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배우고 싶은 삶이 이곳에 있다고. 강의실이나 도서관이나 방송국 조명 아래가 아니라 이 들판에, 산자락에, 색색의 지붕 아래에 있다고. 어떤 마음이 너무 귀해서 미안해지는 건 그 속에서 내가 잊고 살던 ‘더 나은 것‘을 보기 때문은 아닐까. 아무런 셈도 없이, 대가도 바라지 않고, 돕는다는 자각 없이도 돕는 할머니 곁에서 나는 사람이 사람을 도울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처음 듣는 것처럼 다시 배운다. 아픈 사람이 아픈 사람을 돕고, 힘든 사람이 힘든 사람을 돕고, 슬픈 사람이 슬픈 사람을 돕는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도울 수 있는 존재들이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면 세상은 이미 틀렸다는 비관이나 사람에게 환멸을 느낀다는 말 같은 건 함부로 쓸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 P57

누군가 이미 그렇게 살았다는 사실이 희망이 될 때가 있다.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놀라운 일이다. 내가 끝끝내 어떤 낙관을 향해 몸을 돌린다면 ‘믿게 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란 걸 이제는 안다. 세상이 어때야 한다고 말하는 대신, 보고 싶은 그 세상을 먼저 살아내면 된다는 것도. 솟아나는 말들을 나는 그대로 둔다. 희망이 생기도록 내버려 둔다. 가르친 적 없는데 배우게 하는 것, 그게 내가 아는 할머니들의 교실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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