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11월, 매해 그렇듯 올해도 다사다난. 그중 연말을 장식할 키워드는 스티브 잡스와 나는 꼼수다 아닐까 싶다. 김어준 총수의 <닥치고 정치>, 나는 꼼수다의 시작부터 지금까지를 공개한 <나는 꼼수다 뒷담화>에 이어 시사돼지 김용민의 본격 정치 평론이 나온다. 제목은 <보수를 팝니다>. 나꼼수 애청자라면 제목의 중의성을 이미 파악했을 터, 이 책은 보수에서 진보로 자리 바꿈한 자기 고백과 성찰이자 현 단계 대한민국 보수의 현상과 본질을 유쾌하게 파헤치는 시도다. 한마디로 '대한민국 보수 완전정복 가이드'라 하겠다.
이 책의 인트로와 아웃트로, 보수를 유형별로 나눠 설명하는 본문 한 꼭지를 최초로 공개한다. 즐겁게 보시고 아래 주소로 가 예약구매를 하면 임무 완료다. 더불어 알라딘에서 마련한 '책으로 만나는 나는 꼼수다'에도 응원 댓글 부탁드린다. 아, 마지막으로 김용민 교수의 출간 기념 강좌도 있으니 마음껏 신청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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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내가 지금 보수를 파는 이유
보수는 왜 그렇게 말하고, 왜 그렇게 행동할까?
보수가 하는 말을 들으면서, 보수가 하는 행동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리고 이렇게 묻는다. “도대체 왜 저러지?” 우리나라 최고의 학벌을 자랑하는 보수 정치인들이 초등학생 수준에도 못 미치는 무식한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다. 듣기만 해도 섬뜩한 이름을 가진 이른바 보수 단체들은 마치 최면에 걸린 듯 ‘빨갱이 척결’이라는 주문을 외면서 마구잡이 폭력을 휘두른다. 정말로 궁금하다. 그들은 왜 그렇게 말하고, 그들은 왜 그렇게 행동할까? 그건 그렇고 더 궁금한 것은 이것이다. 왜 많은 사람들이 저렇게 이해 안 가는 사람들을 지지하고, 선거 때만 되면 마치 기계처럼 저들에게 표를 던져왔던 걸까?
사실은, 나 역시도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다. 보수의 가치를 믿었고, 보수라는 것은 예로부터 내려오는 좋은 전통을 지켜주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보수가 이 나라를 바로 잡아 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다 나는 개인적으로 쓰라린 경험을 몇 차례 겪고 나서야, 내가 생각하고 믿었던 보수가 대한민국에서는 환상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때 나는 미련 없이 보수에서 떠났다.
돌이켜보니, 내가 알아야 할 정치의 모든 것은 보수에게서 배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당시 내가 청년 보수로서 가졌던 믿음, 보수주의자들과 만나서 얻었던 경험들은 오랫동안 많은 교훈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 겪었던 경험과 상처와 고민들이, 시사평론가로 활동하면서 “보수는 왜 그럴까?”와 같은 의문에 대해 나름대로의 분석과 해답을 내는 데 필요한 자양분이 되었다.
‘보수를 팝니다’의 두 가지 의미
‘보수를 팝니다’란 말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물건을 사고팔듯이 보수를 파는 것을 말한다. 대한민국 최고의 히트 상품은 삼성 갤럭시(애니콜)도 아니고 농심 새우깡도 아니다. 사실은 한국의 현대사에서 가장 오랫동안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켰고 지금도 가장 잘 팔리고 있는 히트 상품은 바로 ‘보수’다. 돈과 기득권을 가진 이들은 오랫동안(그것도 성공적으로) 보수를 팔아 왔다. 이들은 보수를 팔아 자신들의 이익을 챙겼지만 정작 보수의 진정한 가치나 철학에는 관심이 없다. 마치 인터넷 쇼핑몰에서 값비싼 명품 백을 샀는데 배달된 택배상자에는 벽돌만 들어 있는 꼴이다. 문제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그 벽돌이 명품인 줄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이 땅의 보수는 어떻게 포장되어 어떻게 팔려 나가는가. 왜 ‘명품 벽돌’은 여전히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는가, 이제 우리는 경제학자와 같은 눈으로 이들의 세일즈 전략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것이 ‘보수를 팝니다’의 첫 번째 의미다.
‘보수를 팝니다’의 또 한 가지 뜻은, ‘파들어 간다’는 것이다. 보수의 겉모습만 본다면 ‘왜 그러는지’에 대해 이해하기 어려운 게 당연하다. 이들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겉모습 뒤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 눈에 보이는 표면 아래에는 어떤 거대한 피라미드 구조가 자리 잡고 있는지를 봐야 한다. 보수라고 해서 다 같은 보수가 아니다. 보수 역시도 진보 진영 만큼이나 다양한 종류들이 있고, 이들이 때로는 서로 손을 잡고 때로는 격돌하기도 하면서 맺어지는 관계가 커다란 보수의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고고학자처럼 보수의 밑바닥을 열심히 파 들어가 보고, 생물학자처럼 보수를 여러 가지 종류로 분류하여 각각의 종(부류)이 어떤 먹이사슬과 공생관계를 이루고 있는지 따져 봐야 한다. 이것이 ‘보수를 팝니다’의 두 번째 의미다.
보수, 알아야 이긴다
‘보수를 이해해 보자’라고 말한다면 “그럼 보수를 이해하고 좋게 봐 주자는 뜻이야?”라고 따질지도 모르겠다. 이해하는 것은 봐 주자는 뜻도 아니고 용서해 주자는 뜻도 아니다. 예를 들어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가 범인을 체포하기 위해 범행 동기나 심리 상태를 이해하려고 하는 원리와 비슷하다. 보수를 이기고, 보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보수가 왜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는지, 겉으로 봐서는 이해가 안 가는 보수의 모습 뒤에 어떤 속셈이 깔려있는지를 간파해야 한다. 그래야만 그들의 계략에 속아 넘어가지 않고 오히려 카운터펀치를 먹일 수 있다.
우리는 이미 이명박 정권 5년 동안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헌법으로 보장된 자유와 권리가 심각하게 위축되는 현상을 목격했다. 그런데 진보 진영의 목을 조르기 위해서 동원된 이런 모든 꼼수들이 이제는 거꾸로 보수의 목을 조르기 시작하고 있다. 국회의원 선거, 그리고 대통령 선거로 이어지는 2012년은 자기 덫에 자기가 걸려 버린 보수가 본격적으로 몰락의 길을 걷는 한 해가 될 것이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감나무 밑에서 입만 벌리고 있으면 자동으로 말랑말랑한 감이 입 속으로 쏙 들어가지는 않는다. 잘못하다간 이마에 떨어져서 얼굴만 더러워질 수도 있고, 하필 딱딱한 땡감이 떨어져서 이가 부러질 수도 있다. 2012년에 보수가 몰락의 길을 걷는다고 해도 그것이 자동으로 진보 진영의 대박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진보 진영도 미리미리 그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단시간에 이루어지는 변화의 거센 물줄기를 감당하지 못하고 자칫 휩쓸려가 버릴 수도 있다. 우물쭈물하다가 진보의 집권은 또 짧게 끝나고, 보수에게 부활의 시간만 벌어주는 꼴이 될지도 모른다.
이겨도 지는 보수, 죽어야 사는 진보
이제 우리는, 보수를 제대로 꿰뚫어 이해하고, 2012년과 그 이후를 보내며 기회주의 보수의 철저한 몰락을 꼼꼼하게 지켜봐야 한다. 그리고 진보 진영은 5년 임기 안에 모든 것을 끝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지 말고, 진보의 큰 그림을 차근차근 실행해 나가는 시대로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보수 역시도 제대로 된 철학과 가치를 지닌 진정한 보수로 거듭나야 한다. 그래야만 보수 역시도 언젠가 집권을 노려볼 수 있는 건강한 정치 구도가 만들어지게 될 것이다. 내가 이 책을 통해 열심히 보수를 ‘파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진보와 보수, 모두가 제대로 된 가치와 철학을 가지고 이를 바탕으로 경쟁하는 정치 구도가 만들어진다면 그때 비로소 진정한 민주주의가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이다. 버그 투성이에 하루가 멀다 하고 에러 메시지를 쏟아내는 이 엄중한 시기에, 우리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버전 업을 이루기를 기대해본다. 그 버전 업을 위한 수많은 설치 파일 중에 하나로 이 책이 살짝 포함될 수 있다면 더 없는 영광이겠다.
Outro.
당당하게, 그리고 유쾌하게
공익근무요원으로, 휴전선 대신에 동호대교를 지키던 시절, 그러니까 1994년의 일이다(이걸 가지고 혹시나 병역 의혹 어쩌고저쩌고 수작 부릴 꿍꿍이를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날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사람일 것이다). 어느 날 난데없이 위에서 감사가 들어왔다. 하는 꼴을 보니 타깃이 나였다. 가만 생각해 보니까, 괘씸죄였다. 감사가 나오기 얼마 전, 근무지의 불합리한 구조를 <조선일보>에다 투고했고(그때는 청년 보수였으니까), 실명과 함께 투고가 게재되었다. 그걸 보고 ‘어디 뭐 하나 걸리기만 해 봐라’ 하고 치사한 보복 차원에서 나온 감사였다.
하지만 내가 뭐 잘못한 게 있나? 감사 해 볼테면 해 보라지. 나는 당당했다. 결국 감사는 먼지만 털다가 끝났다. 그 일을 통해서 한 가지 배운 점이 있다. 내가 당당하다면, 그래서 겁먹지 않고 자신감을 가진다면 보복은 두렵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보복으로 불이익을 당할 수는 있을 것이다. 보복이라면 정말 많이 당해 봤다. 조용기 목사를 비판했다고 극동방송국에서 잘리고, 노조 활동을 했다고 CTS 기독교 방송에서 잘렸다. 시사평론가가 된 이후에도 이런저런 외압으로 맡고 있던 프로그램에서 잘린 것이 어디 한두 번인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날, CBS <시사자키>의 오프닝 멘트가 문제가 돼서 잘릴 때에는 사내 게시판 보고 그 사실을 알았다.
만약 그런 보복이 두려워서 할 말 못하고, 스스로를 검열했다면 오늘의 내가 있었을까? 아마도 이런 책을 낸다고 해도 아무도 집어 들지 않았을 것 같다. 내가 잘났으면 얼마나 잘났다고 당신이 내가 쓴 책을 사 볼 마음이 들었겠는가. 보복이나 작은 불이익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버텼던 그 뚝심 하나라도 있으니 김용민이란 놈이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궁금했으리라 생각한다.
등을 보이지 마라! 당당해야 이긴다
나는 덩치만 컸지 싸움은 못한다. 하지만 기본적인 싸움의 법칙에 대해서는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싸움의 법칙 중에서 '등을 보이면 안 된다'는 얘기가 있다. 상대방에게 한 방 맞았다고 해서 겁먹고 등을 돌리면 그때는 무방비 상태가 된다. 상대는 '아하, 저놈 겁 먹었네? 다음 카드가 없구나.' 하고 그때부터는 안심하고 무차별 공격을 한다. 물론 한 대 맞으면 정신이 얼얼하고 다리에 힘이 풀리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의연하게 버텨야 반격할 기회도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상대방의 펀치를 받아줄 것인가? 지금까지 진보 진영은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저항했다. 목이 터져라 구호를 외치고 비장한 용어들을 쏟아냈다. 상대방보다 내가 더 무섭다는 사실을 보여주려는 듯이 험악하고 날카로운 표정을 지었다. 물론 그런 비장함이 필요할 때도 있다. 하지만 항상 그렇게 진지하고 비장하게만 싸우기는 너무나 힘들다. 너무 힘들면 지치게 된다. 지치면 포기하게 된다. 이해찬 전 총리는 이렇게 말했다. "포기하면 좌절하고, 좌절하면 변절한다. 일제에서 독립운동할 때 가장 변절을 많이 한 시기가 1939년에서 1943년까지다. 그즈음 '우리가 도저히 독립 못하겠구나' 하고 많이 변절했다. 그게 다 포기하고 좌절했기 때문이다." 기회주의 보수로 변절한 어제의 진보 인사들도 마찬가지다. 이재오 김문수는 민중당이 총선에서 실패하고 나서 ‘도저히 안 된다’면서 변절의 길로 갔다. 그리고 그 다음에 나온 것이 훗날 민주노동당으로 발전하는 국민승리 21이었다.
즐겁게 싸워라! 웃을 수 있어야 이긴다
당당하게 싸우고 유쾌하게 웃자, 이것이 독자 여러분들께 내가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이다. 표정이 비장하고 목소리가 높을수록 속으로는 더 겁을 먹고 있다는 반증이 된다. 보수와 진보가 서로 경쟁하듯이 더 심각하고 더 험악한 구호를 외치면 누가 유리할까? 똑같이 겁을 먹고 있는 상태라면 가지고 있는 돈과 권력을 비롯해서 써먹을 수 있는 무기가 많은 보수가 더 유리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유쾌하게, 그리고 즐겁게 싸워야 한다. 상대는 내일 세상이 끝장이라도 날 것처럼 험악하게 주먹을 휘두르는데 이쪽에서는 여유 있게 껄껄 웃고 있다면, 심지어 주먹 한 방을 맞고서도 피식, 하고 웃는다면, 상대의 공포심은 더욱 커진다. 그러면 그 공포를 이기기 위해서 더욱 주먹을 휘둘러 댈 것이다. 하지만 그런 주먹은 헛방이 많고 초점이 없다. 그러다 보면 제풀에 지쳐버린다. 하지만 이쪽은 에너지가 넘친다. 왜? 유쾌하고 즐겁기 때문에, 그래서 에너지가 오히려 계속해서 솟아나기 때문이다.
<나는 꼼수다>를 많은 사람들이 사랑해 주는 이유도, ‘왜 이렇게 빨리 안 올라옵니까?’하며 성화를 부리는 이유도, 즐겁고 유쾌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같은 내용을 심각하고 진지하게, 웃음기 없는 말투로 방송했다면 이렇게 사람들이 좋아해 주었을까? 이명박 정권과 자본의 언론 탄압과 장악으로 방송도 신문도 할 말 하기 힘든 시대에, ‘탄압할 테면 탄압해 봐라, 웃겨서 원!’ 하듯이 방송 내내 흐르는 출연자들의 당당함과 유쾌함이야말로 이 방송이 가진 가장 큰 힘이라고 믿는다.
“아니 그런데 이 책은 왜 별로 안 유쾌해요?”라고 따져 묻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방송에서는 ‘목사 아들 시사돼지’로서 여러분들을 유쾌하게 만들어 드리기 위해서 많이 노력하고 있으니까, 이 책은 여러분들이 다른 사람들을 유쾌하게 만들어 주기 위한 원천을 제공하는 책이다. 의연하고 유쾌해지려면,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의연하고 유쾌해지게 하려면, 알아야 한다. 상대를 알고, 상대의 강점과 약점을 알고, 지금은 힘들고 끝이 안 보일 것 같지만 결국은 상대가 몰락의 길을 걷게 되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 ‘이거 아무리 해도 우리가 못 이기는 거 아냐?’라고 생각하면 포기하게 된다. 하지만 ‘지금은 힘들어도 우리가 이길 거야’라고 믿는다면 유쾌해질 수 있다.
블로그에서, 트위터에서, 그리고 광장에서, 나는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유쾌하고 즐겁게 ‘노는’ 모습들을 보아 왔다. 이명박 정권은 농담을 이해하지 못한다. 웃음이 없다. 그래서 언제나 더 강한 힘으로, 더 무자비하게 억압하려고 들기만 한다. 그럴 때마다 우리 크게 한 번씩 웃어 주자. “에이 재미없어! 얼굴 좀 펴라!”하고 말이다.
이 책을 덮고 나서, 여러분이 좀 더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면, 그래서 여러분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 있게 여러분의 생각을 전해주고 즐길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겠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솔선수범하여 크게 한번 웃어 드리겠다. 여러분들도 각자 여러분들만의 개성 있는 표정으로 크게 한 번 웃어 보시길!
본문 한 꼭지
모태 보수, 기회주의 보수, 그리고 무지몽매 보수
보수라고 해서 모두가 같은 것은 아니다. 보수라는 깃발 아래 뭉쳐 있는 한나라당을 보아도 친이계와 친박계 사이에는 무척 큰 간극이 존재한다. 여기에 더하여 이른바 ‘소장파’도 있다. 보기에 따라서는 한 지붕 세 가족의 불안한 동거 생활이다. 그리고 당 바깥에는 지만원이나 조갑제 같은 극단으로 치우친 사람들도 있다. 보수가 다 같은 보수가 아니라면, 도대체 보수라는 큰 테두리 안에는 어떤 종류의 보수다. 그리까? 여러 가지 분류 지법. 그리 수 있겠지만 여기서는 어떻게 보수가 되었는지, 그리고 보수의 울타리 안에서 무엇을 원하고 바라는지를 기준으로 크게 세 유형의 보수를 설명해 보고자 한다.
모태 보수 (혹은 선천적 보수)
이들은 말 그대로 돈과 기득권을 갖춘 집안에서 아쉬울 게 없이 자라온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다. 한나라당의 대권 주자로는 박근혜와 정몽준이 이 부류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유승민 또는 이정현을 필두로 한 여러 친박계 의원들, 그리고 남경필, 홍정욱, 원희룡과 같은 한나라당의 이른바 ‘소장파’ 의원들 역시도 탄탄한 성장 기반을 바탕으로 보수가 된, 모태 보수로 분류될 수 있다.
모태 보수는 전체 보수 진영에서 언제나 일정한 세력을 형성해 왔다. 하지만 이러한 뿌리 깊은 전통과 비교하면 실제로 이들이 권력의 정점에 있었던 경우는 많이 찾아볼 수가 없고, 대체로 주도권을 다른 보수(다음 유형인 기회주의 보수)에게 빼앗기거나, 혹은 그냥 넘겨주기도 했다. 아직까지 모태 보수 출신의 대통령이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 이를 입증한다.
기회주의 보수 (혹은 후천적 보수)
이들은 대체로 보수와는 다른 길, 혹은 아예 반대 편 길을 걷다가 어떤 계기에선가 급작스럽게 보수로 돌아선 사람들이다. 때로는 극과 극을 달리는 전향, 혹은 변절로 진보 진영의 비난은 물론이고 보수에게까지 그 진정성을 의심을 받기도 한다.
재미있는 것은 주로 권력을 장악한 보수 중에 후천적 보수가 많다는 사실이다. 만주군 장교를 지내고 한때 남로당에 몸담은 전력까지 있는 박정희를 필두로,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과 노태우,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굴에 들어갔다가 호랑이에 빙의되어 버린 김영삼, 그리고 현 대통령인 이명박까지 모두 기회주의 보수들이다. 지금까지 보수 정권을 이끌어온 대통령은 모두가 후천적, 혹은 기회주의 보수로 분류되는 셈이다. 물론 민중당 출신의 이재오, 김문수 역시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이다. 뉴라이트 계열의 주도권을 잡고 있는 신지호, 최홍재, 김영환을 비롯한 이들도 후천적 보수, 또는 기회주의 보수로 분류될 수 있다.
무지몽매 보수 (혹은 묻지마 보수)
흔히 ‘까스통 할배’라고들 지칭되는 부류의 사람들이 여기에 속한다. 그리고 서민이나 빈민층에 속하면서도 맹목적으로 아무 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 역시도 여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보수의 피라미드에서 가장 하위에 속하는 사람들이고, 언제나 보수에게 착취당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보수라고는 하지만 그들이 놓여 있는 환경이나 기반은 보수의 기득권과는 거리가 멀다. 다른 부류에 비해서 지식과 정보가 대단히 부족한 이들은, 정치에 대해서도 사회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지식을 거의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다. 단순히 말해서 그냥 <조선일보> 보고 세뇌된 보수다. 이들은 정치라기보다는 처세라고 보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이 사회를 좌지우지하고 자신들의 밥줄을 쥐고 있는 사람들은 자본가니까, 그 자본가들이 보수라면 나도 먹고 살기 위해서 그들을 따라가는 게 진리다. 이런 단순한 논리다.
역으로 말한다면 충분한 설명과 설득 과정을 거치면 중도 또는 그보다 더 진보적인 위치로 옮겨갈 여지가 가장 많은 부류다. 보수라고는 하지만 실체도 없고 내용도 없는 집단이 바로 무지몽매 보수다.
물론 모든 사회 현상에는 예외가 있다. 보수 역시 반드시 이 세 부류 중에 하나로 칼같이 나눠지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서 정몽준과 같은 경우에는 그 배경은 모태 보수지만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와의 단일화 파기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기회주의 보수의 속성을 보여 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권력에 집착하는 모습보다는 언제나 준비된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것에 만족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정몽준과 같은 부류에 대해서는 뒤에 가서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할 생각이다).
개중에는 보수 분류의 장벽을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크로스오버 정신을 실천하는 인물들도 있다. 이인제가 그 대표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야당의 주요 정치인으로 보수와 각을 세웠다가 경선에서 노무현에게 패배한 뒤, 참여정부 시기에는 보수로 돌변해서 박정희 이미지를 내세웠다. 그러다가 2007년에는 다시 민주당 후보로 등장했다. 시사평론가인 나로서도 도저히 해석할 수 없는, 그런 변화 과정을 거친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다.
이 책에서 보수를 해석하고 전망하는 과정에서 이 세 가지 분류는 중요한 핵심이 될 것이다. 이들의 성장 배경과 특징을 살펴보면, 그리고 이들이 어떤 식으로 뭉쳤다가 깨어지고 관계를 맺는가를 파악하면, 보수 진영에서 벌어지는 많은 일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각 부류를 어떤 식으로 공략해야 할 것인가, 앞으로 보수는 어떤 길로 갈 것인가를 예측해 보는 데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꼼수 Point]
모태 보수는 선천적 보수다. 기회주의 보수는 후천적 보수다. 무지몽매 보수는 묻지마 보수다. 보수의 행태와 전략을 이해하는 데 이 구분은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