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깻잎 투쟁기』는 한국 사회의 농업 이주노동자의 노동 인권 실태를 밝힌 이주인권 활동가 우춘희의 르포 작품이다. 저자에 따르면 한국 사회가 이주노동자 없이는 존속할 수 없게 됐는데도, 그들의 노동 현실은 참혹하다.

한국은 구한말의 하와이 농업이민과 60-70년대 파독 광부·간호사(간호조무사), 80년대 사우디에 간 건설노동자들의 땀과 눈물을 이미 잊었나. 그때 외국으로 일하러 간 한국인들과 지금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이 무엇이 다를까.

전태일 열사가 지금 시대에 살았더라면 차별받으며 일하는 이 땅의 이주노동자들과도 기꺼이 연대하지 않았을까.

정부는 이주노동자를 일손이 필요한 곳에 데려다가 채우는 ‘인력 수급 정책‘의 대상으로만 본다. 오로지 어떻게 농촌의 부족한 인력을 채울지 골몰하며, 일하는 사람은 온데간데없고 수요와 공급의 숫자에만 관심을 쏟는다. 이주노동자가 어떤 곳에서 사는지, 얼마나 오랫동안 일하는지, 최소한의 인간적인 대우를 받기는 하는지, 그 실상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이들이 다치거나 죽어서 본국으로 돌아가면 다시 이 빈자리를 채울 노동자를 ‘인력 수급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데려오면 그만인 듯하다.

특히 이주인권단체 ‘직인의 정류장‘을 찾아갔을 때 거기서 많은 캄보디아 이주노동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대부분 20대 초중반인 그들은 ‘고용허가제‘를 통해 한국에 온 농업 이주노동자들이었다. 전남 담양 딸기밭, 경남 밀양 고추밭, 충남 논산 토마토 농장, 경기도 이천 유기농 계란 농장, 경기도 여주 돼지 농장, 강원도 철원 파프리카 농장 등 이주노동자들은 다양한 곳에서 우리의 먹거리를 책임지고 있었다. - P10

그들이 전한 이주노동 현장은 참혹했다. 장시간 고된 노동을 강요하며 법으로 정한 최저 시급도 주지 않았다. 몇 달 치 임금을 체불하는 사례도 많았다. 노동자들이 일하는 밭 바로 옆에 있는 비닐하우스나 컨테이너가 그들의 기숙사였다. 그 안에는 화장실도 없어 노동자들은 비닐하우스 밖으로 나가 재래식 화장실을 이용한다고 했다. 사업주의 언어폭력과 성폭력을 호소하는 노동자들도 많았다. 이 모든 일이 현재 한국 사회에서 수년째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보다 더 놀라운 건 그들의 이야기와 삶이 우리 눈에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 P11

쓰레이응 씨, 니몰 씨, 짠나리 씨와 소팔 씨 모두 운이 좋지 않아서 임금 체불을 당한 것이 아니다. 쓰레이응 씨는 2020년 기준으로 임금 체불을 당한 이주노동자 31,998명 가운데 한 명이었다. 많은 이주노동자가 임금을 받지 못하고 일했다. 정보공개 청구로 얻은 고용노동부의 자료에 따르면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포함한 전체 이주노동자의 임금 체불 현황은 다음과 같다. - P89

연도별로 살펴보면 매년 임금 체불을 신고한 이주노동자 수와 임금 체불 금액이 증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임금 체불을 신고한 노동자 수는 2016년 21,482명에서 2020년 31,998명으로 5년 만에 약 1.5배 증가했다. 임금 체불 금액은 2016년 686억원에서 2020년 1287억 원으로 5년 만에 1.9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 통계에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도 포함되어 있지만, 대체로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임금 체불이 발생하면 불안정한 체류 지위 때문에 고용주에게 문제 제기를 하기보다 사업장을 떠나는것을 선택한다. 따라서 신고하지 못한 임금 체불 금액까지 합하면 임금 체불 규모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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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역사비평»을 읽었다. 완독은 아니고 관심 가는 논문 하나만 읽었다. 사이비 역사학의 씨를 뿌렸던 인물들이 친일인명사전에 실렸을 정도의 반민족행위자였다는 사실이 놀랍게 다가왔다.



문정창은 한민족의 일파가 서쪽 메스포타미아로 이동해 들어가서 수메르인과 이스라엘인이 되었다는 주장을 펼쳤다. 더 나아가 이집트 문명조차 나일강 유역으로 진출한 소호씨계 수메르 문명을 수용하여 성립된 것으로, 수메르-이스라엘족-이집트인은 혈연적·정치적·문화적 관계가 깊고 농후하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한민족을 근원에 놓고 세계 문명의 성립을 재구성하려는 시도였다. - P22

역설적인 점은, 극단적 민족주의를 사상적 배경으로 한국 사이비역사학의 기반을 만들어낸 최동과 문정창 모두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어 있는 친일파라는 점이다. 이들은 일본 제국주의 체제에 순응하고 복무하였던 이들이었기에 해방 이후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제국주의적 역사관을 한국 고대사에 투영하는 형태로 사고를 전환할 수 있었다. -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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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이 운명이 바뀔 수 있냐고 질문한다. 운명, 흔히 팔자라고 하는 게 정말 정해진 걸까. 사주 명리는 기호라서 무한하게 해석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운명의 여덟 글자(팔자)는 바뀌진 않지만 무한한 변주곡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운명이란 명을 운전한다는 뜻이다. 같은 사주팔자라 하더라도 그 사람이 어떻게 변주할 것인가는 그 자신의 의지, 그를 둘러싼 편견과 고정관념을 생산하는 교육, 그와 주변 환경의 일상적 상호작용에 따라 달라진다. 당연하게도 나를 둘러싼 환경과 세상이 나아져야 운명도 나아지는 거다. - P170

운명학은 개개인의 삶을 신화로 만드는 미신이 아니라 고정된 언어를 해체하고 삶을 다르게 해석해보자는 실천에 가깝다. 고정된 관념을 자꾸 버려야 하는 이유는 삶의 무한성을 파괴하지 않기 위해서다. 운명은 하나의 좁은 직선 도로가 아니다. 뻔한 관념은 있어도 뻔한 인생은 없다. - P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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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림굿을 받고 무당이 된 90년생 홍칼리 씨가 전하는 이야기. 우리가 흔히 오해하는 것과 달리 '진짜 샤머니즘'이란 이런 거 아닐까. 무형문화재였던 만신 고 김금화 선생이 그랬던 것처럼 (살아있는 사람, 아직 구천을 떠도는 영혼 모두) 상처받은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세상 만물에 영혼과 신성이 가득함을 느끼며 겸허히 살아가는, 그러한 자세가 샤머니즘의 마음 아닐까.

동물과 식물, 사물에도 존재가 깃들어 있다. 바로 ‘정령’이다. 정령은 만물에 녹아 존재한다. 땅과 바람, 음식물쓰레기, 책상, 쌀알에도 정령이 숨 쉰다. 그래서 무당은 쌀알을 뿌린 후 ‘아무렇게나‘ 배열된 쌀알로 점을 본다. 정령의 기운을 읽고 소통하는 것이다. - P121

정령들에게도 한이 있다. 동물들이 공장식 축산으로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고, 거대 수산업이 만들어낸 떠다니는 플라스틱 섬 때문에 바다의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하고, 인간들이 탄소를 배출하면서 공기가 오염되고, 아마존의 숲을 무차별로 벌목하고 산불을 내면서 바람이 오염된다. 이렇게 땅과 바람에 억눌린 정령들이 터져 나오게 된 현상이 코로나바이러스와 미세먼지, 기후위기다. 기후위기는 멀리서 갑자기 오는 게 아니다. 한이 쌓인 정령들이 바깥으로 터져 나오면서 내는 한숨 소리다. - P121

오랫동안 궁금했다. 산업이 성장하고 경제가 성장하려면 누군가의 희생이 정말 필요한 걸까. 나는 땅의 신 파차마마에게 기도드리며 질문했다. "정말 희생이 있을 수밖에 없나요? 희생 없이 공존할 방법은 없나요?" 곧이어 파차마마의 응답이 들렸다. "그래서 사물을 준 거야. 물, 불, 공기, 흙․ 다른 말로 나무, 불, 흙, 금, 물. 그러니까 의자 하나도 소중히 다루고 쓰레기 하나에도 신성이 깃들어 있다는 걸 알면 돼. 물건 함부로 대하면 다 되돌아오는 거야. - P122

그래서 지금 지구가 아픈 거고. 사물들도 아픔을 느껴. 그래도 너회가 사용할 수 있도록 인내하고 있는 거야. 그런데 지금 살림이 거덜 나고 있어. 로봇을 만들고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것도 다 좋은데, 그 사물 같은 존재들에게도 무의식과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걸 잊지 마. 우린(땅은) 너네가 무엇이든 아끼는 마음으로 쓰길 바랄 뿐이야. 너네 때문에 덜덜 떨고 있는 사물들도 있다는 걸, 사물화된 존재들이 울고 있다는 걸 잊지 마. 사물에게 잘하잖아? 그럼 사물이 보답한다, 그게 이치야." -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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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만신' 이라고 불리는 큰 무당 중에서는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사람이 있기도 했다. 무형문화재 만신 고 김금화 선생(이름도 이제 알았다)의 세월호 참사 추모굿을 이제야 본다. 목사가 다 같은 목사가 아니고, 스님이 다 같은 스님이 아니고, (천주교) 신부가 다 같은 신부가 아니듯 무당도 다 같은 무당이 아니니까. 만신은 들어봤지만, 무당이 무형문화재로도 지정된 건 조금 전에 처음 알았다. 한 개인이 문화재로 지정되는 건 도자기나 나전칠기 장인 같은 예술가이자 기술자들만 해당되는 건 줄 알았지. 하긴 굿이 '종합예술'이라면 무당도 예술가니까 못 될 건 없긴 하다.




무당의 예지력, 초인적 능력만 조명받는 사회의 분위기와 다르게, 무당은 옛날부터 공동체의 한을 풀고 흥을 나누는 굿을 해오던 문화기획자였다. 내가 좋아하는 무당 고 김금화 선생님은 이런 말을 했다. "굿은 종합예술이에요. 편견을 내려놓고 허심탄회하게 즐기는 종합예술로 바라봐줬으면 좋겠어요." "무당도 결국 됨됨이가 중요하다"고 강조하던 그녀는 길 위에서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추모굿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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