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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동 한 그릇
구리 료헤이 지음, 최영혁 옮김 / 청조사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세상을 살다보면 힘들 때도 있고, 한없이 즐거울 때도 있다. 대체로 즐겁다가 힘들어지면 현재도 괴롭고 과거의 기억도 고통스럽지만, 힘들다 즐거워지면 현재는 물론 지나간 어려움도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는다. 물론 아무리 아름답다고 하더라도 다시 돌아가고 싶은 시절은 아니겠지만...
오래 전, 서울 변두리의 '국민학교'를 다녔다. 삶이 고달프고 어려웠던 시절, 매일 저녁 새끼줄에 꿴 연탄 한장, 쌀이나 밀가루 한 봉지를 받아오는 어머니-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새끼'들을 먹이려고 온몸으로 세상의 어려움을 버티었던 부모님이시다.
고학년이 되면서 연탄가게나 쌀집에 다녀왔고, 저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언젠가 날씨가 흐리고 땅이 질퍽거린 날 얇은 쌀봉지를 터트려 길거리에 하루의 식량을 쏟아버리고 말았다. 한없이 슬펏다. 하루를 굶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에겐 하루의 식량을 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나는 거의 매일 수제비를 만들었다. 때로 국수를 끓이고, 아주 가끔 라면을 섞을 때면 특식이 되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짜장면'에 대한 어릴적 기억이 없다.
당시 300원~500원 정도의 기성회비가 있었다. 학습지 봉투처럼 생긴 누런 봉투에 기성회비 도장을 찍어주었는데, 제 때 내지 못하면 선생님이 집에 갔다 오라고 했었다. 하지만 나는 선생님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없었다.
이 책을 읽으면 한없는 눈물을 흘리게 된다. 어린 형제와 엄마의 처지에 대한 공감때문인가, 아니면 북해정 주인의 마음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작가의 글솜씨 때문일까? 이유가 그 무엇이든, 지금 이순간 어렵게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아름다운 결실을 맺기 바란다.
30여년이 지난 지금, 나는 하루의 양식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딸과 집사람이랑 아옹다옹 하면서 살고있다. 북해정에서 우동 한그릇을 나누어 먹던 엄마와 형제가 훌륭하게 장성한 것처럼 나도 그렇게 되었다고나 할까? 다만 우동집 주인같은 마음을 가지고 싶지만 그렇지 못한 자신을 탓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