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에 읽은, (인간의 뇌를 다루기는 했지만 뇌과학보다는 젠더 분야 책이라고 보는 게 더 맞아보이는) 『젠더 모자이크』를 제외하고 뇌과학을 본격적으로 다루는 책은 이번에 처음 읽는 것 같다. 뇌과학이나 신경과학을 공부해본 적은 없지만, 그 분야에서 이야기하는 '뇌의 가소성'이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나도 비전공자라서 자세히는 모르긴 해도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경험을 하느냐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뇌의 역동성을 설명하는 말로 알고 있다.


이를 뇌과학자인 저자 데이비드 이글먼(이하 이글먼)은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우리의 뇌는 미완성으로 태어나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회로를 바꾼다고. 그리고 그것이 다른 생물들과 다른 인간의 독보적이고 강력한 무기였다고. 이글먼은 덧붙여 말한다. 


총 12장으로 구성된 책에서 난 아직 1장까지밖에 못 읽었지만, 책 전체에 걸쳐 뇌의 가소성을 다루는 듯하다. '뇌의 가소성'이란 말을 예전에 처음 들어봤을 때 난 정말 기쁘고 설렜다.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경험하는 대로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다는 우리 뇌의 특성을. 물론 사람마다 한계치는 제각기 다르고 그러기에 재능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그래도 (적어도 아직까지 우리 과학이 밝혀낸 바로는) 타고난 뇌를 갖고 거의 그대로 살아야 하는 지구의 다른 생물들에 비하면, 타고난 재능 탓을 훨씬 덜 해도 되지 않을까. 어쩌면 스스로 학습한다는 인공지능의 '딥러닝'도 인간 뇌의 가소성을 흉내낸 시스템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인간의 가장 좋은 점은 이것이 아니다. 이보다 더 놀라운 점이 있다. 우리 시스템은 처음부터 완전히 프로그램된 채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상호작용을 주고받으며 스스로를 형성해나간다는 것. 자라는 동안 우리는 뇌의 회로를 끊임없이 바꿔가며 어려운 과제와 씨름하고, 기회를 이용하고 사회구조를 이해한다. - P12

인류가 지구의 구석구석을 성공적으로 접수한 것은, 어머니 자연이 발견한 요령이 우리에게 최고로 구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뇌의 설계도를 처음부터 다 만들지 않고, 기본적인 요소들만 준비해준 뒤 세상으로 내보내는 것이 바로 그 요령이다. 마구 울어대던 아기는 결국 울음을 그치고 주위를 둘러보며 세상을 흡수한다. 주변 환경에 맞춰 자신의 모습을 다듬는다. 주위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에서부터 더 넓은 의미의 문화와 국제정치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 자신을 키워준 사람들의 신념과 편견을 품고 앞으로 나아간다. 모든 정겨운 기억, 모든 가르침, 모든 정보가 아기의 신경회로를 다듬어 결코 미리 계획한 적 없는 어떤 것을 만들어낸다. 거기에는 주위의 세상이 반영되어 있다. - P12

게다가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 빠져있다. 뇌는 역동적인 시스템이라서 주변 환경의 요구와 몸의 능력에 맞춰 항상 회로를 바꾼다. - P17

사람이 새로운 지식, 예를 들어 좋아하는 식당의 위치나 직장 상사에 대한 뒷공론이나 라디오에서 나오는 중독성 있는 노래 등을 새로 익히면, 뇌에 물리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경제적인 성공, 대인관계의 큰 실패. 감정적인 각성을 경험할 때도 마찬가지다. 농구공을 골대로 날릴 때, 동료와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때, 비행기를 타고 낯선 도시로 갈 때, 그리운 사진을 볼 때, 사랑하는 사람의 감미로운 목소리를 들을 때, 거대한 정글을 닮은 우리 뇌는 조금 전과 살짝 다른 모습으로 스스로를 변화시킨다. 이런 변화들이 합쳐져서 기억이 된다. 기억은 사람의 삶과 사랑이 빚어낸 결과다. 몇 분, 몇 달, 몇십 년에 걸쳐 뇌에 축적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변화가 모두 합쳐져서 사람이 된다. - P18

중요한 것은 우리가 대체로 미완성인 뇌를 갖고 세상에 태어난다는 점이다. 그로 인해 우리는 다른 동물들과 달리 무력한 아기로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하지만, 그래도 그만한 대가를 치르는 보람이 있다. 우리 뇌가 세상을 향해 미완성인 부분을 채워달라고 손짓하기 때문에, 우리는 주변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 그들의 문화, 패션, 정치, 종교, 도덕을 목마른 사람처럼 빨아들인다. - P20

적어도 직접적으로는 각인되어 있지 않다. 대신 우리 유전자는 간단한 원칙 하나를 세웠다. 융통성 없는 하드웨어를 만들지 말고, 주변 환경에 적응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것. 우리 DNA는 고정된 설계도가 아니다. 이 DNA가 만들어내는 것은 주변 환경을 반영해서 효율을 최적화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회로를 바꾸는 역동적인 시스템이다.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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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이유로 나 역시 내가 목격한 것들을 어딘가에 적어둔다. 보르헤스 식으로 말하자면 ‘무한한 우주는 사건의 아주 작은 부분까지도 필요로‘ 하니까. - P90

어쩌면 나는 이 삶의 목격자가 되고 싶은 걸까. 그러니까 골목길을 걸을 때, 천변을 산책할 때, 나는 환한 낮에도 손전등을 들고 걷는 사람의 마음이 된다. 삶의 평범한 순간들에 동그랗게 빛을 비추어 여기 이런 장면이 있구나, 이런 이야기가 있구나, 다른 이들도 함께 들여다보게 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쓰는 사람으로서 드물게 욕심이 날 때는 바로 그런 순간. - P91

평생을 산대도 비추고 싶은 장면이 부족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 안도와 기대 속에서 매일 손전등을 고쳐 잡는다. -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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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배우고 싶은 삶이 이곳에 있다고. 강의실이나 도서관이나 방송국 조명 아래가 아니라 이 들판에, 산자락에, 색색의 지붕 아래에 있다고. 어떤 마음이 너무 귀해서 미안해지는 건 그 속에서 내가 잊고 살던 ‘더 나은 것‘을 보기 때문은 아닐까. 아무런 셈도 없이, 대가도 바라지 않고, 돕는다는 자각 없이도 돕는 할머니 곁에서 나는 사람이 사람을 도울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처음 듣는 것처럼 다시 배운다. 아픈 사람이 아픈 사람을 돕고, 힘든 사람이 힘든 사람을 돕고, 슬픈 사람이 슬픈 사람을 돕는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도울 수 있는 존재들이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면 세상은 이미 틀렸다는 비관이나 사람에게 환멸을 느낀다는 말 같은 건 함부로 쓸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 P57

누군가 이미 그렇게 살았다는 사실이 희망이 될 때가 있다.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놀라운 일이다. 내가 끝끝내 어떤 낙관을 향해 몸을 돌린다면 ‘믿게 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란 걸 이제는 안다. 세상이 어때야 한다고 말하는 대신, 보고 싶은 그 세상을 먼저 살아내면 된다는 것도. 솟아나는 말들을 나는 그대로 둔다. 희망이 생기도록 내버려 둔다. 가르친 적 없는데 배우게 하는 것, 그게 내가 아는 할머니들의 교실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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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지는 내가 믿고 읽는 작가 중의 한 사람이다. 이런 분들의 글을 읽을 때마다 난 평생 에세이집은 못 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만에 하나 누군가 내게 글쓰기를 어디서 배웠느냐고, 당신에게도 ‘문학적 토양‘ 같은 게 있느냐고 묻는 날이 온다면, 밭두렁에서 콩알처럼 와르르 쏟아져 내려오던 그 얼굴들을 떠올릴 것 같다. 학자가 되었어야 했던 한 사람의 얼굴과, 잘못 산 책을 든 채로 축하 인사를 준비한 사람의 얼굴도. 손때 묻은 봉투 속 십시일반으로 모은 꼬깃꼬깃한 지폐들도. - P46

문학이 뭔지는 정확히 몰라도, 쓰고 싶어지게 만드는 장면들을 안다고. 그 앞에서 나는 항상 마땅한 말을 찾지 못한 채 허둥거리다가 돌아서서 웃거나 울지만. 제때 하지 못한 말들이 모여서 나를 책상 앞으로 이끈다고. 여태까지 내게 흰 봉투를 건넸던 다정하고 결함 많고 고유하게 평범한 이들에게 언젠가 설명할 수 있다면 좋겠다. - P46

‘우리 같은 사람들‘과는 상관없다고 여겨지는 바로 그곳에 제자리처럼 깃드는 것. 그게 내가 아는 문학이라고. -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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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북학파로만 알고 있었던 홍대용. 그도 한때는 친명반청주의자였고, 병자호란 때의 척화파를 옹호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청나라의 실체를 직접 맞닥뜨리면서 우리가 아는 북학파 홍대용이 되었다고 저자는 전한다. 이 책에서 (혹은 내가 인용한 구절을 보고) 이런 사실을 처음 알게 된 사람들도 많을 것 같다.


홍대용도 한때는 누구 못지않게 강경한 존명배청주의자였다. 또한 ‘비린내 나는 더러운 원수의 국토를 밟으려 한다‘는 김종후의 비난을 무릅쓰고 여행에 나섰을 적에도 그는 ‘천하의 선비‘를 만나 ‘천하의 일‘을 의논할 큰 뜻을 품고 있었다. 압록강을 건너 출국할 때 지은 시에서 자객 형가처럼 비수를 품고 강을 건너지 못하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면서, 요동 벌판을 날아가 산해관을 열어젖히고 진시황을 한바탕 비웃는 북벌의 꿈을 꾸었노라고 했다. - P407

하지만 여행을 통해 건륭제 치하에서 번영을 구가하던 청나라의 실상을 날마다 목격하면서 홍대용의 의식에 서서히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청나라의 웅장한 성곽과 예리한 무기와 능숙한 기마술 등을 관찰하고는 북벌론의 비현실성도 확인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존명 의리에 어긋나지 않으면서도 청의 선진 문물을 수용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모색하게 된다. 청 문물을 청 왕조의 소산이 아니라 『주례』의 ‘대규모 세심법‘을 계승한 중화문물로 간주함으로써 청 문물의 논리를 개척한 것이다. - P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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