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제인 구달이 한국을 찾았습니다.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엄청난 열정으로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며 생명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고 돌아갔습니다. 방한 기간에 카이스트에서 진행한 강연회 내용을 여러분께 전합니다. 통역은 제인 구달의 한국 매니저 역할을 자임하는 최재천 교수가 맡았고, 강연 녹취는 사이언스북스에서 도움을 주셨습니다. 녹취 원고를 바탕으로 제가 편집을 했는데 혹여 내용의 오류나 의미 전달에 문제가 있다면 그 책임은 전적으로 저에게 있습니다.
 

제인 구달 선생님께서는 이번이 다섯 번째 한국 방문이십니다. 전에는 서울에서만 강연을 했는데 이번에 카이스트와 인연이 닿아 대전으로 모시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과학도시 대전에서 제인 구달 선생님의 강연을 진행하게 되어 여러모로 감회가 새롭습니다. 부디 이 강연이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어지길 바랍니다. 올해는 선생님께서 아프리카 곰비 현장연구를 시작하신 지 50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번에 출간된 <희망의 자연>을 여러 분에게 전하고 선생님께서 이끄는 환경운동 ‘뿌리와 새싹(http://www.tongsub.net/rs)의 활동에도 힘을 더하기 위해 기꺼이 한국에 오셨다고 합니다. 그럼, 선생님을 소개하겠습니다.
 

침팬지가 알려준 ‘외로운 인간’
(그 유명한 제인 구달 선생님의 침팬지 언어 시연으로 강연이 시작되었다.) 1960년 탄자니아에서 시작한 침팬지 연구가 50년이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아프리카에서 연구하는 꿈을 꿨는데 자금도 없고 여자의 몸으로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꿈을 잃지 않고 열심히 일하면 언젠가는 실현될 날이 올 거라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머니의 기대와 희망은 헛된 꿈이 아니었던 셈이죠.
  아프리카에 가서 처음 만난 분이 인류학 연구자 루이스 리키 박사였습니다. 리키 박사는 야생 침팬지를 10년 정도 연구할 사람을 찾았는데 저는 망설임 없이 그 일에 도전했습니다. 이후 50년을 연구하면서도 매번 침팬지가 인류와 얼마나 비슷한지 놀라게 됩니다. DNA가 1% 남짓한 차이라 혈액형만 맞으면 수혈도 가능할 정도니까요. 면역 체계와 뇌구조도 거의 비슷하죠. 침팬지는 다른 영장류처럼 떼를 짓지 않고 작은 그룹을 만들어 살다가 경우에 따라 뭉치기도 합니다. 모자, 형제, 가족 관계로 거의 60년을 같이 보내지요. 암컷은 거의 모든 수컷들과 짝짓기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아버지가 누구인지 밝혀낼 수가 없습니다. 침팬지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한 개체가 개성을 갖고 있는데, 거울을 보며 자신을 인식하기도 하고 유머 감각도 있는 편이죠. 이런 점들을 볼 때, 침팬지는 "우리 인간만 자연계에서 분리되어 있다"는 깨달음을 안겨줍니다.
  탄자니아의 현장에서 1년 반쯤 연구를 하다가 학위가 필요하다는 말에 케임브리지 연구소에 갔는데 왜 침팬지에 번호가 아니라 이름을 달았느냐며 꾸지람을 들었습니다. 저로서는 ‘피피는 어떻게 지내요?’가 아닌 ‘42번은 어때요?’라고 묻는 게 이상했는데 말이죠. 그곳에 있는 대단한 교수들 앞에서 주눅이 들기도 했지만 저에게는 어린 시절부터 또 하나의 선생님이 있었습니다. 그 선생님은 동물도 감정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죠. 그 선생님은 바로 개입니다. 동물과 같이 지내본 사람은 다 압니다. 그들 각자가 모두 개성과 감정을 갖고 있다는 것을 말이죠. 침팬지 연구를 하기 전부터 이미 이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연구가 ‘자연계에서 인간의 위치’를 알려줄 거라고 생각했었죠.  


가장 똑똑한 생명체가 지구를 해친다
제가 처음 아프리카에 갔을 때는 침팬지가 100만 마리 정도 있었는데 지금은 30만 마리도 안 됩니다. 사람들이 사냥하고 숲을 없앴기 때문이죠. 1986년에 상황의 심각함을 깨달았습니다. 야생에서 침팬지를 연구하는 모든 연구자가 모였습니다. 이 회의에 참여하기 전까지 저는 좋아하는 연구를 하며 침팬지와 함께 산다는 것 자체로 무척 행복했는데, 이후에는 그렇게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단순한 연구자가 아닌 활동가 역할에 중심을 두었고 이후로는 한 곳에서 3주 이상 지낸 적이 없습니다. 처음에는 아프리카 각지를 돌아다니며 질문을 했습니다. 아프리카는 동물에게도 사람에게도 비참한 곳이었습니다. 대부분의 문제들이 제국주의 시대부터 내려온 것이라 해결책도 쉽게 보이지 않았고요.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인간이 얼마나 많은 생물들에게 나쁜 짓을 저질렀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여기 계신 분들도 잘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이번 여름은 무척 더웠습니다. 저도 일본, 중국, 홍콩을 거쳐 한국에 왔으니 여름을 뜨겁게 보낸 셈이죠. 지구온난화를 실감한 여름이었습니다. (웃음) 작년에 그린란드에 갔을 때 거대한 빙벽이 무너져 내리는 걸 봤습니다. 함께 있던 에스키모 말이 30년 전에는 여름에도 녹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그런 일이 생기면 안 되겠지만, 만약 극지방의 모든 얼음이 녹으면 해수면은 지금보다 7미터나 높아집니다. 파나마에 갔더니 바닷가의 집들이 점점 내륙 쪽으로 이사를 가고 있었습니다. 해수면이 높아지니 섬에 사는 사람들은 이사를 할 수밖에 없는 거죠.
  인간은 가장 똑똑한 생명체라고 하는데, 어떻게 이 행성을 망가뜨리고 있는 걸까요? 오래 전 계산이지만 모든 인간이 미국인처럼 소비한다면 지구가 3개나 더 필요하다고 합니다. 만약 지금 새로 계산해본다면 대여섯 개 혹은 더 많은 지구가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사실 이런 수치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확실한 건 어머니 지구를 구하기 위해 해결책을 찾아야만 한다는 거죠. 



‘희망의 자연’에서 발견한 생명 이야기
물론 비극적인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세계 각지에서 종의 멸종을 막기 위해 삶을 바친 영웅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런 감동적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 <희망의 자연>을 쓴 겁니다. 그래서 이번 책을 쓸 때가 가장 즐거웠습니다.
  그중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는 뉴질랜드의 검은울새 이야기입니다. 제가 만난 돈 머튼은 고양이 같은 포식자로부터 검은울새를 지키기 위해 삶의 터전을 본토에서 섬으로 옮겼습니다. 정부는 어디든 마찬가지인지 그 역시 행정 문제로 1년이나 허가가 나지 않아 고생을 했습니다. 결국 7마리만 남았는데, 이중 2마리만 암컷이고, 또 2마리 가운데 1마리만 임신이 가능했습니다. 슬프게도 임신이 가능한 새의 남편은 생식 능력이 없었습니다. 결국 이 암컷 ‘올드블루’는 ‘올드옐로’라는 새 남편을 얻었고 마침내 2개의 알을 낳았습니다. 머튼은 알 2개를 꺼내고 둥지를 망가뜨리면 두 새가 새 둥지를 틀고 알을 낳을 거라고 기대하고는 그 두 알을 다른 새에게 탁란했습니다. 결과는 성공이었고, 올드블루는 새 둥지에서 알을 다시 낳았습니다. 이후 탁란했던 새끼가 알에서 깨자 다시 부모에게 돌려줬고, 새 알은 다시 탁란하는 식으로 반복해서 새끼 6마리를 얻었습니다. 생물학자 3명이 함께 새끼를 키웠고, 매년 이 일을 반복하여 이제 200마리 이상의 새가 섬을 날아다니고 있습니다.
  다음 이야기는 2cm 크기의 아메리카송장벌레입니다. 송장벌레는 사체를 두고 수컷끼리 싸우는데 이긴 수컷이 암컷과 짝짓기를 합니다. 조금만 지체하면 파리가 사체에 알을 낳기 때문에 재빨리 옆에 방을 만들고 알을 낳습니다. 송장벌레 부모는 새끼가 씹을 수 있을 때까지 대신 씹어서 먹이를 줍니다. 그리고 애벌레가 직접 먹이를 씹어 먹을 수 있게 되면 곁을 떠납니다. 이게 사람이 아니라 곤충이 하는 일입니다! 제가 만난 젊은 곤충학자 ‘루 페로티’의 말로는 한 할머니가 이 송장벌레의 이야기를 듣고 자기 자식이 손자들을 키우는 것보다 더 잘 보살핀다며 7천 불을 기부했다고 합니다. 



인간의 삶 역시 생태의 일부
다시 곰비와 침팬지 얘기로 돌아가보죠. 1960년 탄자니아에 처음 갔을 때는 수풀이 울창했습니다. 하지만 1986년 경비행기를 타고 상공에서 보니 곰비 국립공원을 제외한 다른 곳이 거의 황폐화되었더군요. 국립공원 바깥이 황폐화되고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나무 하나 없는 심각한 지경일 줄은 몰랐습니다. 아프리카 주민들이 땔감용으로 그리고 경작을 위해 나무를 베어버린 거죠. 그들에게 책임을 전가하자는 말은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당장의 삶이 중요했으니까요. 그래서 주민들을 돕기 시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특히 여성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젊은 여성들에게 장학금을 줘 공부를 할 수 있게 돕는 등 여성의 삶을 바꾸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여성들의 교육 수준이 올라가면 가족의 수가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과밀한 인구 문제를 해결하는 게 최우선이라 판단했고 가족계획도 시도했습니다. 더불어 그루민 은행을 본떠 마이크로 크레딧 등의 프로그램도 시작했는데, 이런 경제적 뒷받침 덕분에 얼마 전부터는 훌륭한 커피를 경작해 미국에 판매하기 시작했고 경제 사정도 많이 나아졌습니다. 아, 이야기가 너무 멀리까지 왔네요. 어쨌든 이제 곰비에도 겨우 100마리 정도의 침팬지만 남았는데, 근친교배를 막기 위해서는 다른 지역과의 교류가 절실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가 떨어진 서식처를 연결시켜 주는 겁니다. 이제는 최신 기술로 숲속의 나무를 모두 확인할 수 있게 되었고 기금도 확보해서 숲 보전 관리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국립공원 주변의 숲들을 연결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 책 <희망의 자연>에는 황폐화되었다가 복원되는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처음에는 절망적인 상황 앞에서 희망을 찾을 엄두를 내지 못하다가, 용기를 내어 눈앞의 일뿐 아니라 그와 연관된 다양한 것들을 함께 보기 시작하면 자연이 어떻게 구성되고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책에는 인간의 지혜가 자연을 구한 사례들도 나옵니다. 완전히 망가진 것처럼 보이던 자연 환경이 되살아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앞서 소개한 검은울새처럼 멸종 직전에 있던 종도 되살아 날 수 있다는 희망입니다. 이 모든 일들이 절대 포기하지 않는 인간 정신 덕분입니다. 



잃어버린 지혜를 되찾는 방법
강의 초반에 제가 던진 질문을 다시 떠올려보십시오. 어떻게 이 똑똑한 인간이 이 행성을 망칠까요? 지혜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내리는 결정이 우리 자손 세대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를 고민하는 대신 눈앞의 이익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머리와 가슴 사이에 큰 단절이 있었고, 기성세대들이 현실과 너무 쉽게 타협했기 때문에 젊은 세대들의 미래를 망치고 말았습니다. 절망적인 건 사실이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만들어낼 희망은 아직 충분합니다. 제가 활동하는 '뿌리와 새싹'은 탄자니아에서 12명의 아이들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121개국으로 퍼졌습니다. 고등학생에서 시작했지만 이제 유치원 아이들부터 대학생들까지 층이 넓어졌고, 특히 대학생들이 많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메시지는 한 사람이 매일매일 노력을 기울인다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에 모인 분 가운데 어린 학생들도 많습니다. 물론 환경을 개선시키고자 하는 학생들도 있을 겁니다. 지금 당장의 문제뿐만 아니라 자손들이 살아갈 때를 생각하길 바랍니다. 저는 76세의 나이지만 300일 이상을 해외에서 보내고 있습니다. 제가 특별나서가 아니라 젊은이들의 에너지와 열정이 저를 움직이게 하는 겁니다. 여러분의 가슴으로 이 세계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세계 121개국에 뿌리와 새싹이 있습니다. 자기 혼자만 외롭게 '무엇을 할 수 있느냐'를 고민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침팬지 이야기로 돌아가 마무리를 할까 합니다. 어미를 잃은 2살배기 침팬지 이야기입니다. 이 침팬지는 의학 연구에 사용될 목적으로 미국에 보내져 15년 동안 조그만 우리에서 살았는데, 이제 의학 연구에 필요하지 않게 되어 3마리의 암컷과 함께 다른 장소에 보내졌습니다. 이 수컷 침팬지의 이름은 ‘올드맨’인데, ‘마크'라는 사람이 그를 돌보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마크에게 침팬지를 조심하라고 경고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먹이를 갖다 줄 때마다 그들이 서로 껴안고 키스하는 걸 보았습니다. 마크는 그들이 서로를 아끼는 모습을 보고 마음의 변화가 생겼습니다. 그러던 차에 바나나를 건네주다 손을 맞잡게 되고, 점점 가까워서 털도 골라주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마크의 실수로 새끼가 비명을 질렀습니다. 이내 암컷이 뛰어와 마크의 목을 물고 죽이려 했는데 올드맨이 달려와 암컷을 떼어내고 마크를 구해주었습니다. 마크는 올드맨이 자기의 생명을 구했다고 말합니다. 이건 상징적인 이야기입니다. 인간에게 학대받은 침팬지지만 인간에게 큰 도움을 준 일입니다.
  저는 우리 인간에게도 그런 능력이 있다고 믿습니다. 그것이 바로 뿌리와 새싹이 하는 일의 근거입니다. 여러분은 세상을 바꾸기엔 정말 늦었다고 생각합니까? 우리는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까? 그 답은 이 책도, 제 강의도 아닌 여러분의 삶과 가슴 속에 있습니다. 명심하세요, 당신 안에는 희망의 본성이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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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인 구달, '희망의 자연' 카이스트 강연
    from 사이언스북스 블로그 2010-10-22 13:29 
    제인 구달, 카이스트 강연 (1/6) 지난 9월말, 제인 구달 선생님이 출간과 환경운동 네트워크 '뿌리와 새싹'의 한국내 활동 활성화를 위해 한국을 방문하셨습니다. 강연회와 수목원에서의 '생물다양성의 해' 행사, 동물원 유인원관 방문 등의 행사는 간략하게나마 저희 트위터로 중계를 했습니다. 그리고 강연을 듣고 싶었지만 사정상 참석 못 하신 분들을 위해 얼마 전 강연 동영상을 사이언스북스 페이스북에 업로드하였습니다. 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