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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을 생각한다
김용철 지음 / 사회평론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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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슨이 심각한 표정으로 홈즈의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온다>

 

즈 : 여, 왓슨, 어서 오게. 왜 그렇게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다니나?

 

왓슨 : 홈즈, 지난 주에 내가 자네에게 부탁한 건 어떻게 됐나? 책 한 권이 이렇게 생활을 흔들어 놓다니...

 

홈즈 : 일단, 나가서 허기나 좀 면하고 들어 오자구. 마음이 심란한 건 의사인 자네도 어쩔 수 없는 모양이군. 하하. 하지만 속이 든든해지면 좀 나아 질걸세.

 

<식사 후, 다시 홈즈의 사무실>

 

왓슨 : 자네 말이 맞군. 친구와 함께 가정식 백반이라도 한그릇 먹고 나니 힘이 나는 걸. 기분도 좀 풀리고.

 

홈즈 : 홍차 한 잔씩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게 어떨까?

 

왓슨 : 좋지.

 

홈즈 : 자네 지난 주에 내게 왔을때 이 책 <삼성을 생각한다>를 두고 갔네. 몹시 분노하면서 말이야. 그리고 내게 일독을 권했네. 그 뒤에 자네가 내게 했던 부탁이 뭐였지? 왓슨.

 

왓슨 : 홈즈, 사실 나는 <삼성을 생각한다>를 읽을까 말까 생각하면서 몇 번이나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네. 2007년 10월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변호사 김용철의 재벌 비리 폭로에 대한 책이라걸 알고 있었으니까. 불편하고 부담스러웠네. 애써 무관심하고 싶었네. 냉소적 입장이었다고나 할까. 그러면서도 난 읽었고 여러가지 복잡한 심경에 사로잡히고 말았네. 이를테면 재벌에 대한 분노, 검찰과 정부에 대한 절망감, 이 나라 국민인 것에 대한 수치심, 힘없는 개인인 것에 대한 서글픔,  괜히 읽었다는 후회 같은 감정들이 통제할 사이도 없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져버렸네. 모두가 등을 돌린 김용철 변호사에게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있었다면 나는 절친 홈즈가 있다고 생각했네. 자네가 <삼성을 생각한다>를 읽는다면 내 이 복잡한 심경에 질서를 부여하고 다시 용기, 희망, 자신감을 회복시킬 뭔가를 찾아내서 나를 위로해주리라 믿었지.

 

홈즈 : 아직까지 그 복잡한 심경이 해결되지 않았구먼, 왓슨. 자네는 이렇게 말했네. '홈즈,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라고 말일세. 참 모호한 말이었지만 난 <삼성을 생각한다>를 나름 꼼꼼하게 읽으며 자네의 모호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시작했네.

 

왓슨 : 그래서? 홈즈, 뭔가 찾아냈단 말인가?

 

홈즈 : 찾아냈지. 들어볼텐가?

 

왓슨 : 자네 내 속이 이렇게 타들어 가고 있는데 그러지 말게. 어서 말해보게.

 

홈즈 : 하하, 웃자고 한 소리네. 왓슨, 여유를 가지라구. 나는 먼저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자네의 질문부터 따져봤네. 왓슨, 사실 이 질문은 자네가 던질 질문이 아니네. 사실은 이 질문은 재벌비리문제를 둘러싼 당사자들이 해야될 질문이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삼성을 생각한다>를 읽은 왓슨, 자네가 이 질문을 한다는 건 이 문제를 자네의 문제로 받아들인다는 뜻이겠지? 나는 거기서부터 출발하고 싶네. 자네에게 이런 질문을 하게 만든 것만해도 <삼성을 생각한다>는 소기(所期)의 목적을 달성한 셈이지.  

 

그러나 더 무서운 것은 국민들의 냉소다.(중략) 이런 반응은 위험하다. 썩은 현실을 직시하는 것과 현실 앞에서 체념하고 냉소하는 것은 다른 차원이기 때문이다. 현실이 절망적이라는 게 희망을 포기할 이유가 될 수 없다. 체념과 냉소를 전염시키는 일 역시 부패의 공범이다. "다 그런 거지"라는 체념과 냉소 속에서 부패는 관행이 되고, 결국 거스를 수 없는 구조가 된다. <삼성을 생각한다> 386p

 

하여간, 왓슨, 인간이라면 누구나 '나'로 살아갈 권리가 있네. 그 무엇에도 휘둘리지 않고 나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자존감을 지키며 독립적으로 자유롭게 살아갈 권리 말일세.

 

왓슨 : 그건 당연하지. 자신의 삶을 남처럼 살려고 하는 사람이 있을까?

 

홈즈 : 글쎄, 아마 없을걸세. 아니 일단 없다고 가정하세. 하지만 왓슨, 나는 내 삶을 살고자 하지만 내 통제능력을 뛰어넘는 어떤 거대한 힘이 있다면? 그래서 그것이 나를 내 의지와는 달리 나를 통제하고 조종한다면? 그때는 어떻게 하겠나?

 

왓슨 : 음... 그런 것이 있단 말이지?

 

홈즈 : 물론이네.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고 우리 생활에 깊이 스며들어 있어 익숙한 것이지. 그건 바로 자본이네. 쉽게 말하면 돈이지. 돈이 우리를 통제하는 순간 우리의 삶은 휴지조각 처럼 구겨져 버린다네. 그러면 <삼성을 생각한다>에 대한 자네의 질문에 대답이 되는 책을 한 권 소개할까 하네. 고전평론가, 고미숙의 <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네.

 

돈을 펑펑 뿌리면서, 나는 늘 사육당하는 기분이었다. 내가 돈을 마구 쓰도록 부추겼던 자들은 내가 회사를 위해 돈을 벌어오기를 바라지 않았다. 좋은 제품을 만들어 내거나, 상품을 많이 팔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조직을 이끄는 역할을 기대한 것도 아니다. 그들은 내게 쥐어준 돈으로 사법부를 길들이기를 원했다. 내 청춘을 고스란히 묻었던 검찰이, 그들이 뿌린 돈으로 썩어가는 것을 보는 일은 괴로웠다. 그들이 내게 맡긴 역할에 충실할수록 괴로움도 깊어갔다. 결국 몸이 못 견뎠다. 하루 종일 코피가 흘렀다. (중략) 그리고 당뇨병, 고혈압, 고지혈증, 전립선염, 지방간으로 인한 간 기능 저하…. 온갖 병이 한꺼번에 나를 덮쳤다. 피비린내가 가시지 않는 입에 약을 한주먹씩 털어 넣을 때마다, 나는 휴지처럼 구겨진 내 삶을 확인했다. <삼성을 생각한다> 18p

 

억지로 하기 싫은 일을 하면서 돈을 벌다가는 과로사 아니면 우울증에 걸리기 십상이다. 실제로 우리 주변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과로사나 자살충동은 단지 경쟁이 치열하거나 일이 많아서가 아니라, 일과 몸 사이에 극심한 소외가 빚어질 때 일어난다. 그 간극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건 몸과 마음이 극도로 분리되었다는 뜻이기도 하고, 일 따로, 몸 따로 그리고 마음 따로. 이런 징후가 감지되면 어떤 직업이건 당장 멈추어야 한다. <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 139p

 

돈에게 삶의 주도권을 내어주는 순간, 우리는 몸도 마음도 죽음에 직면하게 되는 거라네.

 

왓슨 : 돈이라...좋아, 홈즈. 재벌비리의 문제를 자본 측면에서 계속 논의해 보자구. 사실 김용철 변호와 사제단이 공개한 재벌의 비리는 크게 세 범주로 나뉘네. 첫째, 조직적인 비자금 조성 및 탈세와 이를 감추기 위한 회계조작,  둘째, 경영권 불법 세습 및 이 과정에서 저지른 법정 증거 조작, 셋째, 정·관·법조·언론계에 대한 광범위한 불법 로비지. 모두 돈과 관계가 되는군.

 

홈즈 : 그렇지. 돈과 관계를 가지는 것 이상이라고 생각하네. 돈이 모든 걸 좌우하는 형국이지. 어쨌든 이 세 범주를 잘 살피면 결국 하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라는 걸 금방 알 수 있네. 그건 '경영권 불법 세습'이지. 불법을 동원해 가면서 비자금을 조성하는 이유는 불법 로비를 위한 자금으로 활용하기 위해서이고 불법 로비를 하는 이유는 경영권 불법 세습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라네.

 

왓슨 : 결국 경영권 불법 세습이 의미하는 건 그들만의 왕국을 공고히 하고 그 국가 위의 권력을 대를 이어 유지해 나가겠다는 것이군.

 

홈즈 : 정확하게 읽어냈네, 왓슨. 오직 총수 일가(一家)만을 위해 충성을 맹세하는 측근들,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총수 일가, 불법로비를 통해 광범위하게 관리되는 인맥, 무슨 왕조나 범죄조직같지 않나?  이런 조직 문화 속에서 무슨 다양성이 존재하며, 개인의 자유가 존재하겠나? 황제의 눈치를 보는데 경영자가 정상적인 판단력을 기를 수 있겠나? 희생과 노력한 구성원에 대한 정당한 평가와 보상이 이뤄지겠나?

 

삼성 사장단 회의에 참석한 사장들은 회의 시작 몇 시간 전부터 물을 마시지 않는다. 소변이 마려울까봐서다. 이건희가 화장실에 가지 않기 때문에, 자신들도 화장실에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사장단 회의에서 삼성 비리에 관한 검찰 수사가 안건으로 올라오면, 사장들이 일제히 충성맹세를 한다. 자신들이 회장을 대신해서 감옥에 가겠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범죄 영화의 한 장면으로도 손색이 없다. <삼성을 생각한다> 101p-102p

 

실제로 반도체, 휴대폰 등에서 삼성이 거둔 성과는 눈부셨다. 그 뒤에는 백혈병 위험을 부릅쓰고 반도체 생산라인에서 땀 흘린 노동자들의 희생이 있었다. 더 편하고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길을 마다하고 새벽까지 연구실을 지킨 연구원과 기술자들의 노력도 빠뜨릴 수 없다. 그러나 이런 희생과 노력의 성과를 챙긴 것은 엉뚱한 자들이었다. 삼성 구조본 임원들은 반도체, 휴대폰의 개발, 생산, 판매 등에 기여한 일 없이도 가장 높은 보수를 받았다. 단지 보수만 많이 받은 게 아니었다. 그들은 실제로 회사에 돈을 벌어오는 이들, 실제로 기술을 개발한 이들 위헤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며 군림했다. <삼성을 생각한다> 273p

 

비노바 바베는 평생을 공동체 운동을 했으면서도 늘 '조직으로부터의 자유'를 주창했다. "큰 규모로 일을 하기 위해서 시작된 집단은 그 자체의 조직을 강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게 마련이다." 하지만, "조직을 가지고는 결코 혁명을 이루어 낼 수 없다." "조직은 틀이며, 그것은 지배력을 유지하는 방법이다. 조직 안에 있으면 우리는 하나의 고정된 도식을 따라서 일해야 하고, 또 다른 사람도 그렇게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조직에는 정신의 자유가 없다."(<비노바 바베>, 265쪽) 그렇다. 중요한 건 삶이고 자유인 것이지 조직 자체가 결코 아니다. 조직을 위해 공동체를 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 주체들이 잘살기 위해서 다방면으로 네트워킹을 하다 보니 공동체가 된 것뿐이다. 이 점을 결코 혼동해서는 안 된다. <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 177p

 

왓슨 : 자신이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닌데도 상속을 해 주는 것이 부모된 도리일까? 경영 능력이 입증된 것도 아닌데 계열사 포함 25만이 넘는 임직원을 거느릴 수 있는 경영권을 넘겨주는 것이 과연 올바른 것일까? 그렇다고 자녀가 최소한의 도덕성을 가진 것도 아니고 대중과 서민의 삶이라고는 겪어 본 적이 없어 그들에 대한 공감과 이해도 못하는데 말일세.

 

홈즈 : 그러게나 말일세. 오직 그들만의 왕국에서 나고 자란 이 사람들이 공동체의 정을 알기나 알까? 진정한 친구는 있을까? 공부라도 제대로 했을까?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날 뿐이네.

 

나는 파티비용이 얼마나 들까 추산해 본 적이 있다. 이건희 일가의 파티에 초대된 손님 한 명당 와인과 음식 값이 50만 원쯤 든다. 파티 한 번 하면 손님이 300명쯤 오니까 먹고 마시는 비용으로 1억 5000만 원이 드는 셈이다. 여기에 공연과 간단한 선물이 곁들여지는 게 통례다. 선물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금박을 입힌 초콜릿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공연과 선물비용이 수억 원쯤 되니까, 파티비용은 10억 원쯤 될 듯하다. <삼성을 생각한다> 229p

 

그래서 그들은 보통 사람들과 따로 떨어져 살고 싶어 했다. 보통 사람들과 공간적으로만 거리를 두려 한 게 아니다. 옷차림과 장신구, 식사 등까지 남들과 거리를 두려 했다. 다른 신분을 가진 그들만의 공동체, 그 안에도 여느 공동체처럼 따뜻한 정이 흐르고 있을까. <삼성을 생각한다> 234p

 

자식은 어려서는 내가 보호하고 거두어야 하지만, 자라서는 나와 함께 길을 가는 인생의 동반자다. 인도의 한 전설적인 현자 마누는 이렇게 말했다. "아들이 열여섯이 되면 그를 친구로 대해야 한다."(<비노바 바베>,84쪽) <동의보감>에서도 남자는 열여섯부터 성인의 단계로 접어든다고 했다. 물론 시대마다 나라마다 성인이 되는 연령이 달라질 수는 있다. 어쨌거나 성인이 된 다음에도 부모가 계속 뒤를 봐줘야 한다면 그것 자체가 자식에게는 '인생의 실패'를 의미하는 게 아닐까. 그러므로 부모가 물려줘야 하는 건 유산이 아니라, '홀로서기'에 대한 훈련이다. 누구에게도 머리 숙이지 않고, 오직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는 독립심 혹은 자존능력! <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 78p

 

왓슨 : 아~, 홈즈. 자본이 우리 사회를 오염시키고 구성원들의 영혼을 병들게 하다니 또 그런 감정이 북받쳐오르는군. 하지만 나 역시 그런 오염 속에서 저항없이 살고 있었으니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수는 없겠지?

 

홈즈 : 왓슨, 너무 자책하지 말게. 우리가 배출하는 생활 하수나 쓰레기를 보게. 생활 하수는 하수도관을 따라 정화의 과정을 거친 다음 강으로 배출되네. 쓰레기도 그 종류와 양에 따라 분리되어 처리되고. 처리 과정에 문제가 생기면 환경은 오염되고 결국은 우리의 건강과 심지어 생명까지도 위협할 수도 있네. 사람사는 세상에 비리와 불법도 생기기 마련이지. 중요한 건 말이야, 그것을 처리하는 법과 제도가 제 기능을 해야된다는 것이네. 그러니 우리는 시스템이 잘 작동하는지 성실한 감시자의 역할을 하면 우리 사회가 더 투명해지지 않을까?

 

왓슨 : 그렇게 말해주니 위로도 되고 용기도 생기는데, 홈즈.

 

홈즈 : 혹시나 우리가 어느 한 편을 지지함으로써 잃게 될 기득권도 걱정하지 말게. 김용철 변호사는 이렇게 비리를 사회에 폭로함으로써 오히려 '진정한 친구'를 얻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네. 사실 돈으로 관리되던 인맥은 진짜 친구가 아니지.  

 

왓슨 : 홈즈, 막 성경 한 구절이 떠오르는구만.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개역개정 아모스 5장 2절) 우리 사회가 이렇게 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나?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첫 기자회견 때 발표한 성명서 앞머리의 '사람이 하나님과 돈을 함께 섬길 수 없다(마태복음 6장 24절)'는 성경 구절이 등장하네. 돈이 하나님이 된 사회, 물신(物神)이 주인인 사회를 벗어날 수 있다면 우린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지 않겠나?

 

홈즈 : 사람이 돈을 통제하고 그 위에 군림하는 사회, 그래서 그것이 우리에게 장난칠 수 없는 사회는 우리가 꿈꿀만 한 사회네. 돈을 버는 것만큼 쓰는 것이 행복하고 기쁜 사회, 내가 의도하지 않았는데 나의 행동때문에 누군가 도움을 입고 삶의 활력을 얻어갈 수 있는 사회를 위해 노력해나가야 되겠지. 그 노력 가운데 하나가 이렇게 자네와 나처럼 책을 읽고 공부하며 밥을 함께 먹고 삶을 나누고 행동을 바꿔나가는 것이 아닐까? 그 재벌일가도 책읽고 진짜 공부 좀 했으면 좋았을 걸. 아니 지금이라도 읽고 부지런히 배우면 좋을텐네 말이야.

 

쉽게 말하면, 나는 사람들과 더불어 무언가를 탐구해 가는 것이 최고의 삶이라는 것을 일찌감치 터득한 것이다. 어떻게? 다름 아닌 책을 통해서다. 책은 내게 끊임없이 가르쳐 주었다. 공부와 우정과 밥은 하나라는 것을.(중략) 그래서 알게 되었다. 재산이 많은 것과 풍요롭게 사는 것은 전혀 다른 개념이라는 것을. <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 136p

 

왓슨 :  동의하네, 홈즈. 비록 내가 하는 작은 일들이 큰 변화를 가져오지 못한다해도 정의로운 일이라면 기꺼이 할 작정이네. 그것이 아이들을 위하고 나의 자존감을 지키는 길이니까. 고맙네, 내 고민을 자네 고민처럼 같이 해 줘서 말이야.

 

홈즈 : 천만의 말씀이야, 왓슨. 오히려 내가 삶을 성찰해보며 많이 배웠네. 조심해서 돌아가게.

 

이들은 말한다. "정의가 이기는 게 아니라, 이기는 게 정의"라고, "질 게 뻔한 싸움에 뛰어드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내 생각은 다르다. 정의가 패배했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는 것은 아니다.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도 아니다. "정의가 이긴다"는 말이 늘 성립하는게 아니라고 해서, 정의가 패배하도록 방치하는 게 옳은 일이 될 수는 없다. 나는 삼성 재판을 본 아이들이 "정의가 이기는 게 아니라, 이기는 게 정의"라는 생각을 하게 될까봐 두렵다. 그래서 이 책을 썼다. <삼성을 생각한다> 44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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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호모 쿵푸스 실사판] 공부는 셀프!
    from 그린비출판사 2011-03-30 15:07 
    ─ 공부의 달인 고미숙에게 다른 십대 김해완이 배운 것 공부의 달인 고미숙 선생님. 몸으로 하는 공부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적절한 계기(혹은 압력?)를 주시곤 한다.공부가 취미이자 특기이고(말이 되나 싶죠잉?), ‘달인’을 호로 쓰시는(공부의 달인, 사랑과 연애의 달인♡, 돈의 달인!) 고미숙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공부해서 남 주자”고. 그리고 또 말씀하셨다.“근대적 지식은 가시적이고 합리적인 세계만을 앎의 영역으로 국한함으로써 가장 ...
 
 
 
염소의 축제 1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1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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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왓슨이 홈즈의 사무실에 문을 열고 들어선다>  

홈즈 : 왓슨, 도미니카 공화국에 대해 아는대로 말해 줄 수 있겠나?    

왓슨 : 허, 만나자 마자 도미니카 공화국이라니? 

홈즈 : 미안하네, 하하. 어서 오게. 그래 잘 지냈나? 왓슨. 

왓슨 : 잘 지냈네. 근데 갑자기 도미니카 공화국이라니 대체 무슨 말인가? 

홈즈 : 여기 앉아서 커피 한 잔 하게. 처음부터 다시 이야길 시작하세. 

왓슨 : 아, 따뜻한 커피 한 잔. 이 추운 날씨에 정말 축복이구만, 좋아.   

홈즈 : 그래, 우선 몸부터 녹이면서 들어 보게. 지난해(2010) 노벨 문학상 수상자부터 이야기부터 해 볼까? 혹시 자네 누가 수상했는지 알고 있나? 

 왓슨 : 노벨상이라면 전 세계인이 관심을 갖는 상이잖나. 대중 매체에서는 거의 실시간으로 알려주고 말이야. 내 기억이 맞다면 작년에는 페루 출신의 작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가 수상했지 아마. 

홈즈 : 우~, 왓슨, 대단한데. 난 중남미 작가의 작품이라고는 읽어 본 적이 별로 없네. 내 책읽기가 얼마나 편협한가에 대한 방증이지. 하여간 이번에 난 페루 작가 바르가스 요사가 노벨상을 수상하는데 큰 영향을 준, 도미니카 공화국의 독재를 다룬 작품, <염소의 축제>를 만나는 행운을 얻었네. 

왓슨 : 행운이라.. 그렇지. 우리가 평생동안 만나는 책이 얼마나 제한적이겠나? 또 한 번 읽은 책을 다시 읽을 가능성은 또 얼마나 되겠나? 그러니 우리는 구미에 맞는 책만 골라 읽을 확률이 높지. 그런 점에서 앎의 지평을 넓혀주는 책과의 만남은 행운이라 할 수 있겠군 그래. 

홈즈 : 생소한 작가에다 도미니카 공화국이라는 나라의 배경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로 <염소의 축제>에 발을 들여 놓는 건 참 낯설고 어색하면서 한편으론 설레기도 했네. 그런데 말이야, 왓슨, <염소의 축제>라는 작품에 빠져들수록 익숙하고 낯익은 내용이라는 느낌이 들더군. 

왓슨 : 그것 참 흥미롭군. 홈즈. <염소의 축제>라는 작품명도 흥미롭고 자네의 그 낯설면서 낯익다는 느낌도 흥미롭고. 먼저 제목부터 설명해 줄 수 있겠나? 

홈즈 : 그럴까. 아니야, 왓슨. 내가 설명하는 것보다 <염소의 축제>를 옮긴 송병선의 해설 부분을 읽어보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군.  

제목인 <염소의 축제 La Fiesta del Chive>도 어느 정도 소설의 내용을 예시하고 있다. 스페인어에서는 책 제목을 쓸 때 영어와 달리 고유명사를 제외한 단어를 모두 소문자로 표기한다. 그런데 이 작품의 제목에서 '염소(Chive)'의 첫 글자는 대문자로 적혀 있다. 이 소설에서 일반적으로 음모자들은 트루히요를 '염소'라고 부른다. 이것은 도미니카 국민들이 독재자의 뒤에서 그를 지칭하기 위해 사용하던 별명인데, 트루히요 자신이 자랑하는 과도한 성욕과 그의 워낙 뛰어난 남성적 능력때문에 붙여진 것이다.(중략) 한편 '축제(Fiesta)'의 첫 글자도 제목에서는 대문자로 적혀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커다란 파티'를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독재자의 죽음을 의미하는 유혈 축제이다.(중략) 이렇게 소설의 제목인 '염소'라는 상징과 '축제'라는 용어는 독재자의 방탕함을 의미하며, 동시에 그의 권력을 영속화시키기 위한 통치 방법임을 상징한다. <염소의 축제2> 해설 379p  

왓슨 : 그러니까 홈즈, <염소의 축제>는 트루히요라는 독재자에 대한 이야기군.  

홈즈 : 맞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1930년 쿠데타로 도미니카 공화국의 정권을 장악한 후 1961년 암살당할 때까지 31년간 독재를 해 온 트루히요에 대한 이야기며, 트루히요를 추종하거나 저항했던 자들의 이야기며, 독재자에게 처녀성을 짓밟힌 소설 속 주인공, 우라니아의 이야기네.  

왓슨 : 쿠데타, 독재, 암살...짐작이 가는군. 낯선 제목 속에 낯익은 단어들이 툭 툭 튀어나오는 걸.  

홈즈 : 그렇지?  내가 왜 낯익은 내용이라는 느낌을 가지게 됐는지 이제 감이 좀 잡힐걸세. 근대 유럽 여러 국가들이 바닷길을 통해 발견한 신대륙을 식민지로 경영하지 않았나? 그들의 맹렬한 식민지 확장은 20세기 중반까지 계속되었고. 이후 1, 2차 세계대전을 통해 아프리카, 중남미,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이 제국의 식민지에서 독립을 선언하고 건국을 하지. 하지만 혼란한 정치 상황에서 힘을 가진 군부가 나라를 장악하는 것이 다반사였네. 군부독재의 역사는 식민지을 겪었던 대부분의 나라들이 거쳐가는 통과의례가 되었지. 도미니카 공화국도 예외는 아니었네. 대한민국도 그런 정치적 독재의 시기를 지나오지 않았나?  

왓슨 : 맞네, 홈즈. <염소의 축제>가 비록 지리적으로는 아주 먼 다른 나라의 이야기지만 내용상으로는 대한민국의 이야기로 읽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군. 

홈즈 : 동의하네, 왓슨. 문학의 장점이란 그런 것이네. 남의 이야기를 나의 이야기로 읽어낼 수 있는 것, 화석화된 과거의 역사를 생생한 현재의 실체로 살려내는 것 말일세. 그래서 말인데 왓슨, 난 <염소의 축제>를 읽고 나서 이런 의문이 생겼네. "2011년, 대한민국 사회의 독재는 끝났는가?"라는. 

왓슨 : 자네의 뉘앙스는 독재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걸로 들리는데... 

홈즈 : 왓슨, 인류가 멸종하지 않는 한 어떤 형태로든 독재는 사라지지 않을 걸세. 인간에게는 크든 작든 누군가에게 힘을 행사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고 행사한 힘이 개인이나 집단에 정신적, 육체적 억압의 형태로 나타난다면 그것은 독재의 모습를 띄게 될 것이네. 대한민국은 정치적으로 오랜 군부독재의 시절을 거쳐왔네. 1993년 문민정부가 탄생하기 전까지 장장 30년간이네. 도미니카의 트루히요가 1961년까지 31년간 독재를 하지 않았나. 아이러니하게도 대한민국의 군부 독재가 1962년에 시작됐으니 마치 트루히요의 바통을 대한민국이 이어받은 것 같지 않나, 하하. 뭐 하여간 그래서 지금 독재는 끝이 났나 말일세. 자넨 어떻게 생각하나? 

왓슨 : 글쎄, 홈즈. 독재는 그 규모가 다를 뿐 아직도 계속된다고 생각하네. 작게는 가정의 가장이, 학교의 교장이, 조직이나 단체의 장이 그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불법을 저지르는 일이 종종 언론을 통해 보도되기도 하니까 말이야. 

홈즈 : 그렇네. 독재는 정의에 대해서 고민하는 개인과 저항하는 조직을 유발한다네. 지난해 한국 사회에 돌풍을 일으킨 책들이 무엇이었는지를 보면 대한민국의 독재가 여전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네. 먼저 김용철의 <삼성을 생각한다>는 정치를 장악한 채 국가적 힘을 행사해오던 과거의 독재-특히 군부독재-는 사라지고 자본을 장악한 채 국가 위에서 군림하는 초국적 기업의 독재를 고발하고 있네. 그 막강한 자본의 독재 앞에서 개인의 항거는 당랑거철에 다름 아니지. 그래도 희망을 본 건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근래 인문서로서는 보기 드물게 장기간 베스트셀러 1위의 자리를 고수하며 '정의' 신드롬을 불려 일으켰다는 걸세. 책은 시대를 반영하고 우리는 책을 통해 시대 정신을 만들어 낸다네. 지난해 말까지 <정의란 무엇인가>는 60~70만부가 팔려나갔네. 그건 우리 사회가 정의롭지 않다는 반증이네. 다시 말해 정치, 경제, 사회 등 전 분야에 걸쳐 누군가가 힘을 독점하고 있다는 말 아니겠나? 힘을 독점하는 것은 독재의 기초라네. 하지만 희망적이지 않은가? 우리 사회에 정의에 목마른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이 말이야. 

왓슨 : 홈즈, 그렇다면 여전히 변형된 독재가 횡행하는 우리 사회가 어떻게 하면 독재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홈즈 : 좋은 질문이네. 하지만 나도 쉽게 답하기는 어려운 질문이군. <염소의 축제>에서 안토니오는 독재자 트루히요만 사라지면 나라가 더 아름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네. 순진한 생각이지. 독재자가 사라진다고 해서 독재가 사라지는 건 아닐세. 도미니카 공화국을 31년간 독재해온 트루히요가 암살당하고 나서 도미니카 공화국에 독재가 사라졌던가? 62년 군사 쿠데타로 시작해서 79년 사라진 대한민국의 새마을 정권 뒤에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존중하는 진정한 민주주의 정권이 들어섰던가? 독재자는 얼마든지 대체될 수 있다네. 독재자는 갔지만 독재를 잘 학습한 독재자는 얼마든지 더 있기 마련이지.   

제기랄! 어쨌거나 이곳은 아름다운 나라였다. 31년 동안 이 나라를 폭력으로 더럽히며 망가뜨린 그 독재자만 사라진다면 더욱 아름다울 것이다. 그 시기는 아이티가 점령했을 때나 스페인과 미국이 침략했을 때, 그리고 당파들과 권위적 지배 계층이 내전과 싸움을 벌일 때보다 더 폭력적이었고 가공스러웠다. 그리고 하늘과 땅에서부터 도미니카인들을 맹렬하게 습격했던 지진이나 허리케인과 같은 자연재해보다도 이 나라를 더 망가뜨리고 더럽혔다. <염소의 축제1> 138p  

그리고 독재는 독재자의 측근을 권력에 중독시켜 정상적인 판단을 마비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네. 수치스럽고 불의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고 해도 그때는 이미 독재의 단맛에 푹 빠져 어쩔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경우가 많지. 독재를 증오하면서도 독재를 위해 봉사하고 있게 된다네. 더군다나 독재는 언론을 통제함으로써 민중들의 눈과 귀에 원하는 것만 보여주고 들려 줄 수 있으니 진실을 왜곡하고 거짓을 포장하는 건 식은 죽 먹기지. 이러니 독재를 단번에 벗어난다는 건 한마디로 불가능하네. 혹 벗어난다 하더라도 언제든 독재의 시대가 다시 오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지. 아까도 말했듯이 정치적으로 독재의 시대를 지나온 우리는 이제 자본 독재의 시대를 살고 있으니까 말이야.   

그렇게 안토니오는 순진한 사람들과 바보들과 천치들을 능수능란하게 다루고, 인간의 허영심과 우둔함을 교묘하게 이용하고 착취하는 데 대가인 그 앞에 처음으로 굴복했고 패배했던 것이다.  <염소의 축제1> 142p   

그것은 두려움보다 더 난해하고 딱히 뭐라고 정의내릴 수 없는 것이었다. 마비 상태, 즉 결단력과 이성과 자유의지가 잠들어버렸기 때문이다. <염소의 축제1> 158p 

왓슨 : 아니 홈즈, 그럼 우리는 평생 단속(斷續)적으로 독재하에 살아가야 된단 말인가? 

홈즈 : 내 생각에 독재의 종식은 독재자의 처형이 아니라 독재에 길들여진 의식의 개혁에 있네. 무려 30년 동안 독재에 길들여진 우릴세. 의식의 개혁은 3주만에 이뤄지는 것이 아닐세. 그건 시간, 아니 세월이 필요하네. 그렇다고 그냥 세월만 가면 해결되는 건 아니지. 그냥 세월만 흘러간다면 우리의 의식은 개혁될 가능성은 희박해지네. 오히려 수동적으로 주입되는 엄청난 정보때문에 의식의 혈관이 파혈되어 우라니아의 아버지, 카브랄처럼 뇌졸중 상태가 되어버릴걸세. 심지어는 그 시절을 그리워하게 된단 말이야. 그렇지 않으면 앵무새처럼 독재 시대의 말을 끝도 없이 되풀이하든지 말이야.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우라니아처럼 책을 가까이 해야되지 않겠나. 그래서 책 속 텍스트가 우리의 의식에 산소를 공급하도록 해야된다고 믿네. 독재의 역사가 불쑥불쑥 악몽처럼 되살아나 현재의 나를 괴롭힌다고 해도 그 역사를 직시할 수 있도록 말이네.   

 어쩌면 이후에 들어선 정부들이 너무나 엉망이어서 많은 도미니카 사람들은 트루히요를 그리워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사람들은 권력 남용과 살인, 부패와 비밀 염탐, 격리와 두려움을 잊어버렸다. 공포는 이미 신화가 되었다. <염소의 축제1> 168-169p 

그녀는 그 시절에 관해 증언하는 책들로 빼곡한 드넓은 서재에서 그걸 읽었다. <염소의 축제1> 94p 

왓슨 : 그렇군. 의식의 개혁이라... 

홈즈 : 왓슨, 이제 주인공 우라니아 이야기를 하면 <염소의 축제>에 대한 내 이야기가 정리될 것 같네만. 

왓슨 : 잘 듣고 있으니 어서 해 보게. 

홈즈 : 우라니아는 49세의 미혼 여성으로 세계 은행에 근무하는 엘리트 여성이네. 14세에 도미니카를 떠나 미국으로 간 이후 35년간 단 한 번도 고향으로 돌아온 적이 없었다네. 그런데 49세가 된 어느 날, 그녀는 다시는 발을 딛지 않겠다던 고향으로 되돌아 왔다네. 일주일간의 휴가를 얻어서 말이지. 그 이유는 말이야. 35년동안 마음 속에 가두어 두었던 독재 시대의 상처로 얼룩진 소녀, 우라니아를 아버지와 친지들에게 끄집어 내 보여 주기 위해서 였다네. 우라니아에게는 그 순간이 독재의 완전한 종식이었을 걸세. 독재가 종식되면서 친지들과의 관계가 회복되지. 자신이 불모지라는 의식이 사라지지 않았을까?  그리고 조카 마리아니타는 젖과 꿀이 흐르는 희망의 땅이라는 생각이 들더군. 마지막 장은 아주 인상적이었다네. 

자신있게 말하지만, 날 부러워할 이유는 하나도 없어. 오히려 난 너희들이 부러워. 그래, 그래, 나도 알아. 고모와 너희들도 문제가 있고, 힘든 시기를 보냈고, 실망하고 절망하기도 했어. 그러나 가족이 있고 남편도 있고 아이들도 있고 친척도 있고 조국도 있어. 그런 게 바로 인생이겠지. 하지만 아빠와 총통은 나를 불모지로 만들었어. <염소의 축제2> 365p 

우라니아가 마리아니타에게 작별 인사를 하자, 마리아니타는 마치 그녀와 하나가 되고 싶다는 듯이, 그녀 안에 묻히고 싶다는 듯이 포옹한다. 그녀의 날씬한 몸이 마치 종잇장처럼 떨린다. "난 이모를 무척 사랑하게 될 것 같아요, 우라니아 이모." 그녀가 귀엣말로 속삭이고, 우라니아는 슬픔이 가득 차오르는 것을 느낀다. "매달 이모에게 편지를 쓸게요. 답장을 해도 좋고, 하지 않아도 좋아요." 우라니아는 가는 입술로 그녀의 뺨에 여러 번 키스를 한다. <염소의 축제2> 372p 

왓슨 :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와 겪어온 역경을 2세대에 들려주는 일은 참 소중하다는 생각이 드는 구만. 

홈즈 : 당연하지. 난 최소한 최근 100년의 역사는 가감없이 다음 세대의 아이들에게 꼭 가르쳐야한다고 생각하네. 그건 고리타분한 과거 이야기가 아니라 세대와 세대을 이어주고 말이 통하게 해주는 일종의 언어가 될 것이라 믿기 때문이지.  

왓슨 : 홈즈, 그 책 <염소의 축제> 나 좀 빌려 주게. 나도 역사 의식과 시대 정신에 대해 고민 좀 해 볼 수 있도록 말이야.

홈즈 : 빌려가게. 그래서 자네도 나도, 자네의 아이들도 독재의 시대를 마감시킬 역사 의식을 가져 보자구.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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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 전집 양장 세트 - 전9권 (2판) - 일러스트 500여 컷 수록 셜록 홈즈 시리즈
아서 코난 도일 지음, 백영미 옮김 / 황금가지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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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애하는 왓슨


왓슨, 지난 한 주 잘 보냈나?

나는 생각이 많은 한 주였네. 그건 자네가 지난 주 내 사무실에 왔을 때 불쑥 던진 한 마디 말때문이라네.

자넨 요즘 SBS 수목 드라마 <싸인>을 재미있게 보고 있다고 했네. <싸인>은 자네나 나나 흥미롭게 여길만해. 범죄가 일어나고 수사가 진행되지. 최첨단 현대과학을 총동원해 범죄를 처음부터 하나하나 재구성해내는 과정을 지켜보는 건 정말 흥분되는 일이네. 자네는 내게도 <싸인>시청을 강력하게 권하지 않았나. 그뿐아니라 자넨 마치 추리물이라는 장르의 매니아인양 2007년부터 방영되어 작년(2010)말 시즌3이 종영된 조선과학수사대 <별순검>, 최근 많은 과학범죄추리물의 원조격으로 2000년 미국을 뒤흔든 드라마 CSI 시리즈, 만화를 원작으로한 애니메이션 <명탐정 코난>에 이르기까지 쉬지도 않고 한참을 떠들었다네.(미안하네, 내겐 그저 자네가 수다를 떠는 걸로 보였네. 뭔가 스트레스를 받은 사람처럼 말이야.). 그렇게 장장 1시간 정도를 혼자서 즐겁게 떠들더니 무슨 바쁜 일이 있는 사람처럼 벌떡 일어서서 외투를 챙겨들었네. 평소 자네같지 않았네. 왓슨, 자네는 사무실 문을 열고 나서다 문득 뒤를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네. "홈즈, 우리가 언제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잊진 않았겠지. 그 말을 할 때 자네 얼굴에는 1시간동안 즐겁게 떠든 사람의 웃음기라곤 없었네. 그건 말이야. 최정상을 구가하던 운동선수가 혜성처럼 등장해 주목받고 있는 신인 선수를 잔뜩 칭찬한 후 쓸쓸하게 뒤돌아서는 모습같았네.

나의 생각 많은 한 주가 그렇게 시작됐네. 사랑하는 친구에게 위로가 될 말을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네. 진심으로.

왓슨, 우린 1887 <주홍색 연구>에서 스템포드 군의 소개로 처음 만났지. 베이커가 221B번지 하숙집에서 무려 123년이나 보냈네. 물론 자네는 결혼후 거길 떠났지만 말이야. 세월이 참 많이도 흘렀군. 세상이 많이도 변했고. 더군다나 자네가 말한 걸 곰곰이 생각해 볼 때 우리가 활동하는 미디어의 환경은 상상할 수 없이 달라졌네. 우리는 장편 4편과 단편 56편에서 지면(책, 잡지)상으로 활동했지만 지금 인기를 누리는 추리물의 인물들은 화려한 영상을 동반한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게임 같은 다양한 콘텐츠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네. 물론 자네도 알다시피 우리의 이야기도 200여편이 넘게 영화로 제작되었네. 바뀐 환경에 적응해야 했으니까. 하지만 왓슨, 내가 말하려고 하는 건 이러한 기술적 변화가 아니라네. 이제부터 내 이야기를 잘 들어보게. 셜록 홈즈 시리즈의 불멸의 이유에 대해 말해 보려고 하니까 말일세.

왓슨, 스킬(미디어)은 스토리를 이길 수 없네. 지난 120여년간 셜록 홈즈 시리즈라는 추리물은 하나의 거대한 삼각주를 형성했네. 이집트의 번영이 무엇때문이었나? 나일강이 만들어 놓은 비옥한 땅들 때문이었네. 기름지고 비옥한 토양없이 어떻게 울창한 삼림과 풍성한 먹거리를 기대할 수 있겠나? 우리가 퇴적해 놓은 60편의 작품은 지금 수많은 추리문학 작품들뿐 아니라 현대의 다양한 추리콘텐츠의 서식지가 되었다는 걸 기억하게. 스킬은 새로운 스토리를 만들 수 없네. 하지만 스토리는 또 다른 스토리를 잉태하는 자궁이 되네. 우리는 고전의 반열에 오른거라는 말일세.

사람들이 짧은 기간동안 관심을 가지고 열광하는 드라마, 영화같은 것에 좀더 관대해지게. 또 요즘 인기를 누리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물에 등장하는 가가 쿄이치로 같은 초짜들에게도 등을 두드려주는 여유를 가져보게. 시리즈가 세상에 나온 지 이제 고작 10년째고 히가시노 게이고가 추리물을 쓰기 시작한 것도 20년밖에 안됐네. 그리고 말이야, 10년 넘게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영화가 있던가? 없네. 급속도로 대중의 마음을 장악한 그 작품들-어떤 콘텐츠이건-은 바로 그 속도만큼 빠르게 다른 인물과 콘텐츠로 대체되며 대중들의 기억에서 사라진다네. 현대의 미디어를 장악하고 있는 자본은 하나의 콘텐츠가 장기간 대중과 동거하는 걸 원치않네. 다행히도 우리는 19세기말에 대중과 만나 이토록 장기간 전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 행운을 누리고 있지만 말이야. 그러니 선두에 서는 것이 앞서가는 것이 아닐세. 중심에 있어야 앞서 가는 것이지.

그리고 말이야, 왓슨. 어떠한 형태로든 추리의 땅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들은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자네와 나를 반드시 만나게 되어 있네. 드라마 <싸인>이나 <별순검>, CSI시리즈를 시청하든, 만화 <명탐정 코난>을 보든,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을 읽든 마지막에는 반드시 셜록 홈즈라는 인물을 만나려고 할 걸세. 결국 그건 등산로만 다르고 정상은 동일한 산에 오르는 것과 같다네. 대중음악을 사랑하는 21세기의 소년이 결국 1960년대 비틀즈와 조우하게 되는 것이 당연하듯이 말이야.

우리를 세상에서 몰아내려고 하던 시도도 있었네. 말하기도 부끄럽고 기억하기도 싫지만 말이야. 제일 어처구니 없었던 것은 바로 우리를 세상에 소개한 코난 도일 경이 무려 8년 동안 우리와 세상의 관계를 끊어버렸지. 자네도 생생하게 기억할 걸세. 1983년부터 1901년까지는 셜록 홈즈 시리즈 120여년의 역사상 암흑기였지. 도일 경이 그런 오판만 하지않았더라도 자네와 나의 이야기가 세상에 더 많이 소개됐을텐데 안타깝구만. 우리를 살려낸 건 독자들이었네. 작가를 뛰어넘는 명성을 얻게된 소설 속의 등장인물들이 많지만 그 어떤 인물도 우리의 그것을 따라올 순 없을걸세. 우린 1901년 <바스커빌 가문의 개>로 부활했네. 그때의 감격이라니. 지금도 가슴이 먹먹해 오는구만. 왓슨, 작가도 우리를 세상에서 사라지게 할 순 없었네.

또 다른 측면에서 우리가 불멸하는 이유는 CSI 시리즈가 최첨단 컴퓨터와 과학 장비를 동원하고 여러 사람이 업무를 분담하는 집단적 사건 해결을 보여준다면 셜록 홈즈 시리즈는 한 인간의 관찰과 직관이 얼마나 뛰어날 수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지. 그리고 언제나 사소한 생활 속의 기기묘묘한 사건들을 다룸으로써 강력하고 잔인한 현대의 추리물들-특히 미국 추리범죄 드라마들-에는 없는 향수와 낭만을 지니게 되었기 때문이네. 19세기 낭만의 향기는 현대 자본의 냄새를 환기시킬수 있는 하나의 수단이라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은 우리가 사용했던 마차, 전보, 기차, 지팡이, 확대경 같은 것들을 무척 그리워하게 되지. 그것 역시 산업과 자본의 세계에 편입되고 있지만 말이야.

논리적인 사람은, 바다를 보거나 폭포 소리를 듣지 않고도 한 방울의 물에서 대서양이나 나이가라 폭포의 가능성을 추리해 낼 수 있다. 그래서 인생 전체는 하나의 거대한 사슬이 되고, 우리는 그 사슬의 일부를 보고 전체를 알 수 있는 것이다. 다른 기술과 마찬가지로, 추론 및 분석의 과학은 장기간의 끈질긴 연구를 통해서만 익힐 수 있고, 유사한 인생살이에서 그것을 최고도로 완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 난해한 인간의 정신적 도덕적 측면에 눈을 돌리기 전에, 보다 초보적인 문제에 통달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게 좋다. 타인을 만날 때, 그 사람의 역사와 직업을 첫눈에 알아보는 법을 배우도록 하자. 그러한 연습이 철없는 행동으로 비칠 수도 있지만, 그것을 통해 관찰력을 기르고 어디를 보고 무엇을 찾아야 할 지 알 수 있게 된다. 상대방의 손톱, 코트 소매, 구두, 바지 무릎, 엄지와 검지에 박힌 못, 표정, 셔츠 소매......, 이러한 것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상대의 직업을 알 수 있다. 뛰어난 관찰자가 이 모든 정보를 가지고 추리에 실패한다는 것은 거의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 셜록홈즈 전집1 <주홍색 연구> 32-33p

(전략) 전에 내가 한 말 기억나나? 기기묘묘한 것을 찾으려면 삶 그 자체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인생은 항상 그 어떤 상상보다 더한 것을 보여준다고 했던 것 말일세. - 셜록홈즈 전집5 <빨간 머리 연맹> 49p


왓슨, 자네가 얼마만큼 내 말에 수긍했을지 모르겠네. 하지만 고전적이며 낭만적인 우리 이야기의 생존에 대해서는 걱정할 게 전혀 없네. 오히려 더 나은 스킬을 통해 우리의 스토리가 담겨질 뿐이지. 성경에는 이런 구절이 있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 개역개정 요한복음 1장 1절


종교적으로 해석한 건 아니지만 우리와 관련지어 내 나름대로 해석해 볼 때 말은 창조의 근원이지. 창세기에 따르면 신은 모든 것을 말씀으로 창조했으니까. 인류에게 스토리를 구성할 말과 글이 있는 한 우리는 죽음을 염려할 필요가 없네.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밤을 지세울 추리물을 찾고, 또수많은 추리작가들이 새로운 추리물을 창조해내고, 최첨단 미디어가 수많은 추리 콘텐츠를 생산해내는 한 우리의 왕국은 영원하며 우리 또한 영생(永生)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네. 하하.

이제 쓸데없는 걱정은 접어두고 자네가 문학의 대륙 끝에서 성공적으로 간척한 땅, <셜록 홈즈 전집>을 하나 하나 다시 읽어보도록 하게.


홈즈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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