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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트로이카 - 1930년대 경성 거리를 누비던 그들이 되살아온다
안재성 지음 / 사회평론 / 2004년 8월
평점 :
픽션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 논픽션의 마케팅 대상은 1. 남한 근대사를, 특히 해방 전후사를 좌절의 역사로 인식하는 일단의 민족주의 성향의 독자들과 2. 일제하 사회주의/노동 운동에 관심이 있는, 전자보단 적은 수의 독자들이 아닐까 싶다. 소재 자체가 내적으론 이미 반세기 이상, 외적으론 사회주의권 붕괴 십수년째이니 이념적 측면에서의 논쟁성은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필자 본인도 변혁 혹은 체제 논쟁의 방편이나 사회주의 연구의 관점에서 책을 쓴 것이 아니라 '그 시대를 치열하게 살았던 자들의 장렬한 패배' 를 기록하는 것이 주된 의도임을 밝힌다. 책의 미덕과 한계도 거기서 별로 다르지 않다.
그러나 그 패배의 또다른 의의를 강조하기 위하여 의료보험과 주5일 근무제 등을 언급한 것은 좀 생뚱맞아 보인다. 한국에서의 의료보험은 보험이 아니라 중고가 이상의 치료와 약물엔 전혀 해당이 되지 않는 할인 제도에 가깝고, 독일-일본-남한으로 이어지는 국가-관료주의가 70년대말 기획하여 시행한 종합사회대책의 일환이다 (사회주의와 계획경제와의 상관관계는 정치적 호불호의 관점에서 간단히 정리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박정희와 다른 개발독재 관료들에 미친 일본의 영향 등도 면밀히 검토되어야 할 문제이지만 아직 학문적 연구가 부족한 상황이다, 물론 작금의 한국 정치판에서 정치적 프로파간다론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주 5일 근무제 역시 전면적 사회주의가 아닌 (체제내 타협의 길을 걸어온) 사민주의/노동자 정당이 고용불안정과 구조조정에 대응코저 제시한 고육지책이라 할 수 있고, 그런 식의 사회적 타협마저 그냥 사회주의의 공으로 갖다 붙이기엔 사회주의의 과거와 현재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이념적으로 경직되어 있는 한국 상황을 염두에 둔 약간의 정당화로 가볍게 볼 수도 있지만, 패배와 좌절이 참혹하였다면 참혹한대로 쓰면 될 일이다.
p.s 주변부 활동가/지식인들의 숙명은 지금도 여전히 반복된다. 당시 중국과 러시아와 미국으로 달려간 자들과 국내에 남은 자들의 달라진 운명은, 보수정당에 발빠르게 입문한 자들과 끝내 현장에 남은 자들의 그것과 별로 다를 것이 없지 않은가. 그래도 과거엔 신념과 처세술이 어느정도 일치한 반면, 지금의 전직 운동권들은 달라진 세계관을 해명하지도 않은채 출세의 겅력으로만 이용해 먹는다는 점에서 가히 후생각고라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