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예술
윤혜정 지음 / 을유문화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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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예술>은 전작 <나의 사적인 예술가들>이 인터뷰집이었던 것과 달리 “감정, 관계, 일, 여성, 일상”이라는 다섯 가지 키워드에 대한 윤혜정 님의 내밀한 생각을 스물여덟 분의 아티스트의 작품과 작품 세계를 들여다보며 풀어내는 에세이집이었다.


마크 로스코의 삶과 작품을 통해 갖가지 딜레마 속에서도 답을 찾기 위해 평생 진력을 썼지만 결국 "세상에 완벽한 결정이란 없음을 인정하며 그에 합당한 책임을 감수하는(p.38)" 어떤 겸허한 태도에 대하여, 아니쉬 카푸어의 작품을 마주했던 경험을 통해 "충만함과 상실감, 신비로움과 두려움, 모든 것인 동시에 아무것도 아닌 느낌, 자신의 안에서 첨예하게 맞서는 두 감정 사이의 혼란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예술을 사랑하는 상태'에 대하여, 양혜규의 작품 <창고 피스, 2014>를 통해 결핍을 직시한다는 일에 대하여, 장 미셸 오토니엘의 작업을 통해 "예술을 통해 역사를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p.94)"에 대하여, 올라퍼 앨리아슨의 "세상을 구성하는 원자의 소리까지, 진동까지 들으려 애쓰는 예술가의 진심(p.112)"을 이야기하며 예술의 진짜 가치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또 안리 살라의 작업을 통해 동시대 예술을 통해 세상을 명료하게 들여다보는 일에 대하여, 문성식 작가의 작업을 대하는 태도를 통해 어떠한 일을 함에 있어 가장 순수한 욕망을 지켜낸다는 것에 대하여, 바이런 킴의 작품 활동을 통하여 "세상의 모든 것에 성실히 감응하는 것(p.199)이 곧 영감의 실체"라는 것에 대하여, 유영국 작가님의 삶을 통하여 "삶과 예술을 자기 의지대로 끌고 나가기 위해 고요히 노력한 사람만이 완성할 수 있는 세계(p.224)"에 대하여, 폴 매카시의 드로잉 작품을 통해 스스로 사유함으로써 존재할 수 있음에 대하여, 구본창의 작품을 통해 '고립의 정서'로부터 발견할 수 있는 세상에 대하여, 그리고 마지막으로 크리스티앙 볼탕스키를 통해 '죽음'에 대하여 깊게 사유하고, 그 생각의 실타래를 글로 풀어낸다.


지난 2년동안 미술관과 갤러리를 바지런히 찾아다녔던 발걸음 덕분에 윤혜정 디렉터님께서 끌러놓은 예술가들의 이름들이 낯설지가 않았고 덕분에 더욱 집중해서 한 장 한 장 읽을 수 있었다. 한 예술가의 삶에 대해 읽고 나면 바로 다음 예술가의 삶으로 넘어가기가 쉽지 않아 오래 공들여 읽었다. 섬세하고 진중하고 고요하게 세상을 들여다보고, 분해하고, 그것으로 또 다른 무언가를 조립해 내는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을 들여다보는 즐거움, 두려움, 황홀함을 만끽하는 책 읽기였다. 사실 예전엔 현대미술의 난해함에 진저리 치던 나였는데 윤혜정 디렉터님, 그리고 또 한분, 박보나 작가님의 책을 통해 한 발 한 발 현대미술과 가까워지고 있는 듯하다. 다시 책의 맨 앞, 프롤로그를 펼쳐본다.

"천문학이나 우주과학이 어려운 학문이라고 해서 별을 보거나 우주를 꿈꾸는 행위를 포기하진 않습니다. 별 보기를 두려워하지 않듯, 미술 작품과의 만남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현대미술의 현학성은 내용 자체가 아니라 이를 대하는 태도에서 먼저 기인한 것이기도 하니까요. 생각해 보면 우리는 전시장보다 오히려 삶의 한가운데서 더 자주 진공의 시공간을 대면합니다. 번번이 길을 잃기도 하지만 작은 길이라도 스스로 찾으려고 노력하지요. 세상의 모든 예술 역시 스스로 길과 답을 찾아 나선 어느 예술가의 부단한 분투의 결과물입니다. 아니 그전에 부조리한 세계와 소통 불가능한 관계,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을 통찰하고자 한 남다른 의지이자 시도이지요. 이들의 개념이 정답이건 아니건, 그래서 위안 받을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저는 이렇게 예술가들이 저마다의 생을 걸고 해 온 이야기들을 정말이지 제대로 잘 경험하고 싶습니다. 이 글이 작품 앞에서 밀려드는 막막함과 막연함을 자기만의 감성과 해석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돕는 정확한 지도로 쓰이길 바라며, 별자리를 짚어 주는 길잡이처럼 미술가에 대한 정보, 작품의 의미 등을 아는 힘껏 이 책에 담고자 한 이유입니다."

처음엔 쭈뼛대며 작품 앞에 섰다. 무엇에 중점을 두고 보아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그저 작품의 조형미에만 집중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젠 안다. 어떻게 읽어내도, 괜찮다는 것을. 작품을 마주한다는 것은 정답을 찾는 일이라기보다는 작품이 드러나게 만든 나의 내면을 마주하는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동안 아직 공부가 더 많이 필요한 애송이라 마음만 바빠 전시를 보러 가서도 한 작품 한 작품 공들여 들여다보지 못했다. 앞으로는 하나의 작품 앞에서 더 많은 고요한 시간을 보낼 수 있기를. 서두르지 않고 깊게 사유할 결심을 할 수 있기를 나 스스로에게 바라본다. 앞으로도 갈 길이 멀고 먼 나의 예술을 향한 미로 속에서 길잡이가 되어주실 윤혜정 디렉터님의 글과 기획하시는 전시들을 소중히 마주해야지. 단단하고 정직한 글들을 오래 곁에 두고 종종 펼쳐보아야지.

*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별숲밑줄 #2022별숲책일기 ​#도서협찬 #도서제공 #예술 #예술에세이 #에세이 #미술책 #미술책읽기 #예술책일기 #국제갤러리 #윤혜정작가님 #윤혜정디렉터 #윤혜정 #을유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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