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과학자였으나 지금은 영화를 만드는 랜디 올슨은 그의 삶 자체가 '하나의 유쾌한 이야기'다. 마흔 즈음 인생의 경로를 과감하게 바꾼 그의 인생역정도 그렇지만, 그가 만든 영화들도 모두 비범하면서도 개성 넘치는 작품들이며, 이 책 또한 예외가 아니다. 과학계와 영화판을 넘나드는 숱한 예제들로 때론 과학자들을 우스꽝스럽게 조롱하고, 때론 신랄하게 비꼬면서도, 과학에 대한 더없이 깊은 애정으로 가득 차 있다. 지적인 유머와 가슴을 울리는 통찰력이 담뿍 담긴 이 책은 과학을 즐기는 법을 가츠려주는 '내밀한 과학애정고백서'라고나 할까? 이 책은 손에 쥔 당신은 정말 운이 좋다!(정재승,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Don be such a scientist!" 이 책의 원제다. 어떤 과학자가 되지 말고 다른 어떤 과학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일까. 하버드에서 스티븐 제이 굴드 밑에서 배우고 뉴햄프셔대학에서 해양생물학 교수로 일하다 지금은 할리우드에 진출한 독특한 이력의 '과학자' 랜디 올슨. 그는 머리로만 소통하는 과학자들의 잘못과 한계를 지적하며 머리, 가슴, 복부 그리고 성기에 이르는 네 개의 기관, 즉 논리, 감정, 유머, 본능을 연속하여 함께 활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머릿속에 든 정리된 지식은 고여 있는 물과 같기에, 이를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흐르는 물로 바꿔내야 한다는 주장이다. 올 4월 <말문 트인 과학자>란 제목으로 한국에 소개된 그의 책이 슬슬 잊히는 게 두려워(황우석 사건을 생각하면 정말 두렵다) 출판사의 도움으로 저자와의 인터뷰를 시도했다. 여전히 과학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랜디 올슨, 그의 말대로라면 커뮤니케이션의 중요함은 몇 번이고 강조해도 모자라다. 

 

*알라딘 단독 이벤트로 해당 기간 동안 <말문 트인 과학자>를 구매하신 분 가운데 다섯 분께 <얼간이들의 무리> DVD를 드립니다. http://www.aladin.co.kr/events/wevent_detail_book.aspx?pn=110712_jung 

*인터뷰 진행과 번역은 출판사 정은문고에서 도움주셨습니다. 바쁜 와중에 애써주신 출판사 관계자 여러분과, 한국어판 책을 든 귀여운 사진을 보내준 랜디 올슨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2008년부터 미국 각지의 대학을 돌며 <얼간이들의 무리(Flock of Dodos)>, <시즐(Sizzle)>의 상영과 과학 토크쇼를 결합한 ‘The sizzling Dodos College Tour’를 여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과학 토크 투어’는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며, 주 목표는 무엇인가요?

'과학 토크 투어'는 나의 두 번째 장편영화 <시즐>이 개봉된 2008년부터 시작했고, 지금까지 우리는 100군데도 넘는 대학과 박물관, 그리고 과학 기관들을 방문했어요. 이 행사의 주 목표는 과학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에 대해 진중한 토론을 할 수 있는 2~3일 간의 시간을 제공하는 것이죠.
  방문 첫째 날 밤에는 주로 <얼간이들의 무리>를 상영한 후, <말문 트인 과학자>의 내용에 대한 강연과 사인회를 갖습니다. 그리고 둘째 날 밤에 <시즐>을 상영하고, 매 상영회 이후엔 공개토론을 진행하죠. 멤버들은 나를 포함한 2~3명의 교수들로 구성되는데, 주로 커뮤니케이션, 저널리즘, 영화, 진화론(<얼간이들의 무리> 테마에 맞게), 기후학(<시즐> 테마에 맞게) 전공자들이에요. 낮에는 점심식사와 함께 학생들과 교수들로 이루어진 소규모 토론들이 진행되고요. 참으로 흥미로운 시간이 아닐 수 없죠! 



‘과학 토크 투어’에서 만난 대학생(예비 과학도)들의 반응이 궁금하네요. 그들은 당신 얘기의 어떤 점에 반응을 보이나요? 혹시 그들도 나이 든 교수님들처럼 ‘재미있는 과학’에 반발하지는 않나요?

가장 큰 반응은 주로 캠퍼스를 떠나고 난 이후에 발생하죠. 방문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사람들은 내가 떠난 후에도 며칠 혹은 몇 주 동안 토론을 이어간다고 해요. 학생들에게 '커뮤니케이션이 얼마나 중요하고 탐구가치가 높은 주제인가'를 전달하려는 의지를 갖춘 교수들에게 좋은 기회가 된 달까. 대부분의 캠퍼스에선 우리가 당겨 놓은 작은 불씨는 우리가 재차 방문할 때까지 활활 타오르는데, 동 캐롤라이나 대학, 윌리엄과 매리, 그리고 오는 9월 다시 방문하게 될 코넬 대학 등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우리는 다시 방문하는 수많은 곳에서 예전에 멈췄던 토론에 바로 시동이 걸리는 현상을 종종 목격하곤 합니다. 



당신이 이야기한, 과학과 대중의 거리를 좁힌 인물들로 꼽는 스티븐 제이 굴드나 칼 세이건은 사실 엄청난 사람들이죠. 우리가 그들을 모범(혹은 역할모델)으로 삼을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특히 스티븐 제이 굴드는 휴머니티를 기가 막히게 활용하는 커뮤니케이션의 달인이에요. 책에서 '자극과 충족'의 원리에 대해 언급했는데, 충족 부분은 당연히 과학에 대한 내용이겠지만, 자극 부분은 휴머니티를 활용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 생각합니다.
  굴드는 역사, 예술, 오페라, 건축, 정치 등 워낙 다방면에 조예가 깊었기 때문에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과학의 내용과 비유할 수 있는 휴머니티적 요소를 귀신처럼 찾아낸 과학자입니다. 그의 저명한 에세이 가운데 하나에서 안정화 도태의 역학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야구선수의 타율과 비교한 적이 있어요.(이는 내가 음양의 조화를 평생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죠) 또한 상대성장 등 어려운 주제를 다룰 때는 어른의 모습을 하고 있던 초창기의 미키 마우스가 점점 더 귀여운 아이의 모습으로 변해간 것과 비교해 설명하기도 했죠. 결국 휴머니티에 대한 풍부한 지식이 굴드를 저명한 과학자로 만든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과학도들은 학교에서 필수적으로 수강해야 하는 휴머니티(교양) 과목들에 대해 불평하면 안 됩니다. 그 지식은 훗날 대중과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 정말 빛을 발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죠. 



요즘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등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습니다. 이런 소통 방식의 증가가 당신이 기대한 것처럼 과학자와 대중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방법으로 작용할 수 있을까요?

과학자들 또한 그런 미디어들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블로그 때는 다소 적응 속도가 느렸지만, 이후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때는 훨씬 더 빨리 적응했어요. 문제는 그 미디어들을 어떻게 활용할 것이냐에 달린 거죠.
  책에서 블로그에 올라오는 온갖 부정적인 발언들을 꼬집은 걸 기억하나요? 물론 과학은 부정에서 출발합니다. 하지만 필터를 거치지 않는 부정은 혐오의 대상이 되기 일쑤거든요. 나는 이것을 과학자들이 가지고 있는 '내면의 프랑켄슈타인'이라고 부릅니다.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할 요소가 아닐 수 없죠. 대중은 항상 긍정의 편에 서지만, 필터를 거치지 않는 긍정이 때론 비판적 사고를 방해할 수 있기 때문에 항상 균형을 유지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해요.  



혹시 당신도 알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한국에서는 몇 년 전 ‘황우석 사건’이 있었습니다. 과학자가 잘못된 정보를 제공해 많은 사람들이 큰 기대를 품었다 그것이 실망으로 돌아온 사건이었죠. 과학자의 윤리를 얘기하기 이전에, 과학자가 대중과 소통하고자 할 때 이런 위험성은 늘 존재할 수 있지 않나요? 

물론 황우석 박사 사건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전 세계 과학계에 경종을 울린 사건이었으니까요. 나는 대중에게 과학을 효과적으로 알리고 홍보하는 것은 적극 찬성합니다. 하지만 과학자들의 연구에 대한 평가 자체가 미디어 중심으로 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요즘은 많은 대학과 연구소 들이 점점 더 미디어에 주목하는 게 사실입니다. 그것을 통해 대중과 의사소통 하는 한편, 연구기금도 마련하니까요. 그것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미디어를 통해 큰 성공을 만들려 하고, 그것을 성공의 잣대로 삼는다면 정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죠. 대중에게 더 다가가기 위해 '과학의 위한 연구'보다는 '대중이 관심 있는 연구'에만 치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곡물을 병들게 하는 해충에 대한 연구보다는 별 의미 없는 '인간이 키스를 하는 이유' 같은 공허한 연구에 더 치중할 수 있거든요.
  대중은 전문적인 과학자가 아니기에 결코 과학적 연구에 대한 의제를 지정할 수 없어요. 그것은 당연히 과학자들의 몫이며,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대중과 의사소통해야 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이제 ‘성공한’ 영화감독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럼에도 당신 글을 읽다 보면 여전히 ‘과학자’로서의 자부심이 읽혀요. 당신에게 ‘과학자’라는 이력은 어떤 의미인가요?

세상의 모든 이치를 알기 위해서 과학은 너무나도 중요한 학문입니다. 우리의 선조들은 알지도 못하는 병을 앓다 죽었어요. 그리곤 이를 그저 운명이라 받아들였죠. 하지만 오늘날은 어떤가요? 병을 얻을 땐 분명한 이유가 있으며,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 또한 이유가 있습니다. 산이 그냥 뜨거운 용암을 분출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지질학의 원리를 대입하면, 예측 가능한 현상입니다.
  세상만사가 결코 마구잡이로 일어나는 게 아니란 사실을 통해, 자연에 대한 우리의 두려움은 감소하고 그만큼 우리의 삶도 평온해 질 수 있습니다. 그 중심에 과학이 있으며, 때문에 언제나 순수한 형태로 존재해야만 합니다. 이를 위해 과학자들의 지지보다는 비과학자들의 지지가 훨씬 더 필요하며, 그 지지를 얻기 위해선 반드시 '말문 트인 과학자'가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책을 통해 전달하려는 메시지이기도 하고요. 

랜디 올슨 트위터 @RandyO_HeadDo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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