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다, 개정판 현대 예술의 거장
피에르 아술린 지음, 정재곤 옮김 / 을유문화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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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다 
 by. 피에르 아술린 지음 | 정재곤 옮김
출판사 : 을유문화사 / 독서 매체 : 종이책 / 읽은 날 : 2022.09.27-09.29 / 별점 : ★★★★
*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이름이 잘 알려진 사람에 대해서 우리는 그를 잘 알고 있다고 종종 착각하곤 한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역시 그랬다.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그저 너무나도 유명한 사진 몇 점뿐이면서 나는 그를 잘 안다고 착각했다. 아주 대단한 착각이었다. 그의 어린 시절은 어땠는지, 사진을 처음 찍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는지, 어떤 현장에서 어떤 시각으로 사진을 찍었는지, 누구와 교류하였는지, 누구에게 영향을 받았는지. 어떻게 유명해졌는지, 그의 말년은 어땠는지. 단 하나도 아는 것이 없음에도 그저 잘 알려진 사진 몇 장으로 그를 다 안다고 착각했다는 사실이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참 말도 안 되는 것이었음을 깨닫는다.

이 전기를 쓴 작가는 현재 프랑스에서 현장 비평을 주도하는 인물 가운데 한 명인 피에르 아술린이다. 그는 이 책을 쓰기 위해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생전에 그의 집이나 혹은 자신의 집에서 5년간에 걸쳐 대화를 나누었고, 전화와 편지, 엽서, 팩스를 통해 수없이 주고받았다고 한다. 그렇게 켜켜이 쌓인 자료를 이용해 총 8개의 챕터로 브레송의 삶을 훑는다. 가끔은 너무 집요하게 훑어서, 내가 진절머리 내는 도무지 끊이지 않는 프랑스어 말소리가 뒤에 들려오는 것 같아서 부르르, 몸이 떨리기도 했다. (나는 혀가 입안에서 굴러가는 듯한 느낌의 언어의 소리를 너무나도 싫어한다. 프랑스어나, 스페인어 같은... 그래서 그 두 나라의 영화도 잘 보지 못한다.) 하지만 그렇게 진절머리 날 정도로 쏟아낸 문장들 덕분에 많은 것을 깨닫고, 느낄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사진이라는 장르의 예술에서 큰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최근 수원시립미술관에서 보았던 어윈 올라프의 사진전 덕분에 조금 진지하게 사진이라는 장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이 책은 '찍는다는 행위의 철학'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시작은 회화에서 시작되었고, 그리고 끝 역시 그림으로 마무리 지었다는 이 수미쌍괄 식인 삶의 궤적이 참 흥미롭다. 젊은 시절, 파리의 초현실주의자들과의 교류와 영화를 찍고 싶어 해 장 르누아르와 함께 작업을 했던 것이 그의 사진의 남다른 지점을 만들어내는데 큰 공헌을 헀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조지 6세의 대관식 날 주인공이 아닌 그 주인공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사진을 찍은 브레송을 두고 만약 그가 중세에 태어났다면 호화롭게 장정된 책의 가장자리 장식에 관심을 쏟았을 거라는 피에르 아술린의 글에 쿡쿡 웃음 지으며 나는 그동안 '유명한 사진작가, 그러나 관심 없는.' 상태였던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에게 단숨에 반하고 말았다. 브레송이 주인공이 아닌 대중을 향해 카메라를 들었던 것은 소외되고 버림받은 소시민에게 눈길을 줄 수 있는 태도를 가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것이 '지금 이 순간의 진실을 포착할 수 있는(p.265) 일'임을 잘 알았기 때문이을 것이다. 나는 이러한 그의 태도에 뒤늦게 반해버린 것이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을 표현하는 단어는 많겠지만 나는 이 책에서 '비순응주의자'라는 단어가 참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그가 자기 같은 비순응주의자를 위한 책이며, 사진에 관한 최고의 지침서라고 말한 오이겐 헤리겔의 책, <마음을 쏘다, 활>이라는 책이 너무나도 궁금해졌다. 어떤 내용이기에 '그간 찾아 헤매던 간단명료한 원칙들이 담겨 있었다(p.314)'고 했는지 말이다.


책은 차곡차곡 영웅의 서사시를 쌓아올린다. 그림에서 영화로의 이동과 3년간 독일군의 전쟁 포로로 지내며 어떠한 어려움을 겪었는지를, 그리고 그 체험이 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지나, 우리에게 잘 알려진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활약은 챕터 5의 후반부터 시작된다. 뉴욕에서의 활동, 매그넘 포토사의 시작, 매그넘의 멤버들과 함께한 가치들, 그리고 인도, 파키스탄, 버마(미얀마), 중국 등지에서 한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시대가 태어나는 격동의 현장 속에서 이제 우리에게 너무나도 유명해진 사진들을 건져올리는 순간들까지. 인도의 영화감독, 사티아지트 라이가 표현한 브레송이야말로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그가 찍은 사진이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를 우리에게 제대로 설명한다.


카르티에 브레송은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디테일을 
기념비적 순간으로 변모시킬 줄 아는 힘을 가진 예술가라고 생각한다.
아름다움을 창조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게 하는 부분들을 
걷어낼 수 있게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게 하는 부분들을 걷어내는' 사진. 나는 이것이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사진을 설명하기에 아주 좋은 문장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고, 그동안 왜 그렇게 감흥 없이 그의 사진을 보았을까 스스로에게 반문하게 되었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무엇을 걷어냈는지를 알아차리지 못한 둔함 때문이었으리라. 이 책 덕분에 좀 더 맑아진 눈으로 그의 사진을 들여다볼 수 있을 것 같다. 다행히 지난 6월부터 예술의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던 그의 사진전이 일주일 연장되었다고 한다. 이번 연휴에 들러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그의 사진을 오래 들여다보며, 이 책에 사진자료가 많지 않아서 아쉬웠던 마음을 달래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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