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플라시보 > VIP

어제 간만에 일찍 퇴근을 하고 백화점에서 근무하는 후배와 같이 저녁을 먹었다. 후배는 상담실에서 근무하다가 얼마전 VIP고객들을 상대하는 부서로 옮겼다고 한다. 그녀가 주로 하는 일은 VIP고객들이 왔을때 그들을 접대 하는것. 백화점을 가 보면 엘리베이터 앞이나 매장 안에 의자와 탁자가 있어 휴식공간이 있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서민들이 앉아 쉬는 곳이고 VIP들은 전용 라운지에서 따로 쉰다고 한다. 이 전용 라운지에서는 수십가지 종류의 고급스러운 음료가 준비되어 있으며 쿠키나 케잌등의 간식도 최고급만 가져다 놓는다고 한다. 그럼 백화점에서 VIP가 되려면 얼마나 써야 할까? 후배 말로는 연간 2천5백만원 이상 쇼핑을 해야 가능하다고 하며 대부분의 VIP들은 연 3천만원 이상씩 쓴다고 한다.

후배는 상담실에 있을때도 무척 괴로워했다. 매장에서 해결되지 않는 온갖 종류의 불만을 다 처리해야 했기 때문이다. 프라이팬을 사간 고객이 거기다 생선을 굽고는 닦지도 않고 가지고 와서 바꿔 달라는건 다반사고 에어컨의 경우 한여름 내내 틀다가 10월이 되면 환불을 요구하고 오리털 이불도 신나게 덥다가 봄이 되면 다른 제품으로 교환을 해 달라고 한다. 고객들이 큰 소리를 지르거나 소란스럽게 하면 대부분은 고객의 말을 다 들어준다고 한다. 그런데 후배는 상담실에 있을때는 시달리기만 했었는데 VIP 고객을 상대하는 부서로 옮기고 난 이후에는 더럽고 아니꼬워서 일을 못하겠다고 했다. 물론 아닌 사람들도 있지만. (아예 아닌 사람들은 VIP카드조차 받으러 오지 않고 VIP서비스는 받지도 않고 그냥 조용히 쇼핑을 하고 간다고 한다.) 한번 까탈스럽게 굴기 시작하면 그 비위 맞추기가 너무나 힘들고 또 그들이 잘난척을 하기 시작하면 오장육부가 뒤틀릴 정도로 잘난척을 한다고 했다. 그녀가 말한 VIP고객들의 몇몇가지 재수없는 사례들이다.

1. 난 뭐뭐 아님 못먹고 못 마셔

위에서 말한것 처럼 VIP고객들을 위한 전용 라운지에는 음료나 간식이 최고급으로 준비되어 있다. 쿠키는 거의 수입품이고 초컬렛도 수제품을 가져다 놓는다. 물도 에비앙 생수를 가져다 놓고 음료 역시 돈 주고 사먹으면 작은 병당 3천원은 너끈하게 하는 수입 음료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꼭 보면 거기 와서 듣도 보도 못한 음료나 쿠키 혹은 차의 이름을 대면서 자긴 그거 아니면 못먹는다고 말 하는 부류들이 있다고 한다. 물론 사람마다 다 입맛이 다르긴 하겠지만 어디에 식사를 하러 간 것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까탈스러울 필요가 있을까 싶다고 한다. 그리고 차라리 없는 음료를 찾으면 다음번에는 꼭 구해 놓겠다던가 할 수 있지만 직접 우려내는 차나 커피의 경우는 너무 진하다, 너무 연하다 등등의 갖은 이유를 대면서 서너번씩 '다시'를 외친다고 한다. 원두커피를 세번 정도 추출해내다 보면 자기가 스타벅스에 취직해도 이것보다는 낫겠다 싶을때가 한두번이 아니라고 한다. 또 VIP고객의 대부분은 주부들인데 그녀들이 데리고 오는 자녀들의 입맛또한 대단해서 그런 고객들은 아이들의 이름까지 적어놓고 고객이 왕림하시기 전에 미리 전화를 주면 그 아이가 좋아하는 간식을 준비 해 놓는다고 한다. 물론 이 모든건 다 공짜로 제공이 된다.

2. 무리한 부탁을 하는 고객들

가끔 VIP고객들은 그녀를 개인 비서로 생각한다고 한다. 쇼핑하기 귀찮으니까 카드 가지고 나가서 선물할만한 적당한걸 좀 골라 오라거나 심심하니까 같이 쇼핑하러 가자고 하는 경우는 다반사이다. 이 경우에도 그녀는 끊임없이 무시를 당한다. '이게 괜찮은것 같은데요 고객님' 하면 '어머, 좀 싼티난다' 혹은 '언니 눈이 너무 낮은거 아니야?' '내가 이런거 정도 살 수준으로 보이니?' 라고 한단다. 그녀 딴에는 자기 월급 석달치를 쏟아부어도 겨우 살까 말까한 브롯치라던가 작은 토트백을 손떨려하며 권했는데 VIP고객들의 눈에는 자신은 이것보다 훨씬 비싼걸 사야하는 분이며 눈이 낮은 그녀가 고른 싼티나는 물건일 뿐인 것이다. 거기다 자기 아이를 봐달라고 하거나 바로 옆에 네일아트숍이 있는데도 자기는 보통 사람들하고 같이 앉아서 손톱을 가꿀수 없다며 네일아티스트를 VIP룸으로 불러 달라고 한다. 그러면 그녀는 네일아트숍에 가서 욕을 바가지로 먹으며 네일아티스트를 데려다가 VIP손님 앞에 대령해야 한다. 또 어떤 고객들은 선물할 시즌이 되면 구입한 물건들을 그녀에게 우루루 쏟아 놓고는 손수 카드를 적어서 포장센터에 맞긴 다음 택배로 보내줄것을 요구하고 심지어는 퇴근하고 난 이후에 직접 찾아가서 선물을 전해주라는 부탁도 한단다. 동창회나 모임등의 요직을 맡고 있는 VIP고객들은 모임이 있으면 100명이 넘는 명단을 주면서 일일이 모임 시간과 장소를 통보해주라는 부탁도 여사로 한다.

3. 자랑 또 자랑

VIP고객들은 룸에서 쉬다가 쇼핑을 하고 바로 집에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한다. 쇼핑을 하면 다 가지고 와서 그 자리에서 펴보며 끊임없이 자랑을 한다. '이거 얼마짜린줄 알아?' 부터 시작해서 '이런거 사려면 언니 석달치 월급으로도 안될껄?' 등등의 말을 늘어놓으며 그녀의 염장을 팍팍 지른다. 그녀가 고객의 옷차림이나 구두, 핸드백등을 칭찬하면 '당연하지 이게 얼마짜린데' 라는 말을 빼놓지 않는다고 한다. 아무리 비위를 맞추는게 직업이지만 정말 하다가 보면 아니꼽고 더러워서 사람나고 돈 났지 돈나고 사람 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고 한다. 심지어 차를 바꾸면 주차장까지 따라가서 그 차를 구경하고 감탄을 해 줘야 하며 집자랑이나 돈자랑은 마르지 않는 샘과도 같단다.

이렇게 하는 고객의 대부분은 주부라고 한다. 돈 많은 남편을 만나서 매일매일 쇼핑을 해도 모자라는 그녀들. 어떤 VIP고객들은 VIP카드를 받아가고 서비스를 받으라고 해도 오지 않는 반면. 어떤 고객들은 거의 매일 출근도장을 찍다시피 백화점에 들러서는 자랑과 까탈을 믹스한 쑈를 펼친다고 한다. 물론 돈이 많으면 돈이 없는 사람들 보다 해택을 받는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녀가 본 일부 VIP고객들은 그 정도가 지나치다고 한다. 마치 자기는 그녀같은 인간들과는 태생부터 다르다는듯. 조금만 불만이 있어도 '감히 내가 누군줄 알고 이따위로 대하냐' 며 불같이 화를 내고 보통 사람들 같으면 아부의 정도가 너무 심한거 아니냐고 기분 상해할 정도로 아부를 해 주길 바란다고 한다. 요즘 그녀는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원형 탈모증에 시달리고 있다. 얼마전부터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있긴 하지만 매일 받는 스트레스의 양이 많아서 치료가 될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끝으로 VIP고객들은 자기네들과 다른 부류의 인간들이 VIP룸에 있는걸 못견딘단다. 그녀와 예전에 상담실에서 근무하던 동료 직원이 잠깐 그녀를 찾아 왔는데 고객이 그 직원을 위아래로 보면서 '여긴 아무나 함부로 못 들어오는데...' 하더란다. (보통 매장에 있는 직원들과 VIP룸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은 옷차림이 다르다.)

이제 곧 크리스마스기 때문에 그녀는 VIP고객들에게 선물도 발송해야 하고 (자녀들이 있으면 자녀들의 선물까지 챙겨야 한다.) 또 그들이 개인적으로 부탁하는 선물 발송과 선물 고르기를 도와줘야 한단다. 돈이 좋기는 하지만. 자긴 돈이 아무리 많아도 모든 사람에게 반말을 하며 자기 아래 시종부리듯 하는 그들이 조금도 부럽지 않다고 한다. 나도 그녀의 얘기를 듣고 나니까 돈이 아무리 많아도 저런 인간성을 가졌다면 결코 행복하지 않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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