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쎈연필 > [퍼온글] 러시아문학 20세기의 책 20권(2)
(11)미하일 불가코프의 <거장과 마르가리타>(1928-1940). 드디어 불가코프! 그의 작품집은 어디서나 눈에 띄고, 또 희곡들은 거의 끊이지 않고 공연되기 때문에 과연 이 작가가 스탈린 시절 이후 오랫동안 탄압 받고 금지됐던 작가였던가 의심스러울 정도이다(<거장과 마르가리타>는 그의 생전에 발표될 수 없었던 작품이다). 어쨌든 <불가코프 백과사전>까지 고골, 도스토예프스키 사전과 같이 나올 정도의 지명도를 그는 갖고 있고, 또 누리고 있다. 그는 프랑스의 극작가 몰리에르를 (권력과의 관계에서) 자기 삶의 모델로 삼았었지만(그는 <몰리에르의 생애>란 전기도 썼고, 몰리에르가 등장하는 드라마 작품 <위선자들의 밀교>도 썼다), 그가 뒤늦게 누리는 영광은 몰리에르에 뒤지지 않는 듯하다.
우리말로 번역된 불가코프도 제법 적지 않다. 혁명을 풍자한 <개의 심장>, <운명의 알> 등의 중편들에서 <백위군> 같은 소설, 그리고 <극장>, <위선자들의 밀교> 같은 드라마에 이르기까지. 하지만, 여전히 <투르빈가의 나날들> 같은 대표 희곡들이 아직 번역되지 않았고(출간예정이라는 소문은 있다), 여러 러시아 교수들이 최고의 작품으로 꼽는 <거장과 마르가리타> 또한 현재로선 품절이다. 우리에게서 불가코프가 그 정도의 대접을 받지는 못하는 걸로 봐서 우리의 불가코프 수용에는 어떤 ‘장벽’이 있는 듯하다.
(12)이반 부닌의 <어두운 가로수길>(1937-1945). 러시아에서는 얼마전에 이반 부닌의 새 전기가 출간됐는데(아직 구경하진 못했다), 러시아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부닌은 20세기 전반기의 유능한 시인/작가의 한 사람이다. 부닌은 그가 러시아 사람이 아니라 인도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동양적인’ 외모를 갖고 있는데, 외모뿐만 아니라 정신세계에 있어서도 부닌은 지극히 ‘동양적’이다(특히 불교적이다). 러시아나 서구인들에게는 다소 낯설게 여겨질 수도 있는 그의 문학이 우리에겐 오히려 친숙하게 여겨질 정도이다. 나의 도식적인 이해에 의하면, 부닌은 체홉, 고리키와 함께 ‘거대한 작가’ 톨스토이의 문학적 계승자의 한 사람인데, 체홉이 톨스토이의 문학성을, 그리고 고리키가 민중성을 이어받았다면 부닌은 그의 종교성을 계승하고 있다.
내 기억에 <어두운 가로수길>은 우리말로 번역돼 있으며(<비밀의 나무>란 제목으로 나왔던가), 기타 그의 단편들(<사랑의 문법>으로 번역돼 있다)과 <마을> 같은 중편들도 번역돼 있다(그의 단편들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온 신사>이며, <일사병>이란 단편은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체홉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과 견주어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아직 <아르세니예프의 삶> 같은 자전적 대표작은 번역되지 않았다. 더불어 지적하자면, 나보코프도 그랬지만 부닌도 문학적 출발은 시인이었다. 그의 시들도 번역된다면 더 바랄 나위 없겠지만, 가능할는지…
(13)A. 트바르도프스키의 <바실리 테르킨>(1941-1945). 드디어 내가 처음 듣는 작품이 나왔다. 사실 트바르도프스키란 이름을 내가 기억하는 건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1962년에 잡지 <노브이 미르>에 실을 수 있도록 한 편집장 트바르도프스키로서이다(또 다른 트바르도프스키가 있는 게 아니라면). 그가 솔제니친에 맞먹을 만한 작가였다는 건 모르던 사실이다. 제목으로 봐선 바실리 테르킨의 일대기를 다룬 듯싶은 장편소설인데, 아마도 그가 혁명과 내전기를 관통하는 듯하다. 수히흐 교수는 “죽음과 전쟁, 운명, 조국에 대하여”란 장제목을 달았다.
(14)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1945-1955). 별다른 설명이 필요없는 작품이다. 1956년에 이 작품을 해외에서 먼저 출간하고, 이어서 1958년에 (다소간 정치적인 선정이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함으로써 작가 파스테르나크는 다소간 은둔적인 성격에 걸맞지 않은 문학적 스캔들의 주인공이 된다(그는 스톡홀름에 가는 걸 포기한다). 그리고 그 스트레스 때문에 그는 1960년에 사망하고 만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자신의 이름을 전세계에 알린 이 작품 때문에 그는 조국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자신의 목숨마저 재촉한 것이다. 지바고 때문에!(‘지바고’는 러시아어 ‘삶’의 고어(古語) 형용사형이다)
시인 파스테르나크의 유일한 장편소설인 이 작품은 사실 ‘소설로 씌어진 시’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며(그런 의미에서 푸슈킨의 ‘시로 씌어진 소설’ <예브게니 오네긴>과 마주보고 있다), 지바고의 죽음 이후에 남겨진 유고시 25편은 작품 전체를 이해하는 데 참조물이 아니라 핵심이다(이걸 빼놓은 번역서들도 있었는데, 좀 어이없는 경우이다). 이 말은 소설미학적인 기준에서 이 작품을 판단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는 뜻이다(이 작품에는 어이없는 우연들이 남발되고 있다). 푸슈킨이 ‘특이한 소설’을 썼다는 의미에서 파스테르나크는 ‘특이한 시’를 쓴 것이며, 러시아 소설의 전통은 그렇게 열리고 닫힌다.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두 ‘망명작가’에 의해서.
<닥터 지바고>는 1988년쯤에야 해금되며(그 이전에는 그의 초기 시들만이 출판될 수 있었다) 그맘때쯤 저명한 러시아 문학자 드미트리 리하초프의 편집하에 간행된 최초의 파스테르나크 전집에는 빠져 있다(나는 이 전집과 <닥터 지바고>를 따로따로 샀다). 굳이 찾으러 돌아다니진 않았지만, 이 작품이 포함된 전집은 아직 보지 못했다. 한편, 1930년대 이후 생계를 위해서 옮긴 번역작품들(그는 셰익스피어와 괴테 등을 주로 번역했다)은 요즘 따로 출간돼 있다. 우리말 파스테르나크? <닥터 지바고> 외에, <나의 누이, 나의 삶>이란 번역시집(그의 시들은 상당히 난해하지만, 좀 이해하면 재미있다), 그리고 <어느 시인의 죽음>이라고 옮겨진 그의 자전적 기록 정도(마야코프스키와의 교우와 그의 죽음에 대한 내용이 들어 있다). 그리고, 라라의 모델이었던 올가 이빈스카야의 회고록 정도.
(15)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수용소 군도>(1958-1968). <수용소군도>가 출간된 건 1972년 겨울 파리에서였고, 이 때문에 이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소비에트로부터 망명을 강요받게 된다(그에겐 강제출국 당하거나 망명하거나의 선택이 있었다). 흐루시초프 시대의 해빙 분위기를 타고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는 출간될 수 있었지만, 1970년대는 이미 (해빙은 물 건너 간) 브레즈네프의 시대였고, 이 새로운 시대는 자신의 조국을 ‘거대한 수용소’라고 고발하는 작가를 더 이상 용납하지 않았다.
<수용소군도>는 소비에트뿐만 아니라 책이 출간된 프랑스에서도 파문을 일으켰는데, 과거 소련을 지지했던 좌파 지식인들에게 결정타를 안겼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지지를 계속 유지할 것인지에 대해서 심각하게 회의해야 했다(상당수는 스탈린주의의 ‘수용소’ 대신에 마오쩌뚱의 ‘문화혁명’을 선택하며, 한편에서는 ‘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을 비판하는 신철학자들이 등장한다. 이런 분위기에 대해서는 프랑수아 도스의 <구조주의의 역사>에서도 기술되어 있었던 듯하다). 물론 솔제니친이 망명지로 안착했던 곳은 프랑스가 아니라 미국의 시골마을이었으며, 거기서도 그는 (공산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연설들을 늘어놓는 바람에 곧 여론의 관심밖에 놓이게 된다(흔한 오해와는 다르게 솔제니친은 공산주의자이다. 다만 그의 공산주의는 ‘종교적 공산주의’일 따름. “현대인은 신을 잊었다!”는 게 그의 단골 레퍼토리이다).
한때의 신화였던 작가였지만(한 문학작품이 한 시대의 표정이 되고, 한 시대의 좌표를 바꾼다는 건 얼마나 굉장한 일인가!), 그는 너무 뒤늦게 다시 러시아로 돌아왔으며 (좀 무례한 말이지만) 너무 오래 살고 있다. 몇 번 추진되던 한국방문이 무산될 정도로 건강이 썩 좋은 건 아니면서도 나름대로 장수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엔 <신화와의 작별>이란 제목으로 방대한 분량의 평전까지 출간됐는데, 그는 생전에 자신의 신화가 탄생하고 소멸하는 과정을 직접 목격하고 있는 드문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망명문학으로서의) 러시아문학이 푸슈킨에서 시작해서 파스테르나크에서 끝난다고 했지만, (사회주의 리얼리즘으로서의) 소비에트 문학은 고리키에서 시작해서 솔제니친에서 끝난다. 즉, ‘밑바닥’에서 시작해서 ‘수용소’에서 끝난다. 솔제니친 이후의 소비에트 문학은 잠시 농촌문학(발렌친 라스푸친)과 일상문학(유리 트리포토프)에 의해 채워지면서 소비에트 러시아의 종말을 맞는다.
우리말로 번역된 솔제니친은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와 <수용소군도>(5권이던가?)를 비롯하여 아주 많다. <암병동>과 <제1권>, <붉은 수레바퀴>(이 대작도 나오다 만 것 같다)까지가 그의 주요 장편들이라고 한다면, <마트료나의 집> 등과 같은 초기 단편들도 여럿 번역돼 있고, <사슴과 라게리의 여인>(‘라게리’는 ‘수용소’란 뜻이다) 같은 희곡작품도 번역돼 있다(오늘 헌책코너에서 산 그의 희곡집에는 안 들어 있는 걸로 봐서, 그는 희곡작품도 꽤 여럿 쓴 모양이다). 그리고 그의 에세이집까지.
(16)B. 샬라모프의 <콜르임 이야기>(1954-1973). 샬라모프는 이름만 들어본 작가인데, 이 정도로 지명도가 있는지는 몰랐다. ‘콜르임’은 수용소가 있었던 지명이고(그러니까 아마도 시베리아 어디일 것이다), ‘콜르임 이야기’는 콜르임을 배경으로 한 연작이다. 웬만한 작품집에 들어가 있는 <콜르임 이야기>가 다 ‘발췌’인 걸로 봐서 이 연작으로 작가가 얼마나 많은 걸 썼는지 짐작해볼 수 있다. 사실, 샬라모프 자신이 15년간(1937-1951) 거기에서 유형생활을 했다고 하는데, 그 이후에 그는 그 기간보다도 더 긴 시간 동안(꼬박 20년이다!) 자신의 유형생활을 되새김질하는 이야기들을 쓴 것이다. 그런 사실만으로도 예의상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샬라모프에 대한 논문들이 국내에서도 나오고 있으므로 번역본들도 곧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17)안드레이 비토프의 <푸슈킨의 집>(1964-1971, 1978…) 최근에 비토프의 2권짜리 작품선집이 새로 나왔는데, 물론 장편 <푸슈킨의 집>은 제외한 것이다(원제인 ‘푸슈킨스키 돔’은 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문학연구소로 보통 ‘푸슈킨연구소’라고 부른다. 거기엔 푸슈킨의 데드마스크가 많은 육필 원고와 함께 보존돼 있다고 한다). <푸슈킨의 집>은 작가가 계속 버전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확정된 연도를 아직 표시할 수 없다. 내가 갖고 있는 건 그나마 작년인가 새로운 장정으로 출간된 것인데, 현재까지는 최종본이라고 할 수 있다.
비토프의 이 소설 역시 아직 읽지 않았지만, 이 작품은 전형적인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이다(좀 역설적인 표현이지만, 러시아 포스트모더니즘의 ‘고전’이다). 그건 각종의 텍스트들이 교직되어 새로운 텍스트를 축조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그러하다. 그러니까 나보코프의 소설에서와는 달리, 진정한 문학적 유희, ‘텍스트의 즐거움’(바르트의 용어)이 실현되고 있는 것. 물론 제목이 암시하는 바대로, 그것을 통칭할 수 있는 것은 ‘푸슈킨의 집’이다. 푸슈킨의 문학적 유산으로서의 러시아문학 전체가 이 소설텍스트를 구성하고 있는 인자이거나 잠재적 인자들이다. 실제로 비토프는 나름대로의 푸슈킨 ‘연구자’이기도 하며, 푸슈킨에 관한 두 권의 책, ‘1825년의 푸슈킨’, ‘1836년의 푸슈킨’을 편집하기도 했다(1825년은 제카브리스트 봉기가 일어난 해이며, 1836년은 푸슈킨의 생애 마지막해이다. 그는 1837년 1월에 사망했기 때문에).
물론 내가 아는 한, 비토프의 작품은 아직 우리말로 번역된바 없다(어디 잡지에 소개된 적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만, 수년 전에 한국 펜클럽 초청으로 방한할 뻔했으나 역시 무산됐다(그러니까 그는 아직 한국과는 아무런 인연을 갖고 있지 않다). <푸슈킨의 집>에 대한 연구서들은 이미 러시아와 미국 등지에서 나오고 있으며, 국내에도 연구논문들이 있다. 작품도 번역돼 나올지는 두고 봐야겠다.
(18)바실리 슉쉰의 <성격들>(1973). 짐작에 <성격들>은 특정한 작품이 아니라 슉쉰의 문학을 총괄하는 작품집인 듯하다. 또 그래야 말이 된다. 그의 문학은 그의 삶 전체로 웅변하는 문학이기 때문이다. 검게 탄 얼굴에 고지식하고 무뚝뚝한 농부 같은 (한 성격 할 것 같은) 인상의 슉쉰은 70년대 초반 소비에트 문화계의 ‘간판’이었다(우리 작가로는 딱 황석영 같은 타입이다. 황석영이 영화감독도 겸했다면). 그는 영화계에서도 유명인사였는데(감독으로도 유명하다), 1973년에 자신이 직접 각본을 쓰고 주연과 연출까지 맡은 영화 <칼리나 크라스나야>(사전적 의미로는 ‘빨간 까마귀밥나무’란 뜻이다)는 각종 영화상을 휩쓸며 수천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기도 했다(대학원 시절에 이 영화를 봤을 때는 그렇게 유명한 영화인 줄 몰랐다). 그건 그만큼 슉쉰이 러시아 나로드(민중)의 정서에 가장 잘 호소하고 있다는 얘기도 된다. 수히흐 교수의 장제목은 “한 영혼이 아프다”. ‘작가-예언자’란 평까지 듣는 슉쉰은 러시아의 영혼이면서 한 시대의 영혼이었던 것.
하지만, 내가 그에 대해서 아는 내용은 별로 많지 않다. 얼마 전 그의 사망 30주년을 맞는 특집기사들을 보고 새삼 작품집과 영화CD 등을 사두었고, 엊그제 헌책코너에서 우연히 그의 전기를 구입했을 뿐이다. 그러니 알 준비가 되어 있을 뿐인 것. 한국에서의 사정도 크게 다르진 않은데, 몇 편의 단편이 소개돼 있는 게 전부이다. 스첸카 라진의 농민반란을 소설화한 <나는 너희에게 자유를 주러 왔노라> 같은 대표적 장편소설은 한국 독자들의 구미에도 맞을 듯하므로, 한번 기다려봄 직하다(이 작품의 번역은 오래 전에 한번 추진되었다가 무산됐던 걸로 안다. 분량 때문에). 참고로, 슉쉰을 추모하는 기고문에서 한 작가는 러시아문학에서 다섯 명의 위대한 작가를 꼽았는데, “푸슈킨, 고골,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그리고 슉쉰”이 그 다섯 명이다.
(19)발렌친 라스푸친의 <마쪼라의 이별>(1976)과 (20)유리 트리포토프의 <노인>(1978)은 한꺼번에 언급하기로 한다(막간이 너무 긴 것 같으므로). 브레즈네프 시대인 1970년대 러시아문학의 대표적인 경향은 ‘농촌문학’과 (도시의) ‘일상문학’이었는데, 라스푸친과 트리포노프는 각각 이 두 경향을 대표하는 작가이다. 지명도에 있어서는 라스푸친이 한 수 위인데(제정 말기의 괴승 라스푸친과 성이 같지만 무관하다고 한다), 러시아의 중학교(1학년부터 11학년까지 같은 학교에 다닌다) 교과서에는 그의 작품들이 다수 수록돼 있어서 <학교에서 배우는 라스푸친>이란 책도 나올 정도이다. <마쪼라의 이별>은 우리말로 번역돼 있는데(<소련동구문학전집>), 댐건설로 수몰 예정인 한 농촌마을 사람들의 얘기이다.
라스푸친은 농촌문학에 심리적, 철학적 깊이를 부여한 걸로 평가되는데, 우리의 전통적인 ‘무속신앙’과 유사한 ‘지킴 신앙’ 등이 다뤄지기 때문에, 비교적 친숙하게 읽힌다. 라스푸친의 작품으로는 <마쪼라의 이별> 외에도, <마리아를 위하여>(원제는 ‘마리아를 위한 돈’), <마지막 기한>, <살아라 그리고 기억하라> 등이 우리말로 번역돼 있고, 트리포노프의 작품으론 <긴 이별>, <또 다른 삶> 등이 번역돼 있다(<소련동구문학전집>에 실려 있다).
이상에서 알 수 있는 것이지만, 페테스트로이카 이후의 러시아문학, 혹은 포스트-소비에트의 문학은 선정에서 빠져 있다. 그건 걸작이 없어서가 아니라 다음 세기에 속한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론, 이 20명의 작가와 작품 목록에 (국내에서 다소 과대평가된) 친기스 아이트마토프(<하얀배>, <백년보다 긴 하루>, <처형대> 등이 번역돼 있다)가 빠진 것이 반갑고, 블라지미르 보이노비치(<병사 이반 촌킨의 모험>, <2040> 등이 대표작이다)가 빠진 것이 아쉽다. 또 하지만, 서두에서 얘기했듯이, 이러한 선정이 편파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일을 벌이면서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으므로…
04. 10. 20.
P.S.1. 대략 본문에서 나열한 목록을 볼 때, 시의 경우가 제외되긴 했지만, 러시아문학의 20세기가 결코 다른 나라에 뒤질 건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19세기와 비교해 보면 다소 부족해 보이는 것도 사실인데(이건 1910-20년대 시인들의 목록이 추가돼야 카바될 수 있다), 그래서 러시아문학사에서는 넓은 의미에서 19세기를 ‘금세기’라고 하고 20세기를 ‘은세기’라고 한다. 그런 논리에 따르자면, 21세기는 ‘동세기’가 된다. 아직은 거의 출발선상이라고 할 수 있지만, ‘동세기’라고 해서 (경쟁이) 널널한 건 아니다. 무릇 작가라면 상당한 재능과 치열한 문제의식으로 무장하고 목숨을 걸고 써야 ‘동세기 문학사’에라도 이름을 걸 수 있을까 말까이다(물론 내 생애에는 그 문학사의 종결을 보지 못하겠지만).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근대문학 100년을 갓 넘긴 한국의 작가들은 상대적으로 축복 받은 편이다. 적어도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를 상대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나보코프나 불가코프를 상대하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일까? 한국의 젊은 작가들이 적당한 재능과 적당한 문제의식으로 무장하고 팔릴 만한 것에만, 혹은 사소한 것에만 목숨 걸며 써대는 것처럼 보이는 건? 한국문학의 ‘황금시대’는 이미 지나가버렸다고 믿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언제? 언제였단 말인가?..
P.S.2. 지난 통신문 (46), (47)에도 이런저런 오류/오타들이 있었는데, 중요한 내용상의 오류들만 교정한다. 먼저, (46)에서 푸슈킨 동상에 새겨진 <기념비>의 시구가 1연과 3연이라고 했는데, 3연과 4연이다. 3연은 확실했고 나머지는 미심쩍었는데(그래서 ‘내 기억이 맞다면’이란 단서를 달았었다) 지난주에 근처에 간 김에 확인해봤다. 동상의 받침대 왼편에 새겨진 것이 3연, 즉 “나의 명성은 위대한 러시아 전역에 퍼져 가리라,/ 그리고 존재하는 모든 민족이 그들의 언어로 나를 부르리라,/ 자랑스러운 슬라브족의 자손과 핀족, 지금은 야만적인/ 퉁구스족, 그리고 초원의 친구인 칼미크족까지.”이고, 오른편에 새겨진 게 4연, “그리고 오랫동안 나는 민중의 사랑을 받으리라,/ 내가 리라로 선량한 감정을 일깨우고,/ 이 가혹한 시대에 자유를 찬양하고,/ 쓰러진 자들에게 자비를 호소했으므로.”이다.
그리고 통신문 (47)에서 노벨문학상 후보가 될 만한 동시대 러시아 작가들을 거명하면서, “드미트리 피로고프, 레프 루빈슈타인 등의 개념주의 시인/작가들”이라고 했는데, ‘피로고프’가 아니라 ‘프리고프’이다. ‘피로고프’는 고골의 <넵스키> 거리에 나오는 속물 장교로 그 이름의 어원은 ‘피로기’(‘고기만두’란 뜻)이다. 가장 저명한 개념주의 시인을 ‘고기만두’로 만들 뻔했는데, (음성학적으로) 두 이름이 헷갈릴 만하지만 그건 실례라고 해야겠다. 참고로, 프리고프는 수년 전에 방한해서 문학강연을 한바 있는데, 마치 무슨 주술사처럼 신들린 듯한 시낭송을 겸했었다(하지만, 무당은 아니고 상당히 똑똑한 시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