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소의 축제 1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1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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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왓슨이 홈즈의 사무실에 문을 열고 들어선다>  

홈즈 : 왓슨, 도미니카 공화국에 대해 아는대로 말해 줄 수 있겠나?    

왓슨 : 허, 만나자 마자 도미니카 공화국이라니? 

홈즈 : 미안하네, 하하. 어서 오게. 그래 잘 지냈나? 왓슨. 

왓슨 : 잘 지냈네. 근데 갑자기 도미니카 공화국이라니 대체 무슨 말인가? 

홈즈 : 여기 앉아서 커피 한 잔 하게. 처음부터 다시 이야길 시작하세. 

왓슨 : 아, 따뜻한 커피 한 잔. 이 추운 날씨에 정말 축복이구만, 좋아.   

홈즈 : 그래, 우선 몸부터 녹이면서 들어 보게. 지난해(2010) 노벨 문학상 수상자부터 이야기부터 해 볼까? 혹시 자네 누가 수상했는지 알고 있나? 

 왓슨 : 노벨상이라면 전 세계인이 관심을 갖는 상이잖나. 대중 매체에서는 거의 실시간으로 알려주고 말이야. 내 기억이 맞다면 작년에는 페루 출신의 작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가 수상했지 아마. 

홈즈 : 우~, 왓슨, 대단한데. 난 중남미 작가의 작품이라고는 읽어 본 적이 별로 없네. 내 책읽기가 얼마나 편협한가에 대한 방증이지. 하여간 이번에 난 페루 작가 바르가스 요사가 노벨상을 수상하는데 큰 영향을 준, 도미니카 공화국의 독재를 다룬 작품, <염소의 축제>를 만나는 행운을 얻었네. 

왓슨 : 행운이라.. 그렇지. 우리가 평생동안 만나는 책이 얼마나 제한적이겠나? 또 한 번 읽은 책을 다시 읽을 가능성은 또 얼마나 되겠나? 그러니 우리는 구미에 맞는 책만 골라 읽을 확률이 높지. 그런 점에서 앎의 지평을 넓혀주는 책과의 만남은 행운이라 할 수 있겠군 그래. 

홈즈 : 생소한 작가에다 도미니카 공화국이라는 나라의 배경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로 <염소의 축제>에 발을 들여 놓는 건 참 낯설고 어색하면서 한편으론 설레기도 했네. 그런데 말이야, 왓슨, <염소의 축제>라는 작품에 빠져들수록 익숙하고 낯익은 내용이라는 느낌이 들더군. 

왓슨 : 그것 참 흥미롭군. 홈즈. <염소의 축제>라는 작품명도 흥미롭고 자네의 그 낯설면서 낯익다는 느낌도 흥미롭고. 먼저 제목부터 설명해 줄 수 있겠나? 

홈즈 : 그럴까. 아니야, 왓슨. 내가 설명하는 것보다 <염소의 축제>를 옮긴 송병선의 해설 부분을 읽어보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군.  

제목인 <염소의 축제 La Fiesta del Chive>도 어느 정도 소설의 내용을 예시하고 있다. 스페인어에서는 책 제목을 쓸 때 영어와 달리 고유명사를 제외한 단어를 모두 소문자로 표기한다. 그런데 이 작품의 제목에서 '염소(Chive)'의 첫 글자는 대문자로 적혀 있다. 이 소설에서 일반적으로 음모자들은 트루히요를 '염소'라고 부른다. 이것은 도미니카 국민들이 독재자의 뒤에서 그를 지칭하기 위해 사용하던 별명인데, 트루히요 자신이 자랑하는 과도한 성욕과 그의 워낙 뛰어난 남성적 능력때문에 붙여진 것이다.(중략) 한편 '축제(Fiesta)'의 첫 글자도 제목에서는 대문자로 적혀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커다란 파티'를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독재자의 죽음을 의미하는 유혈 축제이다.(중략) 이렇게 소설의 제목인 '염소'라는 상징과 '축제'라는 용어는 독재자의 방탕함을 의미하며, 동시에 그의 권력을 영속화시키기 위한 통치 방법임을 상징한다. <염소의 축제2> 해설 379p  

왓슨 : 그러니까 홈즈, <염소의 축제>는 트루히요라는 독재자에 대한 이야기군.  

홈즈 : 맞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1930년 쿠데타로 도미니카 공화국의 정권을 장악한 후 1961년 암살당할 때까지 31년간 독재를 해 온 트루히요에 대한 이야기며, 트루히요를 추종하거나 저항했던 자들의 이야기며, 독재자에게 처녀성을 짓밟힌 소설 속 주인공, 우라니아의 이야기네.  

왓슨 : 쿠데타, 독재, 암살...짐작이 가는군. 낯선 제목 속에 낯익은 단어들이 툭 툭 튀어나오는 걸.  

홈즈 : 그렇지?  내가 왜 낯익은 내용이라는 느낌을 가지게 됐는지 이제 감이 좀 잡힐걸세. 근대 유럽 여러 국가들이 바닷길을 통해 발견한 신대륙을 식민지로 경영하지 않았나? 그들의 맹렬한 식민지 확장은 20세기 중반까지 계속되었고. 이후 1, 2차 세계대전을 통해 아프리카, 중남미,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이 제국의 식민지에서 독립을 선언하고 건국을 하지. 하지만 혼란한 정치 상황에서 힘을 가진 군부가 나라를 장악하는 것이 다반사였네. 군부독재의 역사는 식민지을 겪었던 대부분의 나라들이 거쳐가는 통과의례가 되었지. 도미니카 공화국도 예외는 아니었네. 대한민국도 그런 정치적 독재의 시기를 지나오지 않았나?  

왓슨 : 맞네, 홈즈. <염소의 축제>가 비록 지리적으로는 아주 먼 다른 나라의 이야기지만 내용상으로는 대한민국의 이야기로 읽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군. 

홈즈 : 동의하네, 왓슨. 문학의 장점이란 그런 것이네. 남의 이야기를 나의 이야기로 읽어낼 수 있는 것, 화석화된 과거의 역사를 생생한 현재의 실체로 살려내는 것 말일세. 그래서 말인데 왓슨, 난 <염소의 축제>를 읽고 나서 이런 의문이 생겼네. "2011년, 대한민국 사회의 독재는 끝났는가?"라는. 

왓슨 : 자네의 뉘앙스는 독재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걸로 들리는데... 

홈즈 : 왓슨, 인류가 멸종하지 않는 한 어떤 형태로든 독재는 사라지지 않을 걸세. 인간에게는 크든 작든 누군가에게 힘을 행사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고 행사한 힘이 개인이나 집단에 정신적, 육체적 억압의 형태로 나타난다면 그것은 독재의 모습를 띄게 될 것이네. 대한민국은 정치적으로 오랜 군부독재의 시절을 거쳐왔네. 1993년 문민정부가 탄생하기 전까지 장장 30년간이네. 도미니카의 트루히요가 1961년까지 31년간 독재를 하지 않았나. 아이러니하게도 대한민국의 군부 독재가 1962년에 시작됐으니 마치 트루히요의 바통을 대한민국이 이어받은 것 같지 않나, 하하. 뭐 하여간 그래서 지금 독재는 끝이 났나 말일세. 자넨 어떻게 생각하나? 

왓슨 : 글쎄, 홈즈. 독재는 그 규모가 다를 뿐 아직도 계속된다고 생각하네. 작게는 가정의 가장이, 학교의 교장이, 조직이나 단체의 장이 그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불법을 저지르는 일이 종종 언론을 통해 보도되기도 하니까 말이야. 

홈즈 : 그렇네. 독재는 정의에 대해서 고민하는 개인과 저항하는 조직을 유발한다네. 지난해 한국 사회에 돌풍을 일으킨 책들이 무엇이었는지를 보면 대한민국의 독재가 여전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네. 먼저 김용철의 <삼성을 생각한다>는 정치를 장악한 채 국가적 힘을 행사해오던 과거의 독재-특히 군부독재-는 사라지고 자본을 장악한 채 국가 위에서 군림하는 초국적 기업의 독재를 고발하고 있네. 그 막강한 자본의 독재 앞에서 개인의 항거는 당랑거철에 다름 아니지. 그래도 희망을 본 건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근래 인문서로서는 보기 드물게 장기간 베스트셀러 1위의 자리를 고수하며 '정의' 신드롬을 불려 일으켰다는 걸세. 책은 시대를 반영하고 우리는 책을 통해 시대 정신을 만들어 낸다네. 지난해 말까지 <정의란 무엇인가>는 60~70만부가 팔려나갔네. 그건 우리 사회가 정의롭지 않다는 반증이네. 다시 말해 정치, 경제, 사회 등 전 분야에 걸쳐 누군가가 힘을 독점하고 있다는 말 아니겠나? 힘을 독점하는 것은 독재의 기초라네. 하지만 희망적이지 않은가? 우리 사회에 정의에 목마른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이 말이야. 

왓슨 : 홈즈, 그렇다면 여전히 변형된 독재가 횡행하는 우리 사회가 어떻게 하면 독재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홈즈 : 좋은 질문이네. 하지만 나도 쉽게 답하기는 어려운 질문이군. <염소의 축제>에서 안토니오는 독재자 트루히요만 사라지면 나라가 더 아름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네. 순진한 생각이지. 독재자가 사라진다고 해서 독재가 사라지는 건 아닐세. 도미니카 공화국을 31년간 독재해온 트루히요가 암살당하고 나서 도미니카 공화국에 독재가 사라졌던가? 62년 군사 쿠데타로 시작해서 79년 사라진 대한민국의 새마을 정권 뒤에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존중하는 진정한 민주주의 정권이 들어섰던가? 독재자는 얼마든지 대체될 수 있다네. 독재자는 갔지만 독재를 잘 학습한 독재자는 얼마든지 더 있기 마련이지.   

제기랄! 어쨌거나 이곳은 아름다운 나라였다. 31년 동안 이 나라를 폭력으로 더럽히며 망가뜨린 그 독재자만 사라진다면 더욱 아름다울 것이다. 그 시기는 아이티가 점령했을 때나 스페인과 미국이 침략했을 때, 그리고 당파들과 권위적 지배 계층이 내전과 싸움을 벌일 때보다 더 폭력적이었고 가공스러웠다. 그리고 하늘과 땅에서부터 도미니카인들을 맹렬하게 습격했던 지진이나 허리케인과 같은 자연재해보다도 이 나라를 더 망가뜨리고 더럽혔다. <염소의 축제1> 138p  

그리고 독재는 독재자의 측근을 권력에 중독시켜 정상적인 판단을 마비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네. 수치스럽고 불의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고 해도 그때는 이미 독재의 단맛에 푹 빠져 어쩔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경우가 많지. 독재를 증오하면서도 독재를 위해 봉사하고 있게 된다네. 더군다나 독재는 언론을 통제함으로써 민중들의 눈과 귀에 원하는 것만 보여주고 들려 줄 수 있으니 진실을 왜곡하고 거짓을 포장하는 건 식은 죽 먹기지. 이러니 독재를 단번에 벗어난다는 건 한마디로 불가능하네. 혹 벗어난다 하더라도 언제든 독재의 시대가 다시 오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지. 아까도 말했듯이 정치적으로 독재의 시대를 지나온 우리는 이제 자본 독재의 시대를 살고 있으니까 말이야.   

그렇게 안토니오는 순진한 사람들과 바보들과 천치들을 능수능란하게 다루고, 인간의 허영심과 우둔함을 교묘하게 이용하고 착취하는 데 대가인 그 앞에 처음으로 굴복했고 패배했던 것이다.  <염소의 축제1> 142p   

그것은 두려움보다 더 난해하고 딱히 뭐라고 정의내릴 수 없는 것이었다. 마비 상태, 즉 결단력과 이성과 자유의지가 잠들어버렸기 때문이다. <염소의 축제1> 158p 

왓슨 : 아니 홈즈, 그럼 우리는 평생 단속(斷續)적으로 독재하에 살아가야 된단 말인가? 

홈즈 : 내 생각에 독재의 종식은 독재자의 처형이 아니라 독재에 길들여진 의식의 개혁에 있네. 무려 30년 동안 독재에 길들여진 우릴세. 의식의 개혁은 3주만에 이뤄지는 것이 아닐세. 그건 시간, 아니 세월이 필요하네. 그렇다고 그냥 세월만 가면 해결되는 건 아니지. 그냥 세월만 흘러간다면 우리의 의식은 개혁될 가능성은 희박해지네. 오히려 수동적으로 주입되는 엄청난 정보때문에 의식의 혈관이 파혈되어 우라니아의 아버지, 카브랄처럼 뇌졸중 상태가 되어버릴걸세. 심지어는 그 시절을 그리워하게 된단 말이야. 그렇지 않으면 앵무새처럼 독재 시대의 말을 끝도 없이 되풀이하든지 말이야.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우라니아처럼 책을 가까이 해야되지 않겠나. 그래서 책 속 텍스트가 우리의 의식에 산소를 공급하도록 해야된다고 믿네. 독재의 역사가 불쑥불쑥 악몽처럼 되살아나 현재의 나를 괴롭힌다고 해도 그 역사를 직시할 수 있도록 말이네.   

 어쩌면 이후에 들어선 정부들이 너무나 엉망이어서 많은 도미니카 사람들은 트루히요를 그리워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사람들은 권력 남용과 살인, 부패와 비밀 염탐, 격리와 두려움을 잊어버렸다. 공포는 이미 신화가 되었다. <염소의 축제1> 168-169p 

그녀는 그 시절에 관해 증언하는 책들로 빼곡한 드넓은 서재에서 그걸 읽었다. <염소의 축제1> 94p 

왓슨 : 그렇군. 의식의 개혁이라... 

홈즈 : 왓슨, 이제 주인공 우라니아 이야기를 하면 <염소의 축제>에 대한 내 이야기가 정리될 것 같네만. 

왓슨 : 잘 듣고 있으니 어서 해 보게. 

홈즈 : 우라니아는 49세의 미혼 여성으로 세계 은행에 근무하는 엘리트 여성이네. 14세에 도미니카를 떠나 미국으로 간 이후 35년간 단 한 번도 고향으로 돌아온 적이 없었다네. 그런데 49세가 된 어느 날, 그녀는 다시는 발을 딛지 않겠다던 고향으로 되돌아 왔다네. 일주일간의 휴가를 얻어서 말이지. 그 이유는 말이야. 35년동안 마음 속에 가두어 두었던 독재 시대의 상처로 얼룩진 소녀, 우라니아를 아버지와 친지들에게 끄집어 내 보여 주기 위해서 였다네. 우라니아에게는 그 순간이 독재의 완전한 종식이었을 걸세. 독재가 종식되면서 친지들과의 관계가 회복되지. 자신이 불모지라는 의식이 사라지지 않았을까?  그리고 조카 마리아니타는 젖과 꿀이 흐르는 희망의 땅이라는 생각이 들더군. 마지막 장은 아주 인상적이었다네. 

자신있게 말하지만, 날 부러워할 이유는 하나도 없어. 오히려 난 너희들이 부러워. 그래, 그래, 나도 알아. 고모와 너희들도 문제가 있고, 힘든 시기를 보냈고, 실망하고 절망하기도 했어. 그러나 가족이 있고 남편도 있고 아이들도 있고 친척도 있고 조국도 있어. 그런 게 바로 인생이겠지. 하지만 아빠와 총통은 나를 불모지로 만들었어. <염소의 축제2> 365p 

우라니아가 마리아니타에게 작별 인사를 하자, 마리아니타는 마치 그녀와 하나가 되고 싶다는 듯이, 그녀 안에 묻히고 싶다는 듯이 포옹한다. 그녀의 날씬한 몸이 마치 종잇장처럼 떨린다. "난 이모를 무척 사랑하게 될 것 같아요, 우라니아 이모." 그녀가 귀엣말로 속삭이고, 우라니아는 슬픔이 가득 차오르는 것을 느낀다. "매달 이모에게 편지를 쓸게요. 답장을 해도 좋고, 하지 않아도 좋아요." 우라니아는 가는 입술로 그녀의 뺨에 여러 번 키스를 한다. <염소의 축제2> 372p 

왓슨 :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와 겪어온 역경을 2세대에 들려주는 일은 참 소중하다는 생각이 드는 구만. 

홈즈 : 당연하지. 난 최소한 최근 100년의 역사는 가감없이 다음 세대의 아이들에게 꼭 가르쳐야한다고 생각하네. 그건 고리타분한 과거 이야기가 아니라 세대와 세대을 이어주고 말이 통하게 해주는 일종의 언어가 될 것이라 믿기 때문이지.  

왓슨 : 홈즈, 그 책 <염소의 축제> 나 좀 빌려 주게. 나도 역사 의식과 시대 정신에 대해 고민 좀 해 볼 수 있도록 말이야.

홈즈 : 빌려가게. 그래서 자네도 나도, 자네의 아이들도 독재의 시대를 마감시킬 역사 의식을 가져 보자구.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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