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 모서리 문학과지성 시인선 130
김중식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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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밤에 문득 잠들기 직전, 이 시가 떠올랐다. 딱히 시를 생각하고 있던 것도 아닌 그 때, 불을 끄고 눈을 감은 그 때, 내게 떠올랐다.  

  '떠올랐다'는 표현이 맞는다. 내 안 어딘가에 잊혀져 있다가 가만히 나타난 이 글은. 이 시집  "황금빛 모서리"의 첫 번째 시다. 

   
 

                 이탈한한 자가 문득 

  우리는 어디로 갔다가 어디로 돌아왔느냐 자기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돌았을 뿐이다 대낮보다 찬란한 태 

양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한다 태양보다 냉철한 뭇별 

들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므로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이다 집도 절도 죽도 밥도 다 떨어져 빈 몸 

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보았다 단 한 번 궤도를 이탈 

함으로써 두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 

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지만, 그래도 획 

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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