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최고 인기 교양강좌를 책으로 옮긴 <서울대 인문학 글쓰기 강의>의 저자 이상원을 만났다. 인터뷰 준비로 책을 살피면서 뭔가 기발한 교수법과 학습법을 기대한, 여전히 글쓰기에 대한 환상에 사로잡힌 나를 돌아보았다. 인터뷰 때 만난 그 역시 비슷했다. 꾸미거나 치장하는 말이 없었다. 질문은 거리낌 없이 그의 생각으로 들어갔다가 있는 그대로 답변으로 튀어나왔다. 그를 만나 글쓰기에 대한 생각과 글쓰기 수업을 대하는 태도를 들으며 "글은 한 번 쓰는 것으로 끝이 아니라 소통의 출발점이자 너와 나, 세상이 조금 더 나아지는 과정의 일부'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수업에서 글을 쓰지 않는 유일한 사람이 자신이라며 낮은 자세로 학생들의 글을 마주하는 이상원의 인문학 글쓰기 강의를 만나보자.

 

 

 

알라딘에서는 이 책을 바탕으로 인문학스터디_인문학 글쓰기 워크숍을 진행합니다. 실제 글을 쓰고 함께 읽는 형식의 모임으로 2월 1일부터 세 차례에 걸쳐 진행합니다.

http://www.aladin.co.kr/events/wevent_book.aspx?pn=20120112_inmunstudy11

 

 

 

인문학 글쓰기,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나?

 

책 서두에 6년 전부터 강의를 시작하셨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제 기억으로는 그때가 여러 대학에서 학부대학 등 새로운 교양 교육 과정을 만들면서 글쓰기 강좌를 연 시기인데요. 대학 글쓰기 교육의 초창기부터 함께하신 셈인데요. 처음 시작하셨을 때와 지금 글쓰기 교육의 환경들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궁금한데요.

글쎄요, 관련한 책은 많이 나왔는데 전체적인 분위기는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해요. 여전히 학술적 글쓰기라 불리는 논리적, 논증적 글쓰기에 치중한 수업이 대부분이거든요.

 

선생님 수업하고는 사뭇 다른 느낌인데요.

네, 제가 이단아 같은 느낌도 들어요. 그래서 자주 스스로 묻게 되죠. 잘 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나 혼자 다른 데로 가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해요.

 

강의하시는 학교의 수업은 인문학 글쓰기, 사회과학 글쓰기, 과학기술 글쓰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각의 역할이 어떻게 구분되어 있나요.

사실 이름은 다르지만 세 가지가 모두 학술 글쓰기의 하나로 큰 차이는 없어요. 다만 애초에 그렇게 나눈 이유는 수강생의 전공 차이가 아닌가 싶어요. 이공계 전공생들이 과학기술 글쓰기를 듣고, 사회과학 글쓰기는 사회과학적 접근을 필요로 하는 전공생들이 주로 들으니까요. 다만 인문학 글쓰기는 누가 듣는지 애매한 부분이 있어요. 인문학 공부하는 사람들은 글쓰기 수업 별 필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어쨌든 듣는 사람에 따른 구분인 듯해요. 물론 다른 두 글쓰기는 상대적으로 양식이나 논지 전개 방식 등이 정해진 느낌이 있어요. 그래서 이걸 가르쳐주고 학생들이 여기에 맞춰 글쓰기를 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거죠. 그런데 인문학 글쓰기는 좀 다른 듯해요. 미운 오리 새끼 같다고 할까요. 예를 들어 철학 글쓰기와 어문학 분야의 글쓰기도 상당히 다르잖아요. 기준을 정하기가 쉽지 않은 듯해요.

 

그럼에도 인문학 글쓰기란 강좌를 맡은 초기부터 나를 소개하는 글, 감상 에세이, 주제 에세이 세 가지의 글을 쓰고 함께 읽는 워크숍 형태의 커리큘럼을 구상해서 수업에 적용해오셨잖아요. 초기부터 이런 방식의 수업에 확신을 가지셨던 건가요?

2006년부터 글쓰기 수업을 시작했는데 그 이전에 통역번역대학원에서 번역 수업을 진행했어요. 그때 수업이 학생들이 번역한 원고를 서로 읽어가며 이야기하는 방식이었거든요. 글쓰기 수업을 맡기 전에 모의수업을 했는데, 여기에서 같은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했는데 평가가 괜찮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까지 이어오게 된 거죠. 이후에 상황에 따라 약간의 수정은 있었지만 큰 방향에서는 변화가 없었어요. 고민이 부족했다고 볼 수도 있겠는데, 그보다는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번역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선생님께서는 글을 쓰시면서 글쓰기를 가르치시고, 번역을 하시면서 번역을 가르치신 경험이 있으시잖아요. 개인의 경험으로나 가르치는 일에 있어서나 상호작용하는 측면이 있을 듯한데요.

개인적으로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서로 연결이 되어 있다는 게 말이죠. 제 글쓰기 수업을 보면 글을 쓰고 고치는 일 못지않게 ‘읽기’가 중요한 영역을 차지하거든요. 다른 친구들의 글을 읽어줘야 하니까요. 결국 열심히 읽기라는 게 제가 번역을 하고 번역 수업을 했던 경험에서 오는 것 같아요. 번역을 하는 과정에서는 저자의 생각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게 상당히 중요하거든요. 저는 이게 글쓰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이런 면에서 수업과 연결되는 부분이 있겠지요.

 

 

학생들이 만드는 자유로운 글쓰기 수업

 

학생들에게 글쓰기 과제를 주실 때 주제나 소재를 주지 않고 자유롭게 골라서 쓰게 하시잖아요. 오히려 학생들이 혼란스러워 한다거나 부담스러워 할 것 같은데요.

물론 처음에 주제를 스스로 잡아서 쓰라고 하면 우왕좌왕하죠. 실제 글을 쓰기 전에 기획 발표를 하는 과정이 있는데, 이때까지도 방향을 잡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이 친구들의 관심사가 다양하거든요. 게임이라든지 만화라든지 자기가 심취한 분야가 있는데, 여기에 대해 글을 써볼 기회는 가져보지 못한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서 이걸 새롭게 발견하게 되는 경우들도 있고, 이런 도전 자체가 글쓰기에 있어서 중요한 공부하고 생각해요. 글쓰기의 중요한 단계이기도 하고요. 대학에서 글쓰기 과제는 대개 주제나 범위가 정해지잖아요. 그래서 그렇지 않은 글쓰기도 경험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자유롭게 진행을 하면, 학생들이 써오는 글쓰기의 주제가 정말 다양하겠네요.

네, 주제는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해요. 솔직히 깊이라는 면에서는 얕은 부분도 있죠. 그런데 이 글은 그 학생이 살아가면서 쓸 수많은 글 가운데 한 편이고, 그 과정에서 겪는 하나의 시도이기 때문에 저는 이 부족함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책에서 예로 든 오렌지주스나 초코 과자에 대한 글을 깊이 있게 끌고 가기는 어렵겠지요. 하지만 자기 나름대로 고민하고 써보는 경험 자체가 소중하니까요. 깊이 못지않게 접근의 다양성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글쓰기의 주제뿐 아니라 수업의 흐름도 무척 자유로운 듯한데요. 교사로서 개입하고 싶은 마음은 없을까요? 그런 마음이 드는데 참는 편인지 아니면 그런 마음 자체가 크지 않은지 궁금한데요.

아, 저는 그런 마음이 크지 않은 편이에요. 앞에서 혼자 떠드는 걸 싫어해요. (웃음) 일방통행이잖아요. 물론 뒤에 앉아 있어도 말을 하고 싶을 때가 있죠. 그럴 때도 주로 참는 편이고 아무도 말을 하지 않을 때 공백을 메우기 위해 끼어드는 편이에요. 그래서 생각하시는 것만큼 힘들진 않아요. 저는 학생들이 절 잊어버리길 바라요. 다만 제가 앉아 있는 이유는 학생들이 수업에 제때 와야 한다는 정도의 의무감을 전해주는 거죠. 그 다음은 학생들 몫이고요.

 

앞서 잠깐 나온 부분인데, 글쓰기 주제를 미리 발표하고 다른 친구들의 의견을 듣는다는 부분이 기억에 남는데요.

하나의 글쓰기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글 주제를 발표하는 게 아니라 앞선 글을 다듬어가는 과정에 새로운 글쓰기 주제 발표가 맞물리는 거죠. 사실 즉흥적으로 시작한 과정인데요. 학생들이 주제에 대한 생각을 갖고 글쓰기에 들어가도록 해주는 역할도 있고, 서로의 글에 관심을 갖게 만들어주는 효과도 있어서 좋은 방법론이 아니었을까 감히 생각을 합니다. 다른 글쓰기 선생님들께서도 ‘이건 괜찮은데’라고 말씀해주시더라고요.

 


결국, 글쓰기는 소통이다

 

학생들이 온라인 공간에서 자유롭게 댓글을 주고받게 하시잖아요. 오프라인 수업과 온라인 공간에서의 의견 교환이 잘 이루어질 수도 있지만, 보통 게시판 문화에서는 좋지 못한 모습도 자주 보게 되는데요.

일단 익명성이 배제된 온라인 소통이라서, 배설하는 식의 댓글을 남기게 되면 다음 수업에서 글쓴이가 그 친구에게 물을 수밖에 없거든요. 왜, 무슨 의도로 이런 댓글을 남긴 건지 말이죠. 그런 면에서 책임과 압박감이 있지요. 그냥 ‘잘 읽었습니다’ 정도의 댓글은 의미가 없기 때문에 자기 의견을 전개할 정도의 분량은 나오는 것 같아요. 그리고 수업 시간에 논의할 수 있는 시간은 제한이 있기 때문에 게시판 내에서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소통하는 경우도 있어요. 댓글을 통해서 잘못을 확인하면 금세 글을 수정하고 바뀐 내용에 대해 다시 댓글로 남겨두기도 하거든요.

 

글을 고치는 일이 정서적으로 쉽지 않은데 게시판에서 그 정도로 활발하게 움직인다면, 상황을 지켜보는 선생님 입장에서는 꽤 즐거운 일일 듯하네요. 글쓰기 분량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가면 좋겠는데요. 선생님 수업에서는 분량 제한은 없지만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은 주시잖아요. 그런데 의아했던 게 감상 에세이나 주제 에세이보다 나를 소개하는 글의 최소 분량이 적은 점인데요. 아무래도 자기 이야기를 쓰는 글이니 할 말들이 더 많을 듯한데요.

최저 분량을 정해놓으면 물론 생각의 폭이 제한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학생들 가운데 30% 정도는 최저 분량을 훨씬 넘겨서 써요. 글의 분량에 제한을 둔다기보다는 지나치게 짧아지는 부분만 경계한다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그리고 고쳐 쓰기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요. 수업을 하다보면 거의 고치지 않는 친구들도 있어요. 의견은 경청하되 최종 판단은 자기 몫인 거죠.

 

선생님 글쓰기 수업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질문은 아니지만, 손으로 글을 쓰는 것과 컴퓨터로 글을 쓰는 것. 선생님께서는 둘의 차이를 경험해본 세대시잖아요. 차이를 느끼시나요?

저는 학부 때까지는 손으로 쓰고, 대학원 때부터 컴퓨터를 활용했는데요. 너무 악필이어서 컴퓨터가 아니라면 번역을 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혜택을 너무 많이 받아서 그런지 둘의 차이랄까 손으로 글쓰는 일의 의미랄까, 이런 부분에는 크게 공감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다만 글쓰기 계획을 하는 과정에서 마인드맵핑을 할 때는 손으로 작업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모니터 앞에서는 하기 힘든 작업이니까요. 그런데 문장을 만들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손으로 하기 어렵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필사를 강조하는 분들도 계신데, 저는 실제로 해보지 못해서 도움이 되는지 잘 모르겠어요. 드는 공력에 비해서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싶어요. 물론 아예 문장을 만들지 못하는 정도라면 필요할 수도 있겠지요.

 

수업 평가 관련해서 두 가지 질문이 있는데요. 우선 첨삭이 없다는 부분이 의아한데요. 많은 분들이 글쓰기 수업을 듣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강사가 조목조목 짚어주기 때문일 텐데요.

제 첨삭이 없다뿐이지, 저는 실제 첨삭이 있다고 생각해요. 학생들이 서로 첨삭을 해주고 있으니까요. 제가 첨삭한다고 했을 때 이야기할 부분은 학생들의 이야기 속에서도 거의 다 나오거든요. 만약 안 나온다면 제가 개입해서 한두 마디 더할 수도 있고요. 제가 첨삭을 안 하는 부분은 비판받을 여지도 있을 텐데, 첨삭이 일방향 소통이 되거나 제가 제시하는 정답을 보여주는 데 그친다면 오히려 제가 생각하는 수업의 방향과는 배치될 수도 있으니까요. 당연히 첨삭을 꼼꼼히 해주시는 선생님들의 노고는 칭찬받아 마땅하지요. 다만 전체 수업의 그림에서 이런 선택을 한 거라는 변명 아닌 변명이에요. (웃음)

 

수업의 평가는 절대평가인데요. 다행입니다. (웃음) 세 가지 글을 써내는 일에서 낙오하는 학생들은 별로 없을 것 같은데, 상대평가였다면 채점자 입장에서는 난감할 듯하거든요. 물론 절대평가라 해도 기준은 있을 터인데,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글 세 편을 제때 썼는지, 친구들의 글에 댓글을 제대로 달았는지는 양적 지표로 나오는 것이고요. 수업 시간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참여했는지는 제가 판단하는 부분이지요. 그게 다죠 뭐. 출석도 수치로 나오는 거고요.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하면 A+나 A0를 받는데, 절대평가 수업이라서 A0를 받은 학생들의 이의제기가 많아요. 할 수 없어요. 싸워야죠 뭐.

 


모든 글은 귀하다

 

나를 소개하는 글, 감상 에세이, 주제 에세이 세 가지 유형 가운데 어떤 글을 읽을 때 가장 즐거우세요?

다 재미있죠. 비교는 어렵고요. 각자 다른 재미지요. 나를 소개하는 글은 기발한 내용이 많은 데다, 서로 모르는 상황에서 글을 읽고 실제 강의실에서 얼굴을 마주하기 때문에 둘을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어요. 감상 에세이는 서로 다른 경험을 공유한다는 측면에서 재미있어요. 영화라든지 여행이라든지 하는 내용이니까요. 마지막 주제 에세이는 내용을 두고 논쟁이 많이 벌어져요. 이렇게 각자 재미가 있는 거죠.

 

본문에서 학생들의 글 일부분을 직접 보여주는데, 이 부분이 본문과 유기적으로 연계되는 느낌은 덜했거든요. 그리고 뒷부분에 학생들의 글을 일부분이 아니라 통으로 보여주시는데 이렇게 배치하신 까닭이 궁금합니다.

일단 밀접한 연관성을 느끼지 못하셨다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따로 드릴 말씀이 없는데, 우선 저는 보여주고 싶었어요. 말로만 설명하기보다는 학생들이 실제 어떤 글을 쓰는지 보여주는 게 낫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앞부분에는 일부분만 보여주기 때문에 전체를 보여주자는 생각에 뒷부분에 따로 글 전체를 넣은 건데, 여기에는 다른 생각도 하나 있어요. 이 책이 단순히 글쓰기 강의를 보여주는 걸 넘어서 요즘 학생들이 이런 생각을 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기도 했어요. 읽어보셨겠지만, 상당히 감동적이거든요.

 

한 학기 수업으로 마무리가 되는데요. 학생들이 이후에는 각기 다른 글쓰기를 경험하게 될 텐데,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선생님의 수업은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요.

각자 다른 인생 경로가 펼쳐질 텐데요. 공부를 해나갈 학생들은 주로 주제가 정해진 글쓰기를 경험할 텐데, 그렇더라도 내 글을 읽는 사람을 미리 생각해보는 경험이 될 것 같아요. 읽을 사람들을 배려하는 시도를 하게 될 거라 기대해요. 회사에 들어가서 기획서를 쓴다거나 하는 친구들에게는 형식과 내용의 기발함이 도움이 될 것 같고요. 자유롭게 글을 쓸 친구들에게는 자기 글을 두고 일종의 합평을 해보았다는 경험이 앞으로 글을 쓸 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주제 에세이나 감상 에세이를 소설로 쓰는 친구들도 있거든요.

 

결국 읽는 이를 미리 생각해본다는 점이 중요한 부분이군요. 책에서 가장 와 닿았던 말이 “모든 글은 귀하다”였거든요. 우리는 늘 다른 이의 글을 평가하는데, 선생님 글쓰기 수업은 거기에서 끝내는 게 아니라 각자의 생각을 나누기 때문에 모든 글에 이유가 생기는 것 같아요.

제 개인적인 깨달음이기도 해요. 저도 논문을 썼고, 다른 사람들의 논문을 읽기도 하는데, 글쓰기 수업을 하면서 이걸 읽는 태도도 달라졌어요. 글쓴이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한 결과이기 때문에 존중해서 대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거죠. 학생들도 서로의 글을 그렇게 대해주기를 기대하고, 또 실제로 그렇게 해주는 것 같고요. 자기는 절대 공감할 수 없는 주장을 하는 글이라도 열심히 읽어주고 내가 왜 동의할 수 없는지 찾아보는 게 그 글에 대한 합당한 태도라고 생각해요. 이런 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태도인 것 같아요.

 

알라딘 인터뷰의 공식 질문이 남았습니다. 글쓰기에 관한 책을 추천해주셔도 좋고, 선생님 강의를 들을 학생들에게 추천해주셔도 좋습니다.

어쩌면 저에게 제일 처음 글쓰기에 영향을 주신 분이 이오덕 선생님인 것 같아요. 초등학교 시절에 선생님 글을 처음 읽었는데, 그야말로 꾸밈없는 글을 강조하신 분이시잖아요. 제가 하고 있는 많은 생각이 선생님과 맞닿아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리고 요즘 학생들은 책 이외에도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여러 곳에서 생각을 찾거든요. 그래서 뭘 하든, 운동이든 여행이든, 여기에서 그치지 말고 생각을 이어가면 좋겠어요. 이걸 내가 왜 좋아하는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이런 식으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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