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물게 귀여운 ‘지적 앙탈’
전혀 팬시하지 않고도, 소녀적 감수성이 이리 살아남을 수 있다니. 세계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마침내 해석해내고 마는 그의 통찰은, 그 지점과 만나 그렇게 드물게 귀엽다. 내가 그의 생각들을 '지적 앙탈'이라 부르기로 결심한 이유다.
                                                                                                                       -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네, 그분입니다. 알라디너가 사랑한 그녀, 마리 여사.
이번 책은 1998년부터 2005년까지 그녀가 강의한 내용입니다.
저도 아직 실물을 보지 못했으니 길게 설명드리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기쁜 소식 한 가지는 전해드리지요.
오늘,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에 걸쳐 하루에 한 꼭지씩 본문 내용을 공개합니다.
작년에 마리 여사의 책이 여럿 나와 지칠 법도 하지만, 기필코 기운내셔야 합니다.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그녀의 글은 한정되어 있고,
그마저도 몇 권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모두 기운냅시다. 

 

제1장. ‘사랑의 법칙’에서
 


암컷이 본류다

고민이 있으면 역시 책을 많이 읽게 된다. 이쪽 분야의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선택하는 현상은 지금 말한 여러 사회적 요인에 더해, 인류라는 종種이 절멸하지 않고 존속하기 위해, 즉 종을 유지하고 진화해가기 위해?진화란 환경에 적응해가는 것이므로 이것도 존속을 위해서는 필요하다? 부지런히 대대로 이어온 행위의 일환이 아닐까 하는 데 생각이 미쳤다.
  예를 들어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명작이 있다. 열네다섯 살쯤 됐을까, 로미오와 줄리엣은 사랑에 빠진다. 줄리엣은 로미오와 섹스를 하는데 특별히 아기를 갖고 싶은 것은 아니다. 로미오의 아이를 원해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섹스를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사랑을 정신적인 행동이나 마음의 움직임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생식행위와도 관계가 있다.
  지금은 섹스가 점점 쾌락으로 기울고 있다. 쾌락 쪽으로 관심이 기운다면 특별히 생식행위는 하지 않아도 될 텐데, 굳이 피임까지 하면서 섹스를 한다. 호모섹슈얼동성애자은 아이를 낳지 못하면서도 유사類似 생식행위를 한다. 그래서 생식이라는 인류 존속을 위한 행위와, 남녀간에 서로 끌리는 감정은 사실 그 뿌리가 같다.
  인간을 포함해 압도적으로 많은 생물들은 왜 수컷과 암컷이 있을까? 인류는 왜 남자와 여자가 존재할까? 만일 누구를 고를 필요 없이 아무하고나 섹스를 해도 마찬가지라면 한 개체 안에 남녀의 기능이 갖춰져 있어도 될 텐데. 그렇게 되면 누구는 퇴짜를 놓아서, 또 누구는 퇴짜를 맞아서 상처 받지 않아도 되고, 퇴짜 놓은 쪽도 스스로 잔혹한 인간이라고 자기혐오에 빠지는 일도 없을 텐데 말이다.
  실제로 생물계를 넓게 조망하면 섹스 없이도 생식하는 생물이 많다. 아메바처럼 세포 분열로 증식하는 생물도 있고, 찾아보면 많다. 또 수컷 없이 암컷 혼자 알을 낳고 알에서 다시 암컷이 태어나는 단성생식을 반복하는 생물도 있고, 정자의 개입 없이 난자가 분열해 개체로 성장하는 생물도 있다.
  하나의 개체가 환경 변화에 따라서 수컷이 되기도 하고 암컷이 되기도 하는 생물도 있다. 최근에는 인간의 줄기세포로 복제인간을 만드는 기술까지 개발되었다. 즉 정자 없이 난자만 있으면 자기와 닮은 개체를 만들어 종족을 유지하는 생식이나 번식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기본적으로는 다음 세대를 만들 수 있다.
  성서를 보면 성모 마리아는 추잡한 섹스 따위 하지 않고 동정童貞인 채로 신에게 수태 고지를 받아 예수를 잉태해 출산하는데, 사실은 이것이 오역이었다는 걸 알고 있는가? 맨 처음 헤브라이어로 쓰인 성서에는 단순히 ‘결혼하지 않은 여자’라는 의미였는데, 이것을 라틴어로 옮길 때 ‘처녀’라고 번역해버린 것이다.
  또 어떻게 신이 지금의 세상을 만들었는지에 대해 쓰여 있는 「창세기」 처음 부분을 보면, 신이 최초의 인간으로 아담을 만들고 아담의 갈비뼈(속설에 의하면 13번째 갈비뼈)로 이브를 만들었다고 나와 있다.
기독교 세계인 유럽 쪽 언어에서는 ‘인간’과 ‘남자’를 뜻하는 단어가 같은 경우가 많다. 영어도 그렇다. ‘man’은 ‘남자’라는 뜻과 함께 ‘인간’이라는 뜻도 갖고 있다. ‘woman’은 ‘man’이라는 단어에 비하면 왠지 불필요한 것이 붙어 있고, 그래서 인류의 지류支流처럼 생각된다.
  유럽 문명에서 자라다 보면 아무래도 남자가 본류고 여자가 지류구나 하는 느낌이 들지만, 순생물학적으로 보면 여자가 본류다. 암컷이 본류다. 인류도 여자가 본류다. 수컷 없이도 존속할 수 있다. 그래서 종種의 유지라는 생명 전략 자체에는 수컷이 필요 없다. 남자 없이도 종은 유지해나갈 수 있다.
 


수컷의 존재 이유

그럼 수컷은 왜 존재할까? 왜 남자가 있을까? 암컷만으로 생식이 이루어질 경우, 새끼는 암컷의 형질을 그대로 이어받는다. 완전히 복사가 되는 것이다. 복사기로 복사를 하면 길게 두 쪽 낸 참외처럼 꼭 닮은 것이 나오는데, 복사한 것을 복사하고, 또 복사한 것을 복사하고, 다시 그것을 복사하고, 그렇게 계속 복사하다 보면 어느 시점에서는 마모되어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된다. 복제인간도 마찬가지다. 최초의 복제인간으로부터 복제인간을 만들고, 그것의 복제인간, 또 그 복제인간, 하는 식으로 복제해가면 유전자 정보의 많은 부분이 소모되어 더 이상 복제할 수 없거나 불완전한 복제가 된다.
수컷과 암컷, 두 가지 성性이 참가해 다음 세대를 만드는 생식에서는 암컷과 수컷의 유전자가 혼합된다. 그리하여 암컷의 복제도 아니고 수컷의 복제도 아닌 전혀 다른 형질의 2세가 생겨난다. 그래서 남자는 인류의 존속 자체를 위해서는 필요하지 않지만, 인류가 진화하고 변화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이다. 퇴화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은 사람도 있지만 말이다.
 


남자는 샘플이다!

나는 젊었을 때 이 두 성性의 관계에 대해서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흥미를 가졌다. 1960년대 구舊 소비에트 연방 공화국의 구성원인 아르메니아1922년 소련에 흡수되었다가 1991년 독립했다의 게오다캰 박사(이론 생물학자로 당시에는 아직 공학박사였다)가 ‘남자는 샘플’이라는 주장의 글을 잡지에 발표했다. 글을 읽은 순간 박사의 가설에 흥미가 생겨 그가 쓴 책들을 찾아 읽었다. 거의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가설이었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관심이 아주 많이 갔다. 박사의 가설은 이런 것이다.
  가령 물소 100마리를 키우는 목장이 있다고 하자. 여러분이 목장 주인이라면 수컷은 몇 마리, 암컷은 몇 마리를 키울 것인가? 우선 송아지가 많이 태어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암컷 99마리에 수컷 1마리로 해야 한다. 그러면 99마리의 송아지가 태어날 수 있다. 이것이 양적으로는 가장 많은 숫자다. 암컷의 수에 비례해 송아지가 태어나기 때문이다. 단, 수컷의 유전 형질은 한 종류뿐이니까 암컷에 의해 각기 다른 형질의 송아지가 태어난다. 99종류의 송아지 99마리. 암컷의 숫자와 같다.
  만일 태어나는 송아지의 다양성을 최대한 추구한다면 수컷 50마리에 암컷 50마리로 해야 한다. 50×50으로 2500종류의 송아지가 태어날 가능성이 있기는 한데, 물론 2500마리가 생기지는 않는다. 암컷의 수와 같은 50마리의 송아지가 태어난다. 이것은 1세대에 한해서다.
  그럼 형질을 우선하고 싶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목장 주인이 양만을 추구해서 계속 수컷은 한 마리만 키우면, 질병이 돌거나 천재지변이 일어날 경우 한 번에 싹 죽게 된다. 그래서 우수하고 강한 소를 만들어야 할 때 목장 주인은 수컷을 99마리로 늘리고 암컷은 1마리로 줄여야 한다. 그러면 수컷들 사이에서 경쟁이 심해진다. 자신의 유전 형질을 다음 세대에 전달할 수 있는 것은 99마리 가운데 단 한 마리뿐이기 때문이다.
 수컷들의 경쟁 못지않게 암컷의 안목도 예리해진다. 한 마리의 유전 형질밖에 얻을 수 없지만, 치열한 경쟁에서 이긴 수컷인 만큼 우수한 송아지가 생기는 것이다. 암컷에 의해 더 우수한 수컷이 선별되고, 그것으로 더 우수한 송아지가 생긴다는 계산이다.
  앞에서 남자를 ABC로 분류한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남자도 그런 식으로 여자를 분류할 거라고 생각한다. ABC나 ABCD 혹은 ABCDE 하는 식으로. 하지만 남자를 보는 여자의 눈이 더 까다롭다. 가끔 너그러운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대개는 매우 까다롭다.
  남자에 비해 여자가 이성을 보는 눈이 까다로운 이유는 뭘까? 출산의 고통을 겪으며 자식을 낳는 것도 여자고, 어느 정도까지 키워야 하는 것도 남자가 아닌 여자인 만큼 건강하고 강한 아이를 원하는 게 당연하다. 여자는 우수한 아이를 낳고 싶어한다. 그래서 상대를 고를 때 남자보다 더 질質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남자에 따라서 여자의 운명이 좌우되는 사회가 계속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회적 영향도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무튼 암컷의 수가 많으면 다음 세대 역시 양적으로 증가하고, 반대로 수컷이 많으면 다음 세대의 질적 변화의 폭이 커진다. 수컷은 할 수만 있다면 많은 암컷을 상대해 다음 세대에 자신의 유전자를 이어받는 개체 수, 즉 양을 늘리려고 한다. 암컷은 이와는 반대로 될 수 있으면 우수하고 강한 수컷을 골라 상대하려고 한다.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는 다음 세대 만들기에 분업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수컷은 양을 추구하면서도 질을 맡는다. 변화의 담당자이자 질質의 담당자다. 암컷은 양을 맡으면서도 질을 추구한다. 실로 완벽한 분업이지 않은가.
  이 논리는 남자의 바람기를 합리화하는 근거가 될 만한데, 순수하게 생물학적으로 그렇다는 것뿐이지,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라서 꼭 이대로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근저에는 이러한 남녀의 역할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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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고 2011-03-25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조금 먼 곳에서 추천하고 가오. ^^ 내일 서점에 가서 마리 여사 책들 표지 구경이나 해야겠는 걸. ㅎㅎ

인문MD 바갈라딘 2011-03-28 13:22   좋아요 0 | URL
네, 아마 나머지 책들이 모두 출간되면 이전 표지들을 최근 표지에 맞춰서 세트로 판매할 수도 있을 듯.

최 여사 2011-03-25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ㅎㅎ 저도 사랑합니다, 그녀.
월요일도 화요일도 수요일도 찾아올게요. ^^

인문MD 바갈라딘 2011-03-28 13:22   좋아요 0 | URL
꼭 제때 올려야겠군요. 퇴근 전에는 올리겠습니다. 꾸벅.

룰루브이 2011-03-25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 꾸욱- 누르고 갑니다~^^

2011-03-26 12: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인문MD 바갈라딘 2011-03-28 13:22   좋아요 0 | URL
아, 잘 지내시죠? 인문학스터디가 별다른 뒷풀이가 없어서 따로 인사도 못 드렸네요. 고맙습니다.

금자 2011-03-27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 마리여사 책이 나왔군요! 두든반 새근반~ 서점으로 고고씽!

인문MD 바갈라딘 2011-03-28 13:23   좋아요 0 | URL
아, 알라딘도 있습니다. 잊지 마시길... ^^

순오기 2011-04-01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산책에서 보고 클릭했답니다~~~~
착실하게 읽어보렵니다.
카테고리가 '북 엠마고'군요.^^

인문MD 바갈라딘 2011-04-02 07:30   좋아요 0 | URL
아, '북 엠바고'입니다. 늘 본문이 길어 읽는 데 어려움이 있는데, 마리 여사의 글은 분량도 맞춤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