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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책] 진정한 미식가는 맛을 멋지게 말한다

미식예찬 장 앙텔므 브리야 사바랭 지음/홍서연 옮김/ 르네상스/ 578쪽

박해현기자 hhpark@chosun.com

입력 : 2004.11.26 17:26 49'












▲ 미식 예찬
신은 인간에게 식욕을 선사했고, 인간은 맛의 쾌락으로 식욕에 축복을 내렸다. 사과 한 알 때문에 낙원에서 추방당한 인간은 맛난 음식을 통해 낙원으로 되돌아가는 길을 찾는 것이 아닐까.

‘동물은 삼키고, 인간은 먹고, 영리한 자만이 즐기며 먹는 법을 안다.’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해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

19세기 프랑스의 법률가이자 미식가로 유명했던 장 앙텔므 브리야 사바랭이 남긴 잠언들이다.

음식 앞에서 욕망의 하품을 참지 못하는 사람. 거기에 더 해 탐식과 폭식을 경멸한다면, 스스로를 미식가로 여길 법하다. 진정한 미식가는 혀로 맛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맛에 대해 멋지게 말할 줄도 안다. 식탁에서 끊이지 않는 대화의 물꼬를 제대로 터주는 미식가라면 단연 유장한 글솜씨도 지니기 마련이다.

브리야 사바랭의 ‘미식 예찬’은 1825년 프랑스 파리에서 출간된 이후 ‘미식 문학’의 원조로 추앙받아 왔다. 알렉상드르 뒤마와 같은 유명 문인들이 이 책의 영향을 받아 요리책이나 미식의 행복을 예찬하는 글을 쓰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이 책의 원제는 ‘Physiologie du go?t’(미각의 생리학). 당시 프랑스에서는 ‘생리학’이란 이름으로 다양한 분야의 풍속을 현학적이면서 풍자적으로 분석하는 책을 쓰는 것이 유행했다.

이 책이 1825년에 나왔다는 것은 적잖은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프랑스혁명은 궁중의 비밀스러운 고급 음식 취미를 거리로 풀어냈다. 왕조가 무너지고 공화정이 들어서면서 왕과 귀족의 식탁을 준비하던 수많은 조리사들은 거리에 레스토랑을 차리고 프랑스 요리의 품위를 단번에 끌어올렸다. 그 뒤 불과 한 세대 만에 사바랭은 ‘미식’을 하나의 교양으로 완성했다. 19세기 프랑스의 관점에서 미식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이 책은 이렇게 정의했다. “그것은 아테네의 우아함과 로마의 사치와 프랑스의 섬세함의 결합이며, 통찰력 있는 배치, 교묘한 기술, 열정적인 감상이자 심오한 판단이다. 그것은 고귀한 자질로서 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며, 적어도 확실히 우리의 가장 순수한 쾌락의 원천이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요즘 우리 주변에 넘쳐나는 ‘맛있는 집’류가 아니라 인간의 미각이 지닌 신비를 풀어보기 위해 해부학, 화학, 물리학, 철학, 역사, 문학 그리고 유머를 동원한 풍부한 교양서다.

저자는 ‘사람은 그가 먹은 것으로 살지 않고 소화한 것으로 산다’면서 소화 방식에 따라 사람은 슬프거나 과묵하거나 수다스럽게 된다고 지적한다. 소화하는 방식은 ‘규칙적 유형, 변비성 유형, 느슨한 유형’으로 크게 나뉜다고 한 이 책은 문인들의 경우에 “희극 시인은 규칙적인 유형에 속하고, 비극 시인들은 변비성 유형에, 비가와 목가의 시인들은 느슨한 유형에 속한다”고 평가했다.

“미각을 즐겁게 하는 사물에 대한 정열적이고 사리에 맞는 습관적 기호”로서 미식은 정치경제적 관점에서도 미식 산업을 낳아 사회적 소득 창출의 근원이고, 국가의 과세 정책에도 기여한다고 이 책은 찬양한다. 또한 미식가에 대해 “타고난 미식가는 일반적으로 중간 키에 둥글거나 네모진 얼굴, 빛나는 눈, 좁은 이마, 짧은 코, 두툼한 입술, 둥그스름한 턱을 가지고 있다. 여자들의 경우 통통하며, 아름답기보다는 어여쁘고, 약간 비만의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미각 쾌락 능력을 자연으로부터 부여받지 못한 사람들은 기다란 얼굴과 코와 눈을 가지고 있다. 키가 크건 작건, 그들의 풍모에는 기다란 데가 있다. 그들은 검고 곧은 머리칼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전혀 살이 찐 경우가 없다. 바지를 발명한 것이 그들이다”라고 탄식한다.

매력적인 요리란 무엇인가에 대해 이 책은 “매우 가벼워서 위에 거의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미각을 즐겁게 한다. 그래서 세네카는 ‘먹을 수 있는 구름’이라고 말했던 것”이라고 정의한다. 그렇다면 미식을 즐기기 위한 저녁 식사는 어떤 것인가. “초대자의 수는 열둘을 넘기지 말아야 한다. 언제나 모두 대화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식당의 조명은 밝아야 하고 실내 온도는 섭씨 16~20도가 돼야 한다. 남자들은 거만하지 않고 기지가 있어야 하며, 여자들은 너무 교태스럽지 않고 매력적이어야 한다. 음식의 첫 번째 단계는 영양 많은 것으로부터 가벼운 것으로 진행되어야 하고, 두 번째 단계는 약한 것으로부터 진한 것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끝내는 것은 11시 이전에 해서는 안 되며, 자정에 모든 사람이 잠들어야 한다.”

역시 프랑스인이 쓴 책답게 포도주 예찬이 빠질 수 없다. “물만 마시는 사람이 쓴 시는/ 결코 즐겁거나 오래 남을 수 없나니”라고 한 이 책은 “이 몸이 죽을 때까지/ 나를 위해 백포도주는 죽지 말지어다/ 내 몸속의 붉은 적포도주와 함께/ 평화가 그들을 하나로 합칠 때까지”라고 노래한다.

또한 이 책은 비만을 방지하기 위한 식이요법도 소개한다. “여름마다 천연 광천수를 마셔라. 아침에 큰 잔으로 한 잔, 아침식사 전에 또 한 잔, 그리고 잠자리에 들면서 또 한 잔. 앙주(Ange)산 포도주와 같이 가볍고 새큼한 백포도주를 평상시에 갖추어 두어라. 맥주를 흑사병처럼 멀리하라. 래디시, 소금과 후추를 친 아티초크, 아스파라거스, 샐러리, 카르돈을 자주 식탁에 올리게 하라. 고기 중에서는 송아지를 택하고, 빵은 껍질만 먹어라.”

미식의 끝? 저자에 따르면 그것은 죽음이다. 미각을 잃는 것처럼 슬프고 고통스러운 것은 없다. 그러나 그는 “포식 뒤의 잠과 꿈이 주는 휴식처럼 죽음마저 평화롭고 감미로울 수 있다”는 미식가의 생사관을 속삭인다. “죽어가는 자가 이제 냄새를 맡지 못하고 맛을 보지 못하며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할 때에도, 촉각은 남아있어 그는 이불 속에서 몸을 움직이고 팔을 뻗고 매순간 자세를 바꾼다. 어머니의 몸속에서 움직이는 태아와 유사한 방식으로 움직인다. 그에게 엄습할 죽음은 그를 두렵게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더 이상 관념 없이, 그가 삶을 시작했던 것처럼 의식 없이 삶을 끝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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