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북학파로만 알고 있었던 홍대용. 그도 한때는 친명반청주의자였고, 병자호란 때의 척화파를 옹호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청나라의 실체를 직접 맞닥뜨리면서 우리가 아는 북학파 홍대용이 되었다고 저자는 전한다. 이 책에서 (혹은 내가 인용한 구절을 보고) 이런 사실을 처음 알게 된 사람들도 많을 것 같다.


홍대용도 한때는 누구 못지않게 강경한 존명배청주의자였다. 또한 ‘비린내 나는 더러운 원수의 국토를 밟으려 한다‘는 김종후의 비난을 무릅쓰고 여행에 나섰을 적에도 그는 ‘천하의 선비‘를 만나 ‘천하의 일‘을 의논할 큰 뜻을 품고 있었다. 압록강을 건너 출국할 때 지은 시에서 자객 형가처럼 비수를 품고 강을 건너지 못하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면서, 요동 벌판을 날아가 산해관을 열어젖히고 진시황을 한바탕 비웃는 북벌의 꿈을 꾸었노라고 했다. - P407

하지만 여행을 통해 건륭제 치하에서 번영을 구가하던 청나라의 실상을 날마다 목격하면서 홍대용의 의식에 서서히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청나라의 웅장한 성곽과 예리한 무기와 능숙한 기마술 등을 관찰하고는 북벌론의 비현실성도 확인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존명 의리에 어긋나지 않으면서도 청의 선진 문물을 수용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모색하게 된다. 청 문물을 청 왕조의 소산이 아니라 『주례』의 ‘대규모 세심법‘을 계승한 중화문물로 간주함으로써 청 문물의 논리를 개척한 것이다. - P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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