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고 식물집사 - 늘 긴가민가한 식물 생활자들을 위한 친절한 가이드
대릴 쳉 지음, 강경이 옮김 / 휴(休) / 2022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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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너무나도 귀엽게 생긴 화분 하나를 트위터에서 보았다. 이름도 귀여웠다. 필레아페페 로미오이데스. 보통 페페,라고 불리는 식물이었다. 선인장도 말려 죽이는 나였기에 화분을 내가....? 괜찮을까....? 걱정이 앞섰지만 그러기엔 페페의 자태가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결국 인터넷 쇼핑을 통해 처음으로 화분을 구매했다. 10cm 정도의 작은 기둥 이쪽 저쪽으로 동그랗고 빳빳한 잎을 슉, 슉, 달고 있는 페페는 정말 사랑스러웠다. 그런데 몇 달 지나지 않아 우리 페페가 이상해요!를 외치는 나를 발견했다. 기둥이 쑥쑥 자라 25cm 정도가 되었지만 잎은 기둥의 위쪽 끝부분에만 10장 남짓 달려있는 모양으로 이. 상. 하. 게. 자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구는 어찌나 자꾸만 쑥쑥 땅에서 솟아오르던지... 솟아오른 자구를 파내 수경으로 뿌리를 내리려고 할 때마다 어찌나 픽픽 썩어 죽어버리던지... 우리 페페는 엄마 속도 모르는 말썽꾸러기였다.

그러던 중 이사를 했다. 이사한 내 방에 새로운 식물 하나를 더 놓아두고 싶었다. 그래, 이번에는 몬스테라다! 하며 호기롭게 다시 인터넷 쇼핑을 했다. 우리 페페가 이상한 모양으로 자라지는 않았지만, 죽지는 않았다구요!라며 의기양양하게. 몬스테라는 페페보다도 훨씬 더 키우기 수월했다. 신경쓰지 못한 며칠 새 뿅! 하고 연한 연둣빛의 새 잎을 내고 또 며칠 지나면 커다랗게 활짝 피어나는 몬스테라 잎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그러나 역시나 몇 달 뒤 나는 우리 몬스몬스가 이상해요!!를 외쳐야만 했다. 줄기와 줄기 사이 이상한 곳에서 뿌리가 튀어나왔고 (징그러) 처음 받았을 때의 화분이 너무 작아진 것 같아 분갈이를 하기 위해 화분에서 뽑아낸 몬스몬스의 뿌리들은 마치 기십 마리의 뱀이 똬리를 틀고 있는 듯 꼬불꼬불 엉켜있었다. (뱀을 너무 징그러워하는 나는 하마터면 몬스몬스를 통째로 떨굴 뻔했다. 지금이 글을 쓰면서도 또 소름이 돋아서 온몸을 벅벅 긁고 있다.) 어찌어찌 분갈이를 해 주었는데 내가 이렇게 몬스몬스와 씨름하며 신경 쓰지 못한 사이 페페가, 말라죽었다. (...) 나는, 식물 집사라기엔 너무나도 모자란 사람이었다. 화분 한 개, 딱 한 개. 그게 나의 한계였다.

온갖 노력을 쏟아부어도 식물의 외모는 불완전하기 마련이고,

화원에서 데려온 식물도 일단 당신의 집에 적응하고 나면 겉모습이 달라진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면 환경에 적응하는 식물들이 지략과 개성을 귀하게 여기게 된다.

P.12

서평단 책으로 받은 퇴근하고식물집사 를 읽다가 몇 페이지 지나지 않아 오... 하고 감탄하게 만든 문장이다. 그래, 그렇다. 내가 '우리 페페가 이상해요!'라고 외친 것은 페페의 외모가 내가 꿈꾸었던 외형대로 자라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그 모습이 내 공간에 '적응'하기 위한 최선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똬리를 튼 몬스테라의 뿌리들 역시 분갈이가 뭔지도 몰랐던 무지렁이 주인이 언젠가 분갈이해 줄 날을 기다리며 최선을 다해 공간을 나누어 쓰기 위해 그렇게 징그럽게 똘똘 말려 뭉쳐있었을 것이다. 식물의 지략이었다. 고양이도 강아지도, 인간의 마음대로 다룰 수 없다는 건 당연하다 생각했지만 식물은 마치 내 마음대로 원하는 대로 키울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책의 초반 부분에서부터 일단 반성부터 하고 들어가게 만드는 책이었다.

이 책은 1부는 식물을 키우기 위한 최소한의 지식을, 그리고 2부는 저자가 직접 식물들을 관리하며 적은 식물 일기로 구성되어 있다. 귀여운 일러스트도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사랑스러운 책이다. 저자가 식물과 교감하며 다정하게 살피고, 지켜보는 과정이 참 상냥해서 괜히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했다. 사실 우리 집엔 내 방의 몬스 몬스뿐 아니라 엄마가 관리하는 화분이 20여 개 정도 안방 쪽 베란다에 늘어서 있다. 엄마는 딱히 분갈이를 해 주는 것 같지도 않고 그저 일주일에 한 번 날 잡고 물만 뿌려주시는 것 같은데도 아이들은 쑥쑥 잘 자란다. 게다가 놀랍게도 이 책을 읽다가 엄마의 화분이 궁금해 내다본 안방 베란다에 죽은 줄 알았던 페페가!! 뾰로롱 하고 작은 잎들을 매달고 살아나있었다!!! 이 책의 저자처럼 상냥하고 완벽한 식물 집사가 되긴 그냥 태생부터 글러먹은 나이지만, 힘겹게 하루하루 자라나고 있는 몬스몬스와, 부활한 페페만큼은 앞으로 잘, 키워내고 싶어졌다. 그리고 만약 반려 식물을 하나 더 들이게 된다면, 그땐 이 책에서도 소개한 마리모를 입양해 보고 싶어졌다. '늘 긴가민가한 식물 생활자'들에게 최적의 답을 제시해 주는 이 책이 있다면, 나도 우리 아이들을 잘 키워낼 수 있을 것 같다는 믿음이 생겼다.



하지만 우리 몬스몬스가 이렇게나 크게 자라면 나는 좀 곤란할 것 같은데....




*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책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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