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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인생을 이모작하라 - 생물학자가 진단하는 2020년 초고령 사회 SERI 연구에세이 18
최재천 지음 / 삼성경제연구소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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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예전에 '늙으면 죽어야지'라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사는 노인들을 종종 보았다. 그저 그런 말이려니 하면서 지냈는데, 어느덧 나도 이 말을 내뱉게 되는 시기가 다가오는구나 생각하곤 한다.

 

나이 때문일까, 요즘 인생 후반기를 주제로 하는 책들이 자주 눈에 띈다. 이 책도 그런 주제의 하나다. 나는 이런 책들-일종의 자기개발서는 우연히 읽는 게 아니라면 구입할 의향이 전혀 없다. 왜냐? 인생의 답이 있을까마는 (있던지 없던지) 책이 내 인생을 개발해줄 것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자극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사회생활에 찌들리면 의욕을 잃는 게 보통인가? 난 가끔 (사지도 않으면서) 로또에 당첨되어 편안하게 노후를 보내는 꿈을 꾼다. 하지만 그저 꿈일 뿐 실현될 현실이 아니다. 그저 상상-공상할 뿐.

 

힘을 잃은 중년-장년에게 필요한 것은 힐링일까? 좋은 단어겠지만, 요즘 개나 소나 어디서나 힐링을 외치는 바람에 난 뭘 말하는지 이해가 안된다. 게다가 새파랗게 젊은이들이 앞장서서 힐링을 찾고 있으니...

 

홀로살이.

어차피 세상에 나를 대신해서 인생을 살아가는 존재는 없다.

특히 마지막을 향해 가는 사람들에게는...

그래서 이 책의 제목

흐르는대로 허무하게 끝을 기다리는 대신 [무엇]을 새로 시작하자는 주문에 공감한다.

물론 [무엇]은 스스로 찾아야겠지만.

 

인생을 근시안으로 보는 대신 조금 더 길게 보는 연습이 필요할 듯하다.

그런 면에서 아직은 덜 늙은 젊은이들을 위한 책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이래저래 답은 없으니 답안지가 필요한 사람은 다른 곳을 살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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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ral Paik - 6.25 전쟁의 파워 리더 백선엽을 말한다
유광종 지음 / 책밭(늘품플러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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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뿔도 잘난 게 없지만 항상 남들을 무시하고 내 잘난 맛에 사는 게 인생 아닌가 싶은데,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려고 애쓰는 것도 나쁘다고 할 수는 없겠다.

 

그저 술자리에 들리는 소리들 몇마디를 통해서 사회를 재단하다 보니, 세상에 믿을 놈 없다든가, 다 도둑놈이라는 등... 남들이 하는 말 되뇌이면서, 그렇게 편리하게 생각하면서 지내고 있다.

 

그런데, 성인이라면 몰라도 (아마 성인이라고 해도 논란은 있을 것같지만), 세상에 100% 존경받는 사람은 없으니, 어느 정도 접어서 세상을 볼 줄 아는 습관도 갖추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역사는 항상 비극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즐거운 시절도 있겠지만, 내가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시대를 만들다 희생하신 무명의 여러 어른들, 리더로서 멋진 일을 이룬 분들, 앞으로도 그런 일을 하게될 동시대의 사람들, 또 다가올 사람들... 모두에게 감사드리고 싶다.

 

백장군이 시대를 잘 만나 새파랗게 젊어서 출세를 했든, 일제의 군인으로 살려고 했든, 독재시대에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지만... 어렵게 살았으리라 미루어 짐작을 하면서, 달고 싶었던 별이 쉽지는 않다고 생각을 하면서

 

우연히 집어든 책이지만 재밌게 읽었다. 전투의 현장에 가보고 싶다.

 

thank you, gene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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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과학을 탐하다 - 우리가 궁금해 하는 그림 속 놀라운 과학 이야기
박우찬 지음 / 소울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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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이라고 하면 음주-가무와 더불어 예술이라고 부르는 범주에 속한다고 알고 있다. 여기에다 왜 그리 되었는지 모르겠으나 체육까지 덧붙여서 예체능이라고 한다. 나에게 국한된 것인지 모르겠으나, 보통 이 분야에 대한 지식은 일천하지 않을까 싶다.

 

교과서에 보면 먼 옜적에 약간의 기쁨이 있을 때 잔치를 열었고, 춤주며 노래하고 때로 즐거운 기억을 벽에다 그리기도 했다고 한다. 이 땅의 옜 나라에서도 그랬다고 하고, 아프리카는 물론 아시아의 여러 지역에서도 고고학적 유물로 확인이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당시 사람들은 예술을 생활의 일부로 여긴 것이 아닐까? 물론 [예술]이라고 이름붙인 것은 아니었겠지만...

 

그런데 여러 해가 지난 뒤 (아마 수천년?), 더이상 예술(책의 주제롤 고려하여 미술)이 보통 사람들의 삶 속에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그래도 음악과 춤은 노래방이며 70-80년대 닭장, 요즘의 클럽(?)에도 있는 모양인데, 그림은 밥집 구석에 환경미화용 소품으로 가끔 보일 뿐이다. 대부분 유치원-초등학교 주변 미술학원, 중고교 시절의 미술시간에 접하는 게 전부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어찌하여 미술, 작가, 구경꾼 간에 극단적 괴리-분리현상이 일어났는지 알고 싶은가? 수천년 전 그림부터 시작하는 것은 아니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들어본 적이 있으며 그럭저럭 재미난 이야기 거리도 있는 오래된 명화부터 시작해서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요즘의 작품에 이르기 까지 도대체 어떤 자기발전 과정을 겪었는가? 이 책은 나름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 그것이 과학의 발전과 상응한다고...

 

글쓴이가 글솜씨를 2%만 더 발휘한다면 미술 문외한들에게 매우 매력적인 책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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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의 거짓말 - 명화로 읽는 매혹의 그리스 신화 명화의 거짓말
나카노 교코 지음, 이연식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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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마신화는 별로 아는 게 없고, 흥미도 없다. 게다가 미술은 더 그렇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그럴듯한?) 미술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은 이유가 등장했다. 이것은 마치 강요된 운명과도 같은 것이지만, 어느 정도의 자발성이 유발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미술에 전혀 관심도 없고, 재주도 없고, 아는 것도 없고, 알고자 하는 것도 없었으나, 내 주변에 미술로 먹고살겠다는 인물이 나타났기에 기본기를 갖추어야 할 필요가 생겼다.

 

이 책은 제목과 표지에서 미술에 대한 무지-무시-문외한의 시선을 끄는데 성공했다. 표지는 벌거벗은 여인이 뒷모습을 보인 채 어떤 남자와 진하게 포옹하는 장면을 내세우고 있다. 젊은이의 호기심을 끄는데 성공하는 순간이다. 호기심을 갖고 자세히 관찰하려는 독자/감상자에게는 잔잔하게 흐르는 배경음악이 필요하다. 여기에 바로 그리스 로마신화 혹은 이야기 거리가 필요한 것이다. 이미 그런 내용을 잘 알고 있다면 모르겠으나, 평범한 수준이라면 그림을 어떻게 읽는지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저자가 제시하는 그림 읽는 방법은 [너무 주눅들 필요 없다]가 아닐까? 보통 사람들은 [명화]라는 명칭에 휘둘려서 고상하고 엄숙하게 그림을 대하는 경향이 있으나, 사실 그림은 당시에 광범위하게 퍼진 소설같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라고 봐도 될 듯하다. 그러니 그림을 볼 때, [그림이 비싸거나 보물같아서 스스로 위축되어 공경하는 마음을 같는 것은 명화의 거짓말에 속는 것]이다. 곧 이야기 책을 읽듯이 대하는 게 정석이라는 메세지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그림을 어떻게 읽으라는 것일까? 자꾸 보면서 이야기를 수집하고 맥주에 안주삼아 농을 나누는 것도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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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비 납치사건 - 개정판
김진명 지음 / 새움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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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김진명 스타일의 재미있는 이야기다. 

나는 왕도 아니고, 왕의 아들도 아니고, 왕의 손자도 아니고, 왕하고는 아무런 혈연 관계가 없다. 아마 앞으로도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옜 왕조를 흠모하지 않고,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  오히려 그 모든 이들을 미워하는 마음이 내 가슴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것 같다. 

역사의 어느 시점에 어떤 사람이 나타나 혼란스러움을 그치고 지도자로 나서게 되면 두가지 가운데 하나가 될 가능성이 있다. 하나는 자신의 능력을 바탕으로 멤버들을 잘 다스리는 분이 되거나, 다른 하나는 능력을 벗어나는 욕심을 갖고 폭력적으로 지배하는 놈이 된다.  

누구나 전자를 원하지만 결국은 후자로 귀결되지 않았던가 생각해 본다. 그래서 왕조는 일어섰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우리가 살고있는 이 한반도의 왕조-국가들도 그렇게 되어왔다. 

조선이 망하는 순간에 있었던 왕-왕의 처-왕의 자식-왕족 들은 국부-국모-국자-국족이 아니라 그저 그런 인간들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모든 게 설명되고 괜시리 내 마음의 평정을 잃을 필요가 없겠다. 

문제는 조선이 倭에게 망했다는 것이다. 아주 철저히 능욕을 당하면서... 이것이 나를 답답하게 만든다. 맘에 안드는 조선의 마지막 왕족, 더 내키지 않는 왜-왜놈들이 조상들의 터전을 빼았았다는 사실이. 그리고 후손들은 그 상처 투성인 흔적때문에 한없이 시달리고 있는 것이...

소설 속의 심씨와 김군은 황태자비를 납치해서 무엇을 해결했을까? 倭와 관련된 역사의 질곡이 질기기만 하다... 언제까지 이런 맷힘을 가지고 가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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