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분노이고 절규입니다

오 주여, 저마다 고유한 죽음을 주소서.
사랑과 의미와 고난이 깃든
삶에서 나오는 그런 죽음을 주소서.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에 대해 추천사를 써달라는 부탁을 받은 지 벌써 두 달이 넘었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고 지금껏 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같이 소박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죽음에 대해 그들의 비참한 노동현장에서 멀찍이 떨어져 사는 저는 위로의 말조차 할 자격이 없다고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오늘 나의 삶과 우리가 누리는 풍요가 여기 이 책에 기록된 대로 자신의 생명을 소진하며 노동하는 분들의 희생 위에서 지속할 수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생각하면, 저는 지금도 제가 이분들의 죽음의 기록 앞에서 말을 보태는 것이 염치없고 뻔뻔하기까지 한 일처럼 생각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제가 책 앞머리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몇 말씀을 보태는 것은 여기 기록된 분들의 고통스러운 삶과 죽음이 그대로 잊혀서는 안 된다는 절박한 마음 때문입니다.

생각하면 너무나 오랫동안 우리들 한국인은 우리 가운데 가장 약한 자들을 수탈하고 희생시켜 그 과실을 남은 자들이 향유해왔습니다. 흔히 우리가 한강의 기적이라고 부르는 경제성장이란 바로 그런 수탈의 다른 이름입니다. 변변한 자본도 기술도 없는 상태에서 독재적 리더십에 의해 추진된 경제개발이란, 국가 폭력을 동원하여 가장 가난한 자들을 희생시켜 이루어낸 성과였던 것입니다.
  슬픈 것은 그렇게 약자를 희생시켜 전보다 조금이라도 더 잘살게 된 사람들이 그들이 누구 덕에 그런 호사를 누리는지 알지 못하고 또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많은 희생자들이 우리의 시야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살다가 이제는 더 이상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희생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그들 덕에 우리가 이렇게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내키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지난날 경제성장을 말할 땐 가당찮게도 박정희 덕이라고 말하고 오늘날 한국경제의 성과를 말할 땐 삼성과 이건희를 입에 올립니다.
  하지만 이런 야만의 역사 속에서도 이 나라가 돌이킬 수 없는 도덕적 파탄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을 수 있었던 까닭은 탐욕과 무지의 어둠 속에서도 진리의 빛을 밝혀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40여 년 전 평화시장에서 한 줄기 불꽃으로 피어올랐던 전태일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어떤 비참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또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았을 때, 그는 자기의 전 존재를 걸고 시대의 어둠을 드러내고 우리를 부끄러운 거울 앞에 마주 세웠습니다. 그 한 사람의 희생이 그 이후 역사의 방향을 바꾸었으니, 그는 우리의 스승이었습니다.
  어찌 전태일뿐이겠습니까? 제가 아직 푸르른 청춘이었을 때, 과자공장의 노동자들이 저처럼 하얀 손을 가진 청년들 앞에서 울먹이며 말하던 것을 저는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여러분들이 먹는 달콤한 사탕을 하루 종일 비닐 껍질로 포장하는 우리의 손끝에 핏물이 배는 것을 아느냐고.
  물론 지금 과자공장에서는 손끝에 핏물이 배도록 노동자들이 과자를 포장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 모든 공정은 이젠 우아하게 자동화되어 더 이상 나이 어린 노동자들이 그런 일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우리는 행복한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말인가요? 그리하여 기술이 발전하면 더 이상 누구를 희생시키지 않아도 좋으니 이제 우리는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사탕의 달콤함에 취해도 되는 것인가요?

이 책은 여전히 우리 사회가 약자를 희생시켜 남은 자들이 그 이익을 나누어 갖는 약탈의 경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폭로합니다. 수십 년 전 평화시장에서 시다로 시들어가던 소녀들과 영등포 제과공장에서 사탕을 싸던 처녀들은 이제 초일류기업이라 자랑하는 삼성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모두가 선망하는 바로 그곳에서 백혈병을 얻어 나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가장 부자라고 떠벌리는 이건희는 자기를 위해 노동하다 병든 그들을 위해 쓸 돈은 없습니다. 아니 그들을 위해 돈을 쓰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산업재해 판정을 받는 것조차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막습니다. 그렇게 해서 여러 해 동안 단 한 건의 산업재해도 일어나지 않은 삼성전자는 그 덕분에 보험회사에서 보험금의 일부를 돌려받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이건희만이 나쁜 사람이겠습니까? 박정희의 죄악을 애써 모른 척하면서 지금도 대를 이어 그를 숭배하는 사람들이 그 모든 악행의 공범이듯이, 지금 이 순간 삼성이 무슨 일을 저지르는지 애써 알고 싶어 하지 않는 우리 역시 살인을 방조하는 공범이기는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런 공범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알아야 합니다. 알기 위해서는 보아야 하고 들어야 합니다.

  이 책은 신음이고 절규입니다. 그리고 비열한 우리 사회를 되비추는 거울입니다. 만약 우리가 그 절규에 귀 막고 그 거울 앞에서 애써 눈감는다면, 바로 우리가 다음 희생자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부끄러운 우리의 자화상 앞에서 결단하고 가난한 이웃의 부름에 응답한다면, 지난날 끝내 정치적 민주화를 이루었던 것처럼 이제 경제의 영역에서 정의와 민주화를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가신 분들의 죽음은 ‘사랑과 의미와 고난이 깃든’ 그런 죽음으로 부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신 분들의 명복을 빌고
남은 분들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리며,
김상봉 모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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