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졌잘싸 - 졌지만 잘 싸웠다, 좌충우돌 여자축구 도전기
고상훈 지음, 한항선 그림 / 한그루 / 2021년 11월
평점 :
초등학교 현장에 있다 보면 학생들이 유행에 무척 민감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특히 돈 들이지 않고 따라 할 수 있는 유행어 같은 것들은 등장하기가 무섭게 학생들의 입에 오르내려요. 한 해에도 수십 개의 유행어가 교실을 스쳐 지나가고, 아이들은 누가 더 유행어를 자연스럽게 내뱉는지를 내심 경쟁이라도 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런 유행어들을 어떤 때는 못 들은 척 지나가기도 하고, 어떤 때는 '또 시작이네' 싶어 예민하게 반응하기도 해요.
다만 모든 유행이 다 귀찮게 느껴지는 것만은 아닙니다. 가끔은 아이들의 머릿속에 오래 남아주기를 바라는 유행어도 있거든요. 조금은 유행이 지나긴 했지만, '졌잘싸', 즉 '졌지만 잘 싸웠다'라는 표현입니다.
축구 유니폼을 입은 활기찬 여학생들의 모습이 그려진 책 표지와, '성공기'가 아닌 '도전기'라는 부제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제목에서부터 이미 이 이야기의 결말이 흔한 '우승'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아이들이 승리만큼이나 패배를 받아들이는 방법도 배웠으면 하는 마음을 늘 가지고 있었기에 과연 이 책에서는 학생들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패배라는 결과를 받아들이는지가 궁금했습니다.
<졌잘싸>는 초등학교 교사로도 일하고 있는 고상훈 작가가 2018년에 초등학교 여자축구부를 맡아 지도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동화입니다. 해원초등학교 여자축구부가 만들어지는 과정부터 학교스포츠클럽 축구대회에 참여하는 모습까지를 담고 있는 이 책은, 아이들 간의 갈등과 화해, 그리고 팀워크의 성장 과정을 실감 나게 그리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좋았던 점은 작품 속에서 교사가 사건의 중심에 있지 않고 아이들이 스스로 부딪히고 성장할 수 있도록 적당히 물러서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학교를 배경으로 한 동화에서 교사가 너무 많은 역할을 맡으면 이야기의 흐름이 자연스럽지 않거나 교훈 일색인 재미없는 이야기가 되고 맙니다. 이 책의 여자축구부 지도교사인 김성훈 선생님은 학생들이 요청하거나 꼭 필요한 순간에만 등장해 자연스럽게 조력자의 자리를 지킵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장면은 여자축구부의 창단 멤버인 수연이가 스스로 골키퍼가 되겠다고 나서는 부분입니다. 자신의 경험과 능력에 대해 자신감을 갖고 있으면서도 팀을 위해 배려하고, 그 배려가 부담스럽지 않도록 근거를 갖춰 설득하는 모습이 매우 감동적이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중요한 가치들이 이 장면에 모두 녹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책의 제목대로 <졌잘싸>는 해원초 여자축구부가 결국 경기에서 패배하며 끝이 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아이들이 최선을 다하는 과정 속에서 '졌지만 잘 싸웠다'라는 자부심을 갖는 점을 배웠다는 점이겠지요. 인생에서 단 한 번도 지지 않는 사람은 없기에, 이 책을 읽는 모든 독자가 최선을 다해 경쟁에 참여하고 패배를 경험한 순간에도 당당하게 고개를 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승리만큼 값진 패배의 의미를 배우고 싶은 독자에게 이 책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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