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신지는 내가 믿고 읽는 작가 중의 한 사람이다. 이런 분들의 글을 읽을 때마다 난 평생 에세이집은 못 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만에 하나 누군가 내게 글쓰기를 어디서 배웠느냐고, 당신에게도 ‘문학적 토양‘ 같은 게 있느냐고 묻는 날이 온다면, 밭두렁에서 콩알처럼 와르르 쏟아져 내려오던 그 얼굴들을 떠올릴 것 같다. 학자가 되었어야 했던 한 사람의 얼굴과, 잘못 산 책을 든 채로 축하 인사를 준비한 사람의 얼굴도. 손때 묻은 봉투 속 십시일반으로 모은 꼬깃꼬깃한 지폐들도. - P46
문학이 뭔지는 정확히 몰라도, 쓰고 싶어지게 만드는 장면들을 안다고. 그 앞에서 나는 항상 마땅한 말을 찾지 못한 채 허둥거리다가 돌아서서 웃거나 울지만. 제때 하지 못한 말들이 모여서 나를 책상 앞으로 이끈다고. 여태까지 내게 흰 봉투를 건넸던 다정하고 결함 많고 고유하게 평범한 이들에게 언젠가 설명할 수 있다면 좋겠다. - P46
‘우리 같은 사람들‘과는 상관없다고 여겨지는 바로 그곳에 제자리처럼 깃드는 것. 그게 내가 아는 문학이라고. -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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