작가들을 덩달아 외면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며 한국 문학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라도 이젠 더 이상 외면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책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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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하고 식물집사 - 늘 긴가민가한 식물 생활자들을 위한 친절한 가이드
대릴 쳉 지음, 강경이 옮김 / 휴(休)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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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너무나도 귀엽게 생긴 화분 하나를 트위터에서 보았다. 이름도 귀여웠다. 필레아페페 로미오이데스. 보통 페페,라고 불리는 식물이었다. 선인장도 말려 죽이는 나였기에 화분을 내가....? 괜찮을까....? 걱정이 앞섰지만 그러기엔 페페의 자태가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결국 인터넷 쇼핑을 통해 처음으로 화분을 구매했다. 10cm 정도의 작은 기둥 이쪽 저쪽으로 동그랗고 빳빳한 잎을 슉, 슉, 달고 있는 페페는 정말 사랑스러웠다. 그런데 몇 달 지나지 않아 우리 페페가 이상해요!를 외치는 나를 발견했다. 기둥이 쑥쑥 자라 25cm 정도가 되었지만 잎은 기둥의 위쪽 끝부분에만 10장 남짓 달려있는 모양으로 이. 상. 하. 게. 자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구는 어찌나 자꾸만 쑥쑥 땅에서 솟아오르던지... 솟아오른 자구를 파내 수경으로 뿌리를 내리려고 할 때마다 어찌나 픽픽 썩어 죽어버리던지... 우리 페페는 엄마 속도 모르는 말썽꾸러기였다.

그러던 중 이사를 했다. 이사한 내 방에 새로운 식물 하나를 더 놓아두고 싶었다. 그래, 이번에는 몬스테라다! 하며 호기롭게 다시 인터넷 쇼핑을 했다. 우리 페페가 이상한 모양으로 자라지는 않았지만, 죽지는 않았다구요!라며 의기양양하게. 몬스테라는 페페보다도 훨씬 더 키우기 수월했다. 신경쓰지 못한 며칠 새 뿅! 하고 연한 연둣빛의 새 잎을 내고 또 며칠 지나면 커다랗게 활짝 피어나는 몬스테라 잎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그러나 역시나 몇 달 뒤 나는 우리 몬스몬스가 이상해요!!를 외쳐야만 했다. 줄기와 줄기 사이 이상한 곳에서 뿌리가 튀어나왔고 (징그러) 처음 받았을 때의 화분이 너무 작아진 것 같아 분갈이를 하기 위해 화분에서 뽑아낸 몬스몬스의 뿌리들은 마치 기십 마리의 뱀이 똬리를 틀고 있는 듯 꼬불꼬불 엉켜있었다. (뱀을 너무 징그러워하는 나는 하마터면 몬스몬스를 통째로 떨굴 뻔했다. 지금이 글을 쓰면서도 또 소름이 돋아서 온몸을 벅벅 긁고 있다.) 어찌어찌 분갈이를 해 주었는데 내가 이렇게 몬스몬스와 씨름하며 신경 쓰지 못한 사이 페페가, 말라죽었다. (...) 나는, 식물 집사라기엔 너무나도 모자란 사람이었다. 화분 한 개, 딱 한 개. 그게 나의 한계였다.

온갖 노력을 쏟아부어도 식물의 외모는 불완전하기 마련이고,

화원에서 데려온 식물도 일단 당신의 집에 적응하고 나면 겉모습이 달라진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면 환경에 적응하는 식물들이 지략과 개성을 귀하게 여기게 된다.

P.12

서평단 책으로 받은 퇴근하고식물집사 를 읽다가 몇 페이지 지나지 않아 오... 하고 감탄하게 만든 문장이다. 그래, 그렇다. 내가 '우리 페페가 이상해요!'라고 외친 것은 페페의 외모가 내가 꿈꾸었던 외형대로 자라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그 모습이 내 공간에 '적응'하기 위한 최선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똬리를 튼 몬스테라의 뿌리들 역시 분갈이가 뭔지도 몰랐던 무지렁이 주인이 언젠가 분갈이해 줄 날을 기다리며 최선을 다해 공간을 나누어 쓰기 위해 그렇게 징그럽게 똘똘 말려 뭉쳐있었을 것이다. 식물의 지략이었다. 고양이도 강아지도, 인간의 마음대로 다룰 수 없다는 건 당연하다 생각했지만 식물은 마치 내 마음대로 원하는 대로 키울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책의 초반 부분에서부터 일단 반성부터 하고 들어가게 만드는 책이었다.

이 책은 1부는 식물을 키우기 위한 최소한의 지식을, 그리고 2부는 저자가 직접 식물들을 관리하며 적은 식물 일기로 구성되어 있다. 귀여운 일러스트도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사랑스러운 책이다. 저자가 식물과 교감하며 다정하게 살피고, 지켜보는 과정이 참 상냥해서 괜히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했다. 사실 우리 집엔 내 방의 몬스 몬스뿐 아니라 엄마가 관리하는 화분이 20여 개 정도 안방 쪽 베란다에 늘어서 있다. 엄마는 딱히 분갈이를 해 주는 것 같지도 않고 그저 일주일에 한 번 날 잡고 물만 뿌려주시는 것 같은데도 아이들은 쑥쑥 잘 자란다. 게다가 놀랍게도 이 책을 읽다가 엄마의 화분이 궁금해 내다본 안방 베란다에 죽은 줄 알았던 페페가!! 뾰로롱 하고 작은 잎들을 매달고 살아나있었다!!! 이 책의 저자처럼 상냥하고 완벽한 식물 집사가 되긴 그냥 태생부터 글러먹은 나이지만, 힘겹게 하루하루 자라나고 있는 몬스몬스와, 부활한 페페만큼은 앞으로 잘, 키워내고 싶어졌다. 그리고 만약 반려 식물을 하나 더 들이게 된다면, 그땐 이 책에서도 소개한 마리모를 입양해 보고 싶어졌다. '늘 긴가민가한 식물 생활자'들에게 최적의 답을 제시해 주는 이 책이 있다면, 나도 우리 아이들을 잘 키워낼 수 있을 것 같다는 믿음이 생겼다.



하지만 우리 몬스몬스가 이렇게나 크게 자라면 나는 좀 곤란할 것 같은데....




*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책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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