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운데이션 파운데이션 시리즈 Foundation Series 1
아이작 아시모프 지음, 김옥수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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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 최고의 심리역사학자였던 해리 셀던은 은하제국의 멸망을 예측한다. 책 뒷표지에 수록되어 있는 설명을 가져오면, 심리역사학이란 "인류 문명의 미래를 정치사회학과 경제학, 수학적 확률론, 집단심리학을 토대로 예견"하는 학문이다. 멸망을 막기엔 늦었다. 그러나 제국 멸망 후 도래할 인류 문명의 공백기만큼은 3만 년에서 천 년으로 줄일 수 있다. 해리 셀던은 천 년을 내다본 필생의 프로젝트를 고안하고 '파운데이션'을 창립한다. 파운데이션은 인류의 지식을 집대성해 보존하고 후대에 물려주기 위해 백과사전 편찬 작업에 착수한다. 이처럼 파운데이션은 처음에는 과학연구기관으로서의 정체성을 띠고 은하계 변방에 있는 행성 터미너스에 자리잡는다(terminus에는 말단, 종점, 종착역이라는 뜻이 있다).


그러나 파운데이션 설립 50주년을 기념해 개관한 해리 셀던의 유품관에서 해리 셀던의 녹화상이 재생되며, 백과사전 계획은 속임수에 불과했다는 것이 밝혀진다. 실제 의도된 바는 셀던의 천 년짜리 계획을 이행하기 위한 기틀 다지기로, 은하계 끄트머리에 있는 행성에 10만 명을 이주시키고 이들의 행동의 자유를 제한하여 향후 수 세기 동안의 경로를 고정하는 것이었다.


평생을 복무해온 일이 사실은 무의미한 것이었고, 개인의 삶이 거시적인 계획의 미미한 파편에 불과하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개인이 느낄 절망은 가늠할 수조차 없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미시적인 데 맘이 쓰이고, 누군가의 삶이 거대한 계획의 도구로 쓰인다는 데 커다란 저항감을 느낀다. 그 대가가 3만 년의 암흑기라 해도 어떤 삶을 살지 결정하는 것은 오로지 한 인간의 몫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믿는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시킨다는 말은 그 자체로 어불성설이다. 대와 소를 가릴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오만이며, 설사 그게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누가 그럴 자격을 부여하거나 부여받을 수 있단 말인가. 더 중요하고, 급박하고, 영화로운 무언가를 위해 개인을 희생시킬 수 있다고 말하는 사상이나 체제가 위험하다는 걸 우리는 역사적 경험을 통해 익히 증명받았다. 그러니 나는 셀던의 계획이 어그러져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개인은 계획의 변수로 작용하므로 셀던은 의도적으로 예비 지식을 감춘다. 파운데이션의 존립이 위협받는 위기가 도래할 때 그는 녹화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미래는 은폐되어야 하기에 그가 밝힐 수 있는 것은 이미 진행되었을 일들에 관한 진단과 목적, 밝혀져도 경로에 지장이 없을 정보뿐이다. 그래서 그는 예언자라기 보다는 해설자로서 기능한다.


시리즈의 1권에 해당하는 이 책에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다섯 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1부와 2부 사이에는 50년, 2부와 3부 사이에는 30년, 3부와 4부 사이에는 50년, 4부와 5부 사이에는 20년이라는 시간 간극이 존재한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전개시켰을 때 얻을 수 있는 효과는 거시적인 흐름을 담을 수 있다는 것이다. 파운데이션이 주위 왕국을 정복해나가는 과정을 보면 처음엔 종교로, 그 다음엔 무역으로 침투한다. 바탕은 우월한 과학기술이다. 제국주의를 위시한 서구 국가가 식민지를 개척했던 방식과도 유사하고, 신자유주의를 앞세워 금력으로 세계 시장을 지배하는 다국적기업의 행태와도 유사하다.


그러나 이러한 서술 방식에서 개개인의 삶은 지워진다. 샐버 하딘이나 호버 말로 같은 인물들 한 명만 가지고도 책 몇 권은 나올 것 같은데 할애된 페이지가 너무 적어 아쉽다.


각 부는 <은하대백과사전>의 인용문으로 시작한다. 사전적 지식으로 박제된 죽은 이야기에 생생한 생명력을 불어넣어 현재로 불러오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러나 이로써 독자는 셀던의 계획이 성공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파운데이션은 제2 제국으로 성장했을 것이고, 암흑기는 천 년에 그쳤을 것이고, 사전은 완성되었을 것이다.


셀던 계획은 실패해야 한다는 나의 도덕적 판단과 짐작 가능한 결말에도 불구하고 어서 다음 내용을 알고 싶어 조바심을 내며 책을 읽게 된다. 형식면에서도 세계관으로도 흥미로운 작품임엔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 시리즈를 읽는 경험은 한 권의 책 또는 하나의 시리즈를 다 끝내기 전까지는 다른 책으로 넘어가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난삽하게 여러 권에 손을 대고 하나를 제대로 끝내길 어려워하는 지금의 내겐 흔치 않은 일이라 이 경험이 무척 귀하다. 얼른 다음 편으로 넘어가야지.


(313) "제국은 언제나 거대한 자원을 가진 땅이었어. 그들의 계산은 죄다 행성, 항성계, 은하계 전 성역을 단위로 하고 있어. 그들의 발전기는 거대해. 그들 사고방식의 규모가 거대하기 때문이지.

그러나 '우리'는 이 작은 파운데이션, 금속 자원을 거의 갖고 있지 않은 고립된 세계에서, 이런 열악한 경제 조건에서 생존해 나가야만 했어. 우리 발전기는 크기가 엄지손가락만 해야 했어. 그래야만 금속을 공급할 수 있기 때문이야. 신기술이나 새로운 방식을 개발해야 했지. 제국이 따라올 수 없는 신기술이나 새로운 방식 말일세. 제국은 실제로 중요한 과학적 진보를 이룰 수 있었던 단계에서 퇴보해 가고 있어. 제국은 우주선이나 도시, 전 세계를 지킬 거대한 방어벽은 갖고 있으면서도 인간 한 사람을 지킬 수단은 만들 수 없는 거야."


(314) "놀랍게도 그들은 자신들이 사용하는 모든 시설이 거대하다는 사실조차 몰라. 기계는 세대에서 세대로 자동적으로 넘어가고 감독자는 세습 계급이지. 그들은 거대한 건물 어딘가에서 튜브 하나만 타 버려도 어떻게 손쓸 도리가 없어. 이 전쟁은 이러한 두 제도 사이의 싸움이야. 제국과 파운데이션, 거대한 것과 미소한 것 사이의 싸움 말일세. 한 세계를 지배하기 위해 그들은 전쟁을 일으킬 수 있을 만큼 거대한 우주선으로 매수하려 했지만 그것은 아무런 경제적인 의의가 없어. 그렇지만 우린 작은 것으로 매수했지. 전쟁에는 쓸모가 없지만 번영과 이윤에는 결정적인 것으로....... 왕이든 콤도든, 어쨌든 그들 무리는 우주선을 입수해서 전쟁까지 준비해 왔겠지. 역사를 통해 보면 독재자는 국민의 행복을 자신들이 생각하는 명예나 영광이나 정복과 바꾸려 해 왔어. 그러나 힘이 되는 건 역시 생활과 관련된 사소한 부분이야. 그리고 아스퍼 아르고는 이삼 년 안에 코렐 전체를 덮칠 경제 불황의 태풍에 맞설 능력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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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26 19: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27 13: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23-03-27 09: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책먼지 님, 저는 이 책 읽을 엄두가 안나고(SF 잘 못읽어요. 어려워서) 사실 이 리뷰를 읽어도 책 내용을 잘 모르겠지만, 그런데 책먼지 님의 이 리뷰가 참 좋습니다. 책먼지 님이 흥미롭게 읽으시는 게 드러나서도 좋지만 무엇보다 책먼지 님의 도덕적 판단이 나와서 좋아요. 저는 이런 글을 좋아합니다. 크-

책먼지 2023-03-27 14:05   좋아요 2 | URL
저는 반대로 로맨스에 무척 취약해서 열정적으로 주인공들에 이입하는 다락방님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저는 감정을 쓰게 하는 책보다 머리를 쓰게 하는 책이 차라리 낫더라고요! 이 책의 경우 아시모프님이 쿨하게 웃겨서 더 재밌어요!! 휘리릭 쓰고 딱 한번 탈고하는 스타일이었다고 하는데.. 진짜 천재인가봐요.. 뭘 읽어도 도덕 못버리는 유교걸 여깄습니다ㅋㅋㅋ

건수하 2023-03-27 13: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먼지님 재미있게 읽고 계시군요!
글 보니 저도 다시 읽고 싶어집니다 (그래서 샀는데 왜 안 읽고..).

초기 3부작이 특히 재미있고 그 뒤에 좀 분위기가 바뀌었던 것 같은데... 책먼지님 글 읽으니 1권도 잘 기억이 안 나네요.
아무 것도 없는 3일... 3일 가지곤 안되겠고 최소 일주일 정도는 있어야 될 것 같은데.
언제쯤 읽을 수 있을까요 ^^

책먼지님 글로 대리만족해 보겠습니다 :)

책먼지 2023-03-27 14:11   좋아요 4 | URL
수하님 저 아직 재미없어지는 지점까지 못간거같아요!! 지금 2권도 거의 다 읽었음요ㅋㅋㅋㅋㅋ 폭주기관차입니다!!!

작가가 기획했던 건 초기 3부작까지였고 그 이후부터는 독자의 요구에 못 이겨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쓴 데다 후속작에서는 로봇 3원칙과 여타 다른 세계관을 다 하나로 묶어보려고 해서 재미가 떨어진다는 고런 정보를 읽기는 했는데.. 그래서 분위기가 바뀌나봅니다ㅠㅠ

아무 것도 없는 일주일 진짜 어디서 뚝 떨어졌으면ㅠㅠㅠㅠㅠㅠ

후후후.. 제가 수하님 대신 달립니다..💕 수하님께 지문 말고 지안이 역할을 달라!!!